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지도자들이 '중도'를 욕하는 거, '기회주의'를 욕하는 거 멀리서 찾으면 안된다. 내가 비판하는 논조는 왜 우파에서 지도자라 자처하는 인간이 '주사파 개넘'(객관화 시키면 1987년에 절정을 달해서 1990년대 초반에 소강이나 침체기에 들어간 사회운동의 '객기파'부류)과 꼭 닮은 상태로만 모든 것을 고정시키려는 가 하는 점이다. 어떻게 한 입으로 전두환대통령을 높이면서 유신반대운동으로서 임헌영교수의 [실천문학]코드의 본산이면서 [한겨레신문]의 본산인 지점을 띄우는가? 이는 모호한 지점만큼의 '술수장착'을 의문할 수 있다.
----조갑제기자가 대한민국 건국 이래에 친북좌파적 언론에서 공격을 해도 내면에서는 늘 호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고(우파 어느 대표자도 '한겨레'신문에서 조갑제기자만큼 자주 지면 받은 바 없다.), 조갑제기자 주변에는 늘 좌경운동에서 힘떨어져서 '에라 그까이꺼 대충 전향하지'하는 이들만 몰리는 이유도 '자백'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사탄'이 '사탄'으로서의 본질을 커밍아웃 하는 시기는 우파가 진정으로 위태로운 시기일 것이다.
사려 깊은 온건한 자유주의적 시민은 좌익언론운동에 봉사한 조갑제기자의 자기미화에 대해서, 월간조선 편집장과 기자 복무 기간은 '한겨레'에 복무해야 될 법한 코드임에도 들어온 <부당이익반환청구권>의 형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있음으로 합리적 근거나 원인없이 부당하게 이익을 챙겨버린 '민주주의 원칙'을 어긴 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학자나 전향파들은 한 시대에 대한 다른 평가를 인정한다. 그러나, 좌익 개자식들은 꼭 꼭 자기네들이 '쥔장'이 되는 좌익운동투쟁사 중심으로 기록되길 원한다. 이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좌익학자들의 전형적인 어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일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자는 한 사회에서 지나간 사실에 대해서도 다원적이면서 복잡하면서 성찰적으로 사고하는 데, 좌익들은 우파의 성곽을 자기가 어떻게 깨뜨렸나 하는 으시대기 자랑논리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나는 이 점에서 매우 서글퍼진다. 친북좌익이야 으시대기를 받아줄 영역을 북한으로 설정하니 그렇다쳐도, 도대체 왜 이러한 어투를 봐야 되는 것인가? 그러한 점에서, 조갑제기자는 살아움직이며 실천하는 '다스베이다'로 우파의 지도자자리에서 '축출'이 필수인 사람일 것이다.
어찌되었던 간에, 조갑제기자는 덜 전향하여 우파라고 할 수 없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온갖 기만적 어구로 이리 저리 우파를 분열시키는 '악성 분자'임을 오늘 정확하게 고백했다. 조갑제기자가 왜 북한공산당을 북한공산당으로 보지 않고 '조선조'로 억지로 말같지도 않게 가는 이유도, 조갑제기자의 마음 자체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될만큼 덜 전향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 그에게 전향계를 받아야 하나?' 이런 인간 편집장으로 기용한 사람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기껏, 덜 전향하고서 살아오다가, 앞뒤 안가리고 변절자로서의 자세를 높이는 지도 모른다.
나는 하나의 사고 그림을 제시한다. 플라톤의 [국가]편에서 동굴의 비유일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싸우고 깨부시고 나아가면 뭔가 된다고 말하며, 군사정부를 악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가 있다. 자기네는 무조건 선량하며 군사정부를 최대한 못살게굴면 민중의 대표자로서의 자기네는 승리한다.
이 수준은 대학가 좌익 운동들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자유언론운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천문학]등지에 자주 나온 소설은, 오늘날 생각해볼 때 '북한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방이라고 본다.
회사사장님과 오너들을 극한까지 못살게 굴면, 북한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근로자의 계급적 각성으로 확 일어나고, 자본가들은 결정적인 순간에서 패배하는 식으로 맺어진다. 조선일보의 바람잡이로 나온 김윤식교수 바람에 나온 북한소설 약간을 보아도 이 정도는 느낀다. 당시, '풀빛'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사'등에서 나온 소설은 대개 이러한 형상이다.
그때, 에이 이윤 안나는 데, 확 한국을 떠버려..... 하는 외국자본이 줄을 이었었다. 그러면 안된다고 불법이라고 밀어붙이는 데, 시종일관 '오야붕'에 칭얼대는 '꼬붕'의 그것이었다.
나는 이제사 조갑제기자의 박대통령칭찬을 일본무사정신에 끼워서 보고, 반대로 좌익운동도 같이 보는 입장이 어떻게 된지를 알았다. 1980년대 좌익운동은 전부가 일본혼에 기인된 운동이고, 그것은 박대통령의 권위주의정권의 거꾸로 된 반영이란 것이다. 조갑제기자는 보지 못하되 젊은 층은 다 보는, 박정희에 대들었던 이들의 '작은 박정희(권위주의 스타일 이름의)'식의 분화는 이래서 객관적이다.
눈에 보이는 이성을 어따 팔아먹은 상태로, 대학공간에서 '작은 권위주의 정부'로 대학가에 진을 친게 좌익학생운동이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선량하겠거니 하고 믿어준게 그때의 일반인이었다.
아시아나 항공사 노조가 세계 최강의 노조사태를 맞아도, 될 때로 되라 하는 입장에 노조원들이 업무 복귀 선언을 하는 풍경은, 1990년대 초반무렵의 조갑제기자식 투쟁론에 입각된 사회분위기의 전방위적 염증의 재탕을 보여준다.
1987년에서 1990년대 초반은 '레닌주의 정치학'기반이다. 정치학교 운운하며 정치력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물물분배에서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갑제기자 수준의 무식무능을 즐기는 좌익들은 한결같이 투쟁하면 투쟁한만큼 이익이 온다는 철썩같은 믿음을 가진다. 그러나, 사회의 전방위적으로서의 사회 문화적 설계를 아는 이들에겐 정해진 파이 나누기의 차이일 뿐이지 파이 확장이 아니라고 비난하게 된다.
지금의 연소득 3천만원은 1990년대 초반에 '월급 100만원'과 같다. 대기업 화이트칼러로 젊은층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것이 근로자들이 달성되자 급속도로 분화되었던 것이 좌파운동이었다. 그만큼, 좌파 운동에 대해서는 '잡기식'논리로 다가서기에는 너무나 '조삼모사'에 물드는 저열한 심리가 끼인 것이 맞다. 그때 레닌의 '직업적 혁명가'론은 대학가에서 취직 기피의 운동권의 미끼였다. 우파 운동이 조갑제 기자의 우파에 '직업적 혁명가'론 부여는 순복음교회와 관련된 이근미님의 글에서 시작되었어도, 나는 절대적으로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사탄'의 이름으로 '사탄'을 잡겠다는 논리가 말이 되는가?
박홍총장시대는 대학가에서 취직 기피의 직업적 혁명가들을 배제하여 대학가를 살리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직업적 혁명가들이 '시민운동가'의 이름으로 변화하여 제도권에 들어와 막대한 수익을 얻는 것으로 안다.
김병익씨는 몰라도 조갑제기자가 별다른 이의 없이 쓰는 '송건호기자'는 한겨레신문과 강만길교수와 임헌영교수를 이어주는 대표 원로격인 사람이다. 그러지 않고는, 한길사에서 '송건호 전집'이 나올 수가 없다. 안 믿기면 '대형서점'에서 검색해보면 된다. '송건호'란 이름을 쳐서 나오는 공저자자 편자이름에 누가 글을 기고했는가를 찾아보면 안다. 송건호기자의 상징성은 '강만길'+'강정구'+'송두율'과 같은 이름으로 보면 된다. 학계의 지식생산 메카니즘을 보면 좌익지식의 제일 위층을 이룬다.
조갑제기자는 1987년에 절정을 달해서 1990년대 초반에 소멸된 줄 알았던 좌파식 투쟁전략을 즐긴다. 즉, 북한소설에 자본가계급처럼 결정적인 패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좌파를 부른다. 내가 자주 '지가 무슨 아시아 공산당이나 되는 줄 안다'는 식의 비난은, 여기에서도 맞다. 선의의 실수나 오류를 넘어서서, 애국진영을 악의적으로 좌파코드로 세뇌하려는 '선수'는 아니었을까 의문이 정당하다.
우파는 제 정신을 찾아야 한다. 조갑제기자를 '사탄'으로 부를 때, 우파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갑제기자의 도식을 가만 보라. 손학규경기도지사가 과감히 '햇볕정책'을 잇겠다고 공언하는 바가, 조갑제기자식의 김영삼대통령 감수성 잇는 방식이나, 사회과학적으로는 <그게 그거>임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좌익의 통일론에 국민에 이익을 주는 최대치의 정반대는 전두환정부 초기의 통일방안일 것이다. 이는 좌익들의 공산사관으로는 분단론이라고 설정되기도 한다.
조갑제기자식의 1987년 무렵의 대학가 저학년 꼬득이는 어법에 매몰되게 된다면, 그리고 우파의 어떠한 역사책 어떠한 지식 어떠한 문화도, 우파에 타고 앉아서 헷갈리는 어법으로 소외시키게 된다면, 우익진영에 조갑제기자를 추방하여 영구하게 필봉을 뺏어버리는 측면은 우파의 승리에 한걸음 발전을 가져다줄 수 잇다고 본다. 일제 말기에 훼절한 지식인을 보는 것 같으면서도 성공한 이중논리의 좌익 감수성 노인네를 원대복귀시키는 것의, 정치적 악용성에 대해서는 참으로 미칠듯한 억울함을 느끼게 된다.
조갑제기자의 70년대 언론 운동은 1983년의 양김씨의 민족해방론 선언에 이어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우파 운동은 조갑제기자가 머리박고 반성하며 통곡의 나날로 남은 삶을 보내게 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본다.
동아일보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게 한겨레신문이고, 그것이 1987년 이후의 김대중씨의 재기 발판이었고, 송건호씨 줄로 강만길씨등 각종 좌익학자가 날개를 대학가에 쳤음을 안다면, 왜 조선일보가 누구 때문에 좌익학자를 무분별하게 등용하여 대학가 청년들을 좌경화시켰는지가 선명하다.
조갑제기자가 극찬한 김영삼대통령의 투쟁성은 결국은 군사정부의 성장동력에 '솥에 구멍을 내는 것'에 그쳤다. 진짜, 대단한 투쟁성은 여리고 여린 정신문화의 결속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사탄'으로 그린 아하츠페르츠의 '힘'의 숭배에서, 대한민국정신의 부활을 믿는 자들의 네트워크가 되는 성경적 세계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말로, 미래는 건축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자의 것이다. 좌익의 시계추진행에 아무런 생산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게 틀어막아 놓고서, 반체제 투쟁사를 자랑하는 노인네를 지켜보면,
"자꾸 자꾸 그럴 수록, 우파가 기회주의로 오염되잖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친구야! 또또!"란 흥얼거림이 자연스럽다.
말로만 입에 발린 소리말고, 김영삼대통령의 투쟁성이 결국은 군사정부의 성장동력을 이어받아 솥에 구멍을 냈다는 수준에 그친 근본이유를 성찰해야 한다. 즉, 북한소설처럼 적대세력이 한꺼번에 '에고 무시라'하고 항복할 가능성의 전무를 인정해야 한다.
1987년에서 절정을 달해서 1990년대 초반에 소멸된 줄 알았던 운동에 작별하라고 할 사람은, 1970년대 좌익운동에서 작별했어야 했다. 우파가 왜 이토록 이념적 정체성이 혼돈스럽고 우파 사이트조차 좌익 코드가 넘실대는 이유가 너무나 선명하다.
1993년부터 지금까지 대학가 우파 지식생산에서는 근본적인 규제가 있었고, 지금도 우파 진영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의 틀을 공격하는 사고는 '조갑제기자'패거리들이 찍어막고 있다. 그 규제의 여파로 국민정신은 좌경화되었고, 드디어 조갑제 기자는 좌익적 본색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박정희정부의 언론통제가 경제발전을 가져왔고, 조갑제기자의 우파지식 통제가 좌익사회 만들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나는 조갑제 기자를 무식무능무자격 부당이익추구적 언론인으로 판정한다.
**. 1990년대 이전에는 기자가 좌경화되지 않았다? 이 슨상님 급 거짓말장이야. 도서관에 가서 송건호 전집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