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향(藝鄕)의 보배로운 섬, 전남 진도(珍島)

[김정관]

진도대교 야경


★ 예향(藝鄕)의 보배로운 섬, 전남 진도(珍島) ★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珍島)는 우리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다도의 섬이며 예로 부터 전통민속의 보고이자 시(詩)·서(書)·화(畵)·창(唱)을 꽃피워낸 예술의 고장이다. 비옥한 농토와 드넓은 청정해역이 펼쳐져 있어 인심 또한 후하여 보배로운 땅이라 했다. 오래 전 진도는 뱃길따라 멀고 먼 길을 가야 겨우 닿을 수 있었던 곳으로 수난과 애환으로 점철된 애달푼 사연도 많은 땅이다. 고려시대 삼별초(三別抄)의 항전지이자 후대 유배객들 의 한이 서린 땅으로 오랜 세월 고립되어 있었던 만큼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제는 빠르고 거센 조류가 흐르고 있는 울돌목(명량해협:鳴梁海峽)에 1984년 진도대교(한국 최초의 사장교斜張橋)가 놓여져 육로를 통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울돌목 해협은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맞아 싸워 승리를 이끈 '명량대 첩'의 현장이다. 울돌목이란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로 소용 돌이치는 울돌목의 물소리는 그날의 치열했던 함성처럼 들린다.

진도대교 여명

진도는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한반도 서남쪽 바다의 45개의 유인도와 185개의 무인도 등 23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도에 부는 바람은 바다의 비린내에 젖어 있지 않다. 섬이지만 갯내음이 없는 진도의 산하는 맑고 순하다. 진도의 산줄기는 첨찰산(尖察山: 485m), 여귀산(女貴山:475m), 지력산(智力山:325m), 금골산(金骨山:193m), 백야산(白也山) 을 뿌리로 삼고 부채살처럼 퍼져 나간다. 이 산줄기의 계곡마다 물이 흘러내려 실핏줄처럼 작은 하천들이 들의 구석구석을 적신다. 그래서 진도는 쉽게 배를 댈 수 있는 온순한 포구 들이 해안선 곳곳에 숨어 있지만, 일찍부터 어업보다는 농경을 주업으로 삼아 왔다. 진도의 들은 낮은 산과 산 사이에서 비옥하고 사람들의 마을에 가깝다. 이 5개의 산줄기들은 다시 수많은 작은 산과 봉우리들을 불러일으켜, 진도에서 산들은 끝 없이 출렁거리면서 일어서고 잦아든다. 산과 들의 솟음과 퍼짐이 이러함으로, 진도의 벌과 나비들은 구역을 넘나들며 꽃을 찾아다니기가 힘들다. 진도의 벌과 나비는 옴폭하게 파인 자신의 구역 안에서만 논다. 그래서 진도의 나무와 푸성귀들은 이 종자와 저 종자가 섞여 서 잡종을 이루지 않고, 순수한 유전 형질을 보존할 수 있었다. 진도의 산하가 진도의 종자 를 키워내므로 진도는 원종(原種)의 섬이다.

동령개 해변의 파밭

진도는 춤과 노래의 땅이다. 진도가 더욱 보배로운 것은 남도예술과 전통민속의 보고라는 점이다. 한국적인 멋과 흥을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으며, 수많은 예술인들이 이곳에서 나왔 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진도 사람들은 다 예술인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밭을 매는 아낙네도, 고기잡이하는 남정네도 소리 한 곡쯤은 예사로 뽑아낸다. 강강술래(여자들의 생명력이 발현된 노래), 진도아리랑(민속 문화 정형의 절정), 남도들노 래, 씻김굿(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화해 의식), 다시래기(재담과 소극(笑劇)의 상여놀이) 등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를 비롯해 북놀이, 만가 등 도지정 무형문화재 그리고 10여 명의 인간문화재를 배출했다.

진도 씻김굿의 한 장면(자료 사진)

진도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 진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떠나가는 저승길 에서도 북장구 어우러지는 풍물소리를 울려 퍼지게 한다. 그리고 소복(素服)한 아낙네들은 춤과 노래로써 상여를 인도하며 그 길을 닦는다. 슬픔인지 기쁨인지, 그들은 죽음마저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것은 마치 구멍난 삶에 희망의 생명수를 부어대는 것과 같이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음악과 춤이 뛰어난 '씻김굿'은 단골(무당)이 상복(喪服)을 입고 춤과 노래로 신에게 빌어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 주어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으로 신들린 듯 저승길을 넘나든다. 또한 상가(喪家)에서 출상 전날 밤에 노는 '다시래기'는 사물(四物)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이어지는 가무극적인 놀이로서 상가의 무거운 분위기를 한바탕 축제로 바꾸어 상주들의 슬픔을 달래주는 아주 독특한 형식이다. '만가'는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민요로 진도에서는 여자가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사물 과 피리가 메김소리와 뒷소리로 받쳐준다. 이렇듯 진도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 모든 일상에는 가장 충만한 문화로서의 춤과 노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도가 갖는 문화적 원형들은 살아서 작동하는 원형들이다. 이 원형들 속에서 사람들은 고착이 없는 생성과 위안을 얻고, 한없이 소통하며, 괴로운 삶 을, 고달픈 현실을 견뎌낸다. 1. 운림산방(雲林山房:전남 기념물 제51호)

운림산방(雲林山房)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조선시대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인 소치 (小癡) 허련(許鍊,유維:1809-1892)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남종화의 요람 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전개된 허씨 가문 5대에 걸친 예술은 진도가 이룩한 인문주의 예술 의 절정이며 19세기 한국미술의 꽃이다. 운림산방은 연못과 어우러져 정원과 조화를 이루 고 있으며, 생가와 소치 선생부터 5대에 걸쳐 탄생된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소치 기념관과 진도 역사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소치(小癡)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 며 자는 마힐(痲詰)이다. 소치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草衣禪師) 밑에서 공제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받았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서(書)·화(畵) 삼절(三 絶)에 능하여 헌종(재위 1824∼1849)의 총애를 받아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하기도 하였 고, 해남 우수사 신관호, 흥선대원군 이하응, 권돈인, 민영익,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 김흥근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추사는 소치를 두고 '화법이 심히 아름다우며, 우리 고유의 습성을 타파하여 압록강 이동 (以東)에 그를 따를 자가 없다. 나보다 낫다.'라고 극찬했다. 삼절(三絶)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소치였지만,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 는 고향으로 돌아와(철종 8년 1857)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尖察山:485m) 아래 작은 초가(운림산방)를 짓고 연못(운림지)과 꽃과 나무로 아담하고 소박한 공간을 만들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운림십경)을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 소치는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산수화는 중국 남종화의 정맥을 형성하고 있는 원말 4대가인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의 구도와 필법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붓끝이 갈라진 거친 독필(禿筆:몽당붓)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생편한 담채의 색감에서 독특하고 개성이 두드러진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산수화 외에 진한 먹을 대담하고 능란하게 구사한 사군자·모란·파초·괴석·노송·연화 등의 다방면의 소재를 능숙하고도 대담한 농묵(濃墨)을 구사하여 표현했으며 특징적인 개성미를 지녔다. 대표작으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1866)>, <산수도첩山水圖帖>, <방예찬죽수계정도倣倪瓚竹樹溪亭圖>,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김정희 초상金正喜 肖像> 등이 있고 자서전인 <소치실록小痴實錄(1867)>을 저술하였다. 소치의 화맥은 아들 미산 (米山) 허형(許瑩:1861-1938), 손자 남농(南農) 허건(許健:1908-1987), 임인 허림(林人 許林:1917-1942), 증손자 임전(林田) 허문(許汶:1941-현재, 임인 허림의 아들), 남농의 손자 오당(五堂) 허진(許塡:1962-현재, 전남대 미대 교수)까지 5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남종화(南宗畵): 북종화(北宗畵)에 대응되는 말이며, 북종화가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전문화가들을 중심으로 경직(硬直)된 선묘를 사용하여 그린 장식적이면서도 공필(工筆)의 그림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大夫) 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한 그림이다.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선면산수도>는 소치가 만 57세 때인 1866년 여름에 그려진 것이다. 그가 살던 운림산방을 표현한 것으로 그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후기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귀가하는 자신의 모습과 여름 석양 속의 풍경을 담았다. 추사체를 본딴 세필(細筆)로 선면상단을 채운 제발(題跋)에는 허련의 생활관이 잘 반영 되어 있다. 이 제발은 허련이 진도에서 보내던 한가로운 일과를 적은 글로서 선비의 은일, 청담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 산수도는 피마(披麻:마(麻)의 올을 풀어서 늘어놓은 듯 실 같은 모습)준법을 소화한 건필(健筆)의 터치와 붓끝이 갈라진 독필(禿筆)의 대담한 수묵, 그리고 석양을 표현한 담홍색과 담청색의 설채(設彩)효과에서 강한 개성을 내뿜는다. 이러한 필치와 화풍은 김정희일파의 다른 화가들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며, 그만이 지닌 독특한 격조이다. 이는 남종문인화풍을 토대로 하였으면서도 나름대로 화법을 개척한 허련 의 회화미이다. 2. 남도석성(南桃石城:사적 제127호)

700여년 전 고려를 침략했던 몽골에 항거한 사람들, 삼별초(三別抄)가 향한 곳은 진도였다. 두 달이 넘은 긴 항해 끝에 고려에서 가장 늠름한 전투부대가 천여 척의 배를 이끌고 진도 에 도착했다. 몽골에 무릎을 꿇은 고려의 임금이였지만, 진도는 임금의 명을 거역하고 쫓겨 간 곳이 아니라, 몽골과 싸우기 위해 새롭게 선택한 땅이었다. 섬은 물길이 거센 울돌목 건너편에서 안전했고 대륙에서 온 몽골군은 해전에 약했기 때문에 진도는 그 자체로 천연의 요새였다. 무엇보다 일년 농사를 지으면 3년을 먹고 살만큼 넓고 비옥한 땅은 충분한 군량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땅 진도에 도착한 삼별초는 고려 왕족인 승화후(承和候) 왕온(王溫)을 새 임금으로 추대하고 용장산 아래 용장사 절터 7천여 평에 거대한 규모의 궁궐을 짓고 그들의 나라를 세웠다. 주변 산들은 궁궐을 보호하 듯 감싸고 있었지만, 언제 쳐들어 올 줄 모르는 고려와 몽골 연합군을 막기 위해 산성(용장 산성)을 쌓았다.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근거지로 수 차례에 걸친 고려와 몽골군의 연합군을 물리쳤다. 이곳은 삼별초가 건설한 나라의 중심이자 대몽 항쟁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진도의 새 왕국은 9개월만(1273년)에 막을 내린다. 거듭된 승리에 도취된 사이, 섬 양쪽을 공격한 여몽 연합군에 의해 용장산성을 잃고 삼별초 는 무너졌다. 삼별초의 왕은 죽임을 당했고 그 왕을 모셨던 배중손(裵仲孫) 장군과 삼별초 장수들은 흩어져 끝까지 몽골에 저항했다. 삼별초를 이끌었던 배중손은 살아 남은 군사를 수습해 남도석성(南桃石城)으로 들어가 마지막 순간까지 몽골에 저항하다 이곳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남도석성의 쌍운교

삼별초의 전설이 고스란히 유적으로 남은 남도석성은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개축되었지만 당시 그 자리에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서 있다. 성의 외곽을 건너다니기 위해 축조한 석성 남문 앞을 흐르는 개울에는 우리 옛 '무지개 다리'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두 개의 홍교(쌍운교, 단운교)가 놓여져 있다. 자연석을 끼워만든 그 견고함은 긴 세월에도 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남해와 서해의 바닷길을 잇는 중요한 길목에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해양 방어기지로 쓰이던 남도석성은 오늘날 진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치열했던 격전지는 이제 바람과 도둑을 막아주는 편안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20가구 남짓 어깨를 맏 대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성안 사람들은 대대로 성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생을 석성과 함께 하고 있다.

남도석성의 성안 마을

진도는 외세에 끝까지 저항했던 사람들의 목숨을 건 전쟁터이자 완숙한 예술의 경지에 오른 한 화가가 편안한 노년을 맞이했던 섬이기도 하다. 평화와 전쟁을 거듭하면서 외부로부터 들어온 풍부한 문화는 진도 섬사람들의 삶과 어우러져서 진도를 문화와 예술의 고장 예향 (藝鄕)으로 거듭나게 했다. 작가 김훈은 '진도는 원형의 섬이다. 진도는 맑은 땅이다. 삶의 모든 국면들을 포괄하는 힘세고 순결한 원형들이 그 섬에서 비롯되었고 거기서 축적 되었다. 그러므로 진도는 모든 원형들이 살아 숨쉬는 사람의 고향이다.'라고 했다. 남도 끝에 위치한 이 풍요로운 섬은 모든 역사를 품고 원형 그대로 지금도 우리 민족의 고향 같은 정겨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Eric Chiryoku/Sweet Memories

[라수정]

애구 가보고싶다~~고향의향기가 나네요,수고하셨습니다~~~

[서영권(거룡)]

에구 나도 가보고 싶다. 좋으자료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