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트랙, 와인딩 로드의 묘미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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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딩은 ‘구불구불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다. 일반도로에서 코너링에 치중한 드라이빙이란 뜻으로 지금처럼 통용된 건 일본 만화 ‘이니셜D’가 나온 뒤다. 일반 드라이브는 경치 좋은 국도 등을 달리며 풍경을 보거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차 밖 상황을 즐기는 것이라면 와인딩은 차와 드라이빙에 집중한다. 차를 한계치까지 몰아 그 코스의 랩타임을 경신하는 것. 그것이 와인딩을 즐기는 레이서들의 목표다. 물론 코너에서의 테크닉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스노보드도 프리스타일과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로 나누는 것처럼 와인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37번 국도(유명로)는 누가 뭐래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딩 도로다.
사실 이곳은 유명산과 중미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지만 대부분 ‘중미산 도로’라 부르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와인딩의 성지’라는 애칭이 붙는다. 이곳은 수많은 자동차 동호인들과 모터사이클 라이더들의 트랙이다. 주말이면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 동안 수십대의 스포츠카와 줄지어 가는 모터사이클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니셜D’에 아키나 고갯길이 있다면 우리에겐 중미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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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1.2km에 이르는 코스는 경기도 내에서 긴 편에 속한다.
정상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완만한 커브와 최고속도를 낼 수 있는 긴 직선 구간이 있다. 북쪽으로는 급격한 커브 구간이 몇 있다. 와인딩 마니아들은 남쪽보다는 북쪽을 선호한다. 차를 잡아 돌리는 재미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중미산 코스는 이렇게 다양한 구간을 두루 갖추고 있어 운전자에게 총체적인 드라이브 능력을 요구한다.
37번 국도의 초입인 복동삼거리에 도착했다.
두 차선의 도로가 눈앞에 쭉 뻗어 있었다.
그 위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집을 나올 때보다 한풀 기세가 꺾인 모양새다.
컴포트 모드였던 아우디 TTS의 주행 모드를 다이내믹 모드로 전환했다.
버추얼 콕핏이라 불리는 LCD 계기판이 온통 붉게 바뀌었다.
천천히 가속페달을 밟으며 출발했다.
오르막길의 상당 부분은 추월차선이 있는 이차선 도로로 구성되어 있다.
도로의 폭은 여유롭고 비가 와서 그런지 통행량도 많지 않았다.
빗줄기가 약해지긴 했지만 이미 젖어 있는 노면은 미끄러워 주의해야 했다.
중미산에는 TTS의 엔진음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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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오르막 구간이다. 충분히 접지력을 확보하는 TTS의 사륜구동 시스템을 믿고 가속페달을 밟았다. 프런트 부근이 살짝 뜨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뒷바퀴에서 느껴지는 견인력이 시트가 앞으로 당겨질 정도로 묵직했다. 으르렁거리는 엔진음을 내뿜으며 TTS는 힘찬 힐클라임을 선보였다. 중미산의 오르막길은 완만하면서 직선 구선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계속 가속페달을 꾸욱 누르게 된다. 추월 구간이 있다는 것도 속도를 내는 데 한몫 거든다.
그렇게 달리다 같은 차선을 서행하고 있는 차 한 대와 마주쳤다. 속도를 줄였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감속 속도도 굉장히 민첩했다.
TTS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냈다가 다시 감속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차체를 지탱해주는 서스펜션이 컴포트 모드일 때보다 단단해 미리 코스에 대한 정보를 인지한다면 충분히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안정감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오르막길엔 이렇다 할 급커브는 없다. 조금 급한 커브가 있더라도 2개의 차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빠져나올 수 있다. 긴 코스 길이 덕분에 아찔한 스피드를 느끼고 정상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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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와인딩은 오르막보단 내리막길이 짜릿하며 곳곳에 많은 위험 요소들이 숨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고 중미산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내리막길을 우아한 신사처럼 내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딱 그 중간이 필요했다.
정상의 북쪽 코스는 남쪽과는 다르게 급커브가 존재하고 내리막의 경사 정도가 남쪽보다 가파르다. 여기서 고저차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 갈 수 없다. 중미산의 고저차는 약 410m로 경기도 내에 있는 보통 코스보다 200m가량 높다. 중미산의 내리막길이 다른 코스들보다 스릴 넘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고저차가 트랙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느끼는 일반도로 와인딩의 큰 매력이다. 인제스피디움 트랙은 강원도에 위치해 세계 어느 코스와 비교하더라도 트랙 고저차가 독보적으로 크다. 고저차가 무려 40m나 된다. 트랙에서는 코너에 따른 하중이동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와인딩은 코너에 따른 하중이동을 포함해 고저차에 따른 하중이동까지 고려해야 한다. 수학적으로 접근하면 2차원의 평면좌표에서 3차원의 공간좌표로의 확장이 이루어진 셈이다.
내리막길은 오르막길과는 달리 한 차선만 달릴 수 있다.
마주 오는 차와 더 가깝게 주행하는 터라 긴장됐다. 오르막의 완만한 코너를 돌 때는 몰랐는데 중미산 기슭에 위치한 만큼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 시선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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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헤어핀 구간이다. 많은 선배 드라이버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미산의 헤어핀은 생각보다 곡률이 급하기 때문에 스티어링 휠을 덜 틀면 바깥쪽으로 튀어나가고 너무 꺾으면 오버스티어가 날 수 있다고 말이다. TTS를 믿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코너에 진입했다. 진입할 때 살짝 언더스티어가 나는 듯했으나 TTS의 사륜구동 시스템이 노면과 네 바퀴의 접지력을 만들어내 코너를 돌았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코너가 더 말려 들어간다. 스티어링 휠을 더 꺾고 코너의 출구가 보이자마자 그곳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코너를 탈출할 때, 아니 코너를 공략할 때(와인딩 레이서들은 코너를 공략한다고 말한다) 묘한 기분이었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중미산 코스를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익숙하게 달리던 코너들이 숨겨둔 이빨을 드러낸다.
진정 살아 있는 트랙이다. 주행하면서 내 몸 안에 숨겨져 있던 아드레날린들이 솟구치면서 열을 발산해 손에는 땀이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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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는 와인딩에 손색없는 차다. 비교적 짧은 휠베이스와 낮은 무게중심은 예리한 코너링이 가능하기 때문에 중미산의 헤어핀 구간에 적합한 모델이다. 이 때문에 TTS를 타고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은 없었다. 더 믿음이 갔다.
와인딩은 트랙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아류가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즐비한 살아 있는 트랙이다.
아직도 와인딩을 불법적인 행위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와인딩 시 지켜야 할 규칙과 에티켓을 숙지하고
일반 차량의 도로주행을 방해하거나 위협을 주지 않는다면
또 하나의 드라이빙 문화가 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중미산으로 가서 그 묘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산길엔 흙이 깔려있거나 젖은 잎이 깔려 있는 등의 치명적인 변수가 아주 많아,
익숙한 코스라고 방심하면 자칫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무리하게 달리기보다는 약간의 재미만 느낄 정도로 즐기거나,
적당한 속도로 달리며 상태를 확인한 뒤에 다시 반복해서 공략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하다.)
WHAT ELSE중미산 말고도 수도권에 꽤 괜찮은 코스들이 있다
1. 북악스카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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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시 성북구 북악산로
길이 : 6.8km
고저차 : 190m(최저높이 100m, 최고높이 290m)예상시간 : 13분
차를 가진 사람이라면 호기심에라도 한 번쯤 가보았을 길이다. 특히 연인들에게는 서울 야경을 감상하는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서울 안에 있는 코스치고 길이가 꽤 된다. 주행은 오로지 한 차선으로만 할 수 있다. 긴 직선 구간 없이 급한 커브가 많다. 도로 반사경이 잘 설치되어 있어 코너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진 도로의 폭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오르막길보단 내리막길이 경사와 커브가 급하다.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약 30개의 방지턱이 있다. 서울 안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곳 찾는 사람들이 많다. 새벽 시간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저녁 시간은 연인들에게 양보하자.
▲ 서울에서 가장 가깝게 찾아갈 수 있는 접근성
▼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
2. 포천 여우고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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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여우고개로 길이 : 6.4km
고저차 : 200m(최저높이 100m, 최고높이 300m)
예상시간: 11분
포천캠핑랜드 부근부터 경기도평화교육연수원으로 가는 명성산과 사향산 사이의 여우고개로를 달리는 코스다. 고저차가 200m나 되지만 길게 늘어진 코스라 경사는 완만하다. 약 200m길이의 직선 구간 하나를 빼면 대부분 커브길이다. 도로 옆쪽에 3km 구간까지는 꽤 급한 커브가 몇몇 있지만 도로 반사경이 커브 수에 비해 부족하므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2.6km 지점의 헤어핀 구간은 앞으로 나아갈수록 코스가 안쪽으로 말려 오버스티어의 위험이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다른 코스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고 방지턱도 거의 없어 블라인드 코너에 대한 주의만 한다면 괜찮은 와인딩을 즐길 수 있다.
▲ 방지턱이 없다
▼ 커브 수에 비해 부족한 도로 반사경
3. 성남 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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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남한산성로
길이 : 4.0km
고저차 : 190m(최저높이 140m, 최고높이 330m)
예상시간: 7분
특징 : 계속 완만한 오르막길
닭죽촌 민속마을부터 산성로터리까지 이어지는 남한산성로 코스다. 코스 길이가 짧고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완만한 오르막길로만 되어 있어 보통 왕복으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모두 이용한다. 한 차선만 이용이 가능하며, 중간에 산성터널을 지나야 한다. 커브라고 할 수 있는 구간이 몇 안 된다. 급한 커브가 3개 정도 있긴 하지만 생각만큼 급하지 않다. 다른 와인딩 코스들처럼 경사가 급격하게 변하지도 않는다. 도착지에서 남한산성 계곡까지 길을 연장해 달릴 수도 있다. 무난한 와인딩이 가능해 와인딩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코스다. 다만 성남시에 근접해 있어 차량 통행량이 많은 편이다.
▲ 입문자에게 부담 없는 코스
▼ 많은 차량 통행량
4. 가평 호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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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기도 가평군 상지로
길이 : 6.4km
고저차 : 210m(최저높이 140m, 최고높이 370m)
예상시간: 10분
호명산 주변엔 다양한 코스들이 있지만 이 코스는 자동차 동호인과 모터사이클 라이더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코스로 일명 ‘로코갤러리길’로 알려져 있다. 와인딩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코스다. 호명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는 상당히 좁다. 긴 직선 구간은 없지만 다양한 커브가 존재하며 상당수는 헤어핀 구간이다. 곡률도 다양하고 코스가 산에 걸쳐 있어 고저차도 상당해 고도의 브레이크 컨트롤이 필요하다.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입 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입문자에겐 조금은 버거운 코스다. 하지만 코스와 차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 커브들의 다양한 곡률
▼ 불량한 노면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