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없으면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없나니(沒有祖國 無我 無汝 無吾等)
-(求道共存生和樂之)-(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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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호국지사들의 그 유지와 유언을 회상억 해보나니 !
(回想憶之,愛國護國志士的遺志遺言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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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첨부된 사진 총27건의 관련된 주석들이라(添附寫眞總27件,下記關連之註釋)-
*(寫眞-1註釋) 나라가 없으면 나도 너도 우리도 없나니(沒有祖國 無我 無汝 無吾等)
*(寫眞-2註釋) 오직 삶의 일념으로-찬송 김구선생 (生之一念,讚頌金九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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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삶의 일념으로
록담 류호선
상강 이천리 흘러흘러 洞庭湖로 들고
그 많은 둔덕마다 긴긴 대 창창하고나.
이역만리 長沙市 남목거리엔
독립투혼 가득 하늘을 찌르네.
그 당시 총소리 탕탕 요란터니
오늘 이 심장 쟁쟁 울리네.
오직 그 독립정신만이
삶의 일념 이시며.
오직 독립만세만이
일념의 삶 이시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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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之一念
鹿潭 柳淏宣
湘江千里庭湖入
萬塢高竹蒼蒼立.
異域萬里楠木廳
獨立鬪魂衝天溢.
當時銃聲砰砰然
今日擊臟錚錚出.
須只獨立精神分
生之一念爲去乙.
須只獨立萬歲分
一念之生爲去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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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3註釋) 독립정신(獨立精神)-김구선생의 친필유묵(金九先生 親筆遺墨)-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 개복구 남목청(長沙市 開福區 楠木廳) 6번지에 있는
임시정부(1937년 11월) 독립운동 사무소(獨立運動事務所)에 전시보관(展示保管).
楠木廳(남목청)-湖南省 長沙市 開福區의 楠木廳.
楠木廳 事件(남목청 사건)-1938年 5月6日 밤, 光復戰線 3黨 統一會議를 하던 중에,
國務委員 金九, 軍事委員 玄益哲, 柳東說, 池靑天등이 朝鮮革命黨 所屬 不純分子인
李雲漢에 의해 狙擊을 당한 事件이다. 當時 玄益哲은 病院에 倒着卽時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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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4註釋)한국인의 혼(이준열사유언)-韓國人之魂(李儁烈士遺言)
"한국사람의 그 혼은
자주독립의 혼이요
동족애호의 혼이요
대의명분의 혼이요
일치단결의 혼이요
건설개척의 혼이요
세계평화의 혼이요
살신성인의 혼이다"
(이준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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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人之魂
獨立自主之魂
同族愛護之魂
大義名分之魂
一致團結之魂
建設開拓之魂
世界平和之魂
殺身成仁之魂"
(李儁烈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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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 5-6註釋)이준열사조형상과 묘지석(李儁烈士造形像,墓地石)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열사묘역에 동상과 원석조각의 태극기
(首尔江北區所在之烈士墓域內銅像和原石刻之太極旗)
이준(李儁, 1859-1907), 구한국말(舊韓國末)에 순국열사(殉國烈士),
호(號)는 일성(一醒), 한일협약(韓日協約)이 체결(締結) 되자,
고종황제(高宗皇帝)의 밀사(密使)로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참석(參席)하여 일본(日本)과의 협약(協約)이 무효(無效)임을
주장(主張)하다가 그 뜻이 이루어 지지 못하자 자결(自決)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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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奉吉關連件(寫眞 7-12)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신 매헌 윤봉길의사(梅軒 尹奉吉義士)께서는
1932年 12月19日 25歲 나이에 일본국(日本國)의 '가나자와(金沢)'
교외(郊外)에 있는 육군공병작업장(陸軍工兵作業場)에서
총살형(銃殺刑)으로 순국(殉國)하신 애국지사(愛國志士)이시다.
유골(遺骨)은 순국십사년뒤(殉國十四年後)에 그곳 인근(殉國地隣近)의
폐기물하치장(廢棄物荷置場)에서 발견(發見)됨.(資料參考-梅軒記念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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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7註釋)매헌 윤봉길의사모습(梅軒 尹奉吉義士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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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8註釋)義士가 所持使用했던 飯盒形의 爆彈과 水筒形의 爆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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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9註釋) 丈夫出家生不還(梅軒自筆墨跡)
1930年 3月 6日 23歲에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 생불환)"
"장부가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 悲壯한 글 한귀절 남기고는 亡命길을 떠나, 鴨綠江을 건너
日本의 戰勝記念 祝祭場所인 上海 魯迅公園을 향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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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10註釋) 실천필성공의거(實踐必成功義擧)을 다짐한 선서문(宣誓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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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11註釋) 청년제군들에게 남긴글(對靑年諸君忠正公的遺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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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12註釋) 사형집행현장 의사의 최후모습(死刑執行現場,義士最後的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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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寫眞 13-21註釋) 獨立記念館에 造成된 獨立鬪士三人의 銅像關連件
(尹奉吉關連件(13-15), 安重根關連件(16-18), 金佐鎭關連件(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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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선생관련건(丹齋 申采浩先生關件(寫眞22-25)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고종17년)-1936)선생(先生)은
구한말(舊韓末)의 언론인(言論人)이며 학자(學者)로서,
민족사학(民族史學)과 언론계(言論界)에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先驅者)이다.
북경과 상해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獨立運動)에 참여(參與)함,
황성신문(皇城新聞)과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등에
논설을 쓰며 독립정신을 고취 시킴. 옥살이 8년도중에 獄死.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등 많은 저서(著書)를 남김.
독립기념관(獨立記念館)에 선생의 어록비(語錄碑)가 세워져 있으며,
청원군 남성면에는 선생의 사당(祠堂)이 세워져 있다.
아래 동상(銅像)은 "서울 대공원(大公園)"에 새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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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22) 단재 신채호선생의 동상(丹齋 申采浩先生銅像)
*(寫眞-23) "자신의 너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 것이다"(丹齋語錄拔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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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24) "歷史는 我와 非我의 鬪爭이다"(丹齋語錄拔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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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25) "나는 절대로 왜놈이 만든 호적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없다"(丹齋語錄拔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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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순국지사관련건(閔泳煥殉國志士關連件)-(寫眞 26-27)
* (寫眞 26註釋)葛筆書-閔忠正公의 遺書截句
"夫要生者必死, 期死者得生"
"대체로 살기를 바라는 자는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살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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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寫眞-27註釋) 閔忠正公이 自決한 그곳 靈莚挾板房에서 자라난 "殉節之竹"
大韓每日新報 光武10年(1906年 丙午年 7月 6日)-
閔忠正公이 殉節時 流血衣服과 殉刀를 靈莚挾板房에
積置鎖門하였다가 再昨日에 該房을 開視則 房板一分之隙에
間二寸量하여 竹筍四莖이 未吸空氣하여 黃色莖葉으로
茁長하였는데, 第一筍은 四枝로 長이 三尺餘오, 二筍은
三枝로 二尺餘오, 三筍은 二枝로 一尺餘오, 四筍은 一枝로
五寸인데 觀光者가 指點曰 此竹은 閔公殉節之竹인데,
一은 閔忠節 二는 弔忠節 三은 洪忠節 四는 頒忠節을 表함이라
하는데 從其枝하여 將有忠節更殉之擧라 하더라.
(資料/高麗大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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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泳煥(1861-1905)-本寬은 驪興이며, 殉國志士로서,
號는 桂庭, 諡號는 忠正, 1905년 乙巳年에 僞約이 締結
되자 이에 憤慨한 나머지 李完植의 집에서 遺書 3통만을 남기고
1905년 11월 30일에 自決을 함. 그 當時에 僞約에 書名한 그 五賊이
朴齊純, 李完用, 李址鎔, 李根澤, 權重顯이고, 그 五人의 殉國志士가
바로 閔泳煥, 趙秉世, 洪萬植, 李相哲, 金奉學, 宋秉璿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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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충정공의 유서(대한매일- 광무10년(1906년) 8월 3일)
閔忠正公 遺書(大韓每日- 光武十年(1906년) 八月 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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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백성에게 경고 하나니
아 아 ! 나라의 부끄러움과 백성의 욕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나라 백성들은
장차 생존경쟁을 하는 가운데서 죽어 없어 지겠다.
대체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 하는 사람은 살 수 있는데,
제공들은 어찌 이를 헤아리지 못하는가?
영환은 다만 한번 죽음으로써
우러러 임금의 은혜를 갚고
우리 2천만 동포 형제들을 이별하려 한다.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기어이 제군을 구천 아래서 도울 것이니,
행여 우리 동포 형제들은 더욱더 기운을 내어 힘쓰고,
그 뜻과 기개를 굳건히하고, 그 뜻한 학문에 힘 쓰고,
마음을 결합하고 힘을 다 하여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는 사람도 마땅히 어두운 땅속에서 기뻐 할 것이다.
아 아! 조금도 희망을 잃어 버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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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忠正公 遺書(大韓每日 光武十年(1906년) 八月 三日)
" 警告韓國人民
鳴呼! 國恥民辱, 乃至於此,
我人民將且殄滅於生存競爭之中矣.
夫要生者必死, 期死者得生,
諸公豈不諒此?
泳煥徒以一死, 仰報皇恩,
以謝我二千萬同胞兄弟.
泳煥死而不死, 期助諸君於九泉之下,
幸我同胞兄弟, 益加奮勵, 堅乃志氣,
勉其學問, 結心戮力, 復我自主獨立,
則死者當喜笑於冥冥之中矣.
鳴呼! 勿小失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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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添附寫眞(總27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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