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유배지가 나주 인근에 있다는 사실은 "요즘 누가 그런 방송 보는 사람이 있느냐"는 그런 방송이자 우리나라 대표 공영방송 KBS1에서 방영하는 '태조 이방원' 드라마 끝에 소개한 역사 현장을 보고 나서다.
행정구역상 나주시 다시면 운곡리인 유배지를 가려면 1번 국도를 이용해 광주에서 목포방향으로 가다가 다시면소재지 버스 터미널을 못가 우회전해서 백봉저수지로 가다보면 유배지 푯말이 나오고 계속해서 나오는 푯말 대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 초라한 유배지가 나온다.
500여미터를 남기고서는 외길이어서 차가 비켜 갈 수 없으나 끝까지 가면 방향을 돌려 나올수 있다.
저수지에서 바로 나오는 맑은 물이 흐르는 농로 배수지를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맑아지는 외딴 곳이다.
매화꽃이 피는 요즘에는 돌아오는 길에 2~3백미터만 우회하면 매화향기 그윽한 '청매실농원'에서 멋진 봄을 담아 올 수도 있다.
삼봉 정도전이 이곳 나주까지 유배를 오게 된 것은 1374년 공민왕의 죽음으로 친원파였던 이인임의 미움을 받게 되고, 이듬해 원나라의 사신의 마중을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친명파였던 삼봉의 나이 34살때다.
유배지로 내려온 삼봉은 처음 농부 황연의 집 한 칸에 세들어 살다가 동네뒤쪽 산 아래에 조그만 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삼봉이 유배생활을 했던
집터는 오백년 전 정자신(鄭自新) 아들 정식장군이
부친의 묘지 옆에 묘막을
짓고 삼년을 시묘살이
했던 곳이라 한다.
현재 복원된 삼봉 유배지 집터 위쪽에는 나주정씨
자신의 묘가 잘 관리되고 있었다
삼봉의 집은 방 한 칸과 마루 한 칸이 전부인 초가였는데 지금의 건물은 2010년에 복원된 것이다.
대나무로 엮어진 방문은 닫혀있고 열어봐야 초상화 한장 달랑 걸려있지만 만약 책상을 놓고 이불을 쌓아 놓았다면 혼자 살기에도 비좁았을 공간이다.
댓돌에 누군가 고무신을 놓았는데 아무리봐도 어울리는 소품은 아니다.
다음에 간다면 짚신 한벌쯤 준비해서 놔두고 싶었다.
마루 위 벽 높이에는 이곳 유배지에서 지었다는 삼봉이 쓴 '중추가'등이 걸려 있다.
누군가 해석해 놓은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이엉 끝을 아니 잘라 처마는 어지럽고
흙을 쌓아 만든 뜰은 모양새가 삐뚤빼뚤
사는 새 지혜로워 제 머무를 곳 찾아오고
들사람 놀라서 뉘 집이냐 물어보네
맑은 시내 조용히 문을 지나 흐르고
영롱한 푸른 숲은 집을 막아 가렸네
밖에 나가 보는 강산 아득한 벽지인데
문 닫고 돌아오면 옛 생활 그대로네"
선생의 시조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뒷산의 대숲에서 부는 바람소리와
지금은 말라버린 초가 앞 연못부터 시야를 가리지 않고 펼쳐진 논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생이 지은 시조를 읊조리려 보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답사는 역시 예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집에 돌아와서야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며 복습을했다.
그리고 삼봉은 아무리 인심좋고 풍광좋은 곳에서 3년간 생활하며 머물렀다고하나 죄인의 신분으로 쫓겨와 가택연금을 당했으니 나주는 썩 달가운 지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뒤져본 자료에서 삼봉은 이곳에서 정치적 격동기 백성들의 고통을 눈으로 확인했으며, 그들의 따뜻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백성이 먼저’라는 민본 사상을 더 급진적으로 변화시켰다고 전해진다.
기록물에 의하면 마을 이름 소재동은 소재사란 절 때문이라고한다.
마을 규모는 대 여섯 가구였고, 딸린 식구까지 합해도 서른 정도였다. 소재동기에 등장하는 중심인물은 황연과 김성길·김천 형제, 김천부, 조송과 서안길인데 모두 농부였고 서안길만 마을 옆 소재사 승려였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철 따라 나오는 토산물을 채취하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 소재동 주민들은 유배 온 삼봉에게 온갖 호의를 베풀었고
술자리를 같이했으며 철 따라 음식을 제공해주고 초가집을 지을 때 아낌없이 일손을 보태주었다.
삼봉은 소재동 농민들이 아낌없이 내주는 인심에 큰 감동을 받았고, 유배지 이웃 농민들의 인심에 감동을 받아 ‘소재동기’를 남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유배지에서 백성들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은 이후 민본사상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민가는 찾아 볼 수 없고 민박을 하는 곳인지 모르지만 상업적인 건물 한 채만 인근에 있었다.
삼봉유배지를 간다면 이 곳에서 5분거리인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국립나주박물관이 복암리고분 발굴현장 근처에 고분 내부를 볼 수 있게 재현해 놓은 전시관으로 마한과 백제를 거친 영산강유역 독무덤의 독특한 매장문화를 현장감있게 볼 수 있다.
삼봉유배지를 다녀 온 계기가 드라마 '태조 이방원' 이었기 때문에 사족을 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방송에서의 뉴스 진행자는 말소리의 높고 낮음, 장음과 단음을 구별하여야 하고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언어를 준수해야한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공부할때 가장 표준이 되는게 방송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락프로그램이도 아닌 뉴스프로그램의 진행자가 그런 기본사항을 무시하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로 시장에서 물건 팔듯 시청자를 현혹하거나 잡담할때나 사용하는 거친 언어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일부 종합편성채널을 공중파에 비교한다는 것은 MSG 맛과 천연조미료를 비교 하는것과 같다.
MSG에 맛들여진 음식은 아무리 맛을 내도 천연조미료 보다 좋거나 자연의 맛이라고 할 수는 없듯이
MSG음식을 먹어도 최소한 무엇이 천연의 맛이고 MSG가 들어간 맛인지 구별하는 분별력마져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물며 세계 3대 공영방송을 MSG가 들어간 방송보다 못하다고 주관을 객관화듯 평가 한다면 우리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요즈음 답사지를 뒤적이며 답사는 예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답사지를 보면서 왜 그것을 못 보았지? 아, 차선생님의 이야기가 그런 뜻이었구나 하며, 다음 답사때는 철저한 예습을 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그저 일상탈출이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다녔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다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아 아쉬움이 남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매화향에 취해봅니다.
선생님의 부지런하심에 비할바 못됩니다.
빨리 답사 갈 수 있기만 기다립니다
전 나주 사전답사 갔을 때 삼봉 유배지를 보고도
시간이 허락치 않아 가보질 못했는데 선생님은 가셨군요!
복원유적이기는 하지만 있어야 얘깃거리가 생기지
그렇잖으면 아예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지 않겠습니까.
나주를 다시 우리 답사팀이 간다면
'청매실농원' 매화를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함께 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내년 매화답사는 나주로 가요!!!!!
오랜만에 좋은 답사기가 올라왔군요.
곧 함께 동행할 날이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즐감하였고,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건강하신 모습으로 뵙기를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