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성은 리아입니다.
이번에 소개 할 성지는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자 뿐만 아니라 신자가 아닌 분들도 많이 알고 계시는 미리내 성지입니다. 그런데 신자라는 저는 미리내 성지에서 한여름밤 반딧불이나 찍고 있었다니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가을 비가 장대처럼 내리는 어느 가을 날 마음 굳게 먹고 혼자서 미리내성지를 방문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게 늘어 선 아름다운 그길을 우산을 쓰고 걸을 때 피부에 느껴지는 촉촉한 공기와 그 공기를 들이 킬 때 전해지는 가을 향기는 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혀 주었습니다.
미리내라는 단어는 순 우리말로 은하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곳이 왜 미리내라고 불렸을까요? 신유(1801년),기해(1839년)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곳으로 숨어들어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는데, 밤이면 집마다 밝혀진 호롱불빛이 은하수처럼 보여 미리내라고 불렸다합니다.
병오박해 때 순교 하신 한국 최초의 사제이며 2021 세계 유네스코 기념인물인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이민식 빈체시오 형제에 의해 미리내에 안장 되면서 교회 안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지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슬라, 김대건 신부님께 사제 서품을 주신 페레올 주교님, 한국의 세번째 사제이며 미리내 성당 초대 주임신부이신 강도영 마르코 신부님,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새남터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안장하고 선산을 교회에 봉헌한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1976년 수원교구에서 용인 지방에 산재해 있던 무명 순교자들의 유해를 미리내 성지로 이장 함으로써 박해시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 역사와 순교현양의 흐름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게 함으로써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성지라고 하겠습니다.
1980년 들어서는 경당 옆 3만평 규모로 광장을 확장하고 미리내 성당에서 경당까지 길 옆에 14처 조각이 세워졌고 1987년~1989년까지 2년에 걸친 공사 끝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주차장과 연결 된 미리내 입구에 들어 서면 예수님과 김대건 신부님께서 우리를 반깁니다.
비 오는 날에도 많은 분들이 성지 순례를 오셨더라구요~
이곳 입구는 가을이 무르 익으면 더 아름다울거 같애요.
입구에서 조금 들어가면 예수님 탄생의 순간과 십자가의 길을 만납니다.
시성 성당 앞 다리를 건너면 묵주기도의 길이 나타납니다.
아래 사진은 미리내 성지 대성당의 모습입니다.
103위 시성기념성당이 1991년 완공 되었는데 제대에는 김대건 신부의 비골(종아리뼈)이 모셔져있다고합니다.
고딕양식으로 크고 높고 웅장한 분위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제가 갔던 시간에 미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내부 모습은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성당의 내부는 선조들이 박해시에 고문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켜나갔던 모습이 형상화 되어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성모당입니다. 이성모당은 작고 아늑하고 분위기가 참 따뜻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모자이크로 장식한벽면과 성모상 뒤의 별이 가득하고 천사들이 성모님을 호위하는듯한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 한참을 앉아 기도했습니다.
시성성당을 지나 걷다보면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만나게 되고 왼쪽의 작은 언덕 위에 경당이 있습니다.
경당에는 현재 여섯분의 묘소와 함께 김신분의 하악골(아래턱뼈)을 모셨다고합니다. 김신부의 묘역에는 한국 천주교의 3대 주교인 페레올주교와 강도영 마르코신부, 3대 최문식 베드로 신부등의 유해가 석관에 안치되어있습니다.
경당 내부의 모습입니다.
경당을 나오면 십자가의길이 연결되어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걸어보았습니다.
밑의 사진들은 작년 여름 처음으로 반딧불을 담으러 갔을 때 모습입니다.
이상 미리내성지에 대한 초보 신자의 보고서입니다. 또 가보고 싶은 미리내 성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