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주(The Great Escape), 1963
감독: 존 스터지스
출연: 스티브 매퀸, 제임스 가너, 찰스 브론슨
‘바람처럼 자유롭게(as free as the wind).’
자유(freedom)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본능에 가깝다. 남에게 구속받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동하고 싶어하고 또 그러한 상태를 희망한다. 그 자유의 의지를 막는 순간 사달이 난다.
두 발 달린 인간이 두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억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를 벗어나려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
예술·대중적인 작품이 이 같은 자유의 의지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다. 구속·탄압·억압의 상태에서 자유·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은 진지하고 눈물겹다. 여기엔 인간의 존엄성과 위대함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미군 포로들
하지만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는 심각하지 않다.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미군 포로들은 스포츠를 하듯 탈주에 도전하고 수용소 생활은 보이 스카우트의 야영생활 같다. 유대인들을 말살하려 했던 아우슈비츠의 수용소와는 완전 다른 세계다.
대부분의 전쟁영화가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제2차 세계대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시간대만 압축하고 탈주 과정을 그대로 옮겼다. 영화는 탈옥에서 시작해 탈옥으로 끝난다. 심각한 주제지만 전체적인 영화 분위기는 밝다. 영화 첫 장면, 수용소로 들어가는 포로들을 태운 차량 행렬은 개선장군이 입성하는 것처럼 경쾌하다.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편의 어드벤처(모험) 영화를 보는 듯하다. 포로들은 탈출을 일삼고, 탈출에 실패하면 다시 체포돼 또 탈옥을 꿈꾼다.
‘독방왕’의 유쾌한 탈출 계획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은 포로로 잡힌 영국과 미군의 공군 장교들 중 탈출을 습관처럼 하는 ‘골치 아픈’ 포로들만 모아 놓는 별도의 수용소를 만든다. 하지만 포로들은 입소한 날부터 자체 지휘부를 만들어 무려 250명의 탈출 계획을 세운다. 독일의 포로수용소장은 포로 대표를 맡은 미군 장교에게 “탈옥은 꿈도 꾸지 말라”며 경고하고, 포로 대표는 “탈옥은 포로의 의무”라고 맞선다. 포로들은 감시를 피해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 땅에서 나온 흙이 문제다. 쌓아둘 순 없고 어딘가에 몰래 버려야 한다. 포로들은 바지 속에 간이 주머니를 만들어 바짓가랑이 사이로 흙을 땅바닥으로 흘려 버린다. 마침내 땅굴이 완성돼 76명이 탈출에 성공하고 50명은 탈출 도중 희생된다.
포로 중 단연 돋보이는 주인공은 ‘독방 왕(kooler king)’이라는 별명을 가진 힐츠 대위(스티브 매퀸)다. 탈출을 시도하고 다시 잡혀 돌아올 때마다 독방 신세가 되는 탈출 전문가다. 모두 18번 탈출을 시도했다. 철통 같은 경비와 삼엄한 감시로 악명 높은 수용소에서 그는 야구공과 글러브를 갖고 돌아다닌다. 힐츠의 자유에 대한 의지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단단하고 단호하며 계산적이고 치밀하다. 땅굴이 독일군에게 발각된 후 절친이 실망한 나머지 철조망을 넘다 사살되자 힐츠는 포로 지휘부에 말한다. “정확한 정보를 하나 드리죠. 전 오늘 밤 나갑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긴다. 주연 치곤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강한 캐릭터로 출중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스티브 매퀸 등 1960년대 당시 초호화 캐스팅
출연진은 당시로는 최고 스타들이다. 스피드광(狂) 스티브 매퀸을 비롯해 근육질의 찰스 브론슨, 제임스 가너, 제임스 코번 등 유명 배우들이 다수 나온다. 스티브 매퀸은 영화 ‘빠삐용(Papillon)’에서도 끊임없이 탈옥을 시도하는 자유인으로 나와 인상 깊은 연기를 했다. 감독은 서부극 ‘OK 목장의 결투’ ‘황야의 7인’을 연출한 존 스터지스. 그는 주로 남성들의 세계를 그려 왔는데 이번에도 스타 남자 배우들을 끌어모아 쿨하고 코믹한 분위기가 있는 탈주 영화를 만들었다. 스티브 매퀸이 독일군의 오토바이를 탈취해 푸른 초원을 종횡무진 도망 다니는 추격 장면이 압권으로, 실제 스피드광인 스티브 매퀸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음악은 엘머 번스타인이 맡았는데 영화 전편에 변주돼 흐르는 ‘대탈주 행진곡’은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 아님에도 유쾌함을 잃지 않아 비극적이지 않다. 주인공이 다시 체포된 후 독방에 갇혀 야구공을 벽에 치는 행위는 아직도 탈출이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탈옥 방법을 생각하면서 공을 독방 벽에 던지기를 반복한다. 그는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맛을 잊지 못해 다시 탈옥할 것이다. 그것은 군인으로서 적군에 체포된 몸으로 종전을 맞을 수 없다는 의지이며, 자유는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의지는 본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