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 박 아무개 거시기는 쇠말뚝 거시기
신라 제 48대 경문왕과 관련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너무나도 유명한 설화이니 설명은 생략합니다.
그로부터 1,000년도 더 흘러 서울 청와대 옆 궁정동에는 박 아무개 전용의 떡 방앗간이 있었다는 것도 10. 26사건의 재판과정에서 다 밝혀진 사실입니다.
60줄에 접어든 박 아무개는 예쁘게 생긴 여자라는 여자는 걱정원의 전신인 쩡보부 아이들을 채홍사 삼아 서울시내 8곳에 떡방아 간을 차려놓고 사흘거리로 채홍사들이 납치하여 오는 연예인이나 대학생, 때로는 어엿한 남편이 있는 유부녀까지 납치 해다 떡 방아를 찢어대다 보다 못한 김저격 장군이 즉결처형을 하여 유신인지 귀신인지 광란의 18년이 끝장난 것도 이미 더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 떡방아 간에 납치되어간 여성들 중 여대생들은 대부분이 순결을 잃지 않은 처녀였었고, 또 대부분이 박아무개의 첩의 몸에서 난 큰딸 막큰애 보다도 어린 여성들이었습니다.
당시 서울 장안에는 늙은 두 바람둥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박 아무개고, 또 한 분은 큰 삽질회사 회장인 “정모”라는 노인네였습니다.
하지만 두 바람둥이 노인네 중 정모 회장은 납치를 해서 떡방아를 찌어댄 것이 아니라, 거간꾼을 통해 넌지시 의사를 전달하고 정모회장을 존경하는 여성들이 기꺼이 거기에 응해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했던 것입니다.
같이 하룻밤을 자고난 정회장께서는 그 여성의 핸드백에 강남의 고급아파트 한 채 씩을 넣어주어 그 여인의 팔자를 고치게 해 주었습니다.
정모회장과 하룻밤을 지낸 여성들, 한 결 같이 정모회장을 존경하고 흠모했고 정회장과 하룻밤 살을 섞은 것을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채홍사에게 납치가 되어 떡방아 간에서 박 아무개에게 순결을 빼앗기고 하룻밤을 시달린 여성들은 박 아무개를 흠모하기는커녕, 그 사실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그날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 여성들이 200~260여명 된다는 소문만 떠돌 뿐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979. 10. 26 박아무개는 김저격 장군에 의해 지옥으로 갔습니다.
이제는 그 말을 해도 목숨을 잃을 걱정은 없지만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하소연 할 데가 없었습니다.
또 박아무개에게 당했다는 증거를 들이댈 방법도 없고 하니 혼자의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한 많은 여생을 줄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성들이 어쩌다 무슨 일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갈 일이 있으면 자신을 능욕한 박아무개가 어떻게 처 자빠져 있나 보기위해 그 무덤 앞을 지나면서, 그 끔찍했던 하룻밤의 아픈 추억을 혼자만 떠 올리며 흘러가는 바람에 대고 “박아무개 거시기는 쇠말뚝 거시기!”하고 낮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그 속삭임이 주변 나뭇잎과 줄기에 스며들고 땅 거죽에 스며들어 산들바람이 일면 경주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는 소리가 들리듯 “박아무개 거시기는 쇠말뚝 거시기!”하고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이 소리가 아무에게나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영혼이 있고 심안(心眼)이 있는 사람의 귀에만 들립니다.
저도 그 소리를 여러 번 분명히 들었지만 전날 술에 대취했었거나 부정한 일을 하고 난 뒤에 가면 전혀 들리지를 않습니다.
봄가을 산들바람이 부는 날 정갈한 몸으로 한번 소풍삼아 동작동을 가서 박 아무개 무덤가를 지나 보십시오!
“박아무개 거시기는 쇠말뚝 거시기!”소리가 들리면 당신은 맑은 영혼과 심안(心眼)의 소유자 이십니다.
첫댓글 부녀 열전 이라 들리는 소문에 아비는 딸 보다 어린 여자랑 방아질 하고 딸은 아비 보다 늙은 것 이랑 방아질 하고
정모 노인네는 끝까지 생활비를 대줘서 돈 걱정을 하지않고 살게 해줬다는 후문이 있는반면에
닭모는 무책임으로 일관했고 ,그 당시 중정× 들은 ??까지 삥땅했다는 후문입니다 .
물론 정조를 강탈당한 댓가로는 턱 없이 부족한 액수이지만요 ...
으흐~~~~~~~~~음 20 대 후반에 술안주로 씨부리던 전단지 소식인데 아직까지 피해자들은 입단속..허어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