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2장18-22절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260814 원주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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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트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이 말씀의 축복과 은혜가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와 각 가정 안에 충만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발효된 포도주와 가죽부대의 원리
주님께서는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포도가 발효되는 과정에서는 가스가 발생하고 크게 팽창하게 됩니다. 이때 낡은 가죽부대가 아닌 신축성 있는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팽창하는 압력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과거 사역 초기, 교우분들이 전해준 포도로 효소를 만들겠다며 페트병에 설탕을 적게 넣고 내용물을 꽉 채워 꼭 막아둔 적이 있습니다. 결국 가스 압력을 견디지 못한 페트병이 싱크대 안에서 터져 난리가 났습니다. 가스가 배출될 여지를 주지 않고 용기의 한계를 넘어서서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가죽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의 위장 등을 씻어 말려 포도주를 발효시키는데,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으면 발효 가스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됩니다.
2. 복음과 문화의 수용 및 변용
이 원리는 교회사 속 복음과 문화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복음이라는 본질이 인간의 제도나 문화라는 가죽부대에 담겨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중세 가톨릭의 사례: 글을 모르던 시대의 사람들과 이방 미신의 영향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림, 상징물, 성인 추대 등의 형식을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본질에서 이탈하면서 성인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등 변질을 겪게 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문화를 수용해 복음을 전하려는 고민의 결과였으나, 형식이 본질을 해친 사례입니다.
한국 교회의 고유 문화 (추도예배와 장례): 전 세계 기독교 중 한국에만 존재하는 문화가 '추도예배'입니다. 유교적 장례 습속에서 입관, 발인, 하관의 3단계 장례예배 형태를 취해 기독교적 의미(낡은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음,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의 이사, 흙으로의 돌아감)를 담았습니다. 또한 기일에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던 유교적 문화를 대체하여, 부모님의 신앙 유산을 기리고 가족의 우애를 다지는 '추도예배'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문화의 변찬: 최근에는 무빈소 장례나 화장 문화의 보편화 등 장례 형식이 크게 변하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회적 흐름에 맞춰 추도예배의 형태도 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의식과 문화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바꿀 수 있는 '부대'입니다. 그러나 문화적 형식이 고착되어 복음의 본질을 가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3. 새 술은 새 부대에: 역사 속 신앙 쇄신 운동
기존의 틀과 문화가 고착되어 본질을 잃을 때마다, 주님은 새로운 가죽부대를 통해 새 술을 담으셨습니다.
개신교와 교단의 형성: 중세 가톨릭의 한계 속에서 마르틴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핍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침례교인들 및 청교도들을 통해 개신교의 부흥이 이어졌습니다.
새로운 성령 운동: 성공회에서 감리교가, 감리교에서 성결교가, 성결교에서 오순절(방언) 교단이 출범할 때마다 기존 교단들로부터 배척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핍박 속에서도 새 가죽부대를 준비하셔서 신앙의 새 역사를 이어가셨습니다.
4. 헌 가죽부대와 새 가죽부대의 갈등 및 역사적 경고
굳어버린 헌 가죽부대는 새로운 부흥의 역사나 포도주의 발효 압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경배와찬양 곡 중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라는 가사가 있듯, 교회사 속에서 헌 부대는 버려지고 새로운 부대가 준비되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웨슬리, 루터, 청교도들이 겪었던 환난이 그러했습니다.
개혁되지 못한 채 굳어진 부대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한때 부흥했던 예루살렘, 안디옥, 소아시아, 로마, 유럽의 교회들은 개혁에 실패하여 촛대가 옮겨졌고, 현재는 이슬람이나 세속화, 술집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대부흥의 역사 현장이었던 평양 장대현교회 터에는 현재 김일성 동상이 들어서 있습니다.
영적 패권을 잃으면 물질과 영향력의 축복도 함께 저물어갑니다.
5. 헌 부대의 쇄신과 참된 복음의 능력
그렇다면 헌 가죽부대는 정녕 버려질 수밖에 없는가?
굳어진 양가죽 부대도 바닷물(소금물)에 담가 오그라들게 한 뒤, 염분을 빼고 다시 가공하면 신축성을 되찾아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대구(과거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던 영적 거점) 역시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자기를 비우는 '낮아짐의 시간(바닷물에 담그는 시간)'을 가져야만 다시 새 가죽부대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6.교회가 되찾아야 할 본질:
실제적인 보혈의 능력: 단순히 "예수 피로 죄 사함 받았다"고 찬양만 부르는 교회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회개의 영이 임하여 실제 죄 사함과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복음: "너를 변화시키지 못한 복음이 진짜 복음이냐?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이 복음인가?"라는 김용의 선교사의 도전처럼, 복음은 인격과 삶을 바꾸는 실제적 능력이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본질로 돌아감: 웅장한 예배당, 재정, 전통, 찬양, 좋은 설교라는 형식을 넘어, '피 묻은 십자가의 능력'이 교회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겉모양과 형식에 매인 헌 부대를 벗어던지고, 십자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새 가죽부대'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보혈이 살아 운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피 묻은 십자가의 능력 안에 날마다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충만하게 하옵소서.
모든 성도들의 삶과 인격의 중심에 피 묻은 십자가가 서게 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