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사의 기쁨과 슬픔 > 넉보 아지매
어시장에 장사를 나온 첫날, 겨울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칼날이 스친 듯 얼굴이 따끔거렸다. 간판도 가림막도 없는 도매 판매장 입구에 쭈 뼛 쭈뼛 서 있는데 다가오는 걸음마다 힐끔힐끔 얼굴을 살피며 "새댁 얼굴이 낯서네." 말을 던지고는 그냥 지나갔다. 경매장에서 가져온 생 선 상자를 쌓아 놓고 두 시간 동안 팔지 못한 채 남편과 장승처럼 서 있을 때 찾아 온 첫 손님이 넉보 아지매였다. "젊은 사람들이 뭐 한다고 이 험한 어시장에 나왔노? 이런 데서 장사 하게 생기지도 않았구만!" 등을 툭 치며 하는 말에 울 일도 아닌데 눈 물이 주륵 흘렀다. 별말 없이 갈치 네 상자를 사 간 그녀는 이후 매일 찾아오는 단골이 되었다. 냉동 수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배에서 선원들이 하나하나 상자에 담아 서 경매로 유통한다. 냉동이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운 탓에 가끔은 속에 다 품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생선들을 숨겨 포장하는데, 이런 일 로 도매상이 손님들로부터 억울한 곤욕을 치를 때가 종종 있다. 넉보 아지매는 그런 사정쯤은 진즉 알고 있기 때문인지 물건이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팔고 와서 이야기를 전해 줬다. 덕분에 물 건 상태를 아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언제나 억지 부리지 않고 자갈치 시장에서 단가 높은 중 자, 대 자 갈치를 잘 파는 손님 중 한 분이었다. 모두가 힘들었던 IMF 때도,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려울 때도 장사를 잘 해 온 넉보 아지매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면 물건을 속이지 않고 주는 우리 부부 덕이라며 웃었다. 말 많고 시샘 많은 시장에서 흔들림 없이 강단 있게 장사하는 그녀가 어렵기도 했지만 언제나 고마웠다. 도매 시장임에도 자기 이문을 먼저 생각하는 손님들도 가끔 있다. 습 관처럼 깎는 손님, 정찰제 없는 시장이라고 홍정으로 버티는 손님 등. 그런 손님들과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외상 사정 봐주다 돈 잃고 사람 잃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느 날 그녀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사는 아들에게 딸만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늦둥이 손자를 봤단다. 좋은 것일수록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며 그걸 지키겠다고 입을 감췄다. 장사를 잠깐하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손자 본 뒤로는 좀 더 하려 한다 고 말 한 뒤로 그녀는 몇 년간 물건을 받아 갈 때마다 착한 손자 이야 기를 하며 행복해했다. 자랑도, 고뇌도 터놓은 적 없는 그녀가 나에게 기쁜 마음도, 묵은 가슴도 털어놓았다. 서른여섯 살에 혼자되어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자식 굶기지 않으려 자 갈치 시장에 나왔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개상어를 벗기고 가오리를 말리다 힘에 부쳐서 갈치 장사를 시작했단다. 단신으로 장사해 자식 넷 다 키워 짝 맞춰서 살게 하고, 자신은 아들과 따뜻하게 산다고 했다. 요즘에야 굶고 사는 사람 없지만, 자신이 젊을 때는 배고픈 일이 제일 무서운 일이었다고. 지난 봄엔 손자가 군대 갔다며 쓸쓸해하는 표정을 처음으로 보였다. 손 자 용돈 주는 재미로 새벽이면 일어나 시장에 오던 그녀가 기운을 잃 어 갔다. 잠깐이면 제대하고 온다고 위로해도, 자기 나이가 여든일곱인 데 그때까지 살지 모르겠다고 힘없이 말한 그녀가 발걸음을 조금씩 늦 추더니 몇 달째 보이지 않는다. 손님으로 만난 25년간 외상 한번, 홍정 한번 하지 않고 거래처 한번 옮 기지 않은 그녀는 자갈치 시장의 산증인이다. 그녀가 예순이고 내가 마흔이었을 때다. 내가 넉보 아지매로 시를 쓰고 싶다고 한 적 있다. 아 무것도 내놓을 것 없는 인생인데 그 귀한 시를 쓰냐며 웃던 모습이 떠 오른다. 넉보 아지매는 문맹인이다. 휴대폰도, 장부도 없이 자갈치 시장에서 5 0년을 신용 하나로 장사한 참된 손님이다. 대쪽 같은 자존심이 있어 언 제나 가지고 있는 돈만큼만 물건을 샀다. 그 이름 누가 지어 부르게 되 었는지 잘 모르지만 나에게는 '넉넉한 마음'이라는 보석을 가져서 넉보 아지매다. 오래도록 걸음이 없어 안부를 물으러 찾아갔다. 자갈치 시장 속 연락처조차 알 길 없는 빈 좌판을 봄을 재촉하는 햇살이 혓바닥 붙 여 핥고 있다. "오십 년 전/바다 비린내 나는 앞치마 두른/자갈치 넉보 아지매//서른 여섯에 혼자되어/어미 새우처럼/자식들 안고 노점상인 되었다//개상 어 껍질을 벗기다가/가오리를 말리다가/갈치 꼬리 자른 지 삼십 년이 다//새벽 그믐달 닮은 허리로 앉아/생선 자른/여든일곱 살 아지매 신 발 속에는 비린내 묻은 바다가 소금밭이다//글도 모르고 전화기도 없 이/늦둥이 손자 용돈 주는 재미로 장사 나온다던/마음씨 넉넉한 넉보 아지매//온다 간다 말도 없이/어느 날 아침부터 자갈치 시장에 결석이 다."(<넉보 아지매>)
박희자 / 시인, '영진수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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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고 사는 게 뭔지...손자가 뭔지...넉보 아줌시 그뒤 어찌 되었을까?고맙습니다.
반갑습니다
이삼조 님 !
다녀가신 고운 걸음
방문글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따듯하게 지내시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 ^^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안녕하세요
고운 공유글 남기신
동트는아침 님 !
감사드립니다~
여유롭고 편안한
오후시간 되세요~^^
귀한 글 나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맘짱 님 !
고우신 걸음으로
소중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에도 웃음 가득한
즐겁고 신나는 행복한
날들 되시길요
늘 건강하세요~^^
넉보 아지매..
망실봉님 즐감 합니다
1월 한달 수고 많으셨어요
행복한 2월 맞이 하세요..^^
안녕하세요
고운 공유글 남기신
핑크하트 님 !
감사드립니다~
어느새 2월이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고
새로운 시작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2월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2월 맞이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