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태운 알렉산드리아의 배가 미항에서 출항하여 얼마 되지 않아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맞이하여 심한 풍랑과 궂은 날씨로 생사(生死)를 오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백부장과 선장 등에게 그레데 섬의 미항에서 바울이 권면한대로 미항에 더 머물렀더라면 이러한 타격과 손상을 멸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想起)시킵니다(21절). 아무리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있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순히 그들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말씀을 그들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떠나서 이 어려움을 겪는 그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이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고, 배가 조금 손상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2절).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바울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말씀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23절, 24절).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반드시 로마에 가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과 함께 항해하는 자들도 바울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음을 이야기합니다. 바울과 함께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도 생명을 건지게 하실 것임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될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25절). 바울은 이 배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게 될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26절).
알렉산드리아의 배에는 선장과 선주가 있었고, 로마의 백부장도 타고 있었지만 이 순간부터 이 배의 지도자는 어느덧 바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는 역사(歷史)를 이끌어 가는 자가 됩니다. 아무리 죄수의 상태라고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弱者)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명에 따라 살아가는 자는 전능하시고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고 있기에 역사(歷史)의 주도자(主導者)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배는 14일이나 바다를 표류하였는데, 아드리아(Ἁδρίᾳ, Adria) 바다를 표류하다가 한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27절). 아드리아 바다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현재의 지도로 본다면 이오니아(Ιόνιο, Ionian)해(海)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8:1에 보면 이 배가 도착한 곳이 멜리데(Μελίτη, Melita)라는 섬, 즉 현재의 몰타(Malta)였는데, 그레데 섬에서 멜리데까지 배가 표류했다는 것은 상당히 먼 거리를 광풍에 휘말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레데 섬은 그리스 남쪽의 섬이고, 멜리데(현재의 몰타)는 이탈리아 반도의 서남쪽에 있는 시칠리아(Sicilia) 섬의 남쪽에 위치한 섬이니 꽤 긴 거리를 이동한 셈입니다.
육지에서 가까운 것으로 짐작하여 줄을 내려 물의 깊이를 재어 보니 스무 길(36m)이었다가 잠시 후에는 열다섯 길(27m)이었고(28절), 이렇게 육지에 가까이 가다가 암초에라도 걸리면 배가 부서질 것을 염려하여 고물에 닻 넷을 내리고는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29절). 오늘 본문에서 고물과 이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고물(Stern)은 배의 뒷부분(船尾)을, 이물(Prow)은 배의 앞부분(船頭)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입니다. 혹시라도 배가 파선(破船)될까 두려웠던 사공(沙工, Sailor)들은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거룻배(위기 상황에서 배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용할 작은 배를 의미)를 바다에 내려놓아 도망갈 준비를 합니다(30절).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바울은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지금 이 상황에서 이 배를 떠나면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경고하였고(31절), 이 경고에 따라 군인들이 거룻배를 연결한 거룻줄을 끊어 버려 거룻배를 떠내려 보냅니다(32절).
이렇게 한 배에 탄 사람들은 한 운명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14일 동안이나 제대로 먹지 못한 배 안의 사람들에게 음식을 먹고 구원되길 기다리자고 권면하면서 모두들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33절, 34절). 그리고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떼어 사람들에게 주었고, 배 안에 있던 276명이 모두 그 떡을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35절~37절). 아마 그 동안에는 너무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뭘 먹을 상황조차 안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가 잘 먹고 배가 부르자 양식이 될 수 있는 밀까지도 모두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고, 날이 새어 어느 정도 주변의 상황을 육안(肉眼)으로 식별(識別)하여 알아볼 수 있게 되자 근처에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어서 그곳에 배를 대기 위해 그 해안으로 들어갔는데, 두 물이 합하여 만나는 곳에서 배가 모래톱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고물이 깨어져 가는 상황이 됩니다(39절~41절). 이런 상황에 혹시라도 죄수들이 이 틈을 타서 헤엄쳐서 도망갈까 염려되었던 군인들은 죄수들을 죽이자는 의견을 내놓습니다(42절). 죄수를 호송(護送)하다가 중간에 죄수들이 도망가면 자기들에게 문책(問責)이 내려올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수의 신분으로 함께 가고 있는 바울도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는데, 로마의 백부장은 바울을 구하기 위해 군인들의 뜻을 거부하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은 헤엄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널조각이나 배의 물건에 의지하여 배에서 나가게 하였고, 모두 목숨을 건져 육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43절, 44절). 이렇게 하여 위기의 상황을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그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의 불순종이 아니라, 바울의 말을 듣지 않은 로마 백부장이나 선장과 선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인데,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바울을 보호하시기 위해 그 모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고, 역사(歷史)를 이끌어 가게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공동체가 이러한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