요즘 전세계적으로 슬프지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논의가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듯 합니다.바로 안락사 문제입니다. 안락사는 영어로는 euthanasia(유타나시아)로 그리스어로 직역하면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의미입니다. 현대에서는 이 유타나시아가 조금 의미가 달라져서 불치의 중병에 걸린 것 등의 이유로 오로지 생명 연장만을 위한 치료와 생명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에 대하여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없이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인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전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국제적 또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안락사의 논의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락사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상당합니다. 생명을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끊을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자살과 다를 것이 없다는 논리이지요. 또한 특정인들이 재산 등을 노리고 안락사로 위장한 살인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점이 당연히 있겠지요. 원래 인간은 태어날 때도 자신의 의지대로 태어나지 않을 것처럼 죽음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호모사피언스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너무 오래 살게 되면서 이런 저런 부작용이 다수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건강상태가 따라주느냐 또는 오랜기간 살기위한 금전적이 여유가 있느냐도 중요한 변수가 되는 것입니다. 의식도 없는 상태에서 또는 극도의 고통이 따르는 상태에서 그냥 생명만 유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힘든 나날이겠느냐가 중요한 핵심 요소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어 왔습니다. 일부 유럽에서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네덜란드와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는 엄격한 조건속에 허용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2002년에 세계 최초로 적극적인 안락사를 합법화했습니다.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를 인정받기 위해 환자가 본인의 의지로 신청해야 하고 견디기 어려운 지속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상태이어야 가능합니다. 또한 최소한 의사 2명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등 모두 6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안락사가 허용됩니다. 안락사를 둘러싼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최근 네덜란드에서는 전 네덜란드 총리가 자택에서 부인과 함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해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역시 건강이 좋지 않은 동갑내기 부인과 함께 안락사했습니다. 부부는 93살로 70년동안 생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예전에 영화계의 기린아로 이름을 알렸던 프랑스 출신 영화배우 알랭 들롱도 2022년에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되면서 스위스에서 안락사로 생을 접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허용되지 않아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스위스에는 한국인들 상당수가 안락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제 안락사 문제는 쉬쉬한다고 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공론화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당장은 아니지만 머지 않은 시간안에 한국도 유럽국가들의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일본 여자 감독이 제작한 <플랜 75> 영화도 바로 안락사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초고령사회가 심화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 안락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해 상당한 의견개진과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2022년에 조사한 것을 보면 응답자 1천명 가운데 76%가 안락사 또는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16년에 같은 조사에서 50%정도만 찬성한 것에 비해 무려 1.5배 늘어난 것입니다. 한국은 한때 유교적인 영향으로 안락사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금기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조력 존엄사와 관련한 법제정에 대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80%를 넘기도 했습니다.
안락사 문제는 이른바 고려장이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도저히 지금의 상태로는 연명하는 것이 본인도 힘들고 가족들에게도 상당한 고통스러움을 주는 그런 상황이라면 안락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초고령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등장해 있습니다. 안락사 그러니까 존엄사문제를 공론화해서 옳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2024년 2월 1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