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17일부터 부산교구 신학생들의 생태 농촌체험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농촌 체험은 기획부터 준비, 예산마련, 실제 진행을 모두 신학생들 스스로 해결했다. 식사까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신학생들의 ‘진짜 농부되기’ 프로젝트를 3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천주교 부산교구 신학생들의 농촌 봉사활동(이하 농활)을 취재하기 위해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 신화마을로 향했다. 울산역에서 10여분밖에 되지 않는 거리지만, 중년 택시 기사들도 위치를 몰라 결국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 신화길 66번지’를 더듬더듬 입력하고 나서야 목적했던 신화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외딴 시골 마을에서 부산교구 신학생들이 3박 4일간 농활을 하겠단다.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으나 대체 신학생들은 어떻게 이곳을 알았으며 이 외진 마을에서 무슨 농촌 체험을 하겠다는 걸까?
하얀 벽에 검은 글씨로 ‘신화 새마을 회관’이라고 적힌 건물 앞에서 어쩐지 낯설지 않은 기운을 느끼며 사람들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2016년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 준비, 예산마련, 진행까지 스스로 해결한 부산교구 신학생들. 신화 새마을 회관에서 다함께 찰칵! ⓒ 최진
“농촌에 대한 체험 없이 농민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다”
이번 2016년도 부산교구 신학생 여름방학 활동은 신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예산까지 직접 마련하며 준비했다고 한다. 지난해 발생한 백남기 선생에 대한 국가폭력 사건으로 한국 농민들의 어려움이 그나마 세상에 알려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신학생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그 아픔에 동참하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다가왔다.
농촌의 현실적인 문제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땀을 흘리고 고된 일과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우리네 먹거리와 나아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겠다는 설명이 다부지게 들린다.
▲ 농촌의 현실적인 문제를 몸소 체험함으로써 우리네 먹거리와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겠다는 각오로! ⓒ 최진
신화마을은 광활한 논밭이 장관을 이뤘지만, 그만큼 뙤약볕의 열기로 가득했다. 그늘에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이었지만, 나무그늘은 찾기 힘들었다. 논밭 사이로 난 마을 길 한가운데 신화마을회관이 있었다. 그리고 마을회관 2층이 바로 신학생들의 임시 숙소였다.
신학생들은 오전 농활 이후 휴식시간을 이용해 숙소를 청소하고 있었다. 옥상에 닿은 햇빛의 열기가 숙소에 가득했다. 오래된 선풍기 4대는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바람이 닿지 않는 공간이 더 많았다. 기상청의 폭염 기록을 수차례 갈아치우고 있는 올해 여름의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숙소였다.
“여러 소식을 통해 농민들의 삶이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신학생들이 농촌 상황과 경험이 없으니 그것을 이해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신부님들이 예전 농활 체험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삶을 걱정하고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신학생 때 농촌 체험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름 농활을 기획한 김상준 신학생은 자발적으로 농활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농촌에 대한 체험 없이 농민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농활로 농민들의 소중한 농작물에 피해가 안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막상 농활을 계획하다 보니 자료도 구하기 힘들고 방법도 몰라서 막막했다. 농활을 준비하면서 스스로가 농촌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그래서 학기 중에도 신학생들이 농촌에 대해 연구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이번 신학생들의 농활은 오전·오후로 나뉜 농활 일정뿐 아니라 저녁 시간을 활용해 한국 농촌의 역사와 농민의 생존권 문제, 바른 먹거리, 언론을 통해 드러난 농민 현실 등을 학습하는 일정도 포함하고 있다. 농활 자료집에는 일정과 학습자료, 언론 기사, 나눔 예시 등이 빼곡히 들어있다.
▲ 옳소! 송로버섯 웬 말이냐! ⓒ 최진
김상준 신학생은 “저희가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심은 감히 못 부린다. 그저 이번 농활로 인해 농민들의 소중한 농작물에 피해가 안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언양 분회 농활에 참여한 부산교구 신학생은 총 19명이다. 부산교구의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는 밀양지역분회와 언양지역분회로 나뉘어 있으며, 교구 신학생 37명 전체가 반으로 나뉘어 두 지역으로 흩어졌다. 팔에 깁스를 하고도 농활에 참석한 신학생이 인상적이었다.
언양 분회 인근 울주군 자택에서 바로 농활에 참석했다는 조원석 신학생은 “형들과 함께 농활을 한다는 사실에 방학 전부터 기다려졌다. 무슨 일이든 형들이 먼저 나서서 일하고 돕기 때문에 선배라는 딱딱함보다 의지가 되는 형과 같다”고 말했다.
“해병대 10명보다 잘 키운 방위 1명이 낫다?”
신학생들은 농활 기간에 마을회관에서 100m가량 떨어진 직동 공소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한다. 공소에 도착하니 11명의 인원이 앞으로 있을 미사를 위해 청소와 전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례부 인원들이 휘청거리는 독서대를 고정하는 방법에 대해 나름 심각하게 논의 중이었다.
▲ 휘청거리는 독서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 ⓒ 최진
이들은 오전시간 논밭에서 잡초를 제거한 뒤, 휴식시간을 이용해 청소와 미사 준비를 했다. 이어 함께 모여 낮 기도를 봉헌하고 점심을 먹었다. 매 끼니 식사도 신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준비할 예정이지만, 첫날 점심은 부산교구 울산대리구 무거성당 우리농 봉사자들이 삼계탕을 준비했다.
봉사자들에게 신학생들이 농촌을 방문한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재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떤 것이 재밌느냐 물으니 “학사님들이 농촌을 중요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고맙고 그래서 밥을 준비하는 것이 재밌다”며 “농활을 통해 농민의 삶을 더욱 잘 이해하고,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한 미사. 함께 하겠다고 농촌을 찾은 신학생들이 얼마나 예뻐보일까 ⓒ 최진
봉사자들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컵을 씻어서 사용한다”고 말하자, 신학생들은 “컵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미리 컵 대용 개인 물병을 준비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철저한 사전준비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점심은 모두 우리농 음식으로 마련됐다.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 빠질 수 없다는 군대 이야기도 나왔다. 신학대학에서 교구 신학생들을 담당하고 있는 최성욱 신부는 “해병대 10명보다 잘 키운 방위 1명이 낫다는 말이 있는데, 신학생들도 이에 못지않다”며 신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농활에 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 열심히 일한 후 먹는 밥은 꿀맛! ⓒ 최진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농활에 참여한 최연수 부제는 “봉사하는 삶에 대해 많이 생각했지만, ‘이 또한 함께’라는 생각을 요즘 더 하게 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보다 함께 한다는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온다”며 농활을 한다고 했을 때도 농촌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다’는 의미보다는 농민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고 고백했다.
최 부제는 “성경에 나오는 낮은 자에 대한 의식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내 형제’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에 사제의 삶도 이들과 함께하기 위한 삶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농민들의 절망이 더욱 깊이 있게 드러나는 현실인 만큼, 그 현실에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평소에 했던 생각들을 차근차근 말로 설명했다.
아직 못다한 말이 있는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가진 이들을 등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시면서, 가진 이들에게도 나눔을 통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자고 초대하셨다”며 소위 ‘가진 이’들을 향한 은근한 당부의 말도 빼 놓지 않았다.
최 부제는 이번 농활 전에도 수차례 농활을 신청해 농촌을 경험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 일은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버거운 힘쓰는 일이 많은데, 젊은 신학생들이 단체로 일하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힘들지 않은 것 같다”며 “그나마 농촌에 대해 친숙한 만큼 동생들에게 농촌을 알려주고 함께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수줍은 듯 기대를 비쳤다.
왜 누워서 쉬지 않느냐고 묻자 “누우면 뻗을 것 같아서 안 된다”며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형제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보람차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 신학생들은 오전 농활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 전 낮 기도 시간을 가졌다. ⓒ 최진
미사 후 신학생들은 오후 농활을 위해 흙 묻은 양말을 신고 다시 논으로 향했다. 오후에 진행될 제초작업에 대한 설명을 하던 어르신은 “신부님들이 오신닥해가 낫도 새로 사오고~” 하시며 쑥스러운 듯 슬며시 새로 장만해 놓은 낫과 장갑을 꺼내 놓으셨다.
신학생들이 해맑게 작업 구역이 어디냐고 묻자 설명하던 어르신은 “저기까지 다 하면 된다”고 말하며 주변 논밭 전체를 가리켰다. 순간 흔들리는 신학생들의 눈빛을 카메라에 담았어야 했는데 아뿔싸. 아쉽다.
▲ 밀짚모자 아래로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며 열심히 농촌체험에 임하는 신학생들 ⓒ 최진
▲ 이 논 참.. 드넓기도 하도다 ⓒ 최진
** 진짜 농부가 되기 위한 고된 작업과 신학생들의 속 깊은 이야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