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수) 복음 묵상 (루카 17,11-19) (이근상 신부)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4-19)
병이 나은 뒤 사람들은 떠났다. 뒤도 돌아보기 싫은 날들을 두고 새 날로 날듯이 날아갔으리라. 주님께서 이들을 찾은 이유가 이들이 감사하지 않아서일까? 숨은 것도 보시는 주님께서 이들의 마음에 담긴 감사함과 지나간 모든 것을 잊고 하루빨리 새 날을 살아내고 싶은 마음을 모르실까?
보통의 우리들은 사실 크고 작게 감사하며 산다. 우리의 문제는 감사하지 않는 배은망덕이나 무심함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데 있는게 아닐까? 우리 삶은 기적이 없는 그저그런 하루라는 비루함의 연속이다. 그러니 이런 극적 치유의 주인공들이 감사조차 잊는다는게 우리에게 너무 낯설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돌아오지 않은 아홉과 달리 돌아와 엎드려 감사드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무엇을 선택하였고, 무엇을 한 것일까? 감히 우리는 그에게 일어난 일을 다 알 수는 없다. 감히 추측할 뿐이다. 다른 모든 이에게 마찬가지로 그에게 치유란 새 삶을 살 수 있는 엄청난 사건, 엄청난 행운. 로또였을 터. 그런데 그가 그 로또를 쥐고 서둘러 새 삶을 사는 대신 로또를 놓고, 한 걸음 더 나가기로 한다. 이 엄청난 치유를 가지고 멋진 삶을 살아내는 대신, 그는 더 큰 기적에 희망을 걸려는 모양이다. 예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의 파견을 청한다. 예수께서는 한번 더 그를 고치신다. 이번에는 구원이다. 그에게 이제 피부란 더 이상 삶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또 다른 차원으로 나아간다. 어쩌면 그의 귀환은 다시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와 예수 앞에 엎드려 구원보다 더 깊은 또 다른 기적으로 나아갈지도...
예수께서 아홉에게 감사를 받지 못해 아쉬웠겠는가. 아홉의 여정이 아직 길고 멀기에 아쉬웠으리라. 치유는 아주 작은 한 걸음. 구원은 또 다른 한 걸음. 거듭해서 그 분께 돌아와 우리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우주를 뚫고 다른 별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지평으로 거듭해서 또 거듭해서. 겨우 병하나 고치고 만족하기에 우린 참 깊고 큰 존재로 빚어졌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Xq8dsRCRroVyesmK47J56fZjzuFTPmvrjrJTnxXgriJcuxMv6Xgoy8PpVKyDEcP4l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