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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다이내믹, 베트남
1. 사이공으로 익숙한 호치민의 이모저모
12월 17일, 아침에 일어나서 호텔 밖으로 나가니 후끈하다. 한국은 영하인데 이곳은 낮 기온이 섭씨 34도가 된다고 한다. 8시 15분, 전날 예약한 메콩델타 탐사 길에 나섰다. 중학교 시절에 배운 큰 강 하류의 삼각주를 고희(古稀)가 다 되어서 제대로 살피는 셈이다. 호텔 앞에 도착한 미니버스에 우리 일행 11명이 탑승하고 도중에 베트남 출신의 미국시민인 젊은 자매가 합류하였다.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서 남쪽으로 한 시간여 달리니 미토라는 도시의 크루즈관광지에 이른다. 3개의 삼각주 섬이 있고 폭이 3km가 넘는 넓은 강 하류를 수많은 배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대기 중인 보트에 오르니 뱃전 가득이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를 운반하는 배들도 섞여있다.
보트를 타고 10여 분 가서 내린 곳은 세 개의 섬 중 가장 크다는 드래곤 섬, 배에서 내리자 곧장 차를 대접해 주는 가게로 안내한다. 꿀과 향료를 섞어 따라주는 차 한 잔 마시는 사이 땅콩, 야자, 생강, 바나나를 말린 과일을 들고 와서 사주기를 기다린다. 빈손으로 돌려보내기 어려워 30,000동(1.5달러) 주고 바나나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정글처럼 숲이 우거진 섬 안쪽으로 들어가 두 번째 들른 곳은 젊은 남녀들이 악기를 들고 노래하는 가게, 여러 가지 열대과일을 맛보며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 쳐주다가 꽃바구니에 1달러를 놓고 나왔다.
메콩 델타로 가는 배를 타고
이어서 한적한 숲길에 들어서니 여러 대의 작은 보트가 대기 중인 선착장이다. 4명이 한조를 이루어 남녀가 앞뒤에서 노를 젓는 보트에 오르니 앞에 선 처녀(?) 뱃사공이 익숙한 솜씨로 잔잔한 물살을 힘차게 가른다. 10여 분 간 좁은 물길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따라가며 바라보는 열대의 상록수들이 장관이고 수백 척의 보트가 더러는 빈 배로, 더러는 여러 사람을 태우고 쉴새없이 오간다. '후유' 하고 한숨을 내쉬는 아낙네의 삶이 고달픈가, 땀 흘리며 꿋꿋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작은 보트를 타고 큰 강으로 나오니 우리 일행의 전용보트가 대기하고 있다. 이에 옮겨 타고 강 건너편의 다른 주에 이르니 이번에는 코코넛 열매로 과자를 만드는 공장견학이다. 무더위 속에 열심히 작업하는 현장의 모습이 아름답다. 어느 아낙은 뙤약볕에 장작불 피워가며 일하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공장을 벗어나서 열대림이 무성한 오솔길을 따라 좁은 강줄기에 이르니 전용보트가 미리 와서 기다린다. 보트에 올라 인근의 다른 선착장에 도착하니 점심을 드는 식당이다. 투어 비용 10달러에 버스와 보트 이용요금, 점심이 포함되어 있으니 매우 실용적인 가격이다. 휴대한 멸치와 김을 곁들여서 쌀밥에 닭고기 한 조각, 채소와 국물로 이루어진 소찬이 먹을 만하다. 베트남 출신의 젊은 자매가 정해진 메뉴 외에 30달러의 엘리펀트 피쉬 요리를 주문하고 더러는 맥주와 음료를 추가하기도 한다.
크루즈를 마치고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 현지 가이드는 일행을 미토시에 있는 불교사원으로 안내한다. 1849년에 짓고 여러 차례 중수한 영장고사(永長古寺)라고 표기된 중국풍 사찰이다. 현지 가이드는 베트남의 주된 종교는 불교이고 가톨릭이 그 다음을 잇는다며 베트남의 경제권은 중국계가 쥐고 있다고 말한다. 사원 안에는 서있는 불상, 앉아 있는 포대화상, 대형 와불 등 흰색의 거대한 불상들이 화사한 꽃들과 조화를 이루어 인상적이다.
메콩델타 탐사를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4시, 잠시 쉬었다가 아내와 처제 셋이서 택시를 타고 호치민의 중심부로 향하였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최대도시로 상업과 경제의 중심지인데 1975년의 통일 이전에는 남부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호치민 중앙우체국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중앙우체국에서 내려 그림엽서를 몇 장 사서 한국의 친지들에게 간단한 사연을 적어 부치고(우편요금은 한 장에 0.5 달러, 일주일 후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 앞에 있는 성당에 이르니 오후 4시까지가 입장시간이라며 출입을 막는다. 노트르담성당으로도 불리는 프랑스식 성당 앞의 마리아상 쪽에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북적이고 인근에 통일궁, 인민위원회 청사, 백화점 등 주요 건물들이 운집해 있다. 여행안내책자에서 소개한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 '껨박당'을 찾아 커다란 코코넛 껍질 안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맛보며 땀을 식히고 도심 주변을 산책하다가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6시, 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제법 서늘한 기운이다.
노트르담 성당
한때는 독일, 한국과 함께 3대 분단국으로 우리 또래의 많은 한국인들이 월남전에 참여하기도 한, 옛 사이공의 중심부 돌계단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할머니를 따라 온 아이일까, 아장아장 걷는 사내가 방긋 웃으며 다가와 두 손을 번쩍 들고 모자를 벗어던지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성서에서는 살육과 전쟁이 사라진 평화로운 날에 송아지와 사자새끼가 함께 놀고 어린 아이가 뱀의 굴혈에 손을 집어넣어도 해치지 않을 것이라 하였거니와 이처럼 해맑은 어린 아이의 평화가 전쟁의 참화를 겪은 이 나라뿐 아니라 온 누리에 전파되면 얼마나 좋을까, 때마침 호텔 앞 공원에서는 평화와 소망을 염원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다.
다음날(12월 18일) 아침, 식당에서 2년 전 북아프리카 여행 때의 룸메이트인 김훈기 교수를 만났다. 전날 밤에 호치민에 도착하여 우리 팀에 합류한 것이다. 재회를 기뻐하며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체크아웃이 끝나는 12시부터 호치민 시내를 4시간여 돌아보았다. 처음 찾은 곳은 건물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 핑크빛으로 장식한 성당. 호텔에서 5km 떨어진 성당까지 택시기사가 정확하게 데려다 준다. 공사 중이어서 출입문을 닫았는데 인부들이 사용하는 곳으로 입장하여 10여 분간 묵상을 하고 정원에 가지런히 세워놓은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새긴 조각품들을 돌아 볼 수 있어 경건한 시간이었다. 성당에서 나오니 가까운 곳에 넓은 공원이 있다.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시내 중심부로 걸어가다가 관공서 건물이 보여 들어간 곳은 출생과 사망, 결혼신고 등을 처리하는 주민 센터다.
어메이징! 핑크 성당 내부
에어컨이 설치된 민원실에 앉아 땀을 식히며 젊은이들의 결혼신고서 접수 장면들을 살피기도 하다가 다시 걸으니 번화가에 롯데리아 간판이 보인다. 안에 들어가니 슈퍼와 연결된 롯데체인점, 햄버거를 주문하고 슈퍼의 진열품들을 살펴보았다. 슈퍼에서 나와 큰길을 따라 걸으니 큰 공원처럼 숲이 잘 조성된 광장에 규모가 크고 반듯한 건축물이 나타난다. 다가서 확인하니 남부 베트남의 대통령 관저로 쓰던 통일궁이다. 4층으로 된 관저의 집무실과 회의실, 접견실, 침실, 식당 등을 두루 돌아보니 대청댐 쪽에 있는 대통령관저 청남대의 내부가 떠오른다.
통일궁
이어서 들른 곳은 호치민 시립박물관, 옛 수도였던 대도시의 박물관치고는 소장품들이 빈약한 느낌이다. 1층과 2층의 전시물들을 살피고 밖으로 나와 호텔 명함을 내보이며 가는 길을 물어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지났다. 화장실을 겸한 샤워 룸에 들러 흘린 땀을 씻고 잠시 쉬다가 인근의 '서울불고기'라는 한국음식점에서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으로 저녁을 들었다. 식사 후에 종업원이 아이스커피를 한잔씩 타 준다. 베트남이 커피의 주요생산지고 그 맛이 좋다는 처제의 말을 따라 원두커피를 어디에서 살 수 있는가 물으니 원두 한 봉지를 들고 와서는 선물로 주는 젊은 사장의 인심이 넉넉하다. 몇 년 전에 100달러 들고 호치민에 들어와 적수공권으로 차린 식당이 잘 운영되어 기반을 잡았다는 젊은이의 기백이 가상하다.
저녁 8시 반, 밤새 이동할 야간버스가 호텔 앞에 도착한다. 40석 넘는 좌석이 2층으로 마련된 침대버스에 올라 9시간 동안의 긴 여정에 올랐다.
2. 떠오르는 휴양도시 나짱
12월 19일, 한국의 18대 대통령선거일이다.
아침 6시, 베트남의 상업 및 휴양지로 널리 알려진 나짱(나트랑)에 도착하였다. 호치민보다 북쪽에 위치하여서인지 아침 기온이 선선하다. 예약한 호텔이 만원이어서 옮긴 숙소가 방도 넓고 쾌적한 편이다. 길잡이도 더 좋은 호텔을 주선해 주어서 오히려 잘 됐다며 기뻐한다. 방을 배정받느라 한 시간여 기다리는 사이에 일행이 가져온 노트북으로 한국의 투표상황을 살피니 추운 날씨인데도 투표율이 이전보다 더 높다는 소식이다. 아들이 투표소에서 이렇게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는 처음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밤새도록 버스 타고 오느라 피곤하여 오전에 휴식을 취하고 12시경에 도보로 나트랑 시내 탐방에 나섰다. 고풍스런 성당과 철도 역사, 불교와 힌두교 사원들이 품격과 운치를 갖추며 멀리 찾아온 나그네를 반긴다. 시내 중심가의 롯데시네마에 한국영화를 상영 중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언덕위에 세워진 사원들에서 바라보는 시가지의 전경이 아름답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망중한을 즐기는 기분이 상쾌하다. 돌아오는 길에 해변을 따라 걷는 산책코스가 일품인데 밀려오는 파도의 물결이 해운대처럼 제법 세차다. 밤에는 특설무대에서 춤과 노래를 곁들인 대형 쇼가 펼쳐지기도 한다. 바닷가의 큰 식당에서 랍스터, 새우 등 해산물 요리로 저녁을 들고 돌아오는 아내와 처제의 발길이 그곳으로 향한다.
나짱의 대표 유저지 탑바 뽀나가르 사원
파도가 넘실대는 나짱 해변
시내 탐방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4시가 조금 지났다. 한국시간으로 6시의 출구조사가 발표된 시점이어서 호텔로비의 인터넷을 살피니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박근혜 후보 51,1%, 문재인 후보 48,9%로 뜬다. YTN은 박근혜 46~49%, 문재인 49~51%의 결과로 약간 차이가 나고. 출구조사가 박빙의 승부를 예측하고 있어서 아직 개표결과의 판세가 혼전이라 여겼는데 저녁을 들고 호텔로 돌아오니 로비에 앉아 있는 김훈기 교수의 표정이 밝지 않다. 결과를 물으니 이미 50% 이상 개표가 끝났는데 박근혜 후보가 70만 표 이상 앞서고 있어서 당선이 확실하다는 전갈이다. 인터넷으로 살피니 밤 10시 반 현재 63% 개표에 76만 표차로 박근혜 당선 확실이라는 멘트가 뜬다. 일행 중 60대 이상은 박근혜지지가 많고 젊은 층은 문재인 지지 상황이어서 개표 결과에 환호와 실망이 교차한다. 지도자의 선택은 유권자의 몫.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선자 중심으로 힘을 모아 국민의 지지에 보답하는 새로운 앞날을 열어가야 하리라.
투어에 나서는 보트들
다음날(12월 20일), 오전에 체크아웃을 하고 8시 반부터 인근의 4개 섬을 돌아보는 보트투어에 나섰다. 일행 중 12명이 동행이다. 50여 명이 탑승한 보트는 하노이에서 온 신혼여행부부를 비롯한 베트남인들, 멀리 러시아에서 날아온 러시안, 중국계 관광객 등 다국적이다. 투어 요금은 6달러로 점심도 제공하는 실용적 패키지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어 시원한 날씨인데 뱃전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울려 퍼지고 섬마다 1시간 정도 머물며 아쿠아리움 관광, 제트보트, 파라셀링 등 해상 레저상품을 이용하기도.
선상에서 제공하는 점심메뉴가 다양하고 식사 후 펼쳐지는 노래와 춤의 무대가 경쾌하다. 각국대표(?)들이 나서 경연을 벌이는데 한국대표로 나선 아내는 우리의 영혼이 담긴 아리랑을 부르고 프랑스의 노부인이 샹송과 함께 멋진 춤 솜씨를 자랑한다. 마지막 섬에서는 해변의 휴게소 벤치에 누워 잠시 눈을 붙여 본다.
바다에서 와인을 마시기도
오후 4시에 보트투어를 마치고 '김치' 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식사를 한 후 호텔에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조금 지났다. 6시 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야간 버스정류장으로 향하였다. 다음 행선지는 문화유적이 많은 작은 도시 호이안. 우리 일행이 2층의 침대버스에 오르니 정원을 무시하고 많은 이들이 탑승하여 좌석에 앉지 못하고 통로까지 꽉 메운다.(버스의 행선지는 호이안을 거쳐 다낭으로 가는 노선이다) 승객들이 소란한 가운데 일찍 자리에 누워 12시간의 장거리 이동에 들어갔다. 지난 여름, 30시간 넘게 눕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실크로드하이웨이의 험한 길을 견딘 경험이 있는 터라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데 아내와 처제 등 여성들이 잘 견뎌낼는지 마음이 쓰인다. 일행 모두 파이팅!
3. 문화유적이 많은 호이안
12월 21일, 밤새도록 달린 버스가 오전 7시에 호이안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침대버스의 통로까지 사람이 꽉 차서 도중에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불편하였고 세찬 비가 쏟아지기도 하였으나 아침은 맑고 더운 날씨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여 여장도 풀지 않은 채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미선(My Son) 탐방 길에 나섰다. 이곳을 왕래하는 투어버스가 새벽 5시와 오전 8시에 있어서 오전 8시 편을 이용하느라 바삐 서두른 것이다. 아침 식사는 길거리에서 파는 바게트 빵으로 가름하고.
넓은 강을 끼고 달리는 버스는 여러 마을을 지나 오전 10시 경, 미선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씨엠립의 앙코르 와트처럼 깊은 숲속에 들어앉은 미선 문화유적은 4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조성된 70여 개의 힌두교 사원 터인데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그 중 일부가 외양만 가까스로 유지한 채 힌두교를 상징하는 시바 상을 비롯한 몇 가지 조각품들이 옛 문화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그 중 일부는 1969년 베트남전쟁 때 미군의 폭격을 맞아 파손된 채 잔해만 남아 있다. 이를 바라보며 아내가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의 노래 가락을 읊조린다. 그렇다. 우리 모두 그 무엇 찾으려고 밤새워 먼 길을 달려 잡초 우거진 빈 터에 왔는가?
미선 유적지
미선(My son)은 영어의 '내 아들'이 연상되는 표기인데 원래의 뜻은 '아름다운 산'이라는 베트남 언어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베트남인 가이드의 설명처럼 주변의 산세는 아름답고 고요하다. 이를 들으며 미는 아름다울 미(美), 선은 뫼 산(山)의 한자음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홀로 유추해 본다. 베트남은 오래 전에 중국의 지배를 받았고 곳곳에 한자로 표기된 건물들을 지금도 많이 볼 수 있음을 곁들여서.
한 시간여 문화유적지를 돌아보고 숲이 무성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 후 올 때 탔던 미니버스에 올라 30여 분을 달려 이른 곳은 강폭이 넓은 강변의 나루터. 외국인을 포함한 24명의 일행이 작은 배의 난간 양편으로 갈라 앉으니 좌석이 꽉 찬다. 배에 오르자마자 미리 준비해 놓은 점심식사로 쌀밥에 볶은 야채를 얹은 접시를 하나씩 안겨준다. 후식으로 바나나 한 개와 물 한 병을 더 서비스하니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한 시간 가량 배를 타고 돌아오는 주변 풍광이 고즈넉하고 산들바람이 시원함을 더해 준다.
동서가 어울린 배 안에서의 식사
숙소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호이안 역사를 살펴보니 1000년에 걸친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192년에 참족이 참파왕국을 세워 중국의 한(漢)나라로부터 독립하여 15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호이안은 참파왕국의 해상무역 거점으로 번영을 누리면서 힌두교의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그 중심지가 미선이라고 적혀 있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느끼는 소감- 각 나라마다 도시마다 제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 베트남은 한 번도 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이 없는 미국이 손을 들고 물러나게 한 저력의 나라인데 강력한 대국을 물리친 그 땅의 가냘픈 여인들이 한국의 농촌에서 고된 타향살이 하는 일은 어찌된 영문일까?
저녁 식사는 처제와 한 방을 쓰는 캐서린(여행 중 붙인 닉네임으로 아내는 올리브, 처제는 비비안, 나는 마이클이라 부른다.)이 풍성하게 차린 상추쌈 백반. 넷이서 신나게 먹으며 행복한 표정들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야경이 아름답다는 밤거리 산책에 나섰다. 복고풍의 거리 풍경이 고스란히 보존된 구시가지에는 호이안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일본인 다리(Japanese Bridge), 중국의 각 지방에서 모여든 화교들이 고향 출신들과 단합하기 위해 만든 향우회관, 홍등을 밝히며 화려하게 치장한 상점들이 멀리서 찾아온 이방인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호치민의 붐비는 인파에 비하면 거리는 한산한 편, 애타게 손님을 기다리는 상점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다.(다음날 오전에 다시 일본인 다리와 시장을 다녀온 처제는 가벼운 쇼핑도 하였는데 밤거리의 한산함과 달리 시장에 사람들이 붐비는 등 활기가 넘친다니 다행이다.)
시장은 어디나 활력이 넘친다
나짱과 호이안의 거리와 호텔에 러시아인들이 많다. 나짱에 러시아 직항편이 개설되어 휴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길잡이의 설명이다. 호이안 인접 도시 다낭에는 한국의 직항편이 닿는다. 바야흐로 동서와 남북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 지는 때,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가기를.
밤새 비가 내렸다. 전날 배를 타고 내려온 강에 황토물이 넘치듯 수량이 풍부하였는데 이처럼 자주 비가 내리기 때문인가. 오전에 호텔 뒤의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1시 반에 호이안을 출발하여 오래된 왕궁들이 많은 후에로 향하였다.
호이안에서 북쪽으로 30여km를 올라가니 베트남 중부의 관광과 상업중심지인 다낭에 들어선다. 시내로 들어서는 초입에 거대한 리조트들이 여러 개 보이고 강을 연결하는 큰 교량이 서너 개나 된다. 한 곳의 교량은 기존의 다리를 중수하는지 통행을 제한하고 공사 중인데 이를 우회하여 시가지를 종횡으로 누비며 지나는 버스 안에서 다낭의 전경을 이리저리 살필 수 있어서 좋다. 베트남에 20여 개나 진출하였다는 롯데 시네마와 슈퍼가 들어 선 큰 건물도 눈에 띠고 실내체육관인지 컨벤션센터인지 비행접시 모양의 큰 건축물이 날렵한 모습으로 위용을 뽐낸다. 다낭은 베트남 전쟁 때 미국 해병대사령부가 주둔한 군항이기도 한데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호이안에서 복무했던 요셉의 변신
다낭을 지나 30여 분 달리니 큰 산맥이 나타나고 이를 가로지르는 터널을 통과하자 넓은 들판과 망망한 바다가 한동안 이어진다. 아내에게 저 바다가 기상예보에 자주 등장하는 남지나해라고 설명해 주기도.
중간에 20여 분 휴식을 취하고 네 시간쯤 달려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후에에 도착하니 저녁 6시다. 일부는 시클로, 일부는 택시를 이용하여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나서 호텔 인근의 여행사에 들러 다음날 관광코스를 예약하였다. 후에에 도착하여 수하물 칸에 실은 가방을 찾는 중에 한 서양 여성이 배낭을 찾지 못하여 허둥대는 모습이 안쓰럽다. 일행 중에도 스마트 폰과 선글라스를 분실한 사례가 있는데 이동 중이거나 보행 때 여권과 휴대품의 보안에 늘 신경이 쓰인다. 이런저런 시름을 젖혀두고 가족들과 저녁을 든 후 피곤한 몸을 잠자리에 눕히니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났다.
4. 구엔 왕조의 역사와 문화가 돋보이는 후에
12월 23일, 밤새 비가 내리더니 구름이 많이 낀 흐린 날씨다. 오후 들어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하여 저녁까지 쉬지 않고 내린다.
민망왕릉
오전 8시 반에 구엔 왕조의 여러 황제릉과 왕궁, 사원, 호엔 강의 보트타기, 점심 등이 포함된 시티투어에 나섰다. 투어 비용은 22달러로 그 3분의 2가 관광지 입장료다. 처음 찾은 곳은 시내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뜨득(Tu Duc) 황제릉인데 별장으로도 사용된 능의 크기가 대공원처럼 넓고 왕궁, 후원, 연못, 무덤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어서 유익하다. 황제 복식을 빌려 입고 포즈를 취하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의복이 날개라는 말을 떠올린다. 황제와 황후의 복식을 입은 부모를 쳐다보는 어린 아이의 얼굴이 환하다, 적은 돈으로 복식만 빌리면 누구나 용상에 앉을 수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이어서 찾은 곳은 민망(Min Mang) 황제릉과 카이딘(Khai Dinh) 황제릉으로 각기 문화,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곳인데 특히 20세기에 건축한 카이딘 황제릉의 세라믹과 모자이크 장식이 화려하고 정교하다.
카이딘왕릉
세 군데의 왕릉을 돌아보고 시내로 들어오니 12시가 지난 점심시간이다. 뷔페 양식의 점심 메뉴는 다양하고 풍성하여 모두들 입장료를 뺀 실제 투어비용 8달러에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음을 기뻐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거니와 여행 중 매 끼니 먹을거리의 해결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교훈하는데.
점심을 들고 차에 오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후에 처음 찾은 곳은 성곽 둘레가 10여km에 이르는 광대한 왕궁이다. 비를 맞으며 장엄하게 장식한 일곱 황제의 묘실을 비롯하여 왕과 가족들이 사는 궁전의 이모저모를 한 시간 넘게 돌아보았다. 세조묘(世祖廟)라고 새긴 현판의 글씨를 보며 일행 중 한 분이 언제 세조가 이곳까지 진출하였느냐고 농담을 하기도 하였다. 베트남의 여러 사원과 사당에는 한자로 표기된 현판이나 문장이 많아서 베트남이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를 받았던 것과 유교의 중요 전래지가 한국, 일본, 베트남인 것을 되새기게 된다.(5년 전, 하노이에서 공자의 사당을 살피며 베트남이 중화유교문화권의 동아시아국가인 것을 일깨웠다.)
비 내리는 왕궁
점점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식물원과 파고다 등 나머지 두 곳은 대충 살피고 용머리 형상으로 뱃전을 장식한 보트에 오르니 오후 3시 반, 한강 만큼 넓은 강폭의 호언강을 30여 분 동안 유람하였다. 비가 자주 내리는 열대지방이어서일까, 지역마다 큰 강이 흐르고 수량이 풍부하니 농사에 가뭄 걱정은 없어 보인다.
보트에서 내려 숙소까지는 10분 거리, 택시 잡기도 어려워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걸어오니 옷과 신발이 흠뻑 젖어 물이 줄줄 흐른다. 젖은 옷과 신발을 말리는 일이 한 몫이지만 더운 물에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계속 내리는 비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한국에서 가져온 떡국으로 저녁을 가름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12월 24일), 비는 밤을 새워 내리다가 새벽녘에야 그쳤다. 아침 식사 후 숙소에서 가까운 시장과 주변을 둘러보며 현지인의 사는 모습을 살피는 것도 재미가 있다. 질퍽한 시장골목의 좌판에는 싱싱한 열대 과일과 채소류들이 지천으로 쌓여 있고 오징어와 새우 등 해산물도 풍성하다. 시장 옆에 있는 플라자에는 롯데리아가 들어서 있다. 플라자의 마트에 들러 빵과 과일 등을 한 꾸러미 사서 오후의 하노이행 장거리여행에 대비한 후 숙소에 돌아오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비온 후에 기온이 많이 내려가 10여 일 만에 긴 바지와 점퍼 등을 걸쳤는데 현지인들 가운데는 털옷을 입은 이들도 눈에 띤다.
시장 풍경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그제는 동짓날, 팥죽생각이 났으나 길잡이는 이곳에서 팥죽 파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답한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현지의 택시기사는 눈 구경을 한 적이 없다며 한국은 지금 춥고 눈이 오느냐고 묻는다. 마침 대만의 여행객이 크리스마스이브라며 꽃을 사들고 와서 호텔 종업원에게 건네준다.
점심시간에 여행안내 책자에서 후에의 명물요리 맛보기 코스로 추천하는 신시가지의 탬플 식당을 찾았다.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쌀국수 분 보 후에와 튀긴 춘권 등 여섯 가지에 맥주를 한 잔 곁들이는 식당의 분위기가 아늑하고 음식 맛도 좋은 편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2시, 4시의 집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아내와 처제에게 크리스마스 보너스로 마사지를 하라고 권하였다. 호텔 프런트에 마사지 하는 곳을 알선해 달라고 부탁하니 300여 미터 떨어진 안마소의 직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한 명씩 픽업해 간다. 남국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이브가 그런대로 알차다.
그 사이 호텔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노라니 바로 앞이 수영장이다. 엊그제만 해도 수영장에 들어가기 알맞은 날씨였는데 지금은 몸이 움츠러든다. 갑자기 낮아진 기온에 적응하도록 두툼한 겉옷을 꺼내 입으며 199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응원여행 때 감기에 걸려 고생했던 일을 떠올렸다. 야간버스에서 걸렸는지 74세의 캐나다 교민이 감기로 고생, 객지에 나와서는 각별히 건강에 유의할 일이다.
이틀 간 묵은 호텔에는 서양인들도 꽤 많은데 어떤 이들은 굵은 비가 내리는 밤에 다른 도시로의 먼 길을 떠나고 또 다른 이들은 비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묵을 곳을 찾아 들어온다. 우리의 삶에도 떠나는 이들과 새로 오는 이들이 교차하기 마련, 우리도 오후 5시에 하노이행 야간 버스에 올랐다. 숙소 인근의 여행사 앞에서 하노이로 가는 승객을 가득 태운 야간 침대버스는 비가 내리는 밤길을 가다가 도중에 저녁 식사를 위해 30분 간 멈춘 후 북쪽 방향으로 쉬지 않고 달린다.
8. 다시 찾은 천년 고도 하노이와 명승지 하롱베이
12월 25일, 밤새도록 달린 야간버스는 열 세시간만인 아침 6시를 지나 하노이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4명씩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의 여행자들이 주로 묵는 숙소에 도착하니 2십만 동 (10달러)의 미터요금이 나온다. 택시 타기 전에 가이드가 8만 동(4달러) 이상 나오면 요금을 주지 말고 기다리라고 당부 하였는데 5대의 택시가 모두 비슷한 요금이 나온 것이다. 실랑이 끝에 8만 동(4달러)의 요금으로 타결하였는데 여행사 직원의 이야기로는 이른바 미터기를 조작한 마피아 택시라며 요금을 갈취하는 이런 택시들이 더러 있다는 이야기다.
숙소에 가방을 맡겨놓고 오전 8시 반에 하노이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닌빈(하노이가 수도되기 이전의 옛 왕도가 있는 도시) 지방의 짱안에 있는 동굴탐방에 나섰다. 베트남의 관광명소 하롱베이와 비슷한 인상의 산들이 늘어선 짱안의 동굴탐사는 큰 호수처럼 생긴 강줄기를 따라 4인이 탈 수 있는 작은 보트로 2시간여 돌아보는 탐방코스인데 호수 주변의 산세도 아름답거니와 보트가 겨우 통행 할 만큼의 낮고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수백 미터 길이의 수상동굴 6개를 경유하는 멋진 관광코스다. 투어비용은 왕복 교통비 10달러, 보트 및 입장료가 5달러로 실용적이다.
하롱베이를 닮은 짱안
이곳을 오가는 길목에 현대자동차 영업장이 있고 우리가 타고 간 버스를 비롯하여 현대자동차들이 많이 눈에 띈다. 하노이 중심가에는 LG 선전판이 길게 늘어서 있고 대우호텔, 신축중인 롯데센터, 한국인학교, 서울호텔 등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건물들이 요지에 들어서고 한글표기를 한 중고버스와 승합차들이 운행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하노이의 전설을 담은 시민들의 휴식처 호안키엠 호수가 있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드리워진 호수 주변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은 하노이의 명소인데 크리스마스를 기리며 산책한 이곳의 야경이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눈이 없는 도시의 모형 눈사람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젊은이의 밝은 표정과 호반의 벤치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은데 이들을 비켜 밝은 곳의 빈 의자에 앉아 호반풍경을 감상하기도 하였다.
호안끼엠 호수
12월 26일, 이틀간의 여정으로 하노이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이 걸리는 명승지 하롱베이 탐사길에 올랐다. 17명의 일행 중 14명이 여러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여행상품을 선택하였는데 우리가족은 산티아고, 요셉, 캐서린 등 6명이 한 팀을 이루었다(투어비용은 50달러). 우리가 탄 미니버스에는 당초 20여 명이 탑승하였으나 여행사의 인솔 가이드는 하롱베이에 도착하면 다른 팀에 합류하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따라 하롱베이에서 다른 팀에 섞여 보트에 탑승하였는데 보트투어가 끝난 후에는 우리 팀 6명만 투숙객이 거의 없는 한적한 호텔로 안내하여 어색한 모양새가 되었다. 배낭 팀으로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이처럼 예기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나 지나놓고 보면 다 좋은 추억거리가 될 터.
하롱베이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베트남 최고의 경승지, 이 나라에서 가장 빨리 관광개발이 이루어진 휴양지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3,000여 개의 섬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상을 4시간여 보트를 타고 돌아보는 해상관광은 여러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탄성이 터지는 환상적인 유람이다. 해리티지(heritage)가 세계의 경이로운 자연으로 지정한 동굴탐사도 특이한 볼거리다. 보트를 탄 일행 중에는 미국, 프랑스, 네덜런드, 일본,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 섞여있다. 선상에서 제공하는 점심이 맛있는데 서양인들은 입에 안 맞는지 많이 남긴다.
오, 하롱베이
우리가 묵은 호텔은 별 세개의 큰 호텔인데 비수기 탓인가 투숙객은 우리 팀 6명밖에 없는 듯 텅텅 비어있다. 호텔 맞은편에 방콕이라는 큰 중국음식점에서 저녁과 점심을 들었는데 여섯 가지의 접시요리가 깔끔하고 담백하여 모두들 맛있게 들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가 부실하였지만 매사에 만족할 수는 없는 일 ,객지에 나와서 잘 자고 잘 먹고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행복으로 여기면 좋으리라.
저녁과 오전의 여유 시간에 호텔주변의 야시장과 하롱베이의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해상고가도로 부근까지 오가며 살피는 산책코스가 운치 있다. 해상에는 거대한 크루즈선이 정박되어있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가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지 거리에 중국인을 고객으로 하는 가게와 제품들이 넘친다.
하롱베이는 5년 전에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미처 돌아보지 못한 지역도 돌아보고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살피니 아는 것 느끼는 것이 더 알차다고 할까, 어떤 이들은 한 번 가본 나라와 지역을 다시 찾기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한두 번 방문으로 어찌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다 익힐 수 있으랴. 고가도로로 이어지는 건너편 섬 지역을 가보고 싶었는데 우리를 태우러 온 버스가 나머지 일행이 머물고 있는 섬 지역을 거쳐서 돌아가게 되어 하롱베이의 두 지역을 모두 살 필수 있게 된 것도 좋았다. 다른 여행사를 이용하여 선상에서 하루 밤을 보낸 김훈기 교수는 밤에 보는 해상의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찬탄한다.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오가는 길목에 여러 도시를 거친다. 도로 옆으로 철길이 연결되어 있는데 베트남의 남부에서 하노이에 이르는 10여 일 동안 기차가 지나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다. 하노이 도심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단선인데 이는 기차운행회수가 적은 것을 나타내는 듯. 도로변에는 쉼터, 휴게소라고 한글로 표기한 가게도 눈에 뛴다. 이 길을 오가는 한국의 여행자들이 많다는 증거이리라. 하롱베이의 야시장과 호안끼엠 호수에서 한국관광객들과 더러 만나기도 하였다.
하노이의 날씨는 첫날 도착 때부터 계속 흐리고 간간이 비가 내린다. 하노이의 마지막 밤, 기온이 내려갔는지 한기를 느껴 자다가 일어나 옷을 덧입었다. 아침에 밖으로 나와 보니 그렇게 추운날씨는 아닌데 비가 올 듯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오전 8시에 하롱베이를 같이 다녀온 일행과 함께 도보로 하노이의 명소들을 탐방하러 나섰다. 간간이 가랑비가 내리기도 하였으나 걷기에 지장을 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노이는 1010년, 이(李)왕조의 수도가 된 때부터 천년 넘게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로 역사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유서 깊은 사원과 오래된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6백만 명의 인구 가운데 300만 대가 있다는 오토바이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현지 가이드는 자기도 2대의 오토바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숙소에서 가까운 끼엠 호수를 중심으로 주변에 오페라하우스, 국립도서관, 유명 성당과 사원, 철도역, 하노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등이 밀집하여 있어서 역사와 문화, 삶의 모습들을 살피기에 좋은 코스다. 파리의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대극장은 고전적인 프랑스풍을 지닌 하노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알려져 있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대성당은 프랑스 식민지배시대에 세운 것으로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거리다. 1896년에 세운 호아몰 감옥은 프랑스 시민혁명 때 반역자들을 처형한 길로틴을 비롯하여 죄수들이 족쇄를 차고 수용된 감방 등 인간의 잔혹성을 여실히 보여 주는 산 표본으로 1970년대에는 미국 전투기조종사들이 투옥된 곳이기도 하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동쑤안 시장은 하노이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인데 가는 곳마다 가득 쌓인 과일, 채소, 곡물, 의류, 해산물, 잡화 등의 물건과 사람이 넘쳐흐른다. 일행들은 쌀을 사기도 하고 오후에 출발하는 야간버스에서 먹을 빵과 과일을 준비하기도 하였는데 찹쌀 1kg에 5만 동(약 2,500원), 바케트 빵 3개에 1만 동(5백 원) 등 식품류의 가격은 한국에 비하여 절반 정도로 저렴하다.
동쑤언 시장 안의 모습
명소 탐방 중 번화가의 전자상품 특판장에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삼성 갤럭시 판매코너가 맨 먼저 눈에 띠고 2층의 가전제품 전시장에는 삼성과 LG의 TV제품들이 물량과 품질 면에서 다른 제품들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점심식사는 호안끼엠 호수 주변의 닥낌(Dackim)이라는 음식점에서 쌀국수와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를 곁들인 분짜음식을 들었다. 음식 가격은 1인분에 9만 동(약4,500원)인데 분량이 많아서 다 먹지 못한 얌은 싸달라고 하였다.
오후에는 호텔 인근에 있는 생과일 쥬스 가게에서 망고주스를 들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다. 가게주인 남녀가 친절하고 붙임성이 있어 우리 가족 모습을 사진에 담아 가게 벽에 붙이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가게에는 남은 돈을 기부하는 모금함이 놓여있다. 주인 된 사람들의 심성으로 보아 좋은 일에 쓰이리라.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점심을 든 분짜식당이(한국책자에도 소개 할 만큼 알려진 곳) 줄을 이어 찾아오는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으나 고객의 취향과는 상관없이 많은 양의 음식을 들어온 사람 숫자에 맞춰 기계적인 동작으로 가져다주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즐거운 쥬스 가게
관광객들로 붐비는 구시가지의 좁은 도로에 부지런히 오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이 부산하고 좁은 가게와 길바닥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드는 사람의 물결이 넘치는 등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거리를 뒤로하고 오후 7시에 다음 행선지인 라오스 행 야간버스에 몸을 실었다. 호치민을 시작으로 나짱, 호이안, 후에, 하롱베이, 닌빈, 하노이로 이어지는 13일간의 베트남 문화탐방을 흥미 있게 마친 것을 감사하며 다시 찾을 날이 있기를 기약한다.
하노이 거리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