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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가 진상용 원문보기 글쓴이: 국화
가끔 작품 보다 이야기가 더 매력적인 화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림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인상파 화가 베르뜨 모리조를 소개할 때, 근대 회화사에 처음 여성 화가로 기록된 이탈리아의
아르테미시아 젠텔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 1593~1652/1653)의 일생을 한 번 쓰겠다고 했는데,
사실 그녀의 이야기는 매력적이기 보다는 고통스러운 것이 더 많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림 보다 말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1998년 아그네스 멀릿 (Agnes Merlet)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아르테미시아’ 속의 한 장면과 포스터입니다.
아르테미시아에 대한 최초의 책은 1989년 출간되었고, 최초의 전시회는 1991년 피렌체에 개최되었습니다. 뒤를
이어 TV 다큐멘터리와 연극 그리고 영화로 그녀는 400년 가까운 시간을 넘어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삶에 열광했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로마의 이름난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지오와 어머니 푸르덴시아 사이에서 4남 1녀의 장녀로 태어
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30살, 어머니는 18살이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띠 동갑인가요?
그녀의 어머니는 서른 살의 나이에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아르테미시아는 그 때 12살이었습니다.
마돈나와 성자 Madonna and Child / c.1609
이 작품은 아르테미시아의 것이라고 보는 의견과 그녀의 아버지 작품을 보고 그린 것이라고 보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대개 그녀의 아주 초기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한데, 그렇다면 이 작품을 그렸을 때
그녀의 나이는 겨우 16세였습니다. 뛰어난 기술과 구성력도 돋보이지만 남자 화가들이 거의 잡아 내지 못했던
아들과 엄마 사이의 친밀감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그녀를 화가로 키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성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탐탁잖게 여기던
당시의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카데미 입학이 거절되자 직접 회화지도를 합니다. 좀 황당하지만 아르테미시아는
어른이 될 때까지 읽고 쓸 줄을 몰랐습니다. 그림만 배웠거든요.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그의 친구인 아고스티노
타소에게 보내 그림을 배우게 하는데, 이 일은 그녀에게 일생 일대의 비극이 됩니다.
수산나와 늙은 장로들 Susanna and the Elders / 170cm x 121cm / 1610
수산나와 늙은 장로 이야기는 고전 회화의 단골 주제 중 하나입니다. 아름답고 경건한 요아킴의 아내 수산나가
목욕을 하는 것을 보고 늙은 장로 둘이 그녀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수산나가 그 장로들의 파렴치 한 짓을 거절
하자 장로들은 오히려 그녀가 외간 남자와 나무 아래에서 부정한 짓을 했다고 모함을 해 수산나는 사형을 선고
받게 됩니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다니엘이 등장해서, 장로들에게 수산나가 외간 남자들을 만났던 나무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자 장로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말하게 되고, 결국 수산나의 무죄가 밝혀진다는 내용이죠.
이 작품은 그녀의 서명과 제작 일자가 표기된 최초의 작품입니다. (수산나의 오른쪽 다리의 그림자 속에 표기되어
있습니다.) 다른 남성 화가들의 작품 속 수산나의 모습은 수줍거나 조금 경박해 보이는 표정인데 반해 이 작품 속
수산나는 겁에 질린, 상처 입기 쉬운 여인의 모습 그대로인데, 여기에는 아르테미시아에게 가해지던 남성들의
비겁하고 저열한 짓에 대한 그녀의 심리가 표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 145cm x 195cm / 1598
위 작품은 카라바죠가 그린 유디트입니다. 다른 그의 작품은 좋아하지만 끔찍한 묘사 때문에 이 작품은 별로 좋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아를 이야기할 때 유디트를 비켜갈 수 가 없습니다. 유디트는 구약에 나오는
애국 여성입니다. 남편과는 사별한 과부였는데 앗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그녀의 고향을 포위하자 그녀는
하녀 아브라와 함께 홀로페르네스의 막사로 찾아가 그를 유혹, 침실에서 목을 베어버림으로 마침내 적군을 물리
칩니다.
아르테미시아가 아버지 친구 타소에게 보내져서 그림 공부를 할 때 많은 남자 화가들이 그녀를 성적으로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특히 타소는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하고는 그녀를 강간합니다. 물론 타소에게는 아내가 있었죠.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딸을 강간한 혐의로 타소를 고소합니다. 친구의 딸이 여자로 보이는 타소는 혹시 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법정에 선 티소는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습니다. 우선 타소는 아르테미시아가
처녀가 아니었을뿐더러 이미 많은 남자와 관계를 맺은 여자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증인들을 세워 그녀의
행동이 난잡했다고 증언하게 했습니다. 난잡하면 강간을 해도 된다는 말인가요? 이것 참 ---- .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Judith Beheading Holofernes 158.8cm x 125.5 cm /1611~1612
카라바죠의 작품과 같은 제목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유디트의 묘사입니다.
카라바죠의 유디트가 젊고 나약하고 그리고 소극적이고 주저하는 듯 하다면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강하고
적극적이고 씩씩합니다. 이 작품은 아르테미시아가 강간을 당한 직후 아니면 그 과정 중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
됩니다.
7개월에 걸친 재판은 아르테미시아에게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우선 그녀는 산파들로부터 그녀가 강간 당했다는
것을 증명 받아야 했습니다. 틀에 올라가서 여러 사람들이 보는 중에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것도 오래 전에
당한 것인지, 최근에 당한 것인지 밝혀져야 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해서 엄지 손톱을 조이는 고문틀에 묶여 고문을 당했습니다. 거짓말이면 아플 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언제가 썼지만 여인과 아이가 행복한 세상이 건강한 사회입니다. 중세와 지금 중 언제가 더
건강한 걸까요? 아니면 건강과는 아직도 한 참 먼가요?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 Judith and Her Maidservant / 114cm x 93.5cm / 1612~1613
적장의 목을 베고 난 뒤 긴장의 순간입니다. 이제 적진을 몰래 빠져 나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유디트의 눈에는
위험에 대한 걱정의 눈 빛이 보입니다. 소리마저 사라진 느낌입니다. 당당하게 자른 머리를 들고 있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유디트를 묘사한 많은 남자 화가들과는 구별됩니다. 아르테미시아가 피렌체에 살 때 제작된 이 작품은
유디트의 모습과 피렌체 광장에 서 있는 다비드 상의 옆 얼굴이 닮았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결국 재판은 아르테미시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재판 심리 과정 중에 타소는 자신의 아내를 죽이려고 했다는
혐의도 인정되었고 처제를 강간한 것으로도 밝혀졌습니다. 타소는 정말 개였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5년의
중노동형과 로마에서의 추방형 중 하나를 고르라는 판결이 내려졌고 타소는 추방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타소는
추방을 당한지 몇 달 뒤 다시 로마로 돌아옵니다. 힘 센 끈이 그를 다시 로마로 불렀던 것이죠.
상처만 남은 아르테미시아는 재판이 끝나자 마자 지참금을 들고 피렌체 출신의 화가와 결혼을 해서 로마를
떠납니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로마였겠지요.
다나에 Danae / 1612
다나에는 그리이스 신화의 영웅인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입니다. 외손자가 자신을 죽인다는 신탁을 받은 다나에의
아버지는 딸, 다나에를 청동으로 된 감옥에 가두지만 천하 제일의 바람둥이 제우스가 비로 변하여 다나에를
범하고 페르세우스를 갖게 합니다. 비로 변한 제우스가 다나에의 몸에 내리고 있습니다.
하여간 제우스는-----.
피렌체에서의 거주 기간이 아르테미시아에게는 가장 성공적이었던 시기였습니다. 1613년 첫 아이를 낳고 1615년
둘째, 1617년 딸을 낳습니다. 아르테미시아와 그녀의 아버지는 재판 이후 거의 관계가 끊어지다시피 했는데 딸을
낳은 후 아버지와 화해를 합니다. 그녀는 평생 2남 2녀를 출산합니다.
수난 성녀 이미지의 자화상 Self-Portrait as a Female Martyr / 31.75cm x24.13cm / c.1615
피렌체에 거주 하면서 그린 자화상입니다. 단호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 아르테미시아의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피렌체에는 그녀의 삼촌이 살고 있어서 쉽게 화가들의 세계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도 제법
그렸던 모양인데 남편은 일하기 보다는 도박에 더 빠져 있었습니다. 때문에 자주 빚에 시달려야 했고 채권자들은
그녀가 속해 있는 단체에 찾아가 빚 독촉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는 남편이 아니라 ----- 그래도 남편이죠.
류트를 켜는 성녀 세실리아 St. Cecilia Playing a Lute / 108cm x 79cm / c.1616
성녀 세실리아는 음악의 수호 성인이기도 합니다.( http://blog.naver.com/dkseon00/140037345221)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도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몇 점 남겼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겠지요. 아버지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이라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고 그 이유는 아버지에 비해 묘사가 훨씬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피렌체에 살던 아르테미시아는 잠시 부자 도시 제노바로 이사를 갑니다. 그 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작업을 하고
후원자도 몇 사람 등장하면서 그녀의 재정 상태가 좋아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생 전체를 보면 여유 있는 삶을
누렸던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막달레나 마리아 Mary Magdalene / 146.5cm x108cm / 1613~1620
막달레나 마리아는 아르테미시아가 피렌체에 거주 할 당시 즐겨 다뤘던 주제였습니다. 막달레나 마리아가
누군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서기 200년부터 지금까지도 논란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막달레나 마리아의 참회는
많은 화가들이 좋아했던 주제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후회는 우리가 유한 한 삶을 살기 때문에 얻게 되는 지혜입니다.
작품 속 막달레나 마리아가 입고 있는 옷의 황금색이 너무 강렬하여 ‘ 아르테미시아의 골드’라고 한답니다. 물론
오래 된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피렌체 생활을 끝내고 아르테미시아는 가족들과 함께 다시 로마로 돌아옵니다. 얼마 후 실시한 인구조사표에는
어떤 이유인지 그녀가 집 주인으로 되어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분명한 것 하나는 로마로 이사를 온
다음해, 그녀의 남편이 그녀에게 세레나데를 부른 일단의 스페인 남자들을 폭행해서 고발 당했고, 얼마 후
우리 식 표현을 따르면 주민등록등본에서 남편의 이름이 삭제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후 영원히 별거에 들어
갑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자화상 Self Portrait as the Allegory of Painting /96.5cm x 73.7cm / 1630
그 후 아르테미시아는 유명한 로마의 화가, 뛰어난 여성 화가로 불리게 됩니다. 적어도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죠. 또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고위 성직자들이 그녀의 후원자가 되면서 그녀는 강간의 피해로부터 벗어
납니다. 원숙하고 존경 받는 화가가 된 그녀는 나폴리로 이사를 가 여생의 대부분을 그 곳에서 보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에서 여왕의 저택 천정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그녀를 런던으로
부릅니다. 아버지의 병 간호와 일을 도와 주면서 아버지와 딸은 다시 한 번 화해를 합니다.
밧세바 Bathsheba / 258cm x 218cm
밧세바는 목욕을 하다 다윗의 눈에 띄어 왕비가 되고 나중에 다윗과의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은 여인이죠.
그녀의 작품은 초기와는 달리 부드러워지고 편하게 변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병으로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녀는 34점의 그림과 28통의 편지를 남겨 세상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후원자 중에는 스페인의 필리페 4세, 영국의 찰스 1세와 같은 국왕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후원을 받았던 화가가 그렇게 쉽게 잊혀질 수 있었을까요? 여자였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녀의 작품이 그녀의 아버지나 다른 화가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이유도 크지 않았을 까 싶습니다.
‘여자가 어떻게 이런 그림을 -----‘
저열한 남자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한 때는 그런 남자들이 세상을 움켜 쥐고 있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르테미시아가 그녀의 고객에게 보낸 편지 중의 구절이라고 합니다.
그럼요, 그 영혼이 빛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역사가 여기까지라도 흘렀겠지요.
수산나와 늙은 장로들 Susanna and the Elders / 1622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시간되세요
아름다운 시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