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7장
우리는 계속해서 유다의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17장에서는 유다가 그토록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에 집착하는 이유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5절을 보면 유다가 그토록 우상 숭배에 집착했던 것은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의 외형적인 삶은 여전히 성전에 올라가 제사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향하여 있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이라는 강대국 앞에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고 있는 위기에서 그들은 그들을 구원해 줄 자가 애굽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자들에게 집착을 했습니다. 적어도 애굽만큼은 신흥 바벨론을 물리치고 유다를 구원해 줄 구원자처럼 보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닌 애굽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할 때 그들의 마음은 단순히 하나님만 떠난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에 몰두합니다. 유다 사회에 만연했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6절에 의하면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광야 메마른 땅에 거하는 사막의 떨기나무가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저 땔감으로만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는 인생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왜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까요?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우리 마음이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놔두면 우리의 마음은 거짓으로 가득차 있고, 죄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다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거짓되고 부패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는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13절하에 보면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은 스스로 죽음과 멸망을 선택한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8절 말씀대로 더위가 와도 그 잎이 청청하며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복의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찾고 구함으로 물 댄 동산과 같은 축복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