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사울왕의 죽음 역대상 10;13절
쇼펜하우어는 “죽음에 대해 무관심 하라”고 했지만
누구든지 가끔은 좋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모든 사람이 결국 죽는 다는 데서 출발한다
이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지만 죽기를 두려워한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냐?
이렇게 사울이 죽은 이유?
역대상 10;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사울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은 전면전인 대전투을 앞에두고 많은 두려운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왜? 이미 하나님 앞에 버림 받았고, 이 싸움은 이스라엘의 작고 연약했습니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이 전쟁에 대하여 누구에게 물어볼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고 하도 다급하니까?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사울은 한때 신접한자들을 죽었고, 씨를 말렸다. 그런데 이제는 숨어 지내는 신접한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금하신 바이었다.
신명기 18: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의 중에 용납하지 말라.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
사울왕의 비참하고 처량한 신세 ,,, 결국 신접한자에 의해 식사 대접을 받고 그것이 마지막 사울왕의 식사 였다.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러졌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였다.
그들은 또 사울을 맹렬히 쳤고 활 쏘는 자는 그에게 따라 붙었다. 사울은 그 쏘는 자를 인하여 심히 군급(窘急)하였다. 원어(와야켈)는 ‘몸부림쳤다, 영어성경들은 ‘부상을 입었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KJV, NASB, NIV).
사울은 자기의 병기 가진 자에게 말했다. “너는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저 할례 없는 자가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 병기 가진 자는 심히 두려워하여 그렇게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졌다. 병기 가진 자도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칼에 엎드러져 죽었다.
본문 6절은, “이와 같이 사울과 그 세 아들과 그 온 집이 함께 죽으니라”고 기록한다. 사울과 그 가문은 이렇게 몰락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전장을 확인하며 전리품을 취하려다가 사울과 세 아들들의 시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의 시신을 모욕하고 벧산 성벽에 못 박아 둡니다.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
그가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처음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을 때 그가 행구 사이로 숨을 정도로 굉장히 겸손했던 사람 이었습니다.
암몬왕 나아스가 이스라엘을 모독했다는 소리을 듣었을 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이스라엘의 병사을 모아 그들을 격파하고 이스라엘의 명예을 높였던 존경받는 왕 이었습니다. 삼11장
그가 왕의 자리에 있던 40년간의 세월이 그를 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권력에 대한 욕망과 자기 중심적인 탐심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되었다.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
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냐?
13절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죄에 대해 성경은 ?
13절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것은 사울의 삶의 전반적인 모든면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의 죽음은 “ 14절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죽이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은 사무엘 상에서 보면 사울은 하나님께 묻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삼상14;36-37]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러니 결국 응답이 없으니 결국 신접하는자 에게 가는 것 처럼 이야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쭈어 보니까?
응답이 없습니다. 답을 알수 없으니 ? 신접한자에게 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번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
그가[사울]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 했을까?
다윗과 사울의 차이
사울은 하나님께 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부르지고, 한 이야기가 사울에게 한번도 없었다.
그가 밧세바와 우리아 장군에게 죄을 범한 것 으로 인해...눈물을 회개.
죽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죽게 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눈물과 탄식 으로 시편에 그 내용이 흘려 내립니다.
시편 150편 가운데 사울왕의 시편은 단1편도 없습니다.
그가 급해서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지만 그가 얼마나 간절히 하나님께 여쭈어다는 사실은 없습니다.
2. 하나님이 응답이 없다고 해도 . 하나님의 자녀는 거기에 [하나님 앞에 ] 있었야 합니다.
설령 죽는한이 있어도 ...
길보아 신의 전투에서 죽기전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직접 죽더라도.. 하나님 당신앞에 내가 죽겠습니다. 라는 각오로 그앞에서 떠나면 안됩니다.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죽겠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왕 아합은 사울왕에 비교하면 더욱 악한 왕 있었습니다.
나본의 포도원을 빼았고 나봇과 그 아들들을 죽인 일입니다.
사마리아 아합 왕의 궁전 근처에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잘 가꾸어진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이 포도원은 아합 왕의 궁과 가까웠습니다. 왕은 그 땅이 기름진 것을 보고 나봇을 불렀습니다.
“네 포도원이 내 궁과 가까우니 내게 넘겨라. 내가 다른 포도원을 너에게 주겠다. 아니면 너에게 돈으로 주겠다.”
그러나 나봇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나누어주어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팔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에 조상의 기업을 남에게 팔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봇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물려준 여호와의 기업을 제가 어떻게 왕께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나봇의 말을 듣고 아합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지 않겠다는데 강요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합 왕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밭이 계속해서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가면서 강제로 그 밭을 빼앗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합 왕은 그만 고민하여 병이 나 버렸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음식도 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남편의 이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왕은 무슨 근심이 있으십니까? 왜 식사를 하지 않고 누워만 있습니까?”
아합 왕이 이세벨에게 나봇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궁 옆에 있는 포도원의 주인 나봇에게 포도원을 나에게 팔아 나물 밭을 삼게 하라고 했는데, 그가 내 말을 거절하고, 여호와의 율법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을 팔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화가 나서 병이 났소.”
이세벨이 이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하, 하, 하, 하,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십니까? 이렇게 순진한 양반이 어떻게 왕을 하실 수 있을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 밭을 나봇에게서 빼앗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어서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기운을 차리십시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이름으로 나봇이 사는 성의 장로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왕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너희들은 이 편지가 도착하면 온 성에 금식을 선포하고, 회개 운동을 하여라. 그리고 나봇을 모든 백성 앞에 서게 하고, 불량배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세워라.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증거 하게 하고, 모든 백성들이 나봇을 끌어내서 돌로 쳐 죽여라.”
이 편지를 받은 성의 장로들과 관리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나 곧 정보가 들어왔습니다.“나봇이 왕의 부탁을 거절하여서 왕이 매우 화가 났었다고 하는데, 불쌍한 나봇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고 하다가 죽음을 당하게 생겼구먼.”
장로들은 왕의 편지에 쓰인 대로 시행했습니다. 금식을 선포하고 모든 백성 앞에 나봇을 세우고, 두 사람이 나와서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거짓 증거를 했습니다. 백성들이 나봇을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습니다. 나봇을 죽인 후에 성의 장로들이 이세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명령하신 대로 나봇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 왕에게 갔습니다.
“왕이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 싫어하던 포도원을 공짜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봇이 죄를 짓고 죽었으니, 그 재산은 왕실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 포도원을 가지러 가십시오.”아합 왕이 그 말을 듣고, 나봇의 포도원을 보기 위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아합은 회개합니다.
이로 인해 악한일을 행한후 그도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탄식하면서 엎뜨렀습니다.
열왕기상21;18-21]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열상 21:27-29)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사울왕도 악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엎뜨려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겸비함을 보고 불쌍히 여길겹니다.
우리는 기도 할 때 건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죽겠습니다.
하는 각오로 기도의 열정을 가지기 원합니다. 그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찾아가 응답이 없으니까?
신접한자 에게 갔고 그래서 사울은 죽었고,
그 이유는 성경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하나님께 죄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죽음은 슬픈 죽음이지만... 다윗의 죽음은 어떤 것입니다.
역대상 29;28절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다윗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장군 아내을 범하고 , 음폐 살인 했습니다. 그의 범죄로 인해 “ 칼이 그집에 떠나지 않으리라: 는 말씀대로 반역과 반란이 계속 되었다.
다윗의 장남인 암놈이 셋째 아들인 압살놈의 여동생 다말을 강간[동침] 겁탈_- “다말이 얼마나 아름다워스면 상사병이 날 지경..미치는 것] 아닐줄 알면서 누이 다말을 간통합니까?
그래서 죄는 사악하기에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 아닐줄 알면서 하면 죽는 것입니다. “ , 이로 인해 압살놈은 복수을 품고 2년후 암놈을 죽이고- 장남이 없자 왕위을 탐내어서 압살놈의 반란을 일으키어 아버지인 다윗을 헤치고자 했다. ,,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한때 교만해서 병사들의 수을 조사 했고, 다윗도 착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어린 소년 시절에 골리앗 같은 장수를 맞아 싸울 때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제 자기는 힘있는 나라의 왕, 백 삼십만 군대를 거느린 대국의 왕이고 모든 주변국들은 별 볼일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아도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주변국을 제패하고 대 제국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일 만에 칠만 명의 백성이 쓰러져 죽었습니다. 다윗은 아찔했습니다.‘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구나.’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의 천사가 내려와서 단과 브엘세바 쪽으로 손을 펴니 단과 브엘세바에서 사흘 동안 칠만 명이 쓰러져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쫙 폈습니다. 이제 전염병이 예루살렘 쪽으로 쳐들어 가는 것입니다.이제 예루살렘 수도는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칠만 명 시체를 보시고는 마음을 바꾸셔서 천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관 두어라. 그만 됐다. 네 손을 거두어라.”
그래서 전염병이 멈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다 끝났다. 올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천사를 하늘나라로 데려 가지 않으시고 그냥 거기에 세워 두셨습니다.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다윗의 반응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불쌍히 여기셔서 영안을 열어 주시니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서 있는 천사를 보게 됩니다.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는 천사를 보고 다윗이 버들버들 떨었습니다. 백삼십만 명의 군사를 자랑했지만 삼일 만에 칠만 명이 쓰러졌으니 두 달이면 백사십만 명이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랑하고 의지하는 군사는 한 명도 없게 됩니다.
다윗은 아찔해서 하나님 앞에 다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죄는 제가 지었습니다. 악한 일은 제가 한 것입니다. 착각은 제가 했습니다. 이 불쌍한 양 무리, 백성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벌을 내리십니까? 차라리 저와 제 아비 집, 제 친척을 치세요. 제가 죄인인데 왜 불쌍한 백성을 치십니까?”하고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노가 풀리지 않으셔서 다윗과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기 싫으셔서 갓을 보내셨습니다.
“왕이시여,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세요. 예배를 드리세요.”
왜 그 어려운 곤경에 처한 다윗에게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으라고 했을까요?
다윗은 순종했습니다. 열 일을 제쳐놓고,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 가서 단을 쌓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깨닫는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아하! 내 인생의 길이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하고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그 집안은 끝이지 않는 재앙이 넘쳤다. 그의 가정의 죄가 나라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을 어떻게 평가 합니까?
그 많은 죄가 없는 것처럼 축복을 받습니다.
역대상 29;28절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그가 하나님의 진노을 받았지만
그는 내가 하나님의 진노을 받고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죽겠다는 결단으로 하나님을 끝까지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징계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용서 하셨고
그가 책망을 받았지만 상처을 싸매 주셨다.
성경은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딴 한군데 복된 죽음이 있다고 합니다.
계14;13]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죽음도 복이 있는 이유는 ? 주안에서입니다.
어짜피 죽음은 주안에 맞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주안에 있어야 한다.
실패, 병, 갈등, 기도응답 ,, 고난이 겹겹이 와도 모든 상황을 초월해서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필사적인 각오로 우리 주님을 경외해야 하는줄 믿습니다.
주안에 있다는 것은 ? 무슨일이 있어도,,,
1.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독교 초기에 신앙인들은 예배를 생명을 걸고 드렸습니다.
당시 예배자들은 핍박 때문에 산속으로 도망가 예배를 드렸고 땅속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학교에 출석하게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예배를 철저하게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목숨을 걸고 나가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그들도 적당히 놀며 수양하듯 했으면 핍박도 순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목숨을 걸고 그랬을까요?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고 목적이고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배생활에 목숨을 걸으십시오.
그것이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 말은 가는 곳마다 멈추면 그곳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도피 중에 야경지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함께 하리라, 내가 너로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엎뜨려 기도 하는 것입니다.
몸부림치면,,, “ 주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보시기 원합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 가치관의 혼란속에서
우리는 말씀안 에서 .성경을 붙들고 씨름해야 “ 주안에 있는 것”입니다 .
눈물의 겪한 몸부림이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 하나님께 내영혼은 부탁하나이다. ” 하나님은 겪하게 응답합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우리는 이런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죽음에서 생명에 집착해서,,, 고통가운데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영혼을 부탁할수 있는 사람이 되길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