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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더 없을 중요한 질문이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고 가져야 합니다.
사람은 이성을 가졌고
이성이 말하는 바를 따라
살아가는 이성주의가 사람입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돈을 빌려 달라고 가정 했을 때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가난하다면
빌려주는 돈을 돌려받을 믿음이 생기지 않기에
돈을 빌려 주지 못합니다.
반면에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이
큰 회사 사장일 경우,
돌려받을 믿음이 생겨 돈을 빌려 주게 됩니다.
이러함에서 보듯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성에 맞아야 믿음이 생겨
그에 따른 행동 하는
이성주의가 사람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아야
믿음이 생기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반대로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아
행동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성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에 따라 믿음이 생기고
생기지 않게 되고
그 믿음은 그 사람의 행동을 낳게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행동을 낳지 못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믿음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로서
돈을 빌려주기 전에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결과,
즉 빌려주는 돈을 받을 수 있을지,
받지 못할지 미리 보게 되고
알게 하는 것이 이성이고 이성이 말하는 바를 따라
이를 믿음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이성주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성주의 사람의 믿음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아니라는
이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성이 말하는바
큰 회사 사장에게 돈을 빌려 주게 되면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의 결과를
미리 보고 알고서
돈을 빌려준 행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사람의 이성으로 보아서는
돈을 돌려받을지 못 받을지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돈을 빌려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돈을 빌려주는 행동을 낳는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사람의 이성이 말하는 바를 초월하는 믿음입니다.
돈을 빌려주기 전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이성으로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지만
돈을 빌려 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돈을 빌려주는 믿음을 성경이
교회들에게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거나 맞지 않는
나의 직접적인 확인 여부와 관계없이
확인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것이 성경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동을 낳게 하는 것이
믿음이지만
사람의 이성에 의하여 판단되어 가지는 믿음은
성경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미 결과가 어떠함이 도출 되었기에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행동하기 전에
결과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어진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믿음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믿음은 행동을 낳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강제나 강요가 아닌 이상
사람 스스로는 어떤 행동도 낳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성주의입니다.
이성이 말하는 바를 따라 판단된 믿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우리들은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따라 행동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 교회들에게
요구하는 믿음의 진실성은 어떠한가?
믿음 = 실제입니다.
다음 말씀을 보십시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9:27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
믿음=실제 라는 이 같은 사실 뿐만 아니라
이성으로서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에 관한 실제를
보게 하고 알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보십시오.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요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옛 사람,
즉 아담으로 말미암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죄인 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십자가에 못 박아
장사 지낸바 되게 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살리심과 함께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살리셨음을 받은 교회라는 사실도
믿음으로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이 같은 사실은
이성주의 사람으로서는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주어지는 말씀을 믿음으로서
보게 되고 알게 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세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과
성경적인 기독교회의 실체입니다.
그렇다,
라고 우리들이 믿음으로 보게 된 것과 알게 된,
실제를 단정적으로 말씀하는 바입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을 봅시다.
믿음이라는 범주 안에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과 하나님에 관한 역사와 하나님의 나라 세계는
이성으로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를 보게 되고 알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헛것이냐?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이 말씀하시는 믿음을
방해 하고 저해하는 요소가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이성입니다.
좋은 예로서 도마의 경우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빠진
열 제자가 모인 중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이 같은 사실을 도마에게 전합니다.
이에 대해
도마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이 같은 도마가 세상 모든 사람의 상태입니다.
지극히 이성주의입니다.
그는 이성이 말하는 바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지 않기에
믿음이 생기지 않아
예수님께서 부활 하여 나타난 사실 자체를
부정해 버리고
이성에 맞으면 믿겠다는 것이
이성주의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보지 않고서도,
이성에 맞지 않아도
전해주는 복음(말씀)을 믿으라는 믿음입니다.
2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사람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이성이 믿지 못하게 방해 하고
이성이 말하는 바를 앞세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으면
믿겠다는 것이 사람입니다.
이성이 말하는 바에 맞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불신해 버리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 도마를 향해 믿음의 사람이 되라 하신
예수님입니다.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믿지 않고 판단하는
사람이 가진 이성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부여 하셨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이성주의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성을 가졌고
이성을 따라 살아갑니다.
사람이 가진 이런 이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우리 모두가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음과 같이 창조 하셨습니다.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
‘우리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창1:26, 27)
우리의 모양, 우리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위격에 대한 순종으로서
성자는 성부에 의하여
성령은 성자에 의해 나타내는 행동의 모양새입니다.
본 내용에서는 다루기에는
내용의 분량이 많음으로 생략하고
본 유튜브
“이런 사람을 아십니까?”
“사람을 아십니까?”를 참고 바랍니다.
성자는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성령 역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하지 않으며
하나의 일체를 이룹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하여
성령은 상자에 의한 순종된 하나의 일체의 모양새가
우리의 모양, 우리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라는
그런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지만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성을 따라 행동하는 이성주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이성주의 사람이 된 것인가?
하나님께서 금지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눈이 밝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지 아니하고
사람이 가진 이성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자기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고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은
단순한 불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저주 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하신 것이 아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순종의 사람이 아닌,
이성이 말하는 바를 믿고 따르는,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자기 의지를 가진
이성주의 사람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이 신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중에 성부 하나님과 같이 되어 버린
사람입니다.
사람이 만든 로봇이 사람과 같이 되어
사람의 통치를 받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행동 할 수 있는 자기 의지와
지적 능력을 가진
이성주의가 되어 버린 로봇과 같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이
성부 하나님과 같이 되어 버린 사람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가진 지적 능력(이성)과
스스로 행동 할 수 있는 자기 의지입니다,
이런 이성주의 사람이 됨으로
사람이 거할 세상도 하나님께서 저주 하셨고 (창3:17)
영생 길을 완전 차단하여
영원한 죽음에 처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이성을 가졌고
자기 의지를 가졌기에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행동,
곧 손을 들어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 먹고
영생 하게 되기에
하나님께서 영생의 길을 완전 차단해 버리셨는데
다음 내용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사탄이 이런 미혹을 합니다.
창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탄의 거짓에 미혹 당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가?
‘눈이 밝아’ 진 것입니다. (창3:7)
이점 매우 중요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 사람은 벗은 것을 몰랐고
부끄러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금지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서 비롯된 것이 눈이 밝아
벗은 것과 부끄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창3:11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
이어지는 행동,
나뭇잎을 따서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면
가려 진다는 지적 능력과 그에 따라 행동하는,
자기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의 사람 형상,
즉 우리들의 모양, 우리들의 형상과는 정 반대로
사람이 성부 하나님 같이 되어 버렸기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상으로 쫓아 버리시고
세상과 사람을 저주 하시고
영생 없는 죽음에 이르게 하셨고
하나님과 떨어지는 분리된 사람이 된 것이고
사람은 이성이 말하는 바를 믿고
따라 살아가는 이성주의가 된 것입니다.
다음 말씀들을 자세히 보십시오.
창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비록 하나님께서 창조 하신 인류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 세계와는 달리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은
사람의 이성에 의한 사람의 나라 세계가 형성되었고
이에서 비롯된 것이 인간 세상의 과학이고
물질문명 입니다.
벗은 것을 알고
나뭇잎을 따서 가리는
이 같은 사람의 지적 능력과 이성에 따른 의지로
비롯된 행동은 평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사탄의 기망으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음으로 비롯된
발로입니다.
WCC.WEA 기독교의 문제는
이 같은 세상에 속한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이라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고
문제의 핵심이고
이러한 인류 세상 사회를 평화케 하겠다는 사상,
일명 ‘이 세상 사회 구원’을 목적함으로
이는 귀신 뺨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성이 말하는 바를 내세우지 말아야 하고
의지를 죽여야 합니다.
좋은 예로서
베드로가 아침이 되도록 고기를 잡아 보았지만
잡지 못하고 돌아와서 그물을 손질하는 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가서 고기를 잡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입장에서 자신의 이성에서 비롯된 주장과
의지를 앞세울 수 있었지만 꺾고
주어지는 말씀을 따릅니다.
이런 베드로의 상태가 주어지는 말씀을 믿음에서
비롯되는 행동입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5: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5: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이성이 말하는 바를 믿고 따라 살아가는
이성주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들에게 요구 하는 믿음은
헛것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사람의 이성으로서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 세계와
십자가의 도와 우리 자신의 실제를
볼 수 있게 하고 알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 없습니다.(히11:6)
성령에 의하여 우리들 모두가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
wcc 교회를 피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것은 오염된 사상을 버리는것임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