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으로 트래킹을 다녀오다 집앞에서 건너편 빌라의 남자를 만났다. 이사온지 7년째, 지난해 연말에야 우리는 쓰레기 수거 문제로 얼굴을 마주했다. 이해관계로 만났으나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대뜸 그가 술자리를 권유했고,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더러 신세를 졌다며 형님하자고 말했다.
무슨 신세? 지난번 그의 딸이 길가 세워둔 우리 차의 뒷꿈치를 들이 박아 상처가 났었는데, 내가 동네 사람이라며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 고맙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세번 술자리를 같이했다.
또 만났으니, 아니면 설이 지났으니...술자리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이 남자들의 생각이다.
내일이면 서울 위쪽 휴전선 가까운 도시의 공사현장으로 떠난단다. 그와 마주 앉으면 술잔의 회전이 빨라진다. 알고보니 성향이 비슷해서 친밀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 같았다.
1차의 장소를 옮겨 커피집에서 맥주 입가심까지, 동네 터주대감이라 주인들도 잘안다. 커피집을 나서다가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신나는 음악이 흘려나왔다. 그가 휴대폰을 검색하다 화면을 잘못 누른 모양이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술잔은 부딧쳐도 절대도 말꺼내지 않는건 이념에 관한거다. 그런데 그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알고보니 이념도 다르지 않은갑다.
나는 정치인이 누구건, 정당이 어디든 그런건 개의치 않으나 나라가 공산사회주의로 가는건 끔찍히 싫다.
울려퍼진 노래는 요즘 우파의 시위현장에서 자주 들리는 양양가였다. 양양가는 일명 충성가(忠誠歌)라고도 한다. 나는 노래에 대한 해석을 떠나 힘들었던 군대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의 목숨은 초로(草露)와 같고
조국의 앞날은 양양(洋洋)하도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 같이 기꺼이 죽겠노라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산다면
아아 이슬 같이 기꺼이 죽겠노라
이 노래는 대한제국군의 군가로 인식되었던 6.25 전쟁 때 불리던 군가이다. '전우야 잘 자라'와 함께 6.25 전쟁 당시 애창되던 노래로 작사 작곡은 불명이나 작곡가 금수현이 고구려를 배경으로 쓴 '을불의 고생'이 원곡이란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