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4 - 미케네에서 왕의 무덤을 구경하고 언덕을 올라 사자문을 들어가다!
2024년 5월 1일 미케네에서 버스로 Isthmos 에서 내려 표를 끊어 아테네에서 오는
나프플리온 Navplion 행 버스를 타고 40분후 피흐티 Fichti 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미케네 Mycenae 에 도착해 12유로 하는 입장권을 끊어서 안으로 들어갑니다.
박물관에 들어가 도기등을 구경하고는 나와 왼쪽 아래에 보이는 왕족들의 무덤 Grave Circle A
를 찾아 내려가는데.... 오래 전에 발굴한 무덤으로 참 잘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Grave Circle A. 는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왕족들의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된 장소 원형 묘지
로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등 유물 출토되었으니 주요한 유물은 아테네 국립 박물관에 보관중 입니다.
미케네 Mycenae 국의 이 무덤은 아트레우스의 보고라 불리니.... 네모로 다듬은 큰
돌을 쌓아 올려 둥근 천장을 만들었는데 3,300년이 지난 지금도 흐트러
진데가 없으니.... 톨로스식 이라 불리는 이런 무덤은 그리스에 9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위로 올라와 언덕길을 오르니 산정에 쌓은 성채가 나타나는 데..... 성문
위에는 두 마리 사자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니 저 유명한 사자문인데
3천년 세월이 흘러 퇴락했으니 그 당시에는 참으로 위엄이 넘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터키 앙카라 동쪽 보아즈칼레 마을에서 1834년에 옛날 히타이트 제국의 수도인 핫튜사 유적지가
발굴 되었는데..... 1906년에 독일 고고학자가 카데쉬 전투 후에 만들어진 1259년 람세스
2세와 하투실리스 3세간 이집트- 히타이트 평화협정 점토판 을 발굴해 제국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저 유적지는 앙카라에서 아침 08시 50분 Metro Bus Osmancik 행 버스를 타고 12시에
순구룰루 Sungurlu 에 내려사 다시 미니 Bus 로 환승해 30분 걸려 보아즈칼레
Bogazklale 에 도착해 핫투사슈 & 바이칼 호텔 에 체크인을 하고 언덕을 오르면 됩니다.
핫투사의 히타이트 제국은 철기시대를 연 최초의 제국으로 바빌론을 점령해 거대 제국을 이루었
는데.... 높은 언덕에는 성채가 건설되었고 사자문을 들어서면 넓은 터가 나타나니 수도의
유적인데, 저 성문에는 여기 미케네 처럼 사자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니 우연치고는 놀랍습니다?
규모가 작은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덕분에 서양 문화사에 큰 영향력 을 행사했건만 그리스
인과 로마인들도 핫투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는데..... 핫투샤 는 앙카라 동쪽 150km 에
1000m 고원지대 정상과 기복이 심한 비탈면에 8km 이중 성벽 으로 둘러싸여 건설되었습니다.
산정에 자리한 미케네 유적은 풀 하나 없는 황량한 언덕에 돌로 성벽을 쌓은 성채인데.... 아크로폴리스를
지나 사자의 문 (Lion Gate) 에 이르면 삼각형의 돌에 양쪽으로 사자 2마리 조각이 방문객을 맞이 합니다.
언덕을 오르니 유적들이 흩어져 있으니 왕궁과, 목욕탕, 신전 터이며 여기 낮은 언덕을 아크로폴리스
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폴레옹이 좋아한 아이스킬로스 의 비극 아가멤논의 무대인가 합니다?
아이킬로스의 비극인 아가멤논은.....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후 돌아온 아가멤논은
자신의 왕궁에서 부인과 그 정부에 의해 목숨을 잃는데,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출정할 때 바람이 불지 않자 자신의 딸을 제물로 삼았으니 이에 대한 부인의 복수였던 것 입니다.
트로이전쟁에서 끝이 좋은 것은 오직 헬렌 뿐이니 그녀는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자신의
원래 남편인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에게 되돌아와 백년해로를 했다고
하니 그저 놀랄 뿐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녀는 모든 죄가 용서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트로이” 에서는 메넬라오스가 트로이 왕자 헥토르
와의 전투 중에 사망하는 걸로 나오며..... 헬렌은 이번 전쟁의 단초가 된
트로이 둘째 왕자 파리스와 탈출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전형적인 “역사 왜곡” 입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원정군의 선박 수를 보면 미케네는 180척으로 다른 도시국가는 어느나라든
90척을 넘지 못하니 미케네는 강국이었는데..... BC 1100년경 미케네는 소멸해 흔적이 없어집니다.
미케네국의 멸망 내지 소멸에 대해서는.... 북쪽에서 도리스인의 침입설, 혹심한 가뭄으로 이주설,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에도 쳐들어간 “바다의 민족” 침입설 등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에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 국가에서
내란이 일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신 들로 부터 벌을 받은 것일까요?
미케네 Mycenae 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스에 있던 고대 성채 도시로 기원전
15세기 크레타 문명에 속하는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로 청동기 시대에 번영을
누렸으니 역사의 아버지 호메로스는 미케네를 “금칯 찬란한 도시” 라고 일컬었습니다.
1876년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유적을 발굴했으니...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로 BC 1400∼BC 1200
년경까지 번영을 누렸는데..... 삼각형 산에 동서 300m, 남북 150m의 견고한 성벽이 있습니다.
북서쪽에 사자문이 있으며 성벽 안으로 들어가 무화과 나무를 지나면 왕궁, 신전, 원형묘역 및 창고가 있는데
기하학 무늬 도기가 많이 발견되었고...... 성벽 밖에는 벌집 모양의 무덤과 가옥 유구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기름장수의 집” 에서 선상 문자 B가 발견되었는데.... 미케네인들이 사용했던 선상문자 B는 점토판에 새겨진
것으로 초기의 그리스어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독되었으며 북쪽 연장된 성벽 아래에 우물이 있습니다.
미케네는 초기에 바페이오배(황금제의 잔), 중기에 크레타궁전식으로 불린 항아리,
후기에는 견고한 미케네식 도기가 다량으로 생산되어 주요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미케네의 건축에서는 메가론 양식이란 궁전 양식이 확립되어 그리스 고전시대의 신전 건축
에 영향을 주었고 분묘는 수혈식 분묘와 왕가의 둥근 천장의 큰 분묘가 만들어졌습니다.
종교는 여신과 자연 숭배로 크레타의 종교와 흡사한데.... 미케네문명은 에게문명 후기에 속하며
BC 1200∼BC 1100년에 발칸반도를 남하해온 도리스인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여겨집니다.
미케네는 트로이 원정의 총지휘관으로 출전한 아가멤논이 왕 이었다는데 여기 미케네 유적지는
1999년 그리스의 티린스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미케네 유적을 보자니 펠로폰네소스 반도에는 참 많은 유적들이 있으니 그 중에 에피따브로스
의 유적은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이기도 한 아스클레피오스를
숭배하는 곳으로 지금도 여름이면 그리스의 비극이나 희극이 공연되는 원형극장이 유명합니다.
그 주변의 지세와 어우러져 세워진 이 원형극장은 무대의 한지점에 서서 얘기하면 관람석의 어느
곳이든지 정확하게 그 소리가 전달된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아테네와는 거리가 멀지만
공연이 있을 때면..... 먼거리에서도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행렬이 볼만 하다나요.
미스트라의 유적은 메지쓰라 언덕에 위치하는데, 프랑크 인들에 의해 '미스뜨라' 로
불리는 곳으로 브론도히온, 데스뽀띠스의 왕궁, 빤따나사등 많은 유적들이
있으니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자리 잡은 숨막힐 듯한 중세 유적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모레아(Morea) 경이(驚異)’ 라는 뜻을 가진 미스트라스는 1249년에 아카이아(Achaia) 의 군주 기욤 드
빌라르두앵(Guillaume de Villehardouin이 건설한 요새의 주위에 원형 극장으로 건설되었는데,
비잔틴에 의해 재정복되었다가..... 터키인과 베네치아 인의 차지가 된 도시는 1832년 이후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반도 라고 하면 으뜸은 올림피아의 유적일 것이니... BC 10세기경
에는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인 제우스신의 숭배 중심지였고, 제우스 신전, 헤라 신전,
기원전 338년 필립2세가 그리스 통일을 기념한 삘리삐온, 70개의 제단이 있다고 합니다.
기록상으로는 제1회 고대 올림픽이 기원전 776년으로 되어 있으나 그 기원은 더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이 모두를 다 볼수 있다면 좋으련만 한정된 여행 일정이라 다 보지 못하고 가는게 서운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