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나는 우울하거나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광화문을 찾는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앉아 세종로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앞에는 교보문고가 왼쪽으로는 경복궁이 보이고
세종로 한중간에는 이순신장군상이 버티고 서 있다.
그리고 오른쪽 대각선 건너편으로는 동아일보 사옥이 보인다.
이렇듯 역사와 문명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서울의 진정한 한복판이 바로 광화문이다.
여름이면 세종문화회관 통로 마당에 원두막이 설치된다.
그리고 보리와 밀과 가지와 심지어는 벼까지 각종 식물의 화분들로 채워진다.
그 원두막에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원두막에 앉아 다분다분 이야기를 나누다 생맥주집으로 가거나
밤늦게 청진동까지 걸어가 해장국을 먹고 헤어지곤 했다.
그중에는 물론 연인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국화전시회가 열리는 가을에도 그렇게 세종문화회관 통로 마당에서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했다.
어느 때부터 광화문이 혹은 세종문화회관이
내 삶과 글쓰기의 원형 같은 공간이 되었을까.
처음은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경희대 백일장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 때
헤어진 친구를 덕수궁에서 만났다.
그리고 어둠이 내릴 무렵 둘이 걸어서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왔다.
그 커다란 건축물에 놀라 나는 고개를 꺾고 한참이나 지붕 끝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윤후명의 소설 <돈황의 사랑>에 나오는
세종문화회관 벽면에 돋을새김된 ‘비천상’을 직접 확인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여덟 살이었다.
소설가가 된 후에도 나는 광화문을 자주 찾았다.
덕수궁과 대한성공회 건물과 그 옆의 영국문화원과
내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은 경복궁과 덕수궁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 개의 카페가 있어
<봄>부터 마시기 시작해 <겨울>에서 술자리를 끝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1992년인가,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케츠>를 본 날도 그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므로 광화문은 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무대가 되었다.
<국화 옆에서>라는 단편소설에서
나는 세종문화회관 통로 마당의 국화전시회와 함께
거기서 웬 여자와 만나 옆골목 <봄>으로 옮겨가 술을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숱한 사람들과 만나고 또 헤어진 곳이
바로 광화문이요 세종문화회관이다.
그곳은 내 소설의 무대이자 정거장이며
또한 언제든 돌아올 수밖에 없는 문학의 고향 같은 곳이다.
어느덧 소설가가 된 지 십칠 년이 지났건만
광화문 혹은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나의 추억과 사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 삶에 더욱 깊이 각인되며 선명해진다.
애써 돌아보니 등단 소식을 듣던 날도 나는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밤늦게까지 혼자 물끄러미 앉아 세종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무엇을 그토록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날처럼 조금도 변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의 오래된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광부에서 보내는 <아침울림>이라는 메일에 실린 글입니다.
2007년 4월 17일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