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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조 정 래
백골섬은 육지로부터 2킬로 남짓 떨어져 있었다. 추월도(秋月島)라는 엄연한 이름이 있는데도 그 심은 백골섬으로 은밀하게 불려졌다. 사람들은 입에 올리기 두려워했고, 어쩌다 입에 올린다 하더라도 서로를 거울처럼 환히 들여다보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고서도 그들은 밀폐된 장소를 골랐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는 한사코 잦아드는 것 이었다.
백골섬은 해안 총길이가 8킬로에 지나지 않는 조가비만한 섬이었다. 그런 하잘것없는 크기와는 달리 생김새는 험악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섬 전체가 바위투성이였다. 아니, 커다란 바위가 바다 가운데 난데없이 불쑥 솟아난 것이 바로 백골섬이라고 해야 옳았다. 풍우에 씻길 대로 씻긴 그 바위섬은 칭명한 날씨에는 유독 희게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짙푸른 바다 가운데 흰 모습을 남김없이 드러낸 그 바위섬은 언뜻 해골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안은 그 어디에도 배를 댈 만한 곳이 없이 깎아지른 절벽이었다. 그 치솟은 암벽을 향하여 파도는 쉴새없이 밀려와 부딪혀 깨지며 흰 물거품을 무수히 토해내고 토해내고 했다. 그래서 바다와 면한 섬 가장자리로는 흰 꽃다발을 두른 듯했다. 먼발치에서 보여지는 이런 경치는 자못 경이로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는 살인적인 흰 포말(泡沫)에 지나지 않았다. 거칠게 밀려온 파도는 암벽에 부딪혀 무수한 물거품을 토해내고는 다시 바다 쪽으로 떠밀려나간다. 그 물줄기는 뒤이어 밀려드는 파도와 부딪쳐 꿈틀하며 뒤섞인다. 밀려드는 파도는 주춤 기가 꺾이고 그 자리에서 물결의 어지러운 난류(亂流)가 생긴다. 그 어지러운 물결의 뒤섞임은 다시 밀려드는 파도에 실려 암벽을 향해 달린다. 이런 되풀이 속에 만약 배가 끼여든다면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안이 온통 절벽인 데다가 물살마저 이런 지경이니 사람이 섬에 접근한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잘못 가까이 갔다가는 살아 돌아오기 어려운 이런 조건 때문에 백골섬 라고 불려진 것일까.
백골섬 바위 덩어리 윗부분에는 신기하게도 다복솔이 자라고 있었다. 어쩌다 각도가 이상하게 맞으면 백골섬은 번쩍번쩍 빛을 발할 때가 있었다. 햇빛을 그처럼 투명하게 반사시킬 수 있는 바위 덩어리로 된 백골섬에 어떻게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나무의 푸르른 빛은 언제 어느 때나 안정과 평온을 주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백골섬의 그 다복솔은 꼭 ‘사무라이’의 머리채가 풍기는 것 같은 서늘한 살기를 지니고 있었다. 섬의 중앙부에 있는 것은 다복솔만이 아니었다. 나지막하게 집이 한 채 있었다. 그 집은 얼핏 보아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솔숲과 같은 계통의 색깔을 칠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 나지막한 집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굳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왜 그 집에 솔숲과 같은 계통의 색깔이 칠해져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다복솔도 저절로 자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지막한 초록색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키우는 것인지도 관심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예 백골섬을 입에 올리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쪽으로 얼굴마저 돌리기를 꺼려 하는 형편이었다.
백골섬에서 맞바라보이는 뭍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았다. 아주 먼 이야기지만 섬 이름이 흉측하게 바뀌기 전에는 제법 큰 해변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선 정박을 중지시켜 버렸다. 무슨 이유나 해명이 있은 것도 아니었다. 그 도시에는 갑자기 눅눅하고 습기 찬 바람이 뒤덮였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불평과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날이 갈수록 눈덩어리로 커졌다. 누군가가 술자리에서 떠벌리다가 붙들려갔다는 소식이 꽤는 신중하게 퍼졌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느새 불안과 긴장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눈치 빠른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건 끊어진 젖줄이 다시 이어질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도시에는 더욱 암울한 바람이 스산하게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처럼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사람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틀틀틀틀…… 어설프고 맥빠지는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 것은 이때쯤부터였다. 헬리콥터 소리는 자정이 지난 깊은 밤중에 들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들은 사람보다 못 들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헬리콥터 소리는 섬에 대해서 야릇한 소문을 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흘끗흘끗 눈치를 살펴가며 서로 그 알쑹달쏭한 소문을 확인하려고 보이지 않게 분주했다. 그러면서 도시를 등지는 사람들의 수효가 날로 늘어났다. 얼마가 지나고 나서 자정이 넘은 심야에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그 도시에 하나도 없었다. 누가 확인했는지는 모르지만 헬리콥터는 그 섬에 내려앉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비행기에는 살아생전에 풀려날 길 없는 무겁고 몹쓸 죄를 진 죄인들이 실려온다고 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바위 덩어리를 속으로 파고 들어가 층층으로 감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속에 방은 많지만 밖으로 연결된 출입구는 하나뿐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홍길동 간을 열두 개 삶아먹은 놈도 달아날 방도가 없다고 했다. 설령 밖으로 나왔다 해도 사방은 뺑뺑 둘러 낭떠러지인 데다가 아래는 거친 파도가 혀를 널름대는 시퍼런 바다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소름 끼치는 소문에 짓눌려 잔뜩 주눅이든 채로 남보다 먼저 도시를 떠나려고 몸부림쳤다. 도시가 유령의 소굴처럼 텅텅 비게 되었을 즈음에 그 섬의 이름도 백골섬으로 바뀌어 있었다.
엔진 소리가 차츰 약해지더니 몸이 철렁하는 충격이 왔다. 그는 어금니를 맞물며 길게 숨을 내뿜었다. 그건 한숨이 아니라 스스로에 게 체념을 확인시키는 진정 제였다.
“일어나, 내려 !”
억센 손이 왼쪽 팔을 거칠게 붙들었다. 그는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숨이 막히도록 확 끼쳐오는 매서운 바람에 휩싸였다. 그는 순간적으로 입맛을 다셨다. 소금기가 역연한 바닷바람이었다. 그는 설마 했다. 코를 벌름거리며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틀림 없는 바닷바람이었다.
“뭘 꾸물거려 !”
퉁명스런 목소리와 함께 팔을 낚아챘다. 그는 넘어질 뻔 하다가 몸을 바로잡고는 발을 더듬더듬 내밀었다. 땅으로 내려섰다고 느끼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고무신 바닥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촉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분명 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스팔트도 아니었다. 그는 발바닥에 힘을 가했다. 바위라는 느낌이 왔다.
“빨리 걸어!”
그는 끄는 대로 발을 옮겼다. 그때까지 헬리콥터의 프로폘러 소음은 그치지 않고 있었다. 바람 끝의 맵기가 칼날이었다. 몇 결음을 떼어놓는 사이에 귀끝이 알키한 추위를 탔다.
“……”
그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코로 갯내음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귀로 파도 소리까지 들은 것이다. 검은 눈가리개 속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감고 있던 눈을 다시 감았다.
ㅡ 여보, 어디든 면횔 가겠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울부짖던 아내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해변이 아니라 섬인 것을 그는 직감으로 알았다. 면회 불허가 아니라 면회 불가능이 되었다. 그는 다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고는 최후 진술을 하시오!”
그는 거침없이 내뱉었다.
“없소!”
이 말과 동시에 제한된 방청인, 그들은 웅성거리는 동요를 보였다. 그는 가만히 눈을 내려감았다. 최후 진술의 의미가 무엇인가. 말은 말 앞에서 말일 수 있는 것이지 소리 앞에서는 부질없는 소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었다. 말을 소
리로 전락시키는 것만큼 비열하고 치사한 짓이 또 있을 수 있는가. 말은 절대적인 행동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허약하게 만들거나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피고의 범죄 사실은 지극히 악질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전의 빛이 추호도 보이지 않아 본 법정은 피고에게 무기를 선고한다.”
방청석에서는 더 거친 동요가 일어났으며, 두 교도콴은 그 동요를 차단이라도 하려는 듯이 재빨리 달려와 그의 양쪽 팔을 하나씩 분담했다. 두 교도관의 “앞으로이 갓!” 명령이 팔에 하달되기 전에 그는 먼저 발을 떼어놓았다. 잠시나마 방청석으로 눈길을 돌릴까 하는 생각이 엇갈렸지만 그는 빠르게 선택을 했다. 곧장 문을 향해 걸었다. 이것으로 장마철과 흡사했던 모든 재판이 끝을 맺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그는 끄는 대로 발을 떼어놓았다. 훈훈한 열기가 전신을 감싸왔다. 이 친절한 따스함一그는 불현듯 아내의 젖무덤을 떠올렸다. 얼마나 아늑하고 포근한 잠자리였던가. 아내의 젖가슴은 야만적으로 풍만하지 않았
다. 사랑스런 크기로 충동적 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젖무덤은 무한한 평온을 끊임없이 빨려주었다. 시린 가슴을 녹여주었고 응고된 감정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내의 젖무덤은 그에게만 국한된 능력을 지녔을 뿐이다. 그 아늑함과 평온함은 복수(複數)를 위한 진동을 하지 못하고 오로지 단수(單數)의 생명만을 감싸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복수의 생명에 있어서도 그런 아늑함과 평온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아내의 젖무덤은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죄수 1004를 인계합니다.”
“추운데 수고하셨소. 죄수는 대답하라, 이름은?”
그는 전혀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건조한 음성으로 이름 석 자만을 댔다.
“생년월 일은?”
“1942년 8월 7일.”
“형기는?”
“무기.”
“됐소. 죄수 1004를 인수합니다.”
하나의 물건을 넘기고 받는 절차가 세련되고도 숙달된 솜씨로 끝났다. 그는 이제 아무 느낌도 없었다. 무수히 되풀이 되어 온 절차였다. 1년 전 새벽녘에 서너 명의 바바리 코트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순간부터 자신은 물건이 되었다. 취급주의가 필요 없는 화물이 되어 아무 차에나 마구 실렸고 아무 곳에나 마구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자신이 물건이 아니게 하기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그 어떤 탁월한 노력을 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용납되지가 않았다. 물건이 아닐 수 있는, 그가 발견한 유일한 방법은 강철 같은 침묵을 지니는 것뿐이었다.
“이쪽으로!”
느낌이 다른 손이 팔짱을 끼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발을 옮겼다. 몇 걸음을 옮기지 않아 다시 드르륵 문이 열렸다. 냉기가 왈칵 끼쳐왔다. 그는 숨을 추슬렀다. 그리고 언뜻 자신의 형기를 떠올렸다.
무기…….
조금 전까지 맛보았던 그 짧은 동안의 온기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금니를 꽉 맞물며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이를 확인했다. 아직도 시퍼런 나이였다. 시간은 역사를 만들어내고 세월은 역사를 지배한다. 시간은 인간을 생존케 하고 세월은 인간을 데려간다. 그는 이 사실을 굳게 믿었다.
ㅡ 여보, 어디든 면흴 가겠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아내를 나와 무한정 떼어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내 건강만은 어디까지나 내 차지다. 끈질기게, 길게, 마지막 한 방울의 피가 남을 때까지 그 피를 되마시며 길게 길게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계단이야!”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내렸다. 헬리콥터에서 내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냉기가 묻어왔다. 파삭 마른 것 같은 건조한 냉기 속에는 미묘한 냄새가 스며 있었다. 그건 흔한 감방의 비릿하고 찝질하고 떨떠름한 냄새가 아니었다. 감방의 그런 냄새는 질기디질긴 냉면 사리처럼 코로 빨려들어 여지없이 속을 뒤집어놓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코가 멍청하게 동화될 때까지 며칠 간은 머리가 자꾸만 부풀어오르는 것 같은 몸살을 앓거나 또다른 고통에 부대끼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기선 그런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무슨 냄새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게 전혀 기억 속에 없는 냄새였다. 한 가지 신통한 것은 그 냄새가 아주 미약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싱그럽게도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역시 거물들을 모시는 감방이라서 신축을 한 모양이군.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계단 끝이야!”
친절하시군. 이따위 친절 베풀지 말고 눈가리개나 풀어주시지. 그는 계단이 열다섯 개라고 기억 했다. 버릇이었다. 의지(意志)와는 반대로 작용하는, 위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구였다. 음지에 갇힌 풀줄기가 한사코 햇볕을 향해 뻗어가는 것과 흡사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심문을 받으면서도, 법정으로 출두하면서도, 감방이 바뀔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사방을 두리번거리거나 발자국 수를 헤아리고 있곤 했다.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깨달음은 매번 뒤늦게 왔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비열감이나 굴욕감 같은 것을 느끼진 않았다. 그런 원시적인 욕구가 시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은 그만큼의 의지를 지닐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느리긴 했지만 계속 걸음을 옮겼다. 차츰차츰 더 깊은 냉기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아내와의 거리에, 세상과의 간격에, 목숨과의 유대에 점점 두꺼운 벽이 둘러쳐지고 있었다. 기약 없는 시간과 친숙해지고, 상대 없는 대화에 친숙해지고, 박수 없는 인내에 친숙해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다.
“여기 멈춰.”
팔짱이 풀리고 철커덕 철문 열리는 소리가 창백하게 퍼졌다. 그 철커덕 소리는 가슴에다 덜커덕 소리를 조각했다. 이것도 체념의 의지와는 상반되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등뒤로 묶인 팔이 풀리고 눈가리개가 벗겨졌다. 그리고 잠시의 짬도 없이 등을 떠밀렸다. 어렴풋한 불빛을 느꼈을 때는 철문이 닫힌 뒤였다. 그는 어깨를 부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감방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선 채로 한 바퀴를 돌았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디에도 창문은 없었다. 그는 손등으로 눈을 쓸었다. 그리고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역시 창은 3면 벽 어디에도 나 있지 않았다. 그는 다리가 휘청 꺾이는 것을 느꼈다.
도저히 도주를 음모할 수 없도록 뚫려 있었던 그전에 갇혔던 감방의 창. 그건 꼭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거기에 굵은 쇠창살까지 박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절대한 힘이고 위안이었다. 손바닥만 한 네모로 잘려지고 다시 쇠창살로 토막나긴 했지만 거기에 담긴 하늘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날이 맑으면 쪽빛이었고, 구름이 끼면 회색이었다. 그 조각난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갇힌 자의 신넘이 시들지 않았다.
그는 주먹을 말아쥐며 부르르 떨었다. 그 조그만 하늘마저 박탈해 버리는 철저한 잔인에 그는 절망적인 감탄을 해야 했다. 갑자기 늪 같은 피곤이 전신을 핥았다. 그는 구석에 놓인 나무 침상으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두 장의 담요 중에 한 장은 깔고 한 장은 덮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기…….
그건 무한정한 휴식의 시작이었다. 그 휴식은 자신의 주위를 살금살금 맴돌며 싸움을 걸어올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피를 말리고, 한 꺼풀씩 살갗을 벗기려 들 것이다. 그놈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무관심이 최상의 방법이다. 소가 여물을 씹듯, 뱀의 성교처럼 그렇게 징그럽도록 질기게 버팅기는 방법밖에 없다. 오리 새끼나 돼지 새끼처럼 그렇게 오도방정을 떠는 성교는 금물이다.
그래서 선뜻 잠자리에 든 것이다. 이렇게 피곤이 몰려올 때면 고맙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꿈 없이 깊이 잠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감방 속에서, 더욱이 독방신세에서 불면증만큼 무서운 병이 또 있을까. 제때에 잠을
잘 자는 것만큼 큰 보약이 없을 것이었다.
“여보·……˙.”
그는 아내의 젖무덤을 생각했다. 꼭 현실처럼 아내의 부끄럼 타는 알몸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분명 체취까지 맡을 수 있었다. 그는 아내와 떨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하룻밤도 혼자 잠을 잔 적이 없었다. 밤마다 아내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그 아늑함과 포근함에 감싸여 잠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미움을 조금은 더 샀는지도 모른다.
“˙이 새낀 어째 이리 지치지도 않아. 여기 밥이 무슨 보약이라고 씽씽해.”
그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더러운 물건 쳐다보듯 하곤 했었다.
“기상, 기상!”
그는 자물쇠가 철판에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깼다. 그는 울컥 역정이 솟았다. 수면 부족에서 오는 불쾌감이었다. 수면 부족? 여태껏 느끼지 못한 현상이었다. 언제나 기상 시간 전에 잠이 깨어 있곤 했었다. 기상 시간이 달라진
것 일까.
“빨리 밥 받어!”
그는 서둘러 침상 밑에 머리를 박았다. 두 개의 양재기와 숟가락이 하나 놓여 있었다. 숟가락을 얼른 입에 물고 양재기를 양쪽 손에 하나씩 들었다.
눈익은 밥과 국이 그릇을 채웠다. 그는 그걸 들고 돌아서다가 어젯밤 이곳에 도착한 것이 턱없이 늦은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침상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밥 먹는 일에 진지하게 열중했다. 밥알이 입 속에서 완전히 으깨질 때까지 씹어서 넘기는 버릇을 들였다. 우선 소화 불량을 막기 위해서였고 다음은 이빨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의 세 끼 밥은 유일한 불사약인 셈이었다.
그는 끈적끈적하도록 밥을 씹으면서 비로소 방안을 샅샅이 살펴나갔다. 그의 표정은 차츰 굳어지고 있었다. 5면의 벽은 모두 돌이었다. 바닥도 그리고 천장도 돌이었다. 그런데 그 돌벽에는 이음자리가 없었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문 쪽으로 다가섰다. 두 사람이 통행할 수 있을 만한 폭의 복도도 돌이었다. 그는 머리를 감쌌다. 어젯밤에 걸어 내려온 열다섯 개의 계단이 생각났다. 돌덩어리 속에 들어 있는 감방…… 갈 데 없는 무덤이었다.
그는 암울한 기분이 되었다. 어느 때라고 탈옥을 염두에 둔 일은 없었지만 자신이 바위 덩어리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자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왜 창문이 없는지는 자명 한 사실이 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맞은편 복도의 벽에 호릉불이 타고 있었다. 그는 그 불그딕딕한 불꽃을 망연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저것이 유일한 빛인 것이다. 밤도 낮도 구분하지 못하는 저 죽어버린 불빛. 그는 새삼스럽게 방안이 뿌연 어둠에 잠겨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젯밤에 맡았던 그 기묘한 냄새는 바로 돌 냄새였음도 깨달았다.
그는 전신이 곧 무너져내릴 것처럼 맥이 빠지는 걸 의식했다. 밤의 어둠도 낯의 밝음도 완전 차단되어 버린 바위 덩어리 속. 그는 절망의 검은 커튼 앞에서 자신을 부축할 아무런 힘도 없었다. 세 차례 되풀이된 무기 징역의 판결 앞에서 그는 꿋꿋할 수 있었다. 자신을 지켜보아주는 방청객을 의식한 객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혼자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를 지탱할 수가 없다. 그 원인이 지상과 지하라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명쾌하게 분석까지 했다. 그리고 지상이든 지하든 감방이긴 마찬가지 아니냐는 위로의 구실까지 마련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사고(思考)의 영역에 지나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감정(感情)은 동의를 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침상으로 돌아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눈을 부릅떠가며 밥을 넘기려 했지만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이거 봐, 고집 부리지 말어. 눈 꾹 감고 여기다 지장 눌러. 사람 한평생 눈 깜박할 사이라고. 자넨 자네지만 안사람은 이 무슨 쥔가. 자, 자, 어서…….
그 사람은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며 그의 손을 끌어다가 인주 가까이 가져가려 했다.
“이러지 마십쇼!”
그는 쏴대며 그 사람의 손을 뿌리쳤다.
“허 참, 이 사람…….”
그 사람은 일그러진 웃음을 씹었다. 그리고 담배를 빼물었다. 그에게도 권했다. 그는 거절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네. 여기 지장을 누르게. 내 자식들의 목숨을 놓고 확인하네만 이건 사무적 행위만은 아냐. 자아, 어서…….”
그 사람은 다시 그의 손을 잡아끌었고 그는 다시 그 사람의 손을 뿌리쳤다.
“자식들까지 도구로 동원하진 마십쇼.”
그가 경멸하는 투로 말했고,
“머어라고?”
그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고함을 질렀다.
“개애자식!”
그 사람은 종이를 마구 구겨 그의 낯에다가 내던지며 욕을 뱉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선배였다. 그는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왜 이제 와서 그 선배와의 일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의 절망적인 감정은 동요하고 있었다. 그때 지장을 찍었더라면·…….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 선배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관계에 있어서의 진심일 뿐이었다. 그 선배가 하고 있는 객관적 행위 자체가 진심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합치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었다.
인기척에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간수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는 그릇을 건넸다.
“여기서 단식 투쟁해 봤자 받을 건 천당 승차권뿐일 텐데…….
간수가 무료한 듯한 음성으로 말하며 멀어져갔다. 그는 철책을 붙들고 서서 빛 바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간수의 말은 그의 가슴을 깊게 찔러왔다.
그는 침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곳의 다른 일과가 벌어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변기를 타고 앉았다. 끙끙 힘을 줘가면서 손으로는 옷가에서 실오라기를 뽑아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한 뼘쯤의 실오라기를 뽑아내서 매듭하나를 만들었다. 달력 이었다.
침상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반쯤 졸다 깨다 하며 기다렸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요란한 쇳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꼬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빨랑 밥 받어!”
간수가 역정을 냈다. 그는 황급히 문에 달라붙었다. 아침을 설쳤던 때문인지 점심은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오후의 일과 지시를 기다리며 그는 침상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아내를 생각했다. 당돌하고도 무모하리만큼 당찬 여자였다. 몇 차례의 힘겨운 면회를 할 때마다 아내는 웃는 얼굴이었다. 조금도 근심스럽거나 두려운 빛을 보이지 않았다. 가져온 음식을 똑같이 나눠 아내는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전혀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만을 했다.
“또 금방 올 거예요. 몸 건강하셔야 해요.”
아내는 헤어질 때면 잊지 않고 이 말을 다부지게 했다.
아내의 그런 행동이 모두 견디기 어려운 가장이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선배의 그런 권유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지장을 찍기를 바랐을까. 아내가 그러기를 바랐다면 자신은 어떻게 했을까. 해답이 나올 수 없는 물음이었다.
행여나 행여나 했지만 오후에도 아무런 단체 일과가 없는 채 세 번째 밥이 배급되었다.
그는 숟가락을 들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섭도록 철저한 형벌을 내리고 있었다. 여기가 바위 덩어리 속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한 가닥 기대는 걸었었다. 하루에 한 차례쯤은 단체로 바람을 쏘이게 하거나 운동
을 시키리라 믿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사역 같은 것이라도 있으려니 했었다. 그런데 아예 무관심해 버리는 것이다. 독방에 가둬두고 아무런 통제도 간섭도 안 하는 것이다.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한 사람만을 고립시켜 놓고 무관심해 버리는 것만큼 고통스런 형벌이 또 있을까. 세 끼 밥만을 디밀어주고 하루 시간 전부를 혼자 해결하도록 떠맡겨버린 것이다. 그것도 밤과 낯이 없는 석굴 속에서. 너무 많이 쌓이는 시간을 견디다 못해 미치게 만들고, 미치다 못해 스스로 죽어가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무관심이 무척 편하게 착각되는 것은 닷새거나 더 길면 열흘에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는 이 돌감방에서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일과표를 짜기 위해 오래도록 골몰했다. 아무리 짜보았지만 시간의 압박을 견더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감방의 상비품인 성경이나 불경조차 없었다. 공상, 명상, 상상을 뒤죽박죽 섞어가며 시간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이 건강 지탱 문제였다. 아무 간섭을 안 한다고 침상에 죽치고 누워서 보내다 보면 몸이 삐꺽삐꺽 헐어빠지기 시작할 것이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해서 그 함정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었다. 운동이라면 제자리뛰기나 기타 맨손체조로 해결이 무난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그는 큰 의문을 하나 붙들었다. 도대체 사람이 햇빛을 안 보고 몇 년까지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는 학식과 상식을 총동원했다. 헛수고였다. 사람이 장기간 햇빛을 보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글을 읽은 기억 이 어렴풋할 뿐 그 기간이 대략 얼마 동안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사람의 머리에 있는 가마라는 것이 손톱, 발톱과 함께 체내에 필요한 햇빛을 받아들이는 작용을 한다는 사실은 기억에 또렷했다. 그리고 여자들의 손톱 매니큐어는 그런 작용을 방해해서 병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까지 기억해 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병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은 전신에 매니큐어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암담한 기분에 빠졌다. 이렇게 감방에 처박혀진 것은 질기게 살아남기 위해서지 허망하게 죽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기어코 살아 남아서…….
그가 예측했던 대로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아무런 통제도 간섭도 없이 밥만 세 차례씩 디밀 뿐이었다. 유일한 통제가 있다면 ‘기상’ 시간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아침밥을 배급하기 위해서였지 감방의 질서를 위해서는 아
니었다.
그는 아침을 먹고는 제자리뛰기를 했고 오후에는 맨손체조를 한바탕씩 했다. 매일 대변을 보고 실오라기에 매듭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것처럼 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의 하나였다.
한 뼘 길이의 실오라기에는 매듭이 서른 개 맺힌 것도 있고 서른한 개 맺힌 것도 있었다. 그 실오라기가 열한 개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지치지 않고 운동을 해오고 있었고, 식욕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있었고, 맞바라보이는 벽에 걸린 호롱불도 희끄무레한 빛을 발하며 한 번도 꺼진 일이 없었다.
간수가 건네주는 점심을 받아가지고 막 돌아서려는데 퉁명스런 목소리가 그의 덜미를 잡았다.
“여보, 당신 벙어리야?”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간수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길이 별로 사나워 보이지는 않았다.
“말을 알아듣는 걸 보니 벙어리는 아닌 모양이군.”
“왜 그러시오.”
“됐어, 그 목소리 한번 듣기 어렵네. 어서 밥이나 먹어.”
간수는 돌아섰다.
그는 그 자리에 선 채 온 신경을 한데 집중시켰다.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럴까. 바깥 세상에 무슨 변동이 생긴 것일까. 그는 그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곧 부정을 했다. 그건 지극히 희박한, 11개월 사이에 변동이 생길 만큼 그들은 허약하거나 허술하지가 않았다. 아내한테서 무슨 소식이·……. 가슴이 싸하니 저려왔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내의 집념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이런 식으로 가둬버리기로 작정 한 그들의 비밀의 벽을 뚫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다른 함정을 만들어놓고 유인 작전을 쓰는 것은 아닐까. 가슴에 찬바람이 엉켰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녀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밥을 먹으면서도, 오후 시간 내내 간수는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간수가 말했던 것처럼 그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입을 연 적이 없었다. 그들의 철저한 무관심 밖에서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요구 사항이나 시정 사항이 있을 리 없었고, 있었다 하더라도 말단 세포에 지나지 않는 간수가 해결할 무슨 능력 이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의 의식 속에서 간수는 어디까지나 경계해야 하는 부류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저녁밥 때가 되었다. 간수가 그림자처럼 철책 저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그의 마음은 어느새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 느꼈던 무생물로서의 간수가 아니었다. 생물, 그것도 사람이라는 엄청난 존재로 둔갑해 있었다. 그의 신경에는 팽팽하게 태엽이 감겨 있었다.
“당신, 가족이 없어?”
밥을 디밀며 간수가 물었다.
“왜 그러시오.”
"처자가 없어?”
“왜 그러시오.”
간수는 엷게 웃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초리가 번뜩였다. 그러나 무슨 의미를 건져내기에는 너무나 단순한 웃음이었다. 그는 몹시 피곤했다.
“당신, 원래 성질이 그런가.”
“무슨 말이오?”
“참 어지간한 친구로군.”
“·……”
간수는 돌아서려다 말고 말했다.
“여긴 깜빵이야. 바다 가운데, 돌덩어리 속에 파묻힌 지하 깜빵이야.”
“·……”
간수는 터덜터덜 결어서 멀어져갔다. 간수가 사라지고 나서도 그 말은 고드름처럼 철책에 붙어 있었다.
‘지하 깜빵’이니 어쩌란 말인가. 팔푼이가 아니고서는 당장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11개월이 지나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영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그날 밤 꿈을 꾸었다.
따스한 햇볕이 물살처럼 퍼지는 잔디밭이었다. 파릇파릇 돋아난 잔디 잎새마다 햇빛이 맺혀 싱그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내는 유쾌한 웃음을 뿌리며 저만치 달려가고 있었다. 스카프가 경쾌하게 나부꼈다. 그는 아내를 뒤쫓아 달렸다. 아내와 거의 가깝게 되었을 때였다. 아내가 배를 움켜잡고 넘어졌다. 아내는 잔디밭을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여보, 왜 그래, 왜.”
그는 아내를 붙들며 성급하게 물었다.
“배가, 배가·…….”
아내는 창백한 얼굴로 신음을 씹었다.
“왜, 배탈인가?”
“아, 아녜요·……˙.”
“그럼 맹장일까? 급성·…….”
“아, 아녜요·…….”
“그럼 뭐야. 어디야, 어디.”
그는 아내를 붙들었다. 아내는 한사코 모로 돌아누우며 질긴 음성으로 힘겹 게 말했다.
“애, 애를 낳을 것 같아요·…….”
"애? 임신도·…….”
그는 말끝올 맺지 못했다. 아내가 부르르 떨며 무서운 비명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그는 허겁지겁 아내의 배를 만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내의 배는 터질 것처럼 불러 있었다. 그는 영문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의사, 의사를 불러야지.”
그는 허둥대며 일어섰다. 그리고 뛰려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무언가 발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안 돼요, 늦었어요. 당신이, 당신이·…….
아내는 땀에 훔뻑 젖은 얼굴로 힘겹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손은 그의 바짓가랑이 끝을 틀어쥐고 있었다. 어디에 걸려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내가·…….’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틀림없이 할 수 있어요.”
아내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위에 웃음을 떠올려 보였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그의 두려움은 말끔히 씻겨졌다.
그는 윗도리를 벗어 아내의 하체 부분 잔디 위에 깔았다. 아내가 햇볕이 얼어붙는 것 같은 싸늘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몸이 꿈틀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무언가가 아내의 몸에서 불쑥 나왔다. 아기였다. 그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외쳤다.
“여보, 아들이야!”
“또 하나의 당신 예요.”
가느다란, 그러면서도 분명 한 아내의 말이었다.
그는 여러 번 복습을 거친 것 같은 솜씨로 척척 뒷수습을 해나갔다. 일을 거의 마쳤을 즈음이었다. 그는 어디선지 모르게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결을 느꼈다. 그때 아내가 소리쳤다.
“여보, 저기 저 사람들 … …!”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내가 손가락질하고 있는 곳에는 바바리 코트의 사내들이 서너 명 서 있었다. 그들은 이쪽으로 로봇 같은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여보, 일어나. 피해야 돼, 어서 일어나.”
그는 어느새 한쪽 팔에 아기를 안고 다른 팔로 아내를 일으키려 하고 있었다.
“틀렸어요, 틀렸어요·…….”
아내는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중얼거렸다.
어느새 바바리 코트 사내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사내들의 얼굴은 예의 그 석고 같은 무표정이었다. 한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앨 내놔!”
“안 돼, 안 돼!”
그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잘 아실 텐데. 순순히 내놓으시지:’
“안 돼, 이애만은 안 돼!”
그는 아기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그때 사내가 눈짓을 했다. 그러자 다른 사내들이 와락 달려들었다. 그는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나 허망하게도 쉽사리 아기는 사내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사내들은 바바리 코트 깃을 펄럭 이며 멀어져갔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는 울부짖으며 그 사내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고 야속하게도 뛰어도 뛰어도 그 자리일 뿐이었다.
그는 소스라쳐 일어났다.
“안 되긴 뭐가 그리 안 되나.”
그는 문 쪽으로 퍼뜩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간수가 서 있었다.
“무슨 험 한 꿈을 꾸었나 보지?”
그는 울음과 같은 한숨을 내뿜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꿈이었나?”
그는 이마에 밴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무슨 꿈이었냐니까?
“왜 그러시오! 꿈꾼 것까지 보고하리까?”
그는 역정을 뿜었다.
“·……”
둘 사이에 침묵의 벽이 쳐졌다. 감방은 한층 어두운 것 같았다.
“그럴 필욘 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 자유니까.”
자유? 그는 눈을 떴다. 간수는 거기 없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인가. 간수가 말하는 자유는 어떤 것일까. 간수가 지닌 자유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
그는 터무니없는 꿈의 충격에 사로잡혀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꿈을 꾸어왔다. 거의가 악몽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개 지난 일들의 재현에 불과했다. 그래서 기분이 언짢은 정도였을 뿐 이처럼 충격적일 수는 없었다. 그나마 생기가 돋는 꿈은 아내에 대한 것이었다. 아내는 꿈속에서 항시 발랄하게 웃어주었고, 싱싱하게 몸짓했다. 아내가 그런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결혼 1년이 미처 못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의 꿈에서 아내의 어떤 신상 변동을 추리해 내는 치졸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내에 대한 모독이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이 지하의 삶을 위해서 더욱 그랬다. 그가 아내를 믿는 것은 아내가 자신을 남편으로 떳떳이 내세우고 있다는 데 근거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파악을 신통하게 여길 것까지는 없다. 그건 상식적 사고(思考)로 얼마든지 식별이 가능한 것이니까. 아내의 신통함은 그 다음에 있었다.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빤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마지막 인사가 된 그 말을 분명하게 외쳤던 것이 아닌가.
ㅡ 여보, 어디든 면횔 가겠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그래서 자신은 건강하기 위해, 오로지 건강하기 위해 온 정성을 기울여오고 있었다. 아내도 밤낮으로 자신의 건강을 빌고 있을 것이고 그리고 아내 자신도 건강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것을 믿는다. 그것으로 만족인
것이다.
“벌써 일어났군. 자아, 밥 받어.”
그는 문 앞에 이르러 고개를 저었다. 간수는 밥을 디밀었다.
“관두겠소.”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안 돼.”
간수도 나직하게 대꾸했다.
“왜요?"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글쎄 안 돼.”
간수는 여전히 나직하게 받았다. 그는 돌아섰다.
“여봐, 잠깐…….”
그는 멈칫 섰다.
“이것도 당신 자유야. 그렇지만 천당 승차권 빨리 받아 좋을 건 뭐지? 알아서 해.”
그는 가슴이 찌르르한 것을 느꼈다. 그건 분명 한 가닥 호의였다. 불꽃이 반짝하는 전류의 흐름이었다. 무슨 상관이 있는가. 간수가 그들과 이어져 있는 한 자신을 하루라도 더 오래 살리고 싶어할 이유가 없다. 하루라도 더 빨리 사그라져가길 바랄망정. 그런데 간수는 일깨워주고 있었다. 자신이 어느 순간에도 망각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문제를 깨우쳐주고 있었다.
그는 후딱 돌아섰다.
“무엇 때문이오?”
그는 다급하게 물었다. 그의 음성에는 어느 때 없이 열기가 묻어 있었다.
“·……”
간수는 빤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밥그릇만을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멀어져갔다.
간수는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 아무런 대답을 못 얻었던 것처럼 그의 최초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돌아서버린 것이다.
그는 밥을 깨끗하게 비웠다. 한 숟갈도 뜰 수 없을 것 같던 까칠한 기분은 말끔히 가셔 있었던 것이다.
간수가 다시 나타난 것은 배꼽시계가 점심때가 가까워졌음을 알릴 때쯤이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반가움 쪽으로 치우친 기분으로 간수 앞에 다가섰다.
“이 형무소 안에서 내게 매달리지 않은 죄수는 유일하게 당신 하나뿐이야.”
간수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는 “그래서요?” 하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유나 설명을 요구하는 물음처럼 불쾌한 것도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무슨 요구를·…….”
“말 말어. 치사하고 구질구질해. 나는 좀더 배짱들이 있는 치들인 줄 알았지. 헌데 영 파이야. 생각해 보면 몰라? 밥 한술 더 주고, 국 건데기 좀더 건져주는 일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야. 헌데 그 작자들 눈에는 내가 하느님으로 보이나 부지. 한심해, 여기선 그저 끼니 거르지 말고 죽신나게 먹어치우고 똥 펑펑 잘 싸는 게 상책 중의 상책이란 걸 모르고 설치거든. 올가미에 결린 쪽제비가 파닥거릴수록 올가미에 조여진다는 결 알아야지. 안 그래?”
글쎄요·…… 나로선 잘 모를 일이오. 허나 사람의 용기에는 한도가 있는 게 아니겠소?”
“그래도 정도 문제지 .”
“·……”
“하여튼 당신은 독종이야.”
간수는 독종이 ‘도옥종’으로 들리도록 강하게 발음하며 그렇지 않느냐고 눈으로 묻고 있었다. 그는 엷게 웃었다.
“잘못 보신 거 아뇨?”
“천만에. 생김으로야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데 독기야 심장에 들었으니 말야. 참 사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거든.”
간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당신은 독종을 좋아하는 모양이구려.”
그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말해 뭘 해. 사내가 독기 빼면 뭐 남나? 이빨 뽑아버린 살모사지. 더군다나 여기 갇힌 친구들은 말할 것도 없잖아. 즈이들이 파렴치범들이라면 또 모르지. 헌데·…….”
간수는 말을 뚝 끊더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간수의 목소리가 좀 높았던 듯도 싶었다. 좌우를 두리번 거리던 간수의 눈동자에는 두려운 빛이 얼핏 내비쳤다.
“그들을 미워하진 마시오.”
그는 이 말을 해놓고 섬뜩했다.
“미워 하긴, 무시하지 .”
간수는 재치 문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제때에 받아넘겼다.
“내 말은 한마디로 그렇게 구질구질할 필요가 없다 이거야.”
그는 모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을 위하여 무슨 구차스러운 변명 이라도 한마디해야 될 것 같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가 아니겠소?”
“그건 또 무슨 소리. 여기가 물 속인가? 바위 속이긴 하지만 숨 맘대로 쉬겠다, 세 끼 밥 꼬박꼬박 주겠다, 아무 간섭 않겠다, 뭐가 어쨌다고 지푸라긴 잡아?”
거침이 없는 간수의 말에 그는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죽는 것보다 살기가 더 어려위 그러는 게 아니 겠소.”
“허, 유식한 체하지 말어. 하여튼 당신 같은 독종은 여기 없어.”
간수는 빈정대듯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간수의 말은 강한 여운으로 그의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 여운을 씹으며 그는 수긍하고 있었다.
ㅡ……즈이들이 파렴치범들이라면 또 모르지.
다른 감방 사람들이 무슨 요구와 어떤 애걸로 간수를 하느님으로 받들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자랑 삼아 늘어놓지 않은 간수가 고마웠다. 어쩌면 앞으로 모래알처럼 많은 시간을 이용해서 간수는 차근차근 털어 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작정 이었다.
다음날 아침 간수는 밥을 건네주며,
“잘 잤어?”
싱긋 웃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는 당황하며 인사를 받았다. 그 평범한 한마디. 그 말이 어쩌면 그렇게도 가슴을 깊이 찔러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이 인사말을 잊어버린 지도 실로 오래되었다. 간수는 짙은 사람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
간수는 이 말을 남기고 다음 감방으로 옮겨갔다. 그는 얼른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느낌만이 아니었다. 실로 눈에 띄게 밥이 많았고 국이 걸었다. 그는 한동안 밥그릇과 국그릇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는 한결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간수와는 아침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밥을 더 꼭꼭 씹어먹었고 운동을 더욱 열심히 했다. 쥐새끼라도 한 마리 있으면 친구를 삼을 판인데 간수는 엄연히 사람이 아닌가.
“닷새를 굶은 병사한테 지금 당장 뭘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가당찮게도 밥이 아니라 여자라고 하더라는군. 지금 당장 풀려난다면 당신은 뮐 원해?”
“그야 물론 나도 여자지.”
이런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게끔 되었다. 그러나 그는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간수를 통해서 풀고 싶은 궁금증이나 얻어내고 싶은 정보는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그걸 꾹꾹 눌러 참았다. 섣불리 대들다가 다른 감방 사람들과 흡사
한 취급을 당할 염려가 있었다. 모처럼 굴러 들어온 기회를 어리석게 잃을 수는 없었다. 당분간은 날짜가 잘 가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어느 날 점심을 받다가 그는 불쑥 물었다.
“애들은 몇이나 두었소?”
“왜?”
의외로 간수는 눈꺼풀에 힘을 넣으며 되물었다. 불길한 느낌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아니,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요.”
그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간수의 사생활부터 차근차근 알아내면서 이야기의 통로를 넓히고 자연스러운 사이를 만들 계획을 짰던 것이다.
“니기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어디 몸이라도…….”
아무래도 핀트가 잘못 맞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초조해졌다.
“병신이 아니라 고아원에 처박아두고 있는 꼴이야.”
간수는 어느 때 없이 낙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난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날샌 팔자지. 마누라란 년은 화냥질해서 내빼버리고…… 애비라는 작자는 이 꼬락서니니 용뺄 재주가 있어야지. 제 놈이 고아원 신셀밖에. 니기미, 남들처럼 그 흔해빠진 친척 부스러기도 하나 없는 팔자니까.”
간수는 울먹이는 것 같은 어조로 늘어놓고는 헤풀어진 걸음걸이로 멀어져 갔다.
그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사람이 사는 세상살이란 항시 상상을 비웃는다는 사실을 상기 했다.
그는 마음이 개운치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자신의 계획은 제대로 들어맞고 있었다. 간수는 처음과는 달리 마음을 풀어놓는 상태에 있었다. 간수의 감정에는 시큰한 물줄기가 상당히 올라 있었다.
간수가 다시 나타난 것은 저녁밥을 먹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약하긴 했지만 그는 술 냄새를 풍겼다.
“아직 자지 않고 있었구먼.”
그럴 줄 알고 왔다는 듯 간수는 말했다.
“술을 드셨소?”
“약간.”
“그래도 괜찮소?”
“당연하지. 당신네들 종 노릇 충실히 잘하라고 비행기로 날라다 주는 걸.”
“……”
“나만 마셔 미안해.”
“천만에요.”
“어쩔 수 없잖아. 고무 호스 대놓고 밤낮으로 마셔댈 날이 오지 말란 법도 없잖아. 그때 웬수 갚으라고.”
“고맙소.”
“고맙긴, 미안하다니까.”
간수는 쓸쓸하게 느껴지는 웃음을 입가에 흘리고 있었다.
“저어,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소?”
그는 목소리를 한결 낮추어 물었다.
“직업을?”
간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자식을 위해서 그게 최선의 방법 아니겠소?”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간수는 멍한 눈길로 물었다. 그는 순간 천치를 느꼈다.
“어떡하긴, 사표를 내면 될 거 아뇨.”
그의 답답해 하는 말에 간수는 멍한 시선을 떨구었다. 그리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모르고 있군, 모르고 있어.”
간수는 중얼거렸다.
“뭘 모른다는 거요?”
그는 다그쳐 물었다.
“얼마나 됐어, 당신 집 떠난 게?”
간수는 정신이 또렷한 눈길로 묻고 있었다.
“3년 2개월.”
“그렇겠지. 그러니까 모르겠지. 모를 수밖에.”
간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뜻이오? 속시원히 말을 해요.”
그는 철책을 붙들고 바싹 앞으로 다가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동안 바뀌었어. 사표를 내도 소용이 없어. 다 옛날 얘기지. 이젠 죽으나 사나 한번 정해진 자릴 지켜야 돼. 다른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는. 그렇게 변했어. 알아들어?”
그는 철책에 머리를 기댔다. 불똥이 보이는 심한 현기증이 일었던 것이다.
“나도 한때 기름진 자릴 차지하고 있었지. 비록 말단이었지만 말야. 방앗간 참새 흉년 없더라고, 말단이었지만 괜찮았지. 그렇다고 당신 같은 사람 못살게 구는 그런 일과는 아예 상관이 없었어. 그때 장갈 들었지. 여편네는 날 임금님
떠받들듯 했어. 원하는 걸 척척 해주는 남편이었으니까. 그런데 사고가 터졌지. 내 윗놈이 저지른 일이 그만 그물에 걸린 거야. 그놈은 사색이 되어 나한테 매달렸어. 자기가 뒷수습을 말끔히 할 테니 몽땅 뒤집어쓰라는 거였지. 그리고 거금을 내놓았어. 내가 싹 거절을 못한 건 그의 덕을 입은 탓도 있었지만 그 사건에 나도 조금은 연관이 있어서였지. 나는 다 뒤집어썼지.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그놈은 싹 오리발을 내밀고 말았어. 그래서 난 여기로 내몰리는 신세가 됐지. 뒤늦게 내가 결백하다고 외쳐본들 뭘 해. 파도 소리가 더 큰걸. 여기는 1년에 한 차례, 닷새 휴가가 전부였어. 1년 만에 집엘 찾아가니 주인이 바뀌어 있지 뭔가. 여편네가 화냥질을 해서 싹 팔아치우고 내빼버린 뒤였어. 오뉴월 개새끼처럼 혀 빼물고 헉헉대며 뛰어다녀서 겨우 애새끼가 처박혀 있는 고아원을 찾아냈지. 그땐 휴가 기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어. 그년을 잡아죽이려는 앙심으로 사표를 썼지. 헌데 때는 이미 늦어 있었어. 바뀐 거야. 그 후로 2년 반이 흘러갔지. 허지만 난 알고 있어. 내겐 다시 새로운 명령이 내려오지 않아. 한번 점이 찍혀버렸거든. 이게 나라는 놈이야.”
간수는 웃는지 우는지 분간이 안 되는 괴상한 소리를 흐흐흐 흘리고 있었다.
그는 간수를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자신과 똑같은 형기의 죄수가 또 하나 서 있었다.
“가 쉬시오. 피곤해 보이오.”
그는 팔을 내밀어 간수의 등을 두드렸다.
“당신은 나이에 비해 퍽 점잖아 보여. 내 이야기 지루했지?”
간수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간수가 돌아간 다음 그는 오래도록 못박혀 앉아 있었다. 바깥 세상의 소식이 어느 때 없이 갈증을 일으켰다. 종잡을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단순해지려고 안간힘을 썼다. 먹이만을 찾는 아메바처럼 그렇게 단세포가 되는 것만이 시간을 이기고 자기 스스로를 이기고 타인을 이기고 끝내는 모든 것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임을 다시 확인했다.
간수와는 될 수 있는 대로 무거운 이야기를 피하려고 했다. 속수무책인 채 마음에 주름만 잡힐 뿐이었다.
간수는 사과 한 쪽을 디밀 때도 있었고, 사탕을 몇 알 손에 쥐어줄 때도 있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수시로 고기며 생선을 맛보게 해주었다. 아마 자기 몫의 반찬을 남겨서 가져오는 모양이었다. 가끔은 모르지만 너무 자주 이러면 미안해서 안 된다고 사양을 했다. 그럼 간수는 어떤 때는 그냥 씨익 웃고 돌아섰고, 어떤 때는 “병나면 안 돼. 끝장이야” 하기도 했다.
실오라기 달력이 스무 개로 불어났다. 어느 날 간수는 귤을 하나 내밀었다.
“이거 한 쪽이 사과 열 개 몫을 한다는군. 어서 먹어.”
그는 귤을 받아들어 곧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간수는 이런 것을 꼭 자기 앞에서 먹기를 바랐다. 소장이라도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니까 자기가 망을 보아준다는 것이었다. 이건 이유에 지나지 않았다. 소장은 지금껏 단 한 번 얼굴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 그 작자는 이 지하실 돌감방을 어지간히 징그러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간수는 그가 자기 앞에서 이런 것을 맛있게 먹는 걸 즐거워했다. 그래서 그는 맛 이상으로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로서도 그런 일은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여길 떠나서 해야 할 일을 빼놓고, 여기서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내게 부탁하고 싶은 거 뭐 없나?”
간수가 조용하게 물었다.
“글쎄요…….”
그는 귤을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혹시 가능할지 모보겠는데, 한 몇 분만이라도 햇빛을 쬐었으면 하는데요.”
그의 말에 간수는 그만 난색이 되었다. 아차 싶었다. 그건 간수의 능력의 범위가 아니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그냥 해본 말이니까.”
“아냐, 아냐. 내가 소장한테 부탁해 볼게. 사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햇빛 한 방울 못 보게 하는 이런 감옥살이가 어디 있어.”
간수는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간수의 그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자신이 미안해 하는 것을 묵살하려는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얼마 후에 간수는 풀이 죽어 돌아왔다.
“병신 같은 자식이 안 된다는군.”
간수는 바닥에 퉤 침을 뱉었다.
“규정이 그런 모양이죠.”
그가 위로의 뜻으로 말했을 때,
“맞았어. 짜식이 규정이 어쩌고 하면서 딱 잡아떼는 거야.”
홍분한 탓인지 간수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얼른 입에 손가락을 대보이며 쉬잇 주위를 환기시켰다. 간수는 반사적으로 좌우를 살펐다. 그리고 한결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갑자기 햇빛을 보면 눈을 상할 염려가 있으니까 눈을 가리고 나오면 어떻겠느냐고 했지. 그랬더니 짜식은 똥 집어먹은 쌍판이 돼가지고 뭐라는지 알아? 죄수들한테 매수되어 규율을 파괴하려는 그따위 행위는 당장 보고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잖겠어. 어떡하겠어, 물러설 수밖에.”
잠시나마 햇빛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기대는
깨어지고 말았다.
그는 질긴 잠의 올가미를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잠이 말짱 깬 것도 아니었다. 잠을 깨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름시름 잠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몸은 흐물흐물 맥을 못썼고 의식은 잿빛으로 충충하게 흐려 있었다. 커다란 그물에 걸려버린 것 같은 그런 흐리멍덩한 의식 속을 헤매면서 그는 끊임없이 신음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고통이 지글지글 타는 것 같은 그 절박한 신음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쪽인가 하면 저쪽인 듯싶었고, 앞에서 들리는가 하면 어느새 뒤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신음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그는 칙칙하고 끈적끈적한 잠의 늪을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렸다. 얼마를 더 몸부림하다가 가까스로 눈을 뜰 수가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귀를 곤두세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생생하게 들리던 소리가 어찌된 것일까. 환청이었을까. 그는 머리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소리는 자춰도 없다. 그는 머리를 감싸쥐며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으으으…….”
저 소리, 그는 후닥닥 일어났다. 한결 약해지긴 했지만 분명 그 신음 소리였다. 그는 문에 매달렸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 왼쪽 벽으로 몸을 붙이바싹고 귀를 철책 사이로 내밀듯 했다. 어둠침침한 적막뿐이었다. 다시 오른쪽 벽으로 몸을 옮겼다. 호롱불이 힘겹게 헤치고 있는 어둠의 부스러기가 무겁게 내려쌓이고 있을 뿐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그런데 그 절박한 신음 소리는 언제나 같은 밀도로 잠겨 있는 어둠의 분말들 속에 분명히 떠돌고 있었다. 손을 휘저으면 건져질 것처럼.
그는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그는 결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소리를 잡기 위해 온 신경을 귀로 집중시키고 있었다. 지금이 밤인건 분명한데 기상 시간까진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항시 똑같은 불빛에 항시 똑같은 어둠이 잠겨 있기 때문에 시간 감각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였다.
아무리 기다렸지만 그 신음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등을 벽에 기댔고, 팔을 받치고 옆으로 누웠고 스르르 잠에 빠져 들어갔다.
어이없게도 간수가 깨워서야 일어났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허둥댔다. 신음 소리를 쫓던 일이 방금 일어난 것처럼 그 동안의 시간을 떠밀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뭘 잃어버렸나?”
간수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난 어젯밤에 분명히 들었는데…….”
그는 철책에 매달렸다.
“……”
“아무 일도 없었소? 그 소릴 분명히 들었는데·…….”
“무슨 소릴?”
간수가 표정 없이 물었다.
“신음 소리 말이오. 아주 절박했소. 곧 숨이 넘어가는 것 같은…… 내가 분명히 들었는데…… 잘못 들은 건 아니지요? 그렇지요?”
그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간수는 그런 그를 어루만지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죽었어!”
간수의 음성은 돌덩어리 같았고, 그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잠시 후 그는 철책을 붙든 손에다가 머리를 박았다. 그의 머리칼이며 어깨가 칙칙한 어둠 속에서 잔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어디 한두 번짼가…….”
간수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말했다.
그는 감정을 다스리려고 크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숨결은 걷잡을 수 없이 굴곡이 심했다. 한 목숨이 사라져가려고 마음은 그리도 조바심을 쳤는지 모른다. 자신이 신음 소리를 다시 기다리고 있을 때 얼굴을 모르는 한 생명의 피는 이미 식 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 사람은 어찌 됐소?”
그가 간신히 물었다.
“끌어내다가 관에 넣었지. 곧 잠자리비행기가 와서 싣고 갈 게고, 그리고 가족한테 넘겨지면 그만이겠지 뭐.”
그는 더 할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돌아섰다.
아침밥을 먹지 않았고 간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석상이 되어 앉아 있었다. 머릿속은 희게 표백되어가고 있었다. 의식 이 맑아지는 것과는 또다른 상태였다.
그는 점심도 거절했다. 이번에는 간수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러지 말어. 아까도 말했지만 처음 있는 일이 아냐. 당신이 처음 안 것뿐이지. 막말로 죽는 놈만 서러워. 어서 이것 받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왜 이러나. 몇 남지 않은 경쟁자들 틈에 끼고 싶어 이러나? 내가 사람 잘못 봤군.”
간수는 노골적으로 경멸의 빛을 보였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는 침상에서 내려섰다.
“모르고 있겠지만 이젠 여기 몇 명밖에 안 남았어. 날이 갈수록 일이 줄어들어 좋긴 하지만, 그자들도 머잖아 줄초상 치게 돼 있어. 거기 한몫 끼고 싶으면 알아서 해.”
간수는 어느 때 없이 냉정 한 어조였다.
“아니 그럼, 새사람들은 들어오지 않는단 말요?”
그의 물음에 간수는 해득할 수 없는 웃음을 피식 웃었다.
“끊긴 지 이미 오래야. 다 미리미리 알아서 기는 거지.”
“뭐라구요……?”
그는 비틀거렸다. 간신히 철책을 붙들었다.
“강도·절도·사기범은 날로 늘어나지만 당신 같은 종류의 사람은 이제 끝이 났어. 따지고 보면 이 깜빵도 잘못 지은 셈이지.”
간수의 말을 그는 먼 바람결처럼 듣고 있었다.
그는 밥맛을 잃었고 운동할 의욕도 잃었다. 끝없는 벼랑으로 떨어져내리는 혼돈에서 헤맸고, 밤마다 아내의 꿈을 꾸었다. 옛날 같지 않게 아내는 꿈속에서 줄곧 울고 있었다. 아내의 젖가슴은 쭈글쭈글 탄력이라곤 없었다. 말을 잃어버린 그의 곁에서 간수는 지치지 않고 부축하려고 애썼다.
실오라기가 둘을 더해 스물두 개가 된 어느 날이었다. 간수가 다급하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문께로 걸어갔다.
간수는 빠르게 좌우를 살피더니 느닷없이 그의 귀를 잡아 당겼다.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당신 여기서 송장이 되고 싶진 않지?”
간수는 빠르게 속삭였다. 그 실오라기 같은 목소리에서 그는 단내를 맡았다.
“무슨 소리요?”
그도 빠르게 속삭였다.
“빨리 대답해!”
“당연하잖소!”
“좋아, 그럼 우리 탈출하는 거야.”
“뭐요……?”
“어때, 빨리 대답해!”
“할 수만 있으면·…….”
“됐어. 기다려!”
간수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는 안절부절을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침상을 붙들고 앉았지만 전신이 푸들푸들 떨려왔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온몸이 열로 들떠올랐다. 얼마를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간수가 밥통을 들고 나타났다. 간수는 태연했다.
“사흘 후에 실시야. 소장이 겨울 휴가를 떠나는 날이거든.”
“소장 말고 다른 사람들이 또 있을 것 아니오.”
“취사 담당 한 놈뿐이야. 다른 한 놈은 소장이 떠난 다음날 휴가에서 돌아오구.”
“그럼 여기 인원이 모두 네 명뿐이란 말이오?”
“그런 셈이지. 숫자가 줄기만 하구 보충이 안 되니까 몇 명은 딴 곳으로 이동했지.”
“그 취사 담당이 문제 아뇨.
“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염려 말어. 짜식이 악질이긴 하지만.”
간수는 밥 많이 먹어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는 간수로부터 비로소 이 감옥에 대한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이 섬이라는 것과 감방은 바위를 파서 만든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곳의 위치 설명이었다. 간수는 이곳을 중심으로 여러 곳의 위치를 아는 범위 내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탈출 계획을 결정적으로 도와줄 것은 뭐니뭐니 해도 소장의 고상한 취미였다. 소장은 낚시광이었다. 전에부터 낚시에 미쳤는지 아니면 이런 고도(孤島)에 내동댕이쳐져 한정도 없이 쌓이기만 하는 시간을 때려잡는 수단으로 낚시를 시작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소장은 스릴과 재미가 만점 이라는 바다낚시를 즐기기 위해 배와 줄사다리를 장만한 것이다. 그래서 물살이 사납지 않은 뭍 쪽으로 향한 해안에 배를 맸고, 때의 위치에 맞춰 줄사다리를 걸 자리를 만드느라 바위에다가 쇠몽둥이를 틀어박는 무지막지한 노동을 치러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소장이 낚시 행차를 하실 때는 졸병들은 윤번제로 낚시 도구가 든 배낭을 메고 줄사다리를 타는 곡예를 벌여야 했다. 이것까진 그래도 좋았다. 그 다음은 노를 젓는 일이었다. 소장이 만족할 만큼의 깊이까지 배를 몰아나가기 위해서 죽어라고 노를 저어야 했다. 그래서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터지고 그 자리에 공이가 박힐 때까지 팔자에 없는 노 젓기를 숙달시켜야 했었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면 소장은 꼭 줄사다리를 걷어올리게 했다. 그건 차곡차곡 말려져 소장의 의자 뒤에 있는 캐비닛 속으로 들어갔다. 소장의 말로는 비를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게 무슨 보물단지라고 굳이 캐비닛 속에 모시는 것인가. 소장은 부하들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건 그가 소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까지 익혀버린 자신으로서도 어쩌지 못하는 체질일 것이었다. 소장이 아무리 캐비닛 번호를 극비에 붙이고 있었다 하더라도 줄기찬 눈초리 앞에서는 어찔 수 없는 일이었다. 간수는 캐비닛 번호를 고스란히 머릿속에다 훔쳐 넣을 수 있었다.
“취사 담당이 아무래도 께름칙 하군요.”
그는 침을 꿀떡 삼키며 말했다.
“염려 없어. 그치는 한번 잠들면 꽹과리를 쳐도 몰라. 소장이 떠날 때쯤이면 그치는 아마 곯아떨어져 있을 거야. 만약 재수 드럽게 그치한테 들키게 되면 뭐 볼 것 있어? 해치워버리는 거지 .”
간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날 빼고 몇 사람이나 더 있소?”
“셋!”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요.”
“관심 쓸 거 없어. 어차피 며칠씩 못 넘기도록 돼 있으니까.”
“정말이오?”
“왜, 데려가고 싶어서?”
“……”
“구경을 시켜줄까? 줄사다리에서 다 떨어져 죽게 돼 있어.”
“……”
“내일 밤이야.”
간수는 선언이라도 하듯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형용할 수 없이 지루하고 초조한 하루였다. 아내를 생각했고, 연락 방법을 생각했고, 피신처를 생각했고, 지난 일들을 생각했고, 다시 체포되었을 때를 생각했고……그래도 하루는 길게 남아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몇 차례 되풀이하고 나서야 저녁 밥 때가 되었다.
“한숨 자둬.”
밥을 건네준 간수는 이 말만을 던지고 돌아갔다.
그는 꾸역꾸역 밥을 밀어넣었다. 간수의 말에 의하면 이삼 일간은 민가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눈은 감고 있었지만 온 신경은 문쪽으로 쏠려 있었다.
지극히 산발적인 것이었지만, 한 개인의 의지를, 한 생명의 삶의 조건을, 집단을, 역사라는 것을, 그외에 많은 의식의 조각들을 그는 만나고 있었다.
문 쪽에 인기척이 있었다. 그는 재빨리 일어났다. 간수였다. 가슴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간수는 자물통을 땄다.
“자, 어서…….”
문이 열리고, 그는 감방을 빠져나왔다. 간수가 앞장을 섰다. 그는 발이 헛디뎌지는 출렁거림 속에서 간수의 뒤를 바싹 따랐다.
열다섯 개의 계단을 오르고 곧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 이 옷 빨리 갈아입어.”
사복이었다. 번호가 붙은 옷을 벗었다. 바지를 입었고, 잠바를 입었다.
“거기 구두도 바꿔 신고.”
간수는 캐비닛에 매달려 마른 음성으로 일렀다. 그는 고무신을 벗고 구두를 신었다. 더 할 일이 없었다. 그는 주먹을 꼭 말아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사무실 중앙의 난로는 벌겋게 달아 있었고, 그 위에 놓인 커다란 주전자는 썩썩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 냈다.
“됐어, 가!”
간수는 허리가 휘도록 짐을 지고 있었다. 줄사다리였다.
밖은 뿌유스름한 어둠이 덮여 있었다. 바람이 파르르 옷깃을 날렸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 전부 바위야.”
앞서가는 간수가 숨가쁘게 일렀다. 그는 무릎에 힘을 모으며 옷깃을 여몄다. 갯냄새가 섞인 차고 싱싱한 바람은 가슴저 깊숙이까지 파고들어 싸한 박하향을 뿌려놓고 있었다.
“빨리 이것 좀 받어.”
그는 줄사다리를 받아 내렸다. 허리가 휘청했다. 간수는 줄사다리의 두 끝을 찾아내 바위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줄사다리가 바다로 풀려 내려갔다. 그는 화들짝 놀라 사무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걱정 말어. 파도 소리가 더 크니까.”
간수가 안심을 시켰다.
“자아,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 내려가. 서두르면 안 돼!”
간수는 그의 등을 어루만지듯 하며 앞으로 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줄사다리 위에 발을 올리고 두 손으로 줄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한 발짝씩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긴 한숨을 내뿜었다.
간수의 말대로 줄사다리 끝은 배에 닿아 있었다. 그는 배로 펄쩍 뛰어내렸다. 몸이 붕 뜨는 그 짧은 순간이 그는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처럼 밝은 빛으로 확대되어 온 때는 일찍이 없었다.
“마침 구름이 끼어서 안성맞춤이야. 구름이 끼지 않았더라면 너무 밝을 뻔했어. 머잖아 보름이거든.”
간수는 배에 묶인 줄을 풀어내며 혼잣말처럼 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짙게 덮인 구름뿐이었다.
배가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간수의 몸이 율동감 있게 앞뒤로 움직였다. 그 움직임으로 배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춥지?”
간수가 물었다.
“아니오.”
“추울 게야. 옷이 한겨울 것으론 너무 얇거든.”
“걱정 말아요.”
그는 으스스 떨며 말했다.
둘 사이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뱃전에 부딪히는 물소리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수월하게 탈옥을 할 수 있다는 게 도무지 실감으로 오지 않았다.
“마누란 미인인가?”
간수가 무료한 듯 물었다.
“내 눈에는요.”
“다행 군.”
다시 말이 끊겼다.
그는 간수와 어디쯤에서 헤어지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알 수가 없었다. 헤어지지 말고 끝까지 함께 갔으면 싶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간수의 뜻에 달린 일이었다. 간수가 짐스러워하면 뭍에 닿자마자 떨어져야 될지도 모른다. 그는 혼자가 되는 게 두려웠다.
“당신은 당신이 홀륭하다고 생각해?”
간수가 물은 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는 순간적으로 마음을 도사렸다.
“당신 같은 사람마음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영 알수가 없기도 하고, 갈팡질팡이거든.”
“나도 잘 모르겠군요.”
“그럴 리야 없겠지. 홀륭하긴 훌륭한 모양이야. 죽은 다음에도 오래오래 훌륭하다고 꼽는 인물들 중엔 당신 비슷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야.”
“……”
간수의 몸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노 삐꺽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는 점점 추위를 느꼈다.
“구두 벗고 내릴 준비해.”
바로 저 앞이 모래사장이었다. 그는 간수가 시키는 대로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올렸다.
배가 멎자 그는 바닷물로 첨벙 뛰어내렸다. 섬뜩한 차가움이 전신으로 부챗살처럼 퍼져갔다. 그는 그 바늘 끝 같은 차가움에서 추위를 느끼기보다는 질긴 자신의 생명의 불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 간수도 모래사장으로 나왔다. 그들은 서둘러 발을 닦고 양말을 신었다. 발은 아리다 못해 마비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가 구두를 신고 일어섰을 때였다. 간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아, 그럼 잘 가시오.”
“……”
그는 어리둥절했다. 간수는 최초로 경어를 썼다.
“여, 여기서 혜어지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아니오.”
간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어서 떠나시오.”
“아니 당신은…….”
“난 다시 섬으로 돌아갈 거요.”
“그게 무슨 소리요. 함께 가기로 하잖았소.”
“난 갈 데가 없소.”
“아들이 있잖소. 아들을 찾아야지요.”
“몇 개월 전에 죽었여요. 연락이 왔습디다.”
“뭐라구요……?”
“난 당신과 또 다르오. 어디에도 몸을 숨길 수가 없게 되어 있소.”
“섬으로 돌아가면 당신은…….”
“내 염련 마시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안 되오, 갈 데가 없으면 나하고 함께 갑시다. 이게 무슨 짓이오.”
“괜히 시간 낭비요. 날이 밝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소. 날이 밝기 전에 이 지역을 벗어나얄 게 아니오! 자 이거 받으시오. 누룽지요. 몇 끼는 때울 수 있을 거요.”
간수는 조그만 보퉁이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자아, 무사히 가길 빌겠소.”
간수는 손을 내밀었다.
“당신은 도대체…….”
그는 말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
“왼쪽으로 가시오. 가능한 한 민가를 피하구요.”
간수는 힘주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가시오. 당신은 독종이었소.”
간수는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배에 오른 간수는 이쪽을 향하여 마구 팔을 내젓고 있었다. 흡사 허공을 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고맙소. 잘, 잘…….”
그는 중얼거리며 돌아섰다. 그리고 어둠을 헤치며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그는 큰길을 가로질러 산비탈 쪽으로 접어들었다. 얼마를 걸었는지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뛰는 게 아닌데도 숨이 가쁘고 가슴으로는 맞바람이 통했다. 그는 자신의 몸이 파삭 말라버린 가랑잎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여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일곤 했다. 그러나 허약해진 몸을 어찔 수 없듯이 그것도 부질없는 아쉬움이었다. 추위를 참고 이겨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지 못하면 얼어죽는 것뿐이었다. 이까짓 추위쯤…… 그로서는 아예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추위가 아무리 고통을 준다 하더라도 그것과 목숨을 동일선상에 놓는 건 그로선 용납할 수가 없었다. 추위는 단순히 견디어낼 역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목숨의 가치는……. 그는 전신을 조여 비트는 것 같은 추위를 질겅질겅 씹었다.
날이 차츰 밝아지기 시작하자 그는 은신처를 찾았다. 우선 사람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하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야 했다. 그는 두 개의 바위가 맞붙어 생긴 공간을 찾아냈다. 주위에 잡풀이며 나무가 서 있어서 쉽게 노출될 염려는
없었다. 그는 바위틈바구니에 쪼그리고 앉았다. 맞바람은 다소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추위는 전혀 막아낼 수 없는 장소였다. 그는 점점 추위의 문제가 심각하게 확대되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태로 얼마 동안이나 더 견디어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몸을 조여뜨려 웅크려 박았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지만 추위는 그 어떤 생각이든 금방 토막을 쳐버리곤 했다. 불, 이글거리는 한 무더기의 불이 소원이었다. 마른 잡풀들의 흔들림이 불길로 보였다. 성냥만 있다면 당장 그 마른 풀숲에 불을 지를 것 같았다. 자신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는 벌써 몇 시간째 추위 속에 내던져진 상태였다.
그는 누릉지를 생각해 냈다. 보따리를 풀었다. 꽤 시간이 걸렸다. 뻣뻣하게 굳은 손가락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누룽지를 한입 가득 넣고 씹기 시작했다. 이빨 사이사이에서 신침이 흘렀다. 누룽지의 고소한 핫이 따뜻했다. 간수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추운 데서 잠이 들면 끝장이야. 계속 움직여야 해.
간수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이런 말까지 해주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갑자기 변경한 계획이 아니었다. 도대체 섬으로 되돌아가서 어쩔 작정인 것일까. 어쩌면 섬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배를 저어 어딘가 멀고 먼 곳으로 피신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네들의 손이 전혀 안 미치는 어느 외딴 섬으로. 그러나 그 배는 너무나 작고 너무 느렸다.
그는 누룽지를 우물거리며 손바닥을 맞비비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내가 있는 곳까지는 까마득하고, 계속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도망을 해야 한다. 그는 긴 숨을 내쉬었다.
하늘엔 탁한 구름이 뒤덮여 있었고, 바람은 멈출 줄을 모르고 불었다. 구름만 끼지 않았더라도 이처럼 추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바위틈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걷기로 했다. 이 추운 산속을 헤맬 사람도 없겠지만 만약 사람을 만난다 해도 당당하게 지나치면 그만이라 싶었다. 견딜 수 없는 추위가 준 용기였다.
그는 계속해서 걸었다. 예상대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그는 발을 절룩였다. 지금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와들와들 떨며 걸었고, 걸으면서 누릉지를 씹었다.
그는 왼쪽 다리를 끌다시피 했다. 언덕배기를 간신히 기어 올라갔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이내 어두워지고 말았다. 저 아래쪽 분지에는 집이 서너 채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그 집마다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해거름이었다. 그는 따뜻한 방을 생각했고, 뜨끈뜨끈한 국물이 있는 밥상을 생각했다. 그는 그 조그만 마을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에 떨었다. 이 혹독한 추위의 밤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배도 고팠다. 누룽지는 시장기를 달래는 데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먼발치에서 그 마을을 지나쳤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추위는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그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었다. 끝까지 싸웠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부르짖어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힘은 생기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는 그렇지가 않았었다. 그는 퍼뜩 깨달았다. 그때는 상대가 사람이었고 지금은 상대가 자연이었다.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때는
감정을 무기로 삼은 상대적인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무기도 갖지 못한 일방적 인 싸움이었다.
눈발이 흩뿌리는 속을 그는 밤새껏 걸었다. 수없이 넘어지고 곤두박이며 다시 일어났다. 밖으로 드러난 부분의 살은 푸르뎅뎅하게 얼부풀어 있었다. 입술은 파삭 마른 채 살갗이 들떠올랐다. 그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지쳐 있었다.
날이 완전히 밝아졌을 때 그는 끝이 아슴해 보이는 들녘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들녘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비칠비칠 주저앉았다. 졸음이 뭉텅이로 몰려들었다. 이제 추운 것도 의식할 수가 없었다.
―추운 데서 잠이 들면 끝장이야. 계속 움직여야 해. 그는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이를 앙다물고 일어섰다. 들녘 끝을 향해 비척비척 걷기 시작했다. 그에겐 이제 누룽지도 없었다.
눈발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씨잉 씽 거세게 불었다. 눈발은 땅과 평행선을 그으며 달음박질쳤다. 그는 걷는 게 아니라 바람에 떠밀리고 있었다. 그는 허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고픔은 두통을 몰고 왔고 귀까지 먹먹하게 만
들었다. 무엇이든 먹을 것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눈발은 점점 더 거칠어지기만 했다.
그는 추웠고 배가 고팠고 졸음이 왔다. 주저앉고 싶었고, 쓰러지면 죽는다고 생각했고, 뿌득뿌득 이를 갈며 발을 옮겼다.
그는 주춤 멈춰섰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있었다.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작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살금살금 접근했다. 그때 후닥닥 뛰는 게 있었다. 토끼! 그는 뒤쫓아 뛰었다. 몇 걸음 뛰지 못하고 사정없이 넘어졌다. 토끼는 간 데가 없었다. 그걸 잡았더라면·……. 그는 강한 식욕을 느꼈다. 굽지 않고도 그대로 먹어치울 수 있다고 그는 장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끼는 이미 도망친 뒤였다……. 그런데 왜 토끼가 거기 있었을까. 그는 부리나케 일어났다. 토끼가 있던 곳에는 콩깍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콩깍지를 헤집기 시작했다. 아무리 헤집어도 콩은 보이지 않았다. 토끼가 먹을 건 있어도 자신이 먹을 건 없었다. 그는 콩깍지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이 가물가물해 가고 있었다. 그는 이대로 푹 잠이 들고 싶었다.
―여보, 어디든 면흴 가겠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역력한 아내의 목소리 였다.
그는 부르짖었다. 나 여기 있다구, 어서 면회를 오라고, 그때처럼 맛있는 음식을 가지고 어서 면회를 오라고.
그는 두 팔로 몸을 버팅기며 일어서고 있었다. 푸르뎅뎅하게 얼어버린 그의 볼이 심하게 씰룩였다. 퀭한 눈에는 검은자위가 반쯤 달아나고 없었다.'
사방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하늘에는 여전히 짙은 구름이 덮인 채 눈발은 멎어 있었다. 그는 쓰러질 듯 쓰러질듯 앞에 보이는 움막을 향해 걷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시야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제멋대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저 앞에 보이는 집에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열 사람이든 스무 사람이든 상관이 없었다. 차라리 사람이 있기를 바랐다.
주저하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그런 그의 눈은 똑바로 박혀 있었다. 움막 안엔 인기척 이라곤 없었다. 짚더미만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한결 아늑함을 느꼈다. 여기저기를 찬찬히 살펴나갔다. 그 어디에도 사람의 냄새는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짚더미 쪽으로 돌아서던 그는 귀를 세웠다. 무슨 소리가 들린 것이다. 몸을 웅크린 채 그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또 소리가 들려왔다. 건너편 벽 쪽에서였다. 돌이 섞인 건너편 흙벽을 그의 눈은 샅샅이 훑고 있었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돌 위에 뚫린 구멍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새가 분명했다. 그의 가슴은 벌떡이기 시작했다. 살금살금 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꿩일지도 모른다, 까치일지도 모른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접근하고 있었다.
벽 아래까지 다 왔다. 숨길을 다잡았다. 이제 덮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는 흙벽의 구멍을 향하여 뛰어올랐다. 뭔가 뭉클 손에 잡혔다. 그리고 그는 짚더미 위로 나둥그러졌다. 그의 손아귀 안에서는 잿빛의 새가 깃을 퍼덕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하나 가득 만족스런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는 몸을 바로 가누며 침을 꿀떡 삼켰다.
그는 계속 깃을 퍼덕이는 새를 들여다보았다. 고개를 갸웃했다. 이리저리 유심히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그때 새가 또 깃을 퍼덕 이며 울었다.
꾸륵, 꾸륵, 꾸르록…….
산비둘기였다.
그는 짚더미를 골라 잠자리를 만들었다. 웅크리고 앉은 다음 짚으로 위를 덮었다. 끝도 없이 자고 싶었다.
그는 비둘기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았다. 몸이 어디론가 한정도 없이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그 아늑하고 포근한 아내의 젖가슴에 안기고 있었다. 아내의 젖가슴에선 감미로운 향기가 물큰물큰 퍼져나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밟으며 서너 명의 사내들이 움막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총을 들고 있었다.
“짜식들이 겁도 없이……”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제까짓 것들, 뛰어야 벼룩이지.”
다른 사내가 따라서 중얼거렸다.
사내들은 움막의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저기다!”
“손들엇!”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한 사내가 날쌔게 발길질을 했다. 그때 푸드덕 소리를 내며 솟구쳐오르는 것이 있었다. 사내들은 엉겁결에 물러서며 총들을 겨누었다.
“엇, 저게 뭐야!”
“새 아냐!”
새는 움막 안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고는 열려진 문을 빠져 나갔다.
“이거 죽었잖아?”
시체는 무릎이 턱에 닿을 지경으로 웅크려진 채 짚더미 위에 모로 쓰러져 있었다.
“또 한 놈은 어찌된 거야?”
“어느 지점에서 헤어진 모양이군.”
“됐어. 수색대는 우리만이 아니니까.”
사내들이 떠들었다.
“근데 아까 그 새는 웬 거야?”
한 사내가 생각난 듯 말했고,
“시첼 파먹으러 온 거 아닌가?"
다른 사내가 대꾸했고,
“글쎄, 독수리가 그렇게 작진 않을 톈데…… 아, 까마귀였나 보다. 그래 까마귀야!”
사내 들은 밖으로 몰려나갔다.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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