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
-최석영-
5부 징 3회
백 형사가 떠난 것을 확인한 P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P의 전화를 기다린 것일까? 벨이 곧 상대편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예… 다녀왔습니다.”
“새로 나온 얘기 같은 건 없었습니까?”
“연이라는 여자가 빙의를 앓는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연결시켜 보면 그게 내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꿈속에서 본 환영이 지난날의 가족력 이라면 범인과 연관 있을 게 분명합니다.”
“가족력…”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안채로 들어가는 P를 쫓는 한 사람의 눈, 그는 P가 들고 있는 쌍둥이 폰을 갖고 있었고 둘의 대화를 들었다. 그는 상대편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지만 추적할 의사가 없는 통화내역을 지워 버린다. 상대역시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 폰을 쓰고 수시로 번호를 바꾸기 때문에 P와 통화 한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P를 지켜보던 사내가 P의 집을 떠나 남원 시내로 가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걸어 향교동 다리를 건너 산림 조합 앞을 지나 오거리 주유소 앞에서 신호대기를 하였다. 그 때 부-웅 크락션이 울리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레일러가 남자의 차를 받았고 차는 삼십여 미터나 밀려나갔다. 벨트를 한 남자는 밖으로 튕겨 나가지는 않았지만 심한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었고 때마침 시청사거리에서 구 역전 방향으로 달리던 자가용이 운전석을 받는 대형 사고를 내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고로 일대를 마비되었고 사람들이 달려와 사고자를 구조하고 119를 불렀다. 얼마 있지 않아 사고 운전자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곳에서는 손을 쓸 수 없는 중환자로 판정되어 전주 종합병원으로 이송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주 종합병원으로 이종 되던 중 과다출혈로 숨지고 말았다. 사망자에게 직접 가해를 입힌 자가용 운전자는 용성중학교 체육 교사였다. 그는 도민체전에 참가할 궁도부 선수 명단을 시청에 제출한 뒤 학교로 돌아가던 길이었고 그는 정상 신호에 정상적인 속도로 주행을 하고 있었다. 이 사고는 지방 방송에 보도 되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같은 날, 고일령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치부에서 일하는 선배였는데 대선 예비 경선을 취재 하던 중 남원경찰서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사건 보고서가 폐기된 파지에서 입수한 문건 때문이다. 유력한 대선 예비 후보에게 남원에서 수사 중인 사건 보고가 왜 올라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비밀 문건으로 분류되어 파기 되었는지 알아 보려고 하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일령은 선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고기자 들려?”
“예- 선배님 듣고 있습니다.”
“자네도 어렵게 취재하고 있는 거 알지만 무턱대고 남원서를 들쑤실 수는 없으니까 대충이라도 아웃트라인을 더듬어 봐줘. 내 이렇게 부탁할께”
“예 알겠습니다. 짜 맞추기 했다는 그 문건의 사진이나 좀 보내 주십시오.”
고일령이 입술을 실룩였다. 맘에 들지 않는 일을 할때 하는 그만의 버릇이다. 주위에 모든 것을 믿을 수 없는 이 상황에 곤두선 신경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머리를 억누른다. 그때 잔뜩 인상을 찌푸린 김 형사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백 형사님께 전화를 받았는데 우리 수사팀이 해체될지도 모른대!”
“예?”
“젠장- 뭐가 뭔지… 언제는 총경님이 적극 지원해 주니까 끝까지 파헤쳐 본다고 큰소리 뻥뻥 치더니 이제 와서는 또 꼬리를 팍 내리니 참-”
“파워에서 밀렸나 보죠. 파헤치려는 쪽과 감추려는 쪽 사이에서.”
“뭐요?”
“전에도 그랬어요. 권세출 일가의 비리를 파혜치려는 윤경남 운봉 현감이 살해 되고 안사성 현감은 파직되고 유속 이라는 사람은 교체 되었어요. 여기…-”
연이가 노트북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는 운봉 읍사무소 홈페이지에서 역대 현감들의 약력을 김 형사에게 보여줬다.
“제가 꿈속에서 본 사람, 그러니까 삼례라는 여자가 연탄가스로 살해한 사람이 실존하는 사람이었나를 확인해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여기 이 사람들의 사망이나 파직 해임 등을 권세출 이라는 사람이 뒤에서 조종한 거구요.”
“그 일이…”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실감 나네요.”
백 형사가 피자와 음료수를 들고 들어섰다. 사람들은 피자 한 쪽 식을 들고 허기를 채우는데 컴퓨터를 붙잡고 있는 연이를 아는 체 하며 옆으로 와 앉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십니까?”
“꿈속에 일들이 사실인지 뒤져보고 있는 중이에요.”
“뭐-좀 알아 내셨습니까?”
“아뇨-, 워낙에 향토 문화사나 가족사 같은 거라서…… 다만 역사적인 사건만 확인해 보는중이에요.”
“솔직히 사건이 진행 될수록 연이씨가 그 중심에 서 있다는 생각입니다. 해프닝으로 끝난 치매 할머니 인육 사건도 연이씨가 발단이었고 그 사건으로 한 사람이 죽었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졌습니다.”
“그래서요?”
“이 시점에서 연이씨가 알고 있는 보따리를 하나 풀어 보시죠?”
“백형사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건 연이씨가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정말 이번 사건과 아무 연관이 없습니까?”
“아니요. 전 모르겠어요. 무슨 말인지.”
“정말 치매 할머니가 인육을 먹었습니까?”
“내-?”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고일령이었다. 연이를 의심하는 듯 한 백 형사의 태도를 보아 넘길 수 없다는 듯이 백 형사를 연이 곁에서 밀쳐냈다. 백 형사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씩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고일령에게 자리를 내줬다.
“가까이 있는 연이를 의심 하는 것 보다 이 사건의 전체적 윤곽을 잡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은데요!”
고일령이 연이의 노트북에서 자신에게 온 메일을 열었다. 이십 여장의 사진 파일이 열리자 종이 파쇠 기에서 잘려나간 것을 이어 맞춘 보고서 형식의 종이를 찍은 사진이 보였다.
“H의원 외곽 조직에서 발견 문서입니다. H의원은 남원이 지역구인데 O씨의 대선켐프에 있는 사람이죠.”
O씨의 켐프에서 이 문서가 왜 필요 했을까? 그리고 고일령은 이것을 어떻게 입수 했을까? 백 형사의 곤두선 신경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 사람들이 왜 이게 필요 했을까?”
“꿈에- 인조반정을 모의하는 걸 봤어요. 그리고 그 배후 자금 줄로 권세출 권모기가 등장하죠.”
“인조반정?”
“남원, 운봉 출신의 상인과 아전들은 무과에 급제한 박세중이라는 사람을 통해 이괄의 부대에 연줄을 대고 자신들의 이익에 반대하는 정책을 쓰는 광해군을 몰아낼 궁리를 하죠.”
누군가가 누군가의 뒤를 파고 있었다. 그들은 수구세력 일수도 진보세력 일수도 있었고 기득권세력 일수도 개혁세력일 수도 있었고 변질된 호족세력과 비리를 파헤치려는 공권력 일수도 있었고 남인과 서인처럼 여당과 야당세력일수도 있었다. 본의와는 상관없이 김 반장과 수사팀은 누군가를 공격하는 창이 되어 있었다. 그 때부터 범죄를 단죄하고 일벌백계(一罰百戒)를 행사하는 공권력이라는 의미는 쇠락해 버렸다.
“어떻게 구했습니까?”
“O가 지금 정치 생명을 걸고 일전을 버리고 있다는 것은 잘 아시죠? 그것을 추적하던 기자가 이 문건을 파기한 종이를 입수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내려와 있으니 한번 알아보라고 보낸 거구요.”
“과연 그 선배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이것을 보냈을까요?”
“예?”
“사회부에 계시니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언론이라는 거대한 공룡이 딛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인지.”
“결국 우린, 각자의 주인이 움직이는 장기 알이군요.”
연이가 쓴 미소를 지었다. 공권력을 움직이는 누군가의 힘에 의해 수사를 지시받은 특별수사팀과 그것을 배후에서 막으려는 힘 그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며 힘의 중심축을 옮기거나 유지 시키려는 언론재벌 그 틈바구니에 빙의를 하며 과거로부터의 한을 목도하는 연이가 있었다.
“백 형사님… 김 형사에게 연락이 왔는데 오거리 교통사고 가해자가 운봉파출소 소장의 동생이랍니다.”
“뭐야?”
백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얽히고설킨 인연의 고리가 또 하나의 실타래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백 형사가 김 형사 핸드폰으로 문자를 넣었다.
-소장의 딸은?-
-지난 밤 쇼크와 위독한 상황-
-소장의 동선은?-
-어젯밤 푸른 솔 산악회에 참석 한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음-
산악회? 수술을 한 아이가 중환자실에 있는데 그것도 불길한 예언을 들은 상태에서 산악회 모임에 참석했다? 얼마나 중요한 모임 이길래?
-어젯밤 소장의 동생은?-
-동생도 그 산악회 멤버라 모임에 참석했음-
-그 음식점에 다른 모임은 없었나?-
-없었음,-
-그래?-
-아, 별실에 H의원이 당원 간담회를 하고 있었음.-
H의원? 그는 특별수사팀의 동향보고서가 유출된 의원이 아닌가? 그가 있는 장소에 서장과 그 동생이 있었고 그 동생은 다음날 교통사고를 냈다?
-교통사고 피해자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조사해 봐.-
-예.-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