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다녀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날, 밥상 앞에 앉아
큰형에게 물었다.
큰형에게서 인정을 받으면 그것이 진실이 되니까.
"히야, 히야도 알제? 기차가 지붕 위로 날아다니는 거."
"그기 무슨 말이고?"
큰형의 눈이 커졌다.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다.
"히야, 기차 타고 부산 가봤제? 그라마 알 꺼 아이가..
기차가 지붕 위로 다니잖아."
"야가 무슨 소리 하노? 뭔 말인지 모르겠다."
큰형은 쿡쿡 웃기까지 했다.
작은형과 누나들도 따라서 킥킥 웃었다.
"정말이다. 내가 봤다카이~!!"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여보았지만 아무도 더 이상
내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나를 그렇게 놀라게 했던 광경과 진실을 믿어주지
않으니... 풀 죽은 목소리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부산 가는 기차 타거든 잘 봐래이... 정말
지붕 위를 난다니까..."
여덟 살. 여름방학.
어머니를 따라 당시 부산에 계시던 아버지를 뵈러
처음으로 부산행 기차를 탔다.
그전에 외가가 있던 왜관으로 가는 기차를 타보긴
했지만 그땐 낮이었다.
그 당시 여름에는 기차 창문을 열고 다녔는데...
기차들이 노후해서 창 밖으로 얼굴이나 손을 내밀고
가다가는 자칫 경 칠 수가 있던 시절이라, 창 쪽에
어머니가 앉고 그 무릎 사이에 엉덩이 반쯤 걸치고
가다가 심심하면 일어서서 창쪽에 붙어서서 바깥을
보곤 했다.
기차 바퀴소리와 전봇대 지나가는 타임이 묘하게
리듬 일치가 된다는 걸 알고 끄떡끄떡 고개로 그 리듬을
맞추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잠이 깬 것은 기차가 부산 까까이 아마도 부전역 부근을
지날 때쯤의 밤이었고, 어렴풋이 잠이 깬 나는 바깥
풍경을 보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기차가 집들 지붕 위를 날고 있었다!!!
그때도 부산은 대도시라 네온사인도 많고, 집들도
전등 많이 켜고 살던 시절이라 도시가 환히 밝던
시절이었다.
내가 탄 기차가 바로 그 집들과 거리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얼른 눈을 비비고 그 희한한 광경에 사로 잡혔다.
"엄마!!! 기차가! 기차가 지붕들 위로 달리네!"
"ㅎㅎ 그렇구나~."
"와~! 엄마, 난 기차가 날아가는 줄은 몰랐다."
내가 엄마 무릎 사이에 앉아 내다보는 바깥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차가 아래에 있는 집들을 깔아뭉개면 어쩌지...
내내 마음을 졸이면서도, 형들과 친구들에게 자랑할
큰 진실 하나를 알게 된 사실에 엄청 큰 기쁨을 느꼈다.
청룡의 해, 청룡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그림들을
보며 새해 처음으로 떠오른 추억은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날고 있는 그 지붕 위를 달리던
기차였다.
한국에서 출장이 잦은 일을 할 때, 밤 기차를 타면
남들 눈치 못 채게 어릴 때의 그 높이로 자세를 낮추고
창밖을 보면서 기차가 지붕 위를 달리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곤 했었다.
아무도 모르게, 어린 나를 만나곤 했었다.
첫댓글 ㅎ
부산에서 중학을 다녔던 시절 기차가 터널을 지날때면 그을음이 얼굴에 묻기도 했었지요
아무튼 예사롭지 않은 기억을 가진 님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열차칸에서 세어 나오던 노오란 불빛을 길다랗게 드리우고
까만 들판을 지나던 밤기차의 아늑하고 평화로웠던 풍경을 떠올립니다
장날 끌려가던 돼지보다 더 크게
울던 기적소리 생각납니다.
굴 지나면 코부근에 묻던 그을음도. ㅎㅎ
기차타고 수학여행 갈 때, 기차가
굽은 길을 달리면 앞뒤 차량에서
서로 손 내밀어 흔들어 주던 장면도...
잘읽고 갑니다.
청룡의 해에 지붕 아래 헐뜯는 소리는 멀리 하고
시원한 바람 지나가는
지붕 위로만 달렸으면 좋겠네요.
ㅎㅎ 네. 몸을 조금만 낮추면
청룡 기차는 언제나 지붕 위를
휙휙 지나갑니다.
여덟살 때
부산 대도시도 가보시고
맘자리님은 풍부한 경험에 의한
동화가 샘솟습니다.
어린 꼬마가
낮은 자세로 기차 위를 올려다 보면
지붕위로 날아가긴 하겠어요.ㅋㅋ
저는 중학교를 마칠때까지
깡촌에서만 살다가
고등학교가 시골에 없으니
도시로 유학가야 해서
도시구경을 다 커서 했답니다.
맘자리님 글은 마음을 참 평온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동화가 좋아지는 나이에
참 기다려지는 글입니다.
저는 제라님의 글을 기다리고
제라님은 제 글을 기다리신다니
우린 서로 셈셈입니다. ㅎㅎ
참,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우리의 느낌이 쭈욱
그렇다면...
요즘 드론 날아오르는 밤하늘의
청룡이 자주 등장하네요.
마치 어린 시절의 꿈처럼요.
고향의 지명이 오르니까
저도 잠시 어린 시절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산과는 인연이 많았어요.
외삼촌이 부산 범천동에 사셔서
방학 때가면 사촌형들이 옛 태종대며 해운대 광안리 다대포 금정산 어린이 과학관 같은 곳을 구경 시켜주었지요.
그때 해수욕 즐기는 튜브를 부산사람들은 '우끼'라고 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ㅎㅎ
군대 생활도 부산여대 밑 연산동에서 했으니...
그래서 부산은 저의 제 2 고향입니다.
@마음자리
글의 제목을 보고는 대뜸,
여름철 동해 남부선을 달리는 통학시간의
기차가 생각났지요.
해수욕 철에는 기차 난간에 매달려 가는
중고등 남학생들 기차 지붕 위에도 ...
그 당시는 경주 가는 수학여행도 기차를 이용했답니다.
아득히 먼 날, 낭만의 동해남부선 입니다.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언젠가 한번 봤더니 부전역 부근
풍경이 완전 달라졌더군요.
언덕 위 피난촌들도 다 없어지고..
네~ 유쾌하게 살겠습니다.
어릴 적 기억력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저는 단편적인 장면만 어쩌다 떠오르고
영 다 잊어버렸는데 ㅎ
올 한해 더욱 건강하세요.
새롭고 신기했던, 처음 경험했던
일들은 대부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운동도 하시고 사회모임 참여도
하셔서 기분 좋게 건강 잘 유지하세요.
참 아름다운 추억이네요.
여덟살에 기차를 타보셨다는 게
부러울 따름입니다.
전 시골에서 자란지라 초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으로 대구에 갔었지요.
그 휘황찬란한 도시의
불빛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기차는 대구에서 부산행 기차를
처음 타 본 것 같습니다.
바다를 보러 갔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어디를 가나 ktx를 이용하는지라
그 옛날 기차여행의 정취는
사라진 것 같아요.
마음자리 님의 어린날의 나를 만나는
아름다운 기차여행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땐 몰랐는데 제가 남들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자랐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배를 곯아본 적이 없는 것도 그 시절 큰 혜택이었어요.
혹 밤열차 타시거든, 그 기차가 부산행이거나 혹 서울행이라면..
제가 한 것처럼 몸을 낮추고 창밖을 한번 보세요.
신기한 경험을 하실 겁니다. ㅎㅎ
만화 영화 한 편을 본 듯 합니다.
지붕 위를 나르는 기차라...
어딘가 지금도
행선지를 모르는 기차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창 밖을 내다봐야겠어요.^^
그래서 은하철도 999가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가 봅니다. ㅎㅎ
은하철도는 지금도 달리고 있을 겁니다. ㅎ
지나치며 보던 왜관이라는 도시 이름이 기억나며, 저도 그 자세를 한번 취해 봐야겠습니다. ㅎ
꼭 그렇게 해보세요.
새로운 세상을 만나실 겁니다. ㅎ
ㅎ 나도 비슷한 경험담이 있어요. 시집간 언니따라 진해로 가는 밤버스를 타고 산비탈 도로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불빛들이 도깨비 불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웠어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땐 도깨비 이야기도 참 많았어요.
동심으로 그림있는 동화를
엮으십니다.
어머니와 꼬마의 기차 여행을
그리면서 읽었습니다.
사랑으로 내어주신 어머니의
무릎에도 정감이 넘쳐요.
잘 읽었습니다.^^
추억이 대부분 어릴 때라
길러내면 대부분 동화가 됩니다. ㅎ
그러게요 분명 지붕위로 기차가 달려갔는데
형아랑 누님이 안 믿어주었으니 얼마나
낙담하셨어요.ㅠㅠ
여덟 살 막둥이 맘자리 님 기죽어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무랑님 덕분에 속이 좀 풀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