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공부하다가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학문은 왜 하는가? 우리가 머리 싸매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들어가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된 생활을 하려고 그렇게 열정을 쏟는 것입니다. 안 그랬던가요? 정말 ‘학문을 크게 쌓으려고’ 가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하기야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는 목적은 우리네 삶의 유지와 향상입니다. 사람은 일단 먹고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속된 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문제는 바로 그 문제에 평생 매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상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먹고사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는 짐승입니다. 삶의 의미도 발전도 없습니다.
저 나라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고 이 나라에서는 먹고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뿐입니다. 그가 내뱉은 이 말은 그대로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들과 우리에게 뭐가 차이가 있고 우리가 저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뭔가 다른 것을 찾아 이곳에 내려왔는데 거기서 거기라는 지적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놈이나 이놈이나 단지 자기 배 불리려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순수하게 학문을 하고자 했던 학자로서는 거기서도 여기서도 학문의 세계와는 거리가 먼 곳에 와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많이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숨어 지냈습니다. 상대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경비로 일하는 그 학교 다니는 학생을 만납니다. 원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물리쳤지만 어쩔 수 없이 동정을 베풀어 하룻밤 지내게 해줍니다. 그 밤에 학생이 가지고 있던 수학문제지를 보게 됩니다. 가만둘 수가 없지요. 모두 풀어 놓습니다. ‘지우’가 수업시간에 들어가 펼쳐보니 문제가 모두 풀려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잠잠한 가운데 선생님에게 답을 발표합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요. 여태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는데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었다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지우는 깨닫습니다. 아, 이 경비원이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따로 학원에 다닐 형편은 되지 못하는데 기막힌 기회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두 사람의 과외공부가 시작됩니다. ‘인민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천재 수학자 ‘이학성’과 ‘한지우’의 만남과 비밀 과외공부가 진행됩니다. 우선 공부하는 자세부터 새롭게 가르쳐줍니다. 우리 학생들이 배우는 목적은 아주 단순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정확한 답을 도출해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의 마음은 다르지요. 답만 요구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삭막한 인생일 뿐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일단 내가 이기고 내가 합격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의리’에 자기를 희생하는 지우는 사실 자연도태 일위에 설 대상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따로 돕는 자가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은 여러 가지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주로 경험에서 얻어 쌓았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자식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게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오다가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그 후로는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남의 경험까지도 덤으로 얻게 됩니다.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더 연구하며 발전시켜나가겠지요. 역시 처음에는 삶의 수단이고 생존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였지만 사람은 먹고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것이 학문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나아가 삶의 다른 영역으로 발전하며 존재 자체의 의미와 인생에 대한 사고로 발전해 나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의미를 파악 생산하고 인생을 깊이 있게 만들어갔으리라 추측합니다. 결국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생겨났겠지요.
수학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매우 깊은 학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특히 생각하는 방법을 이끌어주는 학문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우 논리적이면서 정확함을 요구합니다. 때문에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것이 또한 학문하는 자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무시하고 출제자의 요구만 적중하면 된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학생들은 학문과는 동떨어진 현실만 중요시할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친다면 과연 가르치는 학교이며 교사인가 질문하게 됩니다. 인격과 인성이 무시된 교육은 결국 우리 사회를 사막의 심성들로 채우리라 염려됩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로 나도 모르게 아차 그렇구나, 하는 번뜩이게 하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우리 자신이 현실에 속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왜 문제인지,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삶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In Our Prime)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한 주간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