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4일(목)
마가복음 2:1~12
하나님 아들의 권세, 죄 용서와 치유
공동체 성경 읽기: 창 7~8장, 마 6장, 시 4편
수일 후에, 예수님은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오셨습니다.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도를 말씀하실 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너무 많아 예수께 데려갈 수 없게 되자, 그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포기하지 않는 수고와 난관을 극복하는 창의성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믿음"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사실 나 아닌 이웃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이러한 수고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주변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려다가 마음이 상해 그만 두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중풍병자를 도왔던 사람들은 칭찬과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예수께서 보신 그들의 믿음에는 사랑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서기관들의 생각은 이웃 사랑의 요소가 결핍된 차가운 신학자들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그들은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5절)."라고 선언하신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의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예수님은 더 어려운 중풍병자의 치유 사건을 통해서 더 쉬운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증거하시길 원하셨습니다.
중풍병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을 가지고 걸어가는 일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는지의 여부를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의 죄를 사해 주시는 일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즉각적으로 치유해 주심으로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모든 일을 지켜 본 사람들은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은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작은 자"라고 칭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칭호에서 사랑을 느낍니다. 영어 성경(NIV)에서는 이 단어를 "아들"을 뜻하는 단어인 "son"으로 번역했고, 헬라어 성경에서도 "자녀"를 보통 지칭하는 "테크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시고, 그 일이 이루어진 증거로 그의 중풍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저는 사랑없이 기적에만 관심을 두는 사역이 과연 예수님의 사역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과 중풍병자가 사랑으로 연결되고, 중풍병자와 네 사람이 사랑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정죄하려 했던 서기관들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에서 동떨어져 외부인으로 존재합니다. 저를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