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성 석남사 주지 정조스님이 지난달(1998년 6월) 28일 새벽 5시30분 입적했다.세수 75세 법랍 30세.스님은 1923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 1956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전강스님의 회상과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송광사, 태안사등 제방선원에서 참선 정진했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인생백년일조무(人生百年一朝霧) 중생우치과일생(衆生愚癡過一生) 염기염멸시생사(念起念滅是生死) 만리무애만리천(萬里無碍萬里天)이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지난달 26일 세수 75세, 법랍 28세로 열반한 경기 안성 석남사주지 정조(正照)스님 다비식에서 콩알만한 사리(舍利) 50여개를 포함한 총 5백여과의 오색영롱한 사리가 나왔는데…
▼…상좌인 법지(法智)스님은 “1일 오후 스님의 다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크게는 새끼손가락 반만한 하늘색 사리에서부터 깨알만한 사리 등 5백여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공개하면서 정조스님은 한번 정진에 들어가면 수십일씩 곡기를 끊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회고….
【수행한담】 정조스님<안성 석남사 주지>
“무엇이 제것이고 무엇이 제것 아닙니까” 부처님이 어느곳에 있어서 우리가 찾아가는 걸로 생각마세요.
수행 완성한 자신이 부처입니다 ‘마음 지키기’가 바로 수행 일심이 지극하면 삼라만상도 지극 그 자리에서 불성의 빛줄기가… 문화재가 비록 절안에 있다해도 불자 뿐아니라 모든 국민이 주인 종교를 초월해 지켜야할 민족 유산 “나무 옮겨 심으라면 심으면 되는 법 갈길 아득한데 무슨 의심이 그리 많은가”
약력
·23년 전남 보성 生 ·
56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수료
·전강스님 은사로 사미계 수지, 구산스님 계사로 비구계수지
·조계종 중앙교육원 과정 이수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 송광사 태안사 등 제방선원서 참선 정진
·화순 만연사 주지 역임
전강스님:오늘 울력때는 저쪽의 나무를 이쪽으로 옮겨 심으라.
한 제자:스님, 그렇게 자꾸 나무를 옮겨 심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전강스님:아, 그리 똑똑하면 잘난 스승 찾아 갈 것이지 왜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에게 와 있는가?
한 제자:……?
나의 은사이신 전강(田岡 1898~1975)선사에게는 많은 일화가 있습니다. 스님의 선지는 그 누구도 엿볼 수 없이 날카로운가 하면 깊고 그윽하기도 한 것이어서 많은 제자들이 찾아 들었지만 길게 문하에 남아 있지 못하는 수가 허다했습니다. 본래 높은 산을 오름에 있어 정상까지 동행할 벗은 그리 많지 않은 이치라고나 할까요. 무엇보다 스님의 회상에서는 울력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의 백장청규를 엄격히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특별히 논 밭일이나 허드렛일이 없더라도 오전 오후의 울력시간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습니다. 더러는 이렇게 뒤뜰의 나무를 앞뜰로 옮겨 심고 앞뜰의 나무를 뒤뜰로 옮겨 심는 일도 시키곤 했던 것입니다. 신식교육을 받은 한 제자가 그렇게 나무를 자주 옮기면 나무는 죽어 버릴 것이라고 하명에 이의를 달았던 것인데 전강스님은 그야말로 예도(銳刀)로 나무를 자르듯 ‘그럼 딴데 가서 알아봐라’고 호통을 치셨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나도 현장에 있었던 것이기에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선객이 나무를 걱정 하는 마음은 가상하지만 스승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키는 울력의 큰 뜻은 읽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제자가 다른데로 갔는지 그냥 눌러 있었는지는 묻지 마시라. 큰스님께서 내게 ‘괜한 얘기를 꺼내서 사람들을 혼돈시키느냐’고 호통하실 것이다.) 나무가 죽고사는데 집착을 하느라 자신이 죽고사는 문제를 놓쳐 버린 그 제자를 향해 내리신 전강스님의 일갈은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얻어 맞아야할 봉(棒)일 것입니다.
엉뚱한 곳에 집착하고 끄달려서 헛꿈을 꾸고 헛된 망상을 따라 허황되이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 세상을 향해 던지는 “딴데 가서 알아봐라”는 한 마디의 따끔한 질책이 그립습니다. 다른 곳에 가서 알아 보라는 것은 비아냥 거리는 말도 아니고 욕하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본래 진면목을 찾아 떠나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소식은 아무때 아무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리를 진리로 들을 귀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제 근기에 천부당만부당한 곳에 서서 아무리 귀를 기울인들 삭막한 업식의 소리 밖에 더 들리겠습니까. 해탈열반의 그윽한 향기를 누릴 코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스스로의 근기와는 십만팔천리 동떨어진 곳에 찾아와서 아무리 코를 벌름거려 본들 억겁숙세를 두고 썩어 문드러진 악취 말고 무슨 향기가 느껴지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 봐야죠.다른 곳이란 바로 제 근기에 맞는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스스로의 업식을 닦고 닦아서 새로운 법연(法緣)을 맺도록 매진해야 합니다.
법의 인연은 긴 시간을 두고 스스로 닦아 지니는 사람에게만 맺어 지는 것입니다. ‘인연없는 중생은 부처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위로는 지혜를 증득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보살의 서원을 갖고 수행에 매진 하는 자는 상근기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는 먼저 깨달은 대덕의 팔에 구제 받을 인연이라도 지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인연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라 할 수 있기에 어서어서 자신의 자리를 둘러 보고 그 자리가 불법인연의 터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라는 겁니다. 인연의 자리라고 판단이 되면 그곳에서 일심정진을 할 것이고 아니라는 결론이 나면 그야말로 ‘딴데 가서’ 불법인연의 자리를 알아 봐야 하는 겁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더러 나도 무슨 인연으로 산문(山門)에 몸을 의지 하였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대대로 유학의 가풍을 이어 오는 집안에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절 생활을 아련히 동경했거나 신병(身病)이 있어 불가(佛家)의 처방에 은혜입은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시절인연을 따라 세간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만, 그 역시 허망한 과거사임이 분명하니 긴 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시절인연이란 중생의 입으로 논할 것이 아닙니다.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꽃이 피되 서리오기 전에 모든 꽃이 다 피었다 지는 줄 알지만, 서리를 먹고 피는 꽃도 있고 눈발이 흩어지는 설한에 피는 꽃도 있는 것이니 대자연의 생명력을 누가 입으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월담(月潭)은 괜히 헛눈 파느라고 마실밥을 오래 먹고 늦게 들어 왔어.”늦깍기를 향한 애정어린 도반들의 우스개 소리를 ‘늦게 온 만큼 더 야무지게 정진하라’는 충고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행을 하는데는 대중생활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에 한 절에 안주하지 않고 여러 선방을 찾아 다니며 정진했던 것입니다. 안거철에 방부를 들이고 정진을 하거나 아예 한 선방에서 수좌들과 결사를 맺어 정진하는 사이에 불쑥 세월이 이렇게 흘러 버렸습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이 아쉬울 것은 없지만 아직 어깨춤 추며 오도(悟道)의 노래 한 구절을 크게 부르지 못함이 두꺼워지는 안경알의 두께를 따라 눈앞을 아득하게 합니다.
용화사 선방에서 ‘무(無)’자 화두를 들고 정진하던중 문득 한 구절의 시가 떠올라 적어 둔 ‘안거송(安居頌)’에 아직 스스로 화답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래무물하처멱(本來無物何處覓) 도무우유시방편(道無又有是方便) 회두망외한가리(回頭望外寒柯籬) 소작삼오전소일(小雀三五囀消日) ‘본래무물인데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무다 유다 하는 이것이 방편설 아닌가. 머리돌려 밖을 보니 참새떼 겨울 나무가지 울타리에 옹기종기(삼삼오오) 모여 지저귀며 놀고 있지 않은가’
수행할 수 있을때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를 자부하는 모든 불자는 수행자인 것입니다. 재가신도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수행하지 않는 불교는 없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불서 한쪽을 읽어도 수행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고 이웃의 병자를 문안 가는 순간에도 수행의 마음을 지니고 가야 합니다.
마음을 놓지 않고 일심청정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수행인 까닭입니다. 일심이 지극하면 삼라만상이 다 지극합니다. 삼라만상이 지극하면 삼세제불이 다 지극합니다. 그 지극한 자리에서 해맑은 불성의 빛줄기가 터져 나오는 것이니 역대의 조사들이 한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려 쓰는데서 해탈의 인연을 얻어 명쾌한 오도송을 읊어대고 어깨춤을 추었던 것 아닙니까. 그 마음을 놓치면 아귀 축생 지옥계로 곧바로 떨어지는 것이어서 한 순간도 그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결행이 필요합니다. 그 마음 지키기가 바로 수행이지 다른데서 수행의 도리를 묻고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불법의 큰 바다에는 이념의 대립도 없고 잘 나고 못난 차별도 없습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량광(無量光) 무량수(無量壽)의 부처님은 바로 마음을 놓치지 않는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객체(客體)로서의 부처님이 어느곳에 있어서 우리가 찾아가는 걸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수행을 완성한 자리에 우뚝선 자신이 바로 부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평등하여 차별이 없는 여여한 마음이 이 몸을 가득 채우고 몸과 마음의 흔적조차 없어 이 몸과 우주가 그대로 불성의 빛을 발하는 경지는 분명 있습니다. 수 없는 시간, 헤아리지 못할 공간을 가득 채운 제불보살들의 화평하고 은은한 노랫소리, 밝고 밝아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이 빛나는 그 모습으로 화현할 가능성 역시 모든 중생에게는 고르게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수행 정진 하십시오. 갈 길은 아득한데 무슨 의심이 그리 많고 무슨 볼 일이 그리 많습니까. 나무를 옮겨 심으라면 나무만 옮겨 심으면 되지 어째서 나무 죽을 걱정에 붙잡혀 갈 길을 잃어 버린단 말입니까.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많다고 합니다. 참선이다 염불이다 사경이다 하여 모두 해탈열반으로 가는 길이라 합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행법(行法)이 하나의 길에서 이어지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마음을 놓치지 않는 길입니다. 이곳저곳에 마음을 붙잡혀서 이런저런 볼일 다 봐 가면서는 갈길을 한발짝도 못간다는 것입니다.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 가는 자세,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의 길을 닦아가는 자세로 걸어가는 가운데 극락의 큰 빛줄기는 우리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 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길을 가는 도반들입니다. 깨달음을 향해 가는 길에 잡음이 많고 산란스런 일이 많지만 그 일들조 차도 우리의 업연이 빚어낸 것이니 좌절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극락이란 가시밭과 거센 풍랑 험준한 산을 넘지 않고 이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중생계를 살아가는 모든 중생이 다 도반인데 이 노승에게 현실의 안타까운 당부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재를 온 국민이 한 마음 으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올해가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되어 여러 곳에 서 문화재를 아끼자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국민의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문화재란 어제의 우리 모습이고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입니 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들이 거기서 비춰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화재를 과거의 사람들이 남겨 놓은 물건이라고만 생각하는 데서 인 식의 방향은 어긋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불교를 중심으로 오랜세월 형성되어 온 우리의 문화와 그 결정체라 할 문화재들을 불교의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이런 생각은 불자들도 버려야 하는 것이고 타종교인이 나 무종교인들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절의 담장안에 있다고 불교만의 보배다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담 밖의 중생 모두가 그 주인인 것입니다. 신라때 세운 돌부처님 한 구가 오늘날의 불교신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당치 않은 겁니다. 고려때의 탑하나도 그 탑 이 그 자리에 선 이후로 그 탑을 바라본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봐야할 수 많 은 사람들의 것이지 오늘의 우리들 것만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미 국가 기관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했거나 지방단체가 중요유산으로 지정 을 했다면 그것은 불교의 재산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재산인 겁니다. 다시말 해 불교문화재는 비록 절 안에 있더라도 그 주인은 절의 담장을 넘어선 곳에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앙적 전통과 가치 그리고 성스러운 위의와 의미들 이 불교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지만 그 유산의 주인만은 불자이건 비불자이건 상관 없이 모든 국민이라는 인식이 하루속히 자리잡아야 할 것입니다. 선방으로만 떠다니다가 나이 일흔이 넘어 가난한 절의 주지가 되고 보니 이 절에 보물급 ‘영산전(靈山展 보물823호)’이 있는데 이 전각을 관리하며 뒤 늦게 성보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더러 듣게되는 훼불의 소식 들이 이 산승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무엇이 제것이 고 무엇이 제것이 아닌지도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구나’ 하는 서글픔 말입니다.
자료출처 - 인터넷 기사 및 불교사이트
<정조스님 - 왼쪽에서 3번째>

첫댓글 1983 백장암 법문 작업을 하면서 함께 정조스님 관련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정조스님은 백장암, 태안사에서도 큰스님과 함께 공부를 하시었던 스님이시었는데 큰스님과 미국에도 함께 다니시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정조스님을 저는 뵙지는 못했고 바람결에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_()()()_
와!!!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