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극적이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랑보다 슬픈 사랑이 더욱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이별의 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을 꿈꾸지만 그런 사랑은 아주 드물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 고통은 너무나 지독하기 때문에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다. 때로는 영혼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사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떠한 보상을 받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인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어떠한 미덕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마침내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 밖에는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이 다음에 다가오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2
정직에 대하여, 정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내가 정직하게 말하려고 하면 할수록 정확한 말은 어둠의 밑바닥으로 빠져든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수렁.
3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식물의 종자가 변덕스러운 바람의 손길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운반되듯이 우리 또한 우연의 대지를 정처없이 방황한다.
4
어떤 사람에게는 사랑이 지극히 하찮은 혹은 시시한 일에서 시작된다. 아니, 거기에서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하찮은 일이 소중한 것으로 바뀌고 마침내 생명까지도 걸 만큼이나 진지하게 변하는 것이다.
5
희망은 마치 반딧불과 같은 것이 아닐까?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존재를 확인하기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밤이 깊을수록 반딧불은 환하게 빛나고 새벽이 밝아오면서 어디론가 사라진다. 반딧불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 희미한 빛의 궤적은 나의 가슴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 속을 그 작고 희미한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어 버린 넋인 양 언제까지나 헤매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인가 어둠 속으로 살며시 손을 내밀어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내 손가락보다 아주 조금 앞에 있었다.
6
사랑이 없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이 없으면 세계는 창 밖을 스치고 지난가는 바람과 같아서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7
내가 진정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였다. 내가 쓰는 소설의 간명한 주제는 바로 사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공기라는 것을 그려보고 싶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자아의 무게와 맞서는 것인 동시에 외적인 사회의 무게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싸움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맞서 싸우다가 승리를 거드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8
사랑의 길은 거칠고 험하다. 냉정한 사랑이란 결국 따뜻한 사랑이 뿌리깊게 진행되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에 의해, 마침내 사랑은 수증기처럼 기화해서 천국의 입구까지 도달한다. 태양의 따뜻한 온기에 의해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버린, 그러나 여전히 영원한 사랑을 잡기 위해 애타게 손을 내미는 눈사람들을, 어쩌면 가슴이 메마른 사람들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9
햇빛이 앞유리창으로 비쳐 들어와 나를 감싸고 있었다. 눈을 감는 순간 그 빛이 나의 눈꺼풀을 따뜻하게 내리쬐는 것이 느껴졌다. 햇빛이 그 멀고 먼 길을 더듬어 이 작은 혹성에 도착해서 그 힘의 한 자락을 통해 내 눈꺼풀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는 생긱이 들자 야릇한 감동이 나를 감쌌다. 우주의 섭리는 나의 눈꺼풀 하나조차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10
나는 물건에 집착이 많은 편도 아니고 수집벽 같은 것도 없는 편이다. 그런데 치우지 않고 그냥 놔두면 사방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점점 더 쌓인다. 음반이나 책, 팜플렛, 포스터, 서류, 사진, 우산, 볼펜 등의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그 나름대로의 필연성에 의해 늘어나고 어떤 것들은 필연성도 없이 늘어난다. 그러나 필연성이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그 물건들은 자동적으로 증가하고 우리의 한정된 힘으로 그 흐름을 저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까지 한 것처럼 생각된다. 나는 버리는 것이야말로 진정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잡동사니들을 버린 후에야 비로소 넉넉한 난의 공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1
싸움과 미움과 욕망이 없다는 것은 그 반대의 것도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기쁨이고 행복이고 애정이다. 절망이 있고 환멸이 있고 비애가 있음으로 해서 기쁨도 생기는 것이다. 증오가 있기에 사랑도 있다. 절망이 없는 행복 따위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이다.
12
만약 내가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다고 해도 역시 지금처럼 똑 같은 인생을 더듬어가면서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나 자신이 되는 것 말고는 또다른 길이란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버리고 내가 아무리 사람들을 버리고 온갖 아름다운 감정과 뛰어난 자질과 꿈이 소멸된다고 해도 나는 나 자신 이외의 그 무엇도 될 수가 없다.
13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라. 그대는 죄수가 아니다. 그대는 꿈을 찾아서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인 것이다.
14
도서관은 아주 조용했다. 모든 소리를 책이 전부 흡수해버린 것 같았다. 그렇다면 책에 흡수된 소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물론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소리가 사라진 게 아니고 공기의 진동이 흡수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책에 흡수된 공기의 진동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몰론 어떻게 되지는 않는다. 진동은 다만 단순히 사라진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 영원한 운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한 운동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만 해도 영원한 운동이 아니다. 지난 주일이 없는 이번 주일은 있을 수 없고, 이번 주일이 없는 다음 주일도 없다.
15
이별은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이별을 강요한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마을에 소년과 소녀가 살고 있었다. 소년은 열여덟 살이었고 소녀는 소녀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다지 잘 생긴 소년도 아니었고 그다지 아름다운 소녀도 아니었다. 어디에나 있는 외롭고 평범한 소년과 소녀였다. 하지만 그들은 틀림없이 이 세상 어딘가에 100% 자신과 똑같은 소년과 소녀가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그들은 기적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적은 확실히 일어났다. 어느 날 두 사람은 거리 모퉁이에서 딱 마주치게 된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앉아 서로의 손을 잡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언제까지나 실컷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이미 고독하지 않다. 그들은 각자 100%의 상대자를 원하며, 자신의 그 상대자의 100%가 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 속에는 얼마 안 되는, 극히 얼마 안 되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이처럼 간단하게 꿈이 실현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대화가 문득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말한다. "그런데 우리 다시 한 번만 시도해 보자. 가령 우리 두 사람이 진정한 100%의 연인이라고 하면 반드시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이 다음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100%의 연인이라면 바로 결혼하자구."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어느 해 겨울 두 사람은 악성 독감에 걸려서 며칠 동안이나 사경을 헤맨 끝에 과거의 기억들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의 머리 속은 마치 D.H 로렌스의 소년시절 저금통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서른두 살이 되었고 소녀는 서른 살이 되었다.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지나갔다.그리고 4월의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소년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소녀는 속달용 우표를 사기 위해 똑 같은 길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길 한복판에서 마주친다. 잃어 버린 기억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마음을 한 순간 비춘다. 그들의 가슴이 마구 떨린다. 그리고 그들은 안다. 그녀는 나에게 있어 100%의 남자 아이야. 그러나 그들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빛은 너무나 연약하고 그들의 언어는 이제 14년 전 만큼 맑지도 않다. 두 사람은 그냥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엇갈린 채 혼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만다. 영원히.
16
마음이 없는 사람이란 그저 걸어다니는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따뜻한 마음만이 우리를 진정한 사람으로 만든다.
17
나의 희망. 나는 같은 시간, 동시에 두 장소에 있고 싶다. 이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나 자신이라는 개체성이 그러한 나의 희망을 방해하고 있다. 나의 희망은 무척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천재적인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동시에 두 장소에 있고 싶다는 것뿐이다. 세 개나 제 개도 아닌 '단지 두 개' 인 것이다. 나는 콘서트 홀에서 관현악을 들으면서 동시에 롤러 스케이트를 타보고 싶다. 나는 백화점에서 상품을 구경하는 동안 맥도널드애서 햄버거를 먹고 싶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 당신과 함께 잠을 자고 싶다. 나는 개체이면서 원칙이고 싶다.
18
우리의 인생은 날마다 새로운 것과 대면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새롭고 낯선 것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몇 년 동안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질 수도 있고 하루 아침에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강물이 흐르고 푸른 숲이 있던 마을이 개발되면서 고층 빌딩과 아스팔트 도로, 자동차의 물결로 변모할 수도 있다. 혹은 머나먼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서 낯선 환경과 문화를 접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 새롭고 낯선 세계에 대해 조금씩 익숙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나는 살과 뼈를 이 무겁고 습한 우주의 단층 속에 잠입시켜 나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느 상황 속으로도 자신을 동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다. 어떤 선명한 꿈도 결국은 선명하지 않은 현실 속에 삼켜지고 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언제인가는 그런 꿈이 존재했던 것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19
나는 비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비는 내리는지 혹은 내리지 않는지조차도 모를 만큼의 가는 이슬비. 그러나 분명히 비는 지상으로 내려와서 달팽이를 적시고 울타리를 적시고 꽃잎을 적신다. 그 누구도 내리는 비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또한 그 누구도 비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비는 언제나 공정하게 내린다.
20
유럽에서는 달팽이가 신화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껍질은 어두운 암흑 세계를 의미하고 달팽이가 껍질에서 나오는 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팽이를 보면 본능적으로 껍질을 깨서 달팽이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
21
별똥별을 보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그것도 수많은 별똥별들이 무리를 지어서 일제히 떨어지는 광경은 정말 아름답다. 나는 어느 결울밤에 우연히 별똥별들이 떨어지는 것을 관찰했던 적이 있었다. 아름답고 따뜻한 풍경이었다. 사랑하는 그녀와 나는 해변 근처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아파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섹스를 한다거나 포테이토 칩을 먹거나 하는 것이 하루종일 우리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 당시에 나는 열아홉 살이었다. 우리는 겨울 바람을 쐬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런데 별똥별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고 있었다. 마치 춤이라도 추는 것처럼. 겨울밤에 별똥별들이 추는 춤. "멋있어요. 우리는 운이 좋아요." 약 10분 후에 별똥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폭죽을 터뜨린 것처럼 한꺼번에 쏟아지더니 잠시 후에는 이따금씩 보일 뿐이었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에게 별똥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화부스가 너무 멀어서 우리 둘만 즐기기로 했다. 그 당시의 무수한 별똥별들, 마치 밤하늘을 태우는 듯한 충경을 지금도 확실히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이제 완전히 잊어버렸다.
22
난는 항상 소파를 선택하는 일에는 그 사람의 품위가 배어나온다고 확신했다. 내 생각이 편견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파라는 것은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소파에 앉아서 성장한 자만이 알 수 있다. 좋은 책을 읽으면서 성장하거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성장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좋은 소파는 또 하나의 좋은 소파를 낳고 하나의 나쁜 소파는 또 하나의 나쁜 소파를 낳는다. 정말로 그런 것이다. 나는 고급 자동차를 굴리면서도 집에는 그다지 좋지 않은 소파를 두고 사는 사람을 몇 명인가 알고 있다. 나는 그런 자들을 그다지 믿지 않는다. 비싼 자동차일 뿐이다.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소파를 사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식견과 경험과 철학이 필요하다. 돈이 들기는 하지만 돈만 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인가 자신의 확고한 이미지가 없다면 훌륭한 소파를 손에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3
마음이란 너무나도 불완전한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다시 더듬을 수 있다. 눈위에 찍힌 발자국의 흔적을 더듬듯이.
24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법칙은 아주 간단하다. 수많은 공을 들여서 쌓아올리는 일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파괴하는 일에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빛이 반짝하는 한 순간이다.
25
만약 내 몸이 소멸되고 난 후에 영혼만이 남든다면, 나는 훨씬 행복할 것이다. 만약 내 영혼이 배의 상처나 위궤양이나 치질 같은 것을 영원히 짊어져야 한다면 도대체 구원은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영혼이 육체에서 철저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면 영혼이란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26
아무도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에서 모두 제각기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는 행위, 진보도 없는 노력, 그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는 여행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닌가? 아무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아무도 앞질러 가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추월당하지 않는다.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다.
27
이 세상은 희극이 공연되는 무대. 그리고 우리 모두는 희극에 출현하는 광대. 누가 여기에서 한 치라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강한 빛에 노출된 방속국의 스튜디오로부터 계곡 사이에 숨어있는 은둔자의 암자에 이르기까지. 희극의 무대는 모두가 하나다.
28
왜 도시나 공원, 길 야구장, 산 영화관, 식물원 등에는 모두 이름이 붙어있는 것일까? 그것들은 지상에 고정되어 있는 대가로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
29
인생의 종착역. 신이 나에게 부여한 의무를 모두 끝내고 나면 나는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죽음이다. 내 생명이 모두 끝난 후에 과연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 인생의 장미빛 광채가 35년 동안에 이미 98%나 사용해서 닳아 없어졌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나는 다만 나머지 7%만이라도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 이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책임처럼 느껴진다.
30
깊디깊은 슬픔에는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다. 나는 슬픔을 견딜 수 없어서 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깊은 슬픔이 눈물마저도 빼앗아가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한 줄기 바람도 불어오지 않는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조용히 쌓이는 눈은 슬프다. 지금보다 훨씬 더 젊었을 때 나는 그런 슬픔을 어떻게 해서든지 언어로 표현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었고 심지어 나 잔신에게조차도 전할 수 없어서 그만 단념하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를 폐쇄시키고 나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다.
31
가난도 꿈을 꾼다. 가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바로 꿈이다. 가난했던 시절 우리는 두 개의 철길 사이에 끼여 있는 초라한 집에서 두 해를 보냈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굉장히 시끄러웠으며 따라서 집세도 쌌다. 조잡하게 대충 지은 집이었기 때문에 틈새로 바람이 도처에서 들어왔다. 덕분에 여름은 쾌적했지만 그 대신에 겨울은 지옥이었다. 석유난로를 살 돈도 없었기에 해가 저물면 나와 그녀와 고양이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서 글자 그대로 서로 끌어안고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엌의 설거지통이 얼어붙는 일 같은 것도 늘상 있었다. 겨울이 끝나면 봄이 왔다. 봄은 멋진 계절이었다. 봄이 오면 나도 그녀도 고양이도 한숨을 돌렸다.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에 적어도 추위에 떠는 일 만큼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듬해 4월에는 철도청에서 며칠 동안 파업을 했다. 파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정말 행복했다. 철길은 햇빛이 잘 드는 양지 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고양이를 안고 철길로 내려가 뒹굴면서 한가롭게 햇살을 쬐었다. 마치 호수 바닥에 앉아있는 것처럼 조용했다. 철길 가에는 들풀이 자라고 있었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꽃들도 피어 있었다.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재잘거리고 사방은 노아의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적막했다. 이대로 그냥 신석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는데 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는 젊었고 막 결혼했고 햇살은 공짜였다. 나는 지금도 가난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삼각형의 가늘고 긴 집을 떠올린다. 지금 그 집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32
아무래도 좋다. 이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은 도너츠의 구멍과 도너츠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도너츠의 구멍 때문에 도너츠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33
서머셋 모옴의 소설 중에는 '그 어떤 면도기에도 철학이 있다' 라는 구정이 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날마다 계속 반복하다 보면 거기에는 저절로 철학이 새겨난다는 뜻이다. 여자의 경우라면 '립스틱에도 철학이 있다' 라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서머셋 모옴의 이 문장을 읽고 '인생이란 그런 것인가' 하고 꽤나 순진하게 감동하고 말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즈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나는'언더록에도 철학이 있다' 라고 생각하면서 8년동안 매일매일 언더록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말 언더록에도 철학이 있을까? 그렇다 분명히 있다. 그까짓 언더록, 얼음에다 위스키를 갖다 붓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얼음을 깨는 각도 하나에 따라 언더록의 품위나 맛이 영 달라진다. 큰 얼음과 작은 얼음의 차이, 미세한 가도의 차이, 온도의 차이에 따라서 그 녹는 양태가 다르다. 큰얼음만 사용하면 투박해서 멋이 없다. 작은 얼음이 너무 많으면 금방 녹아서 물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대중소의 얼음을 조화롭게 섞어서 거기에다가 위스키를 따른다. 그러면 위스키가 잔 속에서 호박색의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그런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소요되는 것이다.
34
카오스-----시대가 바뀌면 많은 것들이 바뀌는 법이다. 하지만 결국은 그걸로 된 것이다. 결국은 모든 것들이 뒤바뀌는 것이니까. 혼돈이 그 모양을 바꾸었을 뿐이다. 기린과 곰이 모자를 맞바꾸고 곰과 얼룩말이 목도리를 서로 바꾼 것이다.
35
강을 따라 난 길은 내가 좋아하는 길이었다. 물줄기와 함께 나는 걷는다. 걸어가면서 강의 숨결을 느낀다. 그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들이야말로 강의 숨결을 느낀다. 그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들이야말로 이 거리를 만든 장본인이다. 몇만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들은 산을 허물고 흙을 실어 나르고 바다를 메워서 그곳에 나무들이 우거질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거리는 그들의 것이었고 앞으로도 줄곧 그럴 것이다.
36
나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조금씩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어떤 러시아 작가가 '성격은 조금씩 변하지만 평범함이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가끔씩 아주 재치있는 말을 한다. 긴 겨울 동안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7
비가 내린다. 비오는 날은 꿈꾸기 좋다. 어떤 경우에는 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순수한 차원에서 개인적인 체험이 된다. 즉 비를 중심으로 의식이 회전함과 동시에 의식을 중심으로 해서 비가 회전한다. 아주 막연한 표현이지만 그런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리는 지독히 혼란스러워진다.
38
머피의 법칙. 나쁜 일이란 종종 겹치는 법이다. 이 말은 물론 일반론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쁜 일이 몇 번인가 겹치게 되면 이 말은 더 이상 일반론이 아니게 된다. 만나기로 한 여자와는 길이 엇갈리고 양복의 단추가 떨어져 버리고 지하철 안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충치가 아프기 시작하는 데다가 비까지 내리고 택시를 타니까 교통사고로 도로가 막혀 버리는 형편이다. 이런 순간에 만약 나쁜 일이란 겹치는 법이라고 말하는 녀석이 있으면, 나는 틀림없이 그 놈을 때려눕힐 것이다. 일반론 따위란 결국은 그런 것이다.
39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우연히 서로 알게 된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었으나 적어도 그것을 하나의 위안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그렇다. 완벽한 문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40
모든 것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계속 가지고 있는 한, 나이를 먹는 것도 그다지 고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일반론이다.
41
세상의 끝을 맞이하는 마음.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고 마치 다리를 건너듯이 소리를 내며 내 몸 위를 통과하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 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고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나는 이십대의 마지막 남은 한 해를 맞이했다.
42
지금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물론 문제는 무엇 하나 해결되어 있지 않고 말을 마치는 시점에도 사태는 여전히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장을 쓴다는 것은 자기 요양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요양을 위한 조촐한 시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43
나에게 있어서 문장을 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한 달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한 적이 있는가 하면, 사흘 밤낮을 계속 썼지만 그 결과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을 쓰는 것은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비해 거기에 의미를 덧붙이는 것은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44
인생을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노트의 가운데에 한 줄의 선을 긋고 왼쪽에는 그 동안 얻게 된 것들을 쓰고, 오른쪽에는 잃어 버린 것들을 썼다. 잃어버린 것, 짓밟은 것, 특히 내버려둔 채 돌보지 않은 것, 희생시킨 것, 배반한 것.... 나는 그 작업을 끝까지 계속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서.
45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우리가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 가로놓여 있다. 아무리 긴 자를 가지고도 그 깊이를 잴 수가 없다.
46
고통의 뿌리. 고통이란 가장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고통을 나눌 수 없다.
47
거짓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꺼림직한 일이다. 거짓말과 침묵은 현대 인간 사회에 만연한 두 가지의 커다란 죄악이라고 말해도 좋다. 실제로 우리는 자주 거짓말을 하고 부단히 침묵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지껄이고, 그것도 진실 밖에 지껄이지 않는다면 진실의 가치 같은 것은 잃어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어둠으로 인해 빛이 그 가치를 얻게 되듯이 거짓이 있기 때문에 진실의 광채가 눈부신 것이 아닐까.
48
때때로 나의 머리는 매우 단순한 일 때문에 혼란해진다. 예를 들자면 사람의 몸이 아픈 이유도 너무나 궁금하다. 어째서 우리의 몸이 질병이나 혹은 상처로 인해 고통받게 되는 것일까? 아주 약간 뼈가 어긋나는 것, 귀 속에 들어있는 어떤 기관에 이상이 생겨서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 어떤 종류의 기억이 불규칙하게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 사람이 병드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돌이 신경 사이로 들어가 살을 녹이고 뼈를 드러내는 것. 그리고 그녀의 파자마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하나의 싸구려 볼펜. 볼펜.
49
어둠으로 가는 길목의 끝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언제인가 나는 한 번 부엌 바닥에 드러누워서 죽은 시늉을 해 보았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계속 죽어있는 훈련을 한 것이다. 나는 위를 보면서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숨을 멈추었다. 외면적으로는 누가 보더라도 나는 죽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텅 비워 보았다. 이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죽음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죽음이 아니었다. 단지 어둠이었다.
50
나는 매듭을 상상해 본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어두운 복도에 조용히 드러누워 있는 내 의식의 매듭.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이, 여러 가지 것들이 조금씩 그리워진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나와 나 자신을 잇는 매듭도 있을 것이다. 반드시 언제인가, 나는 먼 세계에 있는 기묘한 장소에서 나 자신을 만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따뜻한 장소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거기에 차가운 맥주가 몇 병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곳에서 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은 나다. 주체는 객체이고 객체는 주체이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틈도 없다. 아무런 빈틈도 없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런 기묘한 장소가 반드시 이 세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51
세계라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가능성의 선택이 이런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에게 어느 정도 위탁되어 있다.
52
옛 친구가 보낸 한 통의 편지, 결혼 청첩장이 나를 오래된 거리고 되돌아가게 한다. 나는 이틀 간의 휴가를 얻어서 호텔방을 예약한다. 나는 거기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기분이다. 몸의 절반이 투명하게 변한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내가 내 몸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12년 전에 자는 <거리>에 애인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이 방학을 하면 나는 슈트케이스에 짐을 넣고 신간센의 새벽 첫차를 탔다.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풍경 같지도 않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햄 샌드위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런 아침 시각에 맥주를 마시는 것은 나에게는 하나의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러기>에 도착하는 것은 언제나 정오 전이다. 태양은 아직 중천에 뜨지 않았고 <거리>구석 구석에는 아직 아침의 술렁거림이 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나는 슈트케이스를 끌어안은 채로 커피숍에 들어가 모닝 서비스의 커피를 마시고, 그런 다음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시각에 만나게 되는 <거리>의 모습이 나는 좋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 향기로운 커피, 사람들의 졸린 눈, 아직 손상되지 않은 하루, 내 손가락이 다이얼을 돌리는 소리. 지금 시간은 3시 20분. 시간은 마치 낡은 뉴스 영화의 릴처럼 달그락거리며 돌아간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내 머리 속에는 아직 시간이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다. 마침내 그것은 신간센의 나른한 진동과 하나로 섞여간다. 그 <거리>에 돌아가도 나에게는 이제 만나야 할 상대도 없는 것이다. 전화를 할 상대도 없는 것이다.
53
나는 호텔의 훨씬 앞에서 택시를 내린 후에 썰렁한 아침 대로를 어슬렁 어슬렁 걸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는 이제 만나야 할 상대도 없으며, 전화를 걸 상대도 없는 거라고. 여기는 이제 나의 거리가 아닌 것이다. 우리가 했던 일들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나버렸고, 지금은 모둔 것들이 전부 변해 버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은 이제, 여러 가지 일들이 아니다.
54
해안에는 한 해에도 몇 차례나 익사체가 떠올랐다. 대개는 자살자들이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바다에 뛰어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양복을 입고 주어니에 아무런 소지품도 없는 자살자들이었다. 신문 지방판에 그들의 죽음을 알리는 작은 기사가 실릴 뿐이었다. 신원불명, 여성, 스무 살 전후, 폐 속에 바닷물을 가득히 들이키고 물거품 같이 팽창된 피부를 드러낸 젊은 여자. 시간의 흐름에 잘못 끼여든 유실물처럼 죽음은 천천히 파도에 실려 어느 날 조용한 주택지 해안에 떠밀려온다. 그 중에 한 명은 내 친구였다. 훨씬 전, 그러니까 여섯 살 때쯤의 일이다. 그 아이는 집중호우로 물이 불어난 강에 휩쓸려 죽었다. 봄날 오후에 그 아이의 시체는 탁류와 함께 단숨에 앞바다로 떠내려가 사흘 후에 유수와 함께 해안에 떠올랐다. 죽음의 냄새. 여섯 살 난 소년의 시체가 고열의 가마에서 타는 냄새. 4월의 흐린 하늘에 우뚝 솟은 화장터의 굴뚝. 그리고 회색 연기. 존재의 소멸.
55
나는 예언한다. 5월의 태양 아래. 두 손에 운동화를 들고 낡은 방파제 위를 걸으며 나는 예언한다. 당신들은 무너져 버릴 거라고.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리고, 모든 것은 소멸하는 것이다.
56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사용할 길이 없는 채로 내 안에 쌓인다. 그것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밤에 내리는 눈처럼 그저 조용히 쌓여갈 뿐이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공통되는 괴로움이다. 가톨릭의 교회사는 사람들의 고백을 천상이라는 대조직에 넘겨 줄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편리한 상대도 없다. 자기 자신 속에 끌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57
혼자서 스파게티를 먹고 있으면 자주, 지금이라도 문에서 노크 소리가 나고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비가 내리는 오후는 특히 그랬다. 내 방을 찾아오는 인물은 그 때마다 바뀌었다. 어떤 때에는 고교시절에 딱 한 번 데이트한 적이 있는 다리가 날씬한 여자였고, 어떤 때에는 몇 년 전의 나 자신이었고, 또 어떤 때에는 제니퍼 존스를 데리고 온 윌리엄 홀덴이기도 했다. 윌리엄 홀덴? 그러나 그들은 어느 누구도 방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과연 기억의 자투리답게 방문 근처를 어슬렁거릴 뿐, 결국은 노크를 하는 일도 없이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창밖은 비다. 비가 내린다. 봄, 여름, 가을, 하고 나는 스파게티를 삶았다. 그건 마치 무엇인가에 대한 복수 같기도 했다. 배신한 애인이 보냈던 오래된 연애편지 뭉치를 난로 속에 살며시 집어넣는 고독한 여인처럼, 나는 스파게티를 언제까지나 묵묵히 삶았다. 나는 짓밟혔을 때의 그림자를 독일 셰퍼드와 같은 모양으로 반죽해서 끓는 물 속에 집어넣고 소금을 뿌렸다. 그리고 긴 젓가락을 잡고 알루미늄 냄비 앞에 서서, 키친 타이머가 찡 하는 비통한 소리를 낼 때까지 한 발자국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스파게티는 몹시 교활해서 나는 잠시도 그들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지금이라도 냄비의 가장자리를 슬쩍 넘어서 밤의 어둠 속으로 뒤섞여 들어갈 것만 같다. 열대의 정글이 원색의 나비를 영겁의 시간 속으로 소리도 없이 삼켜 버리듯이. 밤도 또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58
카슨 맥컬러스의 소설 속에는 조용한 벙어리 청년인 등장한다. 그는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고 어떤 때에는 동정을 하고 어떤 때에는 함께 기뻐한다. 사람들은 마치 끌려들 듯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서 이런저런 고백과 자신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마지막에 청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갖 고민을 헤아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그 벙어리 청년과 동일시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며 게다가 글로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어떤 '앙금' 같은 것이 나의 몸 속에 확실히 쌓여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다.
59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는 어떤 무력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앙금이란 그 무력감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이 이 무력감의 본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집어넣을 수 있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운행 시스템을 소유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은 동시에 우리 자신을 규정하고 있다. 그것은 회전목마와 흡사하다. 그것은 정해진 장소를 정해진 속도로 돌고 있을 뿐이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내릴 수도 갈아탈 수도 없다. 누구를 앞지르지도 않고 누구에게 앞지름 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회전목마 위에서 가상의 적을 향해 치열한 데드 히트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를 읽는 것은 지혜의 상자에 보석을 입히는 것과 같다.
60
소설을 쓰려고 할 때 나는 모든 현실적인 제대를 끌어모아서 커다란 냄비 속에 집어넣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용해한 후에 그것을 적당한 모양으로 잘라내어 사용한다. 소설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는 그런 것이다. 리얼리티라는 것도 그런 것이다. 빵을 파는 가게의 리얼리티는 빵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밀가루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61
누가 나의 영혼을 해방시킬 수 있을까? 자기 표현이 정신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것은 미신이며, 호의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신화이다. 적어도 문장에 의한 자기 표현은 어느 누구의 정신도 해방시키지 못한다. 만약 그러한 목적을 위해 자기 표현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일찌감치 단념하는 게 좋다. 자기 표현은 정신을 세분화시킬 뿐이며, 그것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만약 무엇인가에 도달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사람은 쓰지 않을 쑤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쓰는 것 자체에는 아무런 효용도 없고 그에 따른 구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