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마지막 날이네요. 여행기를 올리려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사진들이 유난히 많군요. 아쉬운 마음에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약 60장에 달하는 사진과 텍스트를 한 편의 여행기에 담기는 무리일 것 같아서 세 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세 편 모두 올릴 생각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ㅡ^
----------------------------------------------------------------------------------------
(1) 야스쿠니는 어디에
090813
드디어,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 8시 5분에 하네다에서 김포로 향하는 대한항공을 타야 한다. 하루 정도 더 도쿄를 둘러볼 시간이 있다. 나가기 전 미리 짐을 쌌다. 공항으로 향하기 직전에 짐을 싸면 왠지 촉박한 느낌이 들 것 같아서였다. 4일동안 도쿄에 묵으며, 민박집의 방을 혼자 쓰면서 마음껏 어질러 놓았던 물건들을 한데 모았다. 홋카이도에서 홈스테이할 때 샀던 물건들, 기념품들을 다시 전부 꺼내서 캐리어의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채워 놓았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짐을 싸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많아진 이 물건들을 감당할 수가 없다.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이제 캐리어는 열어볼 일이 없을 것이다.
짐을 다 싸고 원피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었다. 전날 요코하마에 갈 때에도 하이힐을 신었지만, 편한 신발이라 그런지 하루 종일 걸어도 발에 무리가 없었다. 이틀 연속 하이힐을 신으면 발이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지만, 마지막 날이니만큼 관광 기분을 내고 싶어서 그냥 신기로 했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멋부리기 좋아하는 것 같다.
여행하는 내내 뱅 스타일을 유지했던 앞머리가, 어느새 조금 길어져서 눈을 찌른다. 빗을 들고 머리를 다시 빗었다. 앞머리를 조금 옆으로 넘겼을 뿐인데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우와, 이거 새로운 발견이잖아. 기분이 좋아졌다.
* * *
오늘의 아침은, 신오오쿠보 역 맞은편의 요시노야에서 먹었다.
오야코동. 닭고기와 달걀이 들어 있다. 약간 덜 익힌 듯한, 입 안에 넣으면 후들후들한 달걀은 들척지근했다. 입에 넣으면 왠지 빨리 삼켜야 할 것 같다. 일본식 덮밥이 흔히 그렇듯 밥의 양이 훨씬 많다. 적당히 조절해서 다 먹었다.
요시노야의 손님은, 내가 그날 아침 지켜본 바에 의하면 남자들이 훨씬 많았다. 여자라고는 출근 시간에 쫓기는 듯한 OL 한 명이 들어와 먹고 간 것이 전부.
* * *
이날의 목적지는 야스쿠니 신사와 키타노마루 공원, 그리고 황궁 정원인 히가시교엔이다. 가이드북에는, 지하철을 타고 쿠단시타역으로 가서 야스쿠니 신사를 보고, 그곳에서 키타노마루 공원을 통해 히가시교엔을 가는 코스가 소개되어 있다. 이제 코스 연구하기도 지겨우니 못 이기는 척 그 코스를 따라가기로 했다. 일단 JR츄오센을 타고, 지하철 토자이센을 갈아탈 수 있는 이이도바시에 도착했다.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 또 하나. JR과 지하철 역사는 그 느낌이 엄청나게 다르다. 지하철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씬 좁은 듯하다. 그리고 지상이 아닌 지하로만 다녀서 그런지, 어쩐지 현실 세계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만 같다.
토자이센 이이다바시역의 승강장. 사람이 별로 없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가 보다. 승강장에 재미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한 장 찍었다.
이이다바시 역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
쿠단시타역에 내렸다. 환승역도 아닌 주제에 역사가 꽤 커서 어느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무척 헷갈렸다. 내가 헤매고 있자, 지하철 역사를 청소하시는 듯한 한 할아버지가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다니까, 출구 쪽으로 안내해 주신다. 나처럼 헤매는 관광객들이 꽤나 많은가 보다.
사진 속에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온 분이신 것 같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러 오는 사람들은 딱 보면 티가 난다. 몸에서부터 경건하게 삼가는 듯한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참배객들의 나이는 모두 중장년층 이상이었고, 노년이 특히 많았다.
쿠단시타역 출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풍경. 거대한 도리이가 보인다. 가이드북에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청동 도리이가 있다고 써 있는데, 이건 나무로 만든 도리이 같다.
야스쿠니 신사 창립 140년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아서 놀랐다.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이라면 아마 1870년대 쯤일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인 1869년 막부(幕府) 군과의 싸움에서 숨진 영혼을 '호국의 신'으로 제사 지내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야스쿠니(靖国)의 뜻은 말 그대로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다.
즉 호국신사이자 황국신사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몰자를 호국의 영령으로 제사하고, 여기에 천황의 참배라는 특별한 대우를 해줌으로써 전쟁 때마다 국민에게 천황숭배와 군국주의를 고무, 침투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하였다. 또 전몰자들은 천황을 위해 죽음으로써 생전의 잘잘못은 상관 없이 신(神)이 되어, 국민의 예배를 받았다고 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나라가 군인들에게 목숨바쳐 싸울 것을 요구했다.
전사한 군인들은, 생전 나라가 그들에게 해준 약속대로 신이 되어 받들어진다.
살아남은 국민들, 그리고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온 후손들은 신사에 모셔진 그들을 기리며 추도의 묵념을 올린다.
하지만 나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경건한 마음으로 올라오는 참배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이 곳에 묻혀 있는 전사자들, 이들은 자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자살공격까지 불사하며 싸웠다고 생각하는지,
일본이 침략당한 까닭은 단순히 그들을 공격한 세력이 나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는지,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불행하게 하면서까지 만들려고 노력했던 일본인들만의 '편안한 나라'가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그리고 과연 그 나라가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일본 육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무라 에키지의 동상 (아닐지도-_-;;;))
나는 역사에 대해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쩌다가 독도나 교과서 역사 왜곡 문제가 주요 뉴스로 방송에서 다뤄질 때나 일본에 대한 해묵은 적개심을 상기해내곤 하는 보통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아주 단순하다. 일본은 우리 나라를 침략했다. 한 때 우리나라는 일본에 흡수된 적이 있다. 일본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넓은 세계로 뻗어나갈 궁리를 하다가, 연합군에 의해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연합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두 개의 원자폭탄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패전 선언을 하게 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원폭 희생자가 생긴 것에는 깊은 애도를 표시한다. 물론 전쟁과는 상관없는 일반인에 한했을 경우이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마치 자신들은 2차 세계대전의 순수한 피해자인 양 일관하는 일본의 태도는 한국인인 내게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일본 드라마를 보아도, 만화를 보아도 연합군의 무자비한 공습과 원폭 피해로 인해 고생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지만, 일본이 다른 나라를 먼저 침략했다는 사실은 눈을 씻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창작물을 통해 일본의 피해자 의식은 확대 재생산되며 더욱 견고해진다.
(신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참배에 앞서 손을 씻는 곳)
나치 독일의 만행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사죄와 과거 청산에 대해 노력해온 독일에 비해 일본은 원폭에 의한 지나친 피해자 의식과 자기 연민 무드에 빠져 있다. 뻔뻔스럽고 치가 떨린다. 일본 문화의 세례를 받고 자랐으며, 취미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인의 정서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역사의 영역에 들어서기만 하면 반일주의자가 된다.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 하지만 이런 곳에서 흰 비둘기라니, 왠지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난 비둘기를 싫어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참 여러 가지로 불유쾌한 곳이다.)
나는 전범 국가인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일본, 그리고 일본의 정치인들과 보통 일본 시민들을 싸잡아 매한가지로 취급하지 않는다. 내 주위에 있었던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자들이 전쟁의 숭배자이며 향후 기회만 된다면 또 다시 다른 나라를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편향된 시각의 역사교육을 받은 일본의 청소년들과, 그들이 주역이 될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 걱정이 된다.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일본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는 죄의식이 그 자취조차 감추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본당 앞. 수많은 사람들이 참배를 왔다. 나와 같은 관광객은 없는 것 같다.)
'둘 다 똑같이 싸웠으니, 그리고 처음 때린 아이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으니 둘 다 잘못한거야. 둘 다 사과하고 끝내'하는 식은 어린아이의 다툼을 해결하는 방법 이상이 될 수 없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끝내기에는 너무도 수많은 피해가 있었으며,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소멸될 수 있는 책임이 아니다. 역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로 인해 달라진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저지른 횡포는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횡포다. 그들이 입은 상처에는 애도하되, 받아야 할 사죄는 확실하게 받아야 한다. 수뇌부에서의 사죄로는 부족하며, 모든 일본의 국민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일과 그 결과로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하여 왜곡 없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는 올바른 역사교육에서 비롯되며, 국가의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바라는 성숙한 국가의 의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과연 올바른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객관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은 일단 별개로 친다.)
사람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박수를 두 번 치고, 손을 합장하여 고개를 숙이는 것. 내가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표정은, 최대한 시니컬하게.
참배하는 곳 옆에 비치된 팸플릿. 자세히 보지 않아서, 당시에는 일본어와 영어 팸플릿밖에 보지 못했다. 그런데 사진 정리하면서 자세히 확대하여 살펴보니 한국어와 중국어 팸플릿도 있는 것이 아닌가! 참 뻔뻔하기도 하지. 그런데 뭐라고 써 놓았는지 좀 보고 올걸 하는 후회도 든다.
가이드북에는 야스쿠니 신사까지 가는 길 이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참배하는 곳까지만 갔다가 다시 뒤돌아 나왔는데, 여행 후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야스쿠니 신사에는 '대형 함포 등 각종 병기,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 돌격대원의 동상, 전함 야마토의 특대형 포탄, 군마와 군견의 위령탑, 제로센[0戰] 전투기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쟁 유물과 전범의 동상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음... 공짜였으면 그것도 보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사진은 야스쿠니 신사 맞은편에 위치한 키타노마루 공원으로 통하는 육교 위에서 찍은 것이다. 건물에 '도쿄 과학대학'이라고 쓰여 있다.
이날은 날씨가 무척 더워서, 정말이지 찜통 같았다.
아,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서니 좀 낫다. 문득 고개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 쪽을 바라보았다. 도리이의 일부분과 함께, 히노마루가 펄럭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키타노마루 공원 입구. 젊은 여자들이 계속해서 들어간다. 왜 이렇게 여자들이 많이 들어가는 거지?!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
[일본여행] 도쿄 자유여행 - 열하루째날 -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