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 三一 節
기미년 만세 부른지 어언 104년.
오늘도 변두리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같이 규격화된 3.1절 행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국기에 대한 경례!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殉國 先烈에 대한 묵념과
대독총리의 기념사 그리고
동원된 학생들의 노래가 이어진다.
“터지자! 민물 같은 대한독립 만세!....”
시키니까 마지못해 부르는 노래.
그리고 서둘러 식장을 빠져 나가는
동원된 3.1절 일꾼들.
단상에 근엄하게 앉아있는 지체 높은 나으리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할 때 무슨 생각하셨을까?
그날의 함성을 뜨거운 가슴으로 들었을까?
요즈음엔 함량 미달되는 고관들이 너무나 많아
3.1절에 나온 나으리들 품질에 의문이 간다.
1919년 3월 1일
모질고 모진 식민지 9년.
피멍이 들은 2천만 이 민족이
화산처럼 터져서 3천리 방방곡곡
만세의 물결. 서울에서 시작하여
천안 아우내 장터, 평남 강서군 사천,
경기도 제암리, 평북 곽산, 대구, 합천,
남원, 익산, 군산 그리고 양양의 산골에서도
터지는 “대한 독립만세!”
전국에서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한 마음 되어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길 바라는
기도문은, “대한독립 만세!”
전 세계가 놀랐고 일본도 당황했다.
AP통신은 타전하였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가담하였다.
규모는 대단한데 비폭력이다.”
우리의 비폭력 기미 만세가 인도의 비폭력 독립운동에
중국의 5.4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니 눈물이 난다.
일본 헌병에 의하여 그렇게 살해 되면서도
만세를 부르는 이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들은 7,500명 이상을 살해했는데 교회에 가두고 밖에서
불을 질러 죽였고 기마병은 어린이 머리들을 베어버렸다.
살인을 즐겨도 너무 즐기는 싸이코패쓰(psychopass)들이 왜구들이다.
우리는 독립을 얻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 우리의 기개를
알렸고 상해 임시정부 수립의 단초를 제공했고
끊임없이 안팎으로 저항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때에 만세를 부르게 일을 꾸민 사람들은
사회 각계를 대표한 33인이었다.
그날 3월1일 33인은 유명한 기생집 “태화관”에
삼삼오오 숨어들었다.
그들이 지피기로 했던 불은 이미
탑골공원 종로거리에서 훨훨 타고 있었는데
이 33인, 그들이 한 일은 종로 경찰서에 전화하여
“우리 33인이 여기 있으니 오셔서 잡아가 주시기 바랍니다.”
한 것이 전부였다.
자수한 “방화 미수범”들이 겁에 질려 웅크리고 있을 때
순사들이 들이 닥쳐 그들을 잡아갔다.
33인들은 재판 받을 때 태화관 때 보다 더욱 안 좋았다.
“잘못했습니다. 선처를 바랍니다.”
두 손 빌며 판사에게 애원하였다.
징역 살고 나와서는 친일파로 전향했고
해방되고 나서는 3.1절의 영웅들로 추앙 받았다..
세상은 그럭저럭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진짜인가?위선자가 있다는 것을...
3.1절을 정부 민간 차원에서 더욱 뜻있게 보내야한다.
로또 당첨되어 생긴 돈이 번 돈이 아니듯이 우리 힘으로 이루지 못한
광복도 광복이 아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엔 전국에서 성대한 축제가 열리고
해마다 유럽 전승일(V-E Day)이 되면 여러 나라에서
화려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기미 독립 만세는 우리 민족의 기개를 세계에 떨친
커다란 표효이고 울음이었다.
우리도 이제는 이날을 결혼식장 행사처럼 하지를 말고
선열들이 목숨 바쳐 만세를 외쳤던 그 때의
뜨거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거대한 “독립만세!”축제를 만들어
이어가야 하겠다.
역사를 달력처럼 찢어버리는 나라에 삼일절은 절(節)이 아니고
달력에 빨갛게 인쇄된 또 하나의 공일(空日)일 뿐이다.
* 싸이코패쓰...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기고등학교 56회 카페에서 발췌)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