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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등산코스 | 문의 |
서울시 양재동 | 만남의 광장 → 옥녀봉 → 정상 | (02)570-6395~7 |
성남시 | 원터→정상 옛골, 원지동 → 정상 |
(031)729-2521~4 |
과천시 | 사기막골 → 정상 서울대공원 → 정상 |
(02)3677-2341~7 |
의왕시 | 청계사 → 정상 | (031)345-2341~3 |
현지교통
① 양재동 : 지하철 3호선 양재역 환승주차장에서 과천방향 화물터미널 버스행 마을 버스를 타고, 화물터미널 입구에서 하차
② 의왕시 :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 2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매시 15분 출발
도로안내 : 외부순환고속도로 학의 IC → 과천방향 312번 지방도 → 1.5km → 청계동
주변관광지 : 망경대, 남태령 옛길, 선바위, 최사립 효자정문
*. 청계산의 유래
청계산(淸溪山)은 이름 그대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산이란 말이다. 청계산에는 원터골, 약초샘골, 어둔골, 두레이골 등 계곡이 어느 산ㅂ다 많은 편이다.
옛날에는 청계사(淸溪山)를 청룡산(靑龍山)이라고 불렀다.
과천관아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하여 볼 때 청계산은 좌청룡(左靑龍)이라 청룡산(靑龍山)이요, 수리산은 우백호(右白虎)의 백호산(白虎山)이라 하였다.
청룡산이라 하던 예는 위 시를 지은 고려 말 목은 이색의 시에 보인다 하고, 청계사란 이름은 고산자 김정호의 우리나라 최초의 지도 대동여지도(1861년, 철종12년)에 보인다.
*. 미륵당 전설
지난 일요일에는 교단작가회 회원들과 청계산을 갔었다. 일행 중 산행을 버거워 하는 분들이 있어 그땐 원터 버스정류소에서 내려서 원터골을 끼고 매봉을 가다가 옛골로 내려와서 두부로 뒤풀이를 하다 왔다. 가다가 돌아오는 곳이 정상이라고 위로하면서.
그때 보던 청계산이 하도 좋아 다시 가고자 벼르다가 장마가 잠깐 빗겨 간 사이 오늘은 나 홀로 청계산에 왔다. 청계산 이곳 저곳에 얽힌 전설을 찾고 싶어서다.
양재 역에서 청계산 입구 행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터 버스정류소에서 내리면 경부고속 국도 굴다리 들어가기 전에 원지동 미륵당(서울유형문화재 제93호)이 있다.
마당에 마모된 작은 3층 석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사지(寺址)로 추정하는 곳이다. 이 탑은 탑신과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된 고려 말서 조선 초 사이의 석탑 같다.
미륵당이라는 현판을 달은 사당 같은 작은 이 건물은 굳게 닫혀 있지만, 내부에는 흰색의 2.25m 석불입상(石佛立像)이 있다. 이 미륵불은 원터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이 토속적인 석불에게 이곳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씩 동제(洞祭)를 올리는데 이 석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일제 강점기에 이 불상에 치성을 드리면 배꼽에서 휘파람 같은 소리가 나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길흉화복을 계시하여 주곤 했다. 이런 영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일제가 이를 탐하여 마차를 동원하여 일본으로 밀반출하려다가 실패하자, 일본 경찰이 1926년 경 불상의 배꼽을 정으로 쪼아내는 바람에 그 영험한 능력을 지금은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그래 그런가. 주위에 느티나무 고목 한 쌍이 장승처럼 서 있어 장승 목이 아닌가 추정케 한다.
*. 옛골 오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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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원터골에서 네 정거장 더 와 있는 옛골을 들머리로 등산을 시작한다.
청계산 들머리에 서서, 상가가 밀집하여 있는 어둔골로 갈까, 능선을 탈까 망설이고 있는데 다른 등산객들은 모두 능선 길로 들어선다. 이런 때는 그들을 따라 가는 것 이 상책이다.
안내도에는 두 코스가 있다. 등산1코스는 어둔골로 이수봉을 오르는 3km의 길이요, 등산2 코스는 3.2km의 능선(목배등,철쭉능선)길이다.
길은 완만한 황톳길로 젊은 가족이 함께 하여도 좋은 길인데, 어제 종일 내리던 장맛비에 등산하기에는 여름 오뉴월 날씨인데도 쾌적하다.
나뭇잎이 모자처럼 내내 햇볕을 막아 주는 길도 있었고, 도중 도중 이 산의 나무로 만들었다는 의자가 있는 쉼터와 통나무층계가 있었다. 나무뿌리가 층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환상적인 조용한 길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 가고 있다.
쉼터 중 가장 멋있는 이름의 쉼터는 봉오재에서 3.5km, 이수봉을 400m 앞두고 있는 구름다리쉼터다. '구름다리'란 한길이나 철길 등을 건너질러 공중으로 놓은 다리인데 어디에 그런 다리가 있는가 하였더니 이수봉을 오르는 길목이라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앞을 막아서는 철조망 속의 봉이 이수봉이라고 좌우로 돌아가라는데
나무숲에 가려 속은 보이지 않는데 경고판이 자못 위협적이다.
-이 지역은 군의 중요한 시설이므로 사전 승인 없이 출입, 접근, 배회, 촬영, 묘사를 금하며 위반할 시는 관계법에 의거 조치함
탑돌이나 하며 이수봉을 지나치나보다 하였는데 뜻밖에 이수봉 정상석이 나타난다. 그럼 아까의 표지 그림이 잘못된 것이란 말인가. 헷갈린다.
*. 이수봉(貳壽峰) 전설
이수봉(546m) 정상석의 비명에는 짤막한 글로 이수봉의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 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니까 이 산으로 인연하여 두(貳) 번이나, 목숨(壽)을 건졌다는 뜻인데,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어떤 사화(士禍)이며 정여창(鄭汝昌)은 어떤 분이신가?
-조선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찬위(簒位)할 때 이를 도와 막강한 세력을 잡은 파에 정인지, 신숙주, 최항, 권람, 강희맹 등 훈구파(勳舊派)가 있었다.
이에 맞서던 파(派)로 전원에 묻혀 유학을 공부하면서 도학적인 유교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던 사림파(士林派)가 있었는데 이들은 고려 유신 길재의 제자들로 영남 유학의 사종(師宗) 김종직과 김굉필, 정여창, 조위, 김일손, 유호인 등이었다.
이 두 파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림파는 훈구파를 욕심 많은 소인배(小人輩)라 하였고, 훈구파는 사림파를 야생귀족(野生貴族)이라 하며 서로 앙앙불락하였다.
조선 연산군 4년에 훈구파 유자광이 성종실록에 실린 김종직이 쓴 사초의 <弔義帝文>이라는 글을 트집 잡아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이 글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은근
히 비방한 것이라고. 연산군은 평시에 선왕인 성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사림파를 좋지 않게 보던 참이라, 이는 김종직( 金宗直)이 선동한 것이라는 훈구파의 말에 격분하여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이에 연루되어 그의 문하 정여창,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유배 후 사사(賜死)하였다. 이것이 4대 사화의 처음인 무오사화(戊午士禍)였다.
이런 사화로 남편이 희생당하자 하가나서 그런 공부, 그런 책은 필요없다고 남편이 지은 책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일화는 정여창 부인의 이야기였다.
*. 마왕굴과 금정수 전설
헬기장 같은 널찍한 안부의 이정표를 보니 직진하여 올라가면 석기봉이요, 좌측은 혈읍재 가는 길이다.
분명히 만경대를 가는 길인데 이정표에 이 산의 최고봉인 청계산 만경대(618m)라 하지 않고 석기봉(608.2m) 가는 길이라 한 것을 보면, 만경대에는 국가 시설이 있어 못 올라간다는 말일 것이고, 대신 철조망을 사이 두고 있는 봉이 석기봉일 것이다.
그래서 좌측의 혈읍재로 내려가고 있다. 석기봉을 왼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전설이 깃든 마왕굴이 있다.
마왕 굴은 커다란 두 개의 굴이요, 오른 쪽 굴에는 맑은 샘이 흘러내리고 있어 수통 둘에 가득 채웠다. 집에 가지고 가서 냉장고에 차게 두었다가 청계산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마시고 싶어서다.
이 근처에 약수터가 또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여기가 금정수(金井水) 같다. 금정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고려말,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분개한 정공산, 이색, 조윤(?), 변계량 등의 우국절사들이 청계사와 망경대, 금정수(金井水)에 숨어들어 고려의 국권회복을 꾀했다(-참길 향토사 연구회 전고).
-조선시대의 학자인 정여창이 스승이 부관참시 당하였다는 소식에 피(血)눈물을 흘리며(泣) 넘었다는 혈읍재(血泣峙)를 지나 망경대 바로 밑에 샘이 있는데 여기가 바로 연산군 시대에 정여창이 은거했다는 곳이다. 이 약수는 정여창이 사사(賜死)되자 핏빛으로 변했다가 이내 금빛으로 변하였다 한다.
-이곳은 1390년 대 고려말 충신 송산(松山) 조견 선생이 흘러나오는 샘물로 갈증을 풀고 쉬어가던 곳이다. 고려가 망하자 두류산(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자를 종견(從犬)이라 하였다. 이는 나라가 망했어도 죽지 않음이 개(犬)가 주인을 따른다(從)는 뜻을 취해서다. 이태조가 공의 절개를 찬양하여 호조판서를 명하였으나 사양하였고, 태조는 그의 의를 기려 그의 형 조준과 함께 청계사로 찾아와서 도와주기를 간청하였으나 절의를 지키고 수락산 송산마을로 옮겨 은거하다 생애를 마쳤다. - (마왕굴 안내 표지 '송산 조견 선생과 마왕굴')
위 글은 마왕굴 앞에 있는 글인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조윤(趙胤)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고려의 유신이로구나!'라고 알게 하지만 문헌에는 정반대로 개국공신으로 나온다. 어떤 문헌에 의거하여 당시의 변절자를 절의자로 바꾸어 왜곡하여 기록하여 놓았을까? 다음은 이런 의혹의 근거가 되는 문헌의 자료다.
-고견의 이름 초명은 윤(趙胤), 호는 송산(松山), 영의정 부사 준(浚)의 아우다. 어려서 중이 되어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다가 30세 넘어 환속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안렴사에 이르렀다. 형 준(浚)과 함께 이성계 추대에 가담하여 개국공신 2등으로 평양군(平壤君)에 봉하여 졌다. 그 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조선 초 국가 최고 요직을 두루 거쳐서 평성군(平城君),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으로 진봉(進封)되었다.
-('한국인명사전' 한국인명사전편찬실편, 1967년신구문화사 865쪽)
그가 받은 부원군이란 조선시대 왕비의 친정아버지에게 주던 정1품의 봉작이다. 이와 같은 글은 국사대백과사전(유홍렬 감수, 동아문화사 1036쪽 '조견)에도 나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조선 개국 초 이태조의 반역을 욕하면서 분연히 송도를 떠나 청계산에 입산하여 송악을 바라보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 움막을 치고 칩거하였던 곳으로, 그곳에서 기와 등의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는 식으로 전하여 오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하는 말인가. 역사를 왜곡하여 오도하는 것도 죄를 짓는 일이다. 빠른 시일 내에 진위려부를 가려내어 바로 잡을 일이다.
*. 망경대(望京臺) 전설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피하여 이 산에 숨어들었을 때 스승인 김종직이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피(血)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泣) 넘었다는 혈읍재(490m, 血泣재)를 지나니 비로소 망경대가 머리에 멋진 통신시설을 이고 서 있다. 부관참시(剖棺斬屍) 란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죽었을 때 관을 쪼개어 송장의 목을 자르는 극형 중에 극형을 말한다.
-청계산의 주봉 망경대(望京臺)의 옛 이름은, 하늘 아래 만(萬) 가지의 경승을 감상할 만한 터라고 해서 만경대(萬景臺)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고려 유신들이 맥수지탄(麥秀之嘆)으로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바라보던 곳이라 하여 망경대(望京臺)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수봉 건너편에 있는 국사봉(國思峰, 538m)에도 연관된다.
-나라가 망하자 목은 이색(李穡) 같은 우국지사나 고려 유신들이 청계산에 은거하여 살 때 이 봉에 올라가서 옛 나라('國)를, 생각(思)'하였다 해서 국사봉(國思峰)이라 했다는 것이다.
목은 이색이 지은 이 시조의 상징 의미는 다음과 같다.
'白雪': 고려 유신들/ 구름: 조선에 충성하던 신흥 세력/ 매화: 고려 충신들/ 석양: 고려 멸망
매봉의 안부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매봉에 오르니, 기다렸다는 듯이 매봉(582.5m) 정상석이 깊이 있는 음각으로 서서 나를 맞는데, 그 뒷면에 청마 유치환의 시(詩)가 나의 호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시인들이여, 독자가 없다고 외로워 말라. 이렇듯 중요한 고비마다 시(詩)는 아름다움을 우러르고 있는 법이니-.
매봉에서는 과천 쪽의 대공원과 경마장과 그 너머 관악산의 전망이 멋지다.
거기서 조금 내려와 있는 매바위(578m)에 한 젊은 여인이 산하를 굽어보고 있다. 오른쪽에 무성한 빌딩 숲이 분당이요, 왼쪽에 넓은 공터가 여의도비행장을 옮겨온 서울비행장(성남비행장)이다.
수많은 세대 중에서 잠깐이나마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그 여인과 나와의 인연인 모양이다. 그래서 처음 만나고 헤어지는 숱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단 한번만의 나를 표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門자모양의 봉이 과천'매봉'
그런데 이 청계산에는 과천 쪽 절고개 아래의 매봉(368m)과 청계산의 매봉(583m)으로 똑 같은 이름이 둘이나 있다.
왜 매봉이라 했을까?
보통은 산의 봉의 모양이 매 같다 하여 매봉이라 하지만, 매가 머무를 수 있는 높은 곳이라 하여 매봉, 매바위라 한 것 같다.
매는 눈이 밝아 높은 곳에서 먹이를 발견하면 수직으로 직하하여 꿩 같은 새들을 잡아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런 매는 큰 독수리류를 제외한 소형 또는 중간형의 새(천연기념물 제323호)를 지칭한다.
거기서 다시 또 얼마를 내려오다 보니 돌문바위가 있다. 바위에 다른 바위가 기대어 서서 삼각형의 문을 만들고 있는 바위다. 그 옆에 이런 소개의 글이 있다.
-돌문바위 속에서 청계산의 정기를 받아 가세요.
젊은 부부 한 쌍이 그 돌문바위를 세 번씩 드나들며 돌고 있다. 그들은 기(氣)를 받으며 무엇을 빌었을까.
기(氣)란 무엇인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인 기운을 말한다. 기(氣)는 생활 활동의 힘이요, 원기요, 정기, 생기, 기력을 말한다. 많이많이 받아 가시라.
*.충혼비 앞에서
그 매바위와 매봉 사이의 하산 길에 '청계산 충혼비'가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982년 6월 1일 군작전 중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한 53인 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비입니다.' →50m.
이곳은 저기 보이는 비행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는 우리의 영공(領空) 수호하다가 산화한 장소로 순직한 용사는 조종사인 공군 대령, 소령을 위시해서 공군이 4명, 육군 2명의 대위를 포함해서 49명의 육군인데 그 중에 일등병만도 44명이니, 살아있으면 지금 40 전의 나이라 얼마나 통탄한 일이던가. 그 슬픔을 비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옥녀봉에서
통영의 사량섬 지리망산에도 '옥녀봉'이 있는데 옥녀의 친아버지가 딸을 범하려 하자 옥녀가 옥녀봉에서 몸을 던진다는 구슬픈 이야기가 있던데, 여기에는 지명 유래담은 없는가 하는데 멋있는 통나무 팻말이 청계산 종주를 마치려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오래 걸으셨습니다. 옥녀봉이 보입니다.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판서 김노경(金魯敬)의 묘터가 있던 곳이 옥녀봉(375m)으로 이 일대를 공동묘지로 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는 지역이다. 옥녀란 어원의 유래는 없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하산길인데 팻말에 이런 글이 쓰여 있다.
-'황토맨발길'-맨발로 걸어보세요.
*. 산을 가꾸는 사람들
옥녀봉 가는 길에 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짙은 황적색 바탕에 흑자색의 반점이 있어서 호랑나비 무늬와 닮아서인가. 호랑나비가 즐겨 찾는다는 우리의 꽃 참나리다.
참나리를 보면 하나도 감춤 없이 나를 들어내는 솔직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아서 정이 간다. 뒤로 사르르 말린 잎으로 멋을 부리면서 모가지를 길게 뽑고,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수줍은 듯이 머리를 땅을 향하여 숙이고 있는 모습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는 듯 신비롭기 그지없다.
그런 참나리 같이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 고장에 살면서 이 산을 가꾸고 있는 모양이다.
공중전화박스를 지나 곧바로 가라는 어느 산꾼의 말대로 그곳을 지나는 이 길은 깨끗하고 유난히 쉼터가 많고 이정표가 친절하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층계는 통나무 따로, 길 따로여서 허들 경기를 하듯 힘이 들었는데 이곳의 통나무 길은 황토흙과 완전히 조화 괸 길이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놓은 흔적이 역력하다.
오색의 통나무 길은 비가 와서 흐르는 물길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만들어 놓으라니 만든 층계일 뿐이었다. 그러나 청계산에는 통나무 층계는 물론 물길까지 곱게 내어서 물길이 할퀴고 간 흔적이 전연 없다.
떨어진 이정표 팻말도 그냥 두지 않고 끈으로 정성스럽게 묶어 놓았다.
쉼터 통나무 팻말에 이를 감사하는 글이 바로 내 마음을 읽은 이가 쓴 글 같다.
- 청계산에 가면 '개나리골 삼림욕장'이 있다. 이곳은 입산료를 받는 국립공원이 아닌데도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 관리가 정성스럽기 이를 데 없어서 찾는 사람이 주인대접을 받는 것을 실감케 한다. 곳곳에 쉼터와 의자가 있는가 하면 '황토맨발 등산길' '임꺽정 길' 등 멋스런 이름이 팻말에 새겨 있다. 이 공원을 관리하는 구청직원은 분명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가 섬겨야 할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진정한 공봉(公僕)이다. -배종대 고대 법대학장의 '동아일보 칼럼' 중에서
쉼터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시원한 '산바람 쉼터'가 있고, 거기 나이테가 있는 통나무 조각 팻말에 동요 '산바람 강바'람 가사가 콧노래를 부르게 한다.
첫댓글 버스 종점인 옛골에서 올라 매봉거쳐 원지동으로 내려오면 서너시간 걸립니다 음식점이 많아 뒷풀이 하기도 좋구요 ...간단한 도시락 갖고가서 헬기장에서 펼쳐놓고 라면 끓여 밥말아 먹으며 소주 한잔 쭈~욱! ㅋㅋㅋ....그재미두 좋죵!....강남역에서 만나면 좋을것 같네요 모이기두 쉽구 거기에 버스 있거든요 ^^
언제 가남요.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즐거운 명절, 해피 명절 되세요.
수려한네요. ㅋㅋ 잼있겠다... 전 오늘 집앞 금성산성에 다녀왔어요. 글구 담양온천에...
얼굴 보고 싶은데..주일날이라 올수있을란가.
글쎄 미워 죽겠어요. 함께 가자면서 주일날 날잡구 ㅠㅠ 미워~~~~~ 바람님.
출발일은 10월 29일 5번째 일욜로 잡았습니다. 시간은 오전 10시 청계산 입구 버스종점 옛골에서 입니다.
옛골을 모르시는 분은 9시 30분 강남역 6번 출구 뉴욕제과 앞으로 오시면 저랑 같이 가실 수 있습니당 ^^ 010-9766-5379
저도 시간될것 같습니다..ㅋ 그땐 중간고사도 끝날것 같으니깐요~!!
좋소~~~ 저도 올라오도록 해볼께요.. 다크호스님, 산우물님..그날 꼭 뵈요....구여운 정수야 니두.. 히말리 님은 시간되세여??^^
좋아요 청계산...근디 내 몸무게 땜시 잘 따라 갈수 있을런지ㅎㅎ
저두 무릎이 아파서 살곰 살곰 걸꺼여요 ^^
바람님~~ 28일과 29일 저와 같이 홍천 수리재에 가셔야 하는 것 아녀요?? ^^;;; // 에고~ 29일은 선약이 있는 것 같네요.. --;;; // 세실아~ 보고싶다~~ ^^;; // 요즘 전 집에서는 인터넷을 못한답니다...
29일은 춘마하는 날~
바람님 죄송~~ 바람님이 여러명 있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