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김길중을 추억함 - 김영호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되고자 진학을 했던 경남공고,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도서관의 많은 책을
접하며 문학을 꿈꾸었기에 동화를 쓰게 되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벗들을 만나게 해준 학교가 바로 경공이었다.
고성 촌놈의 부산 유학, 어리버리한 몰골에 존재감이라고는 1도 없던 내게도 친구가 있었으니 그것은 순전히 그들이 내게 베풀어
준 사랑이었다. 1학년 짝지 김덕구, 동천을 따라 늘 같이 하교했던 이정문, 씨익 웃어만 주어도 정이 묻어나던 김완식, 다정이
넘쳐 문제였던 이경무, 따뜻했던 조성만 그리고 우리들의 진정한 리더 김길중.
길중이가 어떻게 해서 순수 촌놈인 나의 친구가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 기억 속에 단편적인 몇 장면만이 떠오를 뿐이다.
학교 앞 낱담배를 팔던 골방에 갔을 때 콜록거리는 나를 보고 “영호, 니는 피우지 마라.”하던 일, 여름날, 초량 그의 집으로 놀러
가던 날, “영호야, 덥재? 우리 냉면 한 그릇 먹고 갈까?”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냉면이라는 생애 최고의 음식을 맛보았던
것이다. 친구 덕분에 나는 기타 C코드부터 익혔고, 야외전축에 레코드판을 올려 팝송도 들어 보았다. 서면 대한극장 지하 다방에
몰래 갔을 때 감미로운 화음에 끌려 머뭇거리자 “저 곡? 사이먼과 가펑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그날 이후 나는 폴 사이먼의
팬이 되었고 지금도 자동차에서 음악을 들으며 친구를 소환하는 것이다.
키는 작아도 배포는 누구보다 컸던 길중이, 음악을 사랑하던 길중이, 군대도 먼저 갔고 결혼도 가장 먼저 했다. 당시에는 생소한
분야였던 컴퓨터를 공부하여 사우디로 떠났을 때에도 항공우편으로 계속 소식을 주어 우정을 이어갔고 귀국 후, 내가 출장을 갈
때면 서울역에 마중을 나와 나를 맞아 주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친구 길중이를 천자봉공원 묘지에서 이별한 지도 삼십년이 넘었다. 길중이를 보내고 우리들은 정문이
집에 모여 앉아 그를 추억했는데 조성만도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갔다.
아아~ 영화 ‘박하사탕’에서 설경구가 외치던 것처럼 다시 돌아가고 싶다. 월내 바닷가에서 캠핑하던 그 여름으로, 월내에서 일광
까지 기찻길 따라 걷던 그 달밤으로, 대신동 우리들의 자취 시절, 기타 치며 노래하던 ‘목화밭’으로. 땀을 뻘뻘 흘리시며 밥을 해주
시던 완식이 어머니. 아들처럼 나를 사랑해 주시던 덕구 어머니. 그분들의 사랑에 보답하지도 못했는데 오래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받은 사랑 일부분이라도 내 친구에게, 어머니에게 바치고 싶다.
경남공고21회 졸업50주년 기념 책자 (2022.10.15 발행)에 김영호 친구가 올린 글 입니다.
첫댓글 조 사장이 눈물나도록 그립고 보고싶은 친구들을 다시 떠올리고 만나게 해주네. 고마우이. 항상 건강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