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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간 |
종주 일자 |
주요산 |
종 주 코 스(km) |
도상거리 |
소요 시간 | ||
접속 |
정맥 |
계 | |||||
1 |
|
복주산 |
수피령-(5.2)-892봉-(4.6)-복주산-(2.3)-하오현 접속거리 463번도로 (2) |
463번 도로 2 |
12.1 |
14.1 |
06:45 |
2 |
|
광덕산 |
하오현-(3.1)-회목현-(2.2)-광덕산-(2.2) - 광덕고개 / 접속거리 463번도로 (2) |
463번 도로 2 |
7.5 |
9.5 |
04:55 |
3 |
|
백운산 |
광덕고개-(3.0)-백운산-(3.2)-도마치봉-(2.6)-신로령-(2.3)-국망봉-(1.5)-견치봉-(1.6)-민드기봉-(2.5)-도성고개 |
사직 2리 4 |
16.7 |
20.7 |
09:55 |
4 |
|
청계산 |
도성고개-(1.4)-강씨봉-(2.6)-오뚜기령-(3.5)-청계산-(0.8)-길마재-(2.8)-노채고개 / 접속거리 연곡4리(5) |
연곡 4리 5 |
11.1 |
16.1 |
07:50 |
5 |
|
운악산 |
노채고개-(1.2)-원통산-(1)-노채고개-(4.5)-운악산-(3.8)-47번국도 / 접속거리 약수터(1) |
약수터 1 |
10.5 |
11.5 |
07:00 |
6 |
|
국사봉 |
47번국도-(4)-56번지방도(명덕삼거리)-(1.5)-수원산분기점-(4.7)-국사봉-(2.3)-큰넓고개 |
|
12.5 |
12.5 |
06:00 |
7 |
|
죽엽산 |
큰넓고개-(1.5)-작은넓고개-(4)-죽엽산-(6)-다름고개(98번도로) |
|
11.5 |
11.5 |
06:05 |
8 |
|
천보산 |
다름고개-(2.1)-축석령-(1.5)-백석이고개-(2.7)-오리동-(2.8)-덕고개-(2.5)-큰테미-(2.4)-샘내고개 |
|
14.0 |
14.0 |
06:15 |
9 |
|
한강봉 |
샘내고개-(3.2)-창업굴고개-(2.5)-오산삼거리-(0.8)-산성-(0.7)-작고개-(1.6)-호명산-(2.5) -한강봉-(1.8)-챌봉-(3.8)-울대고개 |
|
16:9 |
16.9 |
09:45 |
7. 산행정보 및 일정
[1] 총 산행 거리 : 17km
[2] 구간별 거리
수피령 ---[2.3] ---복계산 갈림길 --- [4.9]---943봉 --- [2.2] --- 950.6(칼바위봉) --- [2.7] --- 1082(벙커봉) --- [2.3] --- 복주산 --- [2.9] --- 하오고개
[3] 산행 코스 및 시간
(1) 산행지 이동
경춘국도 --- 가평읍내 --- 75번도로(명지산, 연인산 방면) ---화악산 터널 --- 화천군 사내면(사창리 택시) ---56번 도로 --- 수피령
(2) 산행코스
수피령/들머리 - 복계산갈림길 - 990m봉 – 950m봉 - 942m봉 - 950m봉/헬기장 - 1070m봉) - 1100m봉 - 복주산 - 헬기장 – 하오고개
[4] 산행의 실제
(1) 산행지 이동
화천군 사내면 도착 ---> 택시 공용 주차장 주차 ---> 사내 택시로 이동 ---> 수피령 도착(08 : 35분경)
(2) 산행코스 및 시간
08 : 40, 산행준비 ---> 전적비 배경 사진촬영
08 : 50, 수피령(강원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출발
09 : 10, 촛대봉 갈림길 / No58송전탑 / 우회하여 복계산 방향진행 [촛대봉]
09 : 20, 임도갈림길 표시기
① (좌)---> 임도갈림길 많은 표시기
② (좌)임도를 버리고 산비탈로 오름
09 : 25, 넓은공터(헬기장)--->(좌) 잡목이 빼곡한 산비탈로 희미한 길을 따라 오름--->능선 도착 / 정맥길을 만남
09 : 41, 복계산 / 칼바위봉 갈림길(좌)
10 : 14, 바위 전망대
10 : 44, 950m봉, 복계산 등산로 4지점 표지판이 있는 봉--->칼바위봉
11 : 05, 완만한 오름 ---> 능선봉(좌)
11 : 20, 945m봉 ---> 2-5-3-1푯말 군진지 교통호를 지남
11 : 38, 942m봉 / 2-5-3-HQ 벙커봉
12 : 05, 892m봉진지 / 이정표(←943고지 0.8km / ↑해방촌 2.5km)
12 : 25, 950m봉 / 헬기장 (950봉 표시 코팅지 / 산친구 산악회) / 점심식사
13 : 08, 군시설물 천막(892고지)
13 : 15, 쌍둥이 바위
13 : 23, 이정표 (954 2.5km)
13 : 40, 1070m봉 / 벙커봉 / 이정표(954 5.1km / 복주산 1.9km)
13 : 45, 군사도로 갈림길
14 : 10, 헬기장 / 군시설막사
14 : 25, 1110m봉 / 벙커 / 땡땡이종 / 화생방신호안내문
14 : 30, 복주산 삼각점--->헬기장
14 : 40, 복주산 직전 암봉
14 : 46, 복주산 정상 표지석--->(직) 급내리막
15 : 30, 헬기장 / 잠곡저수지 조망 ---> 급 내림 길
15 : 55, 타이어 계단--->하오고개(화천군 사내면 광덕리) / 산행 종료
16 : 20, 임도를 따라 하오고개 터널 ---> 사내면 택시 주차장
18 : 00시경, 수원도착, 저녁식사 / 일정 종료
[5] 참고자료(택시)
○ 사창리 택시 ---> 다목리(13,000원) ---> 수피령(15,000~16,000원)
○ 다목리 콜택시(033-441-3580) ---> 수피령(4,000~5,000원)
○ 사창리 택시 : 033-441-3444 / 5544 / 5545 / 3100 / 3111 / 0023 / 4660
8. 산 행 기
[1] 한북정맥 시발점 수피령으로
2011년 9월 18일 05시 30분, 박사장 내외분과 셋이 수원에서 출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경춘국도 ---> 가평읍내를 지나 75번도로(명지산, 연인산 방면)로 진행, 화악산 터널을 통과하여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 도착(08 : 20분경)하여 사창리 공영 주차장에 주차시킨 후 사창리 택시로 한북정맥의 출발지인 『수피령』으로 이동을 했다.
[참고자료 1 - 1] 화천군 사내면
화천군 1읍 4면의 하나. 본래 사탄향의 소재지이므로 시룬 또는 실운(實雲)으로, 변하여 곡운(谷雲)이라했는데, 조선영조 41년(1765) 춘천군 도호부에 딸린 사탄내면(史呑內面)이 되어 수밀(藪密), 현내(縣內)를 관할하다가, 고종 32년(1895)에 史呑內面이 줄어 사내면으로 개칭되어 신촌(新村), 영당(影堂), 수밀(藪密), 면대(面垈), 창리(倉里), 졸대(卒垈), 명월(明月), 실내(實內), 반암(磻岩), 내동(內洞), 맹대(孟垈), 검단(儉丹)등 12개리로 분할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경기도 영평군(永平郡.지금의포천군) 이동면(二東面)의 도평리(桃坪里) 일부를 편입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공산치하 김화군 사내면으로 있다가, 1953년 수복되어 군정시 포천군 사내면으로 되었고, 1954년 10월 21일에 화천군으로 편입되어 현재, 사창(史倉), 명월(明月), 용담(龍潭), 삼일(三逸), 광덕(廣德) 등 5개 里를 개편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에 인접해 있으며, 서쪽은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북쪽은 철원군 금화와 연결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670년 평강(平康) 현감인 김수증(金壽增)이 자기 호(號)를 따서 이 지역을 곡운(谷雲)이라 칭하였으며 또한 이곳을 옛날 사탄향(史呑鄕)의 소재지 이므로 이를 따서 사탄내국(史呑內局),사내리(史內里)라고도 했다.
[참고자료 1 – 2] 사창-리(史倉里)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으로 옛 사탄향(史呑鄕)의 창고가 있었으므로 사창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말, 솔대, 횃골을 병합하여 사창리라 하였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 사창 1,2,3,4리로 분할되었고, 1974년에 5,6리로 분할되었다.
예로부터 실은창말 혹은 창말이라고 불리웠다. 또한 세군데 집터와 여덟고개로 둘러 싸였다하여 3대(垈) 8관이라 하였다. 3대는 솔대(현 사창6리 지역), 면대(현 삼일리 지역, 27사단 사령부지역), 맹대(현 광덕리지역)를 칭한다.
창말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금이 피신을 할 경우에 이곳으로 피신하려고 국창(國倉)을 지어놓고 토지에서 나오는 賭地를 받아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나눠주고 햇곡식이 나오면 매년 도지를 받는 일을 되풀이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로 국창이 지어져 있었다하여 창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며 외창(外倉)과 내창(內倉)이 있었고 서적도 보관했다고 한다.
[2] 수피령(水皮嶺)
08 : 40분경, 수피령(780m)에 도착을 했다. 고개 마루에는 「여기는 수피령 정상입니다. / 해발 780m // 여기는 수피령 정상입니다. / 철원군 – 화천군 경계 / 강원도 도로관리 소장」이라 쓴 대형 도로표지판과 「건국 건강 영농조합」에서 세운「다목리 / 상서면 / 화천군」표지석을 비롯하여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고 「大成山地區 戰蹟碑」도 세워져 있다.
한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추가령(752m)에서 시작하여 백암산(1,110m)을 거쳐 적근산(1,037m), 대성산(1,174m)을 넘어와 서서히 서남진하여 마지막 파주의 장명산(102m)에서 서해로 잠기는데 국토가 분단되어 북한 구간은 물론 적근산과 대성산도 민통선 지역이여서 출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성산과 복계산(1,057m) 사이에 있는 『수피령(780m)』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수피령은 남한의 정맥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고개로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철원군 근남면 와수리」로 이어지는 56번 국도상의 고개다.
[참고자료 2]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
김화군 근남면의 지역으로 「엿다니」 또는 「육단」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피, 문수동」을 병합하여 육단리라 하였다. 38선 이북 지역이었다가 1954년 수복,1963년 철원군에 편입 되었다.
[참고자료 3]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多木里) :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본래 다항(多項)리라 하다가, 이조 때 황장목(黃腸木)을 많이 심어서 나라에서 쓰려고 금양하는 황장갓이 있었으므로, 나무가 많다는 의미에서 다목(多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창바우, 도리동, 언동, 장재울, 늑동, 약동을 병합하여 다목리(多木里)라 하였다. 1979년 9월 1일 다목1, 2리로 분리되어 특히 다목1리는 수복 당시 아무나 와서 집만 지으면 살게 되어 해방촌으로 불리우고 있다. 다목1리
북쪽에 대성산이 있다.
수피령에 도착해 보니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해 있고 등산복 차림을 한 30여 명의 산꾼들로 소란하다.
우선 전적비 오르는 계단에 배낭을 내리고 신발끈과 스틱의 길이 등을 조율한 후 戰蹟碑 階段을 오르는데 계단 앞에「대성산지구 전적비」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대성산지구 전적비
― 관리번호 : 16-2-21
― 소재지 :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 건립자 : 육군 제15사단
― 관리자 : 육군 제6685부대
1951년 6월 9일 국군 제2사단 17연대가 대성산 1042고지에서 황동 중인 중공군 제58사단 177연대 병력을 섬멸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 1042고지와 신월동 및 865고지를 탈환한 후 연이어 6월 14일까지 승암고개, 삼천봉, 바조봉 일대까지 적의 공격 기세를 분쇄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적 사살 453명, 생포 19명, 55점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의 피해는 전사 38명, 전상 123명으로 불후의 전공을 세웠다.
육군 제 15사단에서는 대성산지구 전투 장명들의 영웅적인 전공을 높이 찬양하고 조국 수호를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넋을 추모하며 그 위훈을 자손만대에 길이 전하고자 1980년 8월 15일 이 탑을 세웠다.」라고 쓰여 있다. (전적비 뒤에도 같은 내용의 동판이 부착되어 있음)
돌계단을 밟고 올라 「전적비」앞에 서서 잠시 묵념을 한 후 전적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전적비 뒤편 나무 계단을 밟고 오르면서(08 : 50분) 한북정맥 첫 구간을 시작한다.
[3] 오를 수 없는 대성산(大成山)
완만한 능선 오름 길을 따라 진행하기를 10여 분(09 : 10분경), 송전탑(NO58)이 있는 삼거리(촛대봉 갈림 길)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전방을 보니 웅장한 산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大成山(1,174m)』이다. 한북정맥 상의 산이지만 민통선 지역에 위치한 산이라 오를 수 없는 산이다.
「대성산(1174m)은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상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1,174m의 큰 산이다. 이 산정에서는 서북쪽의 오성산(해발 1062m)과 근북 ‧ 근동 일대, 6‧25당시의 저격능선 격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동북쪽으로는 적근산(해발 1,073m)이 지척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복계산(해발 1,057m)이 이웃하여 있고 복주산(해발 1,152m)과 광덕산(해발 1,046m)이 아스라이 잡힌다.
대성산은 우리나라의 척량산맥(脊梁山脈) 인 태백산맥중의 거봉이며 과거 6‧25전란 시에는 이 산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전투에서 적 사살 3만의 큰 전과를 올린 금성지구 전투를 비롯해서 싸리골 전투, 육단리 전투 등 大小間에 촌보의 양보도 없는 피의 전사(戰死)를 남겼던 유서 깊은 곳이다.
대성산 북쪽 기슭에는 1959년 사라호 태풍시 경북 울진에서 이주한 마현 1리와 1968년 향군출신으로 입주 조성한 마현 2리 주민들이 피땀어린 노력 끝에 전답을 옥토로 다듬어 부농으로 탈바꿈시킨 마을이 있다.(민통선 출입통제 지역임)」라고 철원군 문화관광 홈 / 관광지 정보에 소개를 해 놓고 있다.
민통선 안에 있는 산이라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산이라 멀리서 웅장한 산줄기를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제 산행 기회가 있으면 꼭 올라보고 싶은 산이다.
[4] 복계산(福桂山) 갈림길
7, 8분여 휴식을 가진 후 우측 임도(군사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을 하니 임도 좌측으로 몇 개의 정맥 표시기가 매달려 있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해도 될 것 같아 표시기를 무시하고 3분여를 더 진행했다. 더 많은 표시기가 좌측으로 매달려 있다. 임도를 버리고(09 : 20분경) 가파른 비탈로 올라붙었다.
모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5분여를 오르니 넓은 공터(헬기장?)가 있고 정맥 표시기는 좌측 잡목이 빼곡한 좁은 길 쪽으로 매달려 있다. 잡목을 헤치며 희미한 길을 따라 능선에 올라서니 다시 뚜렷한 길이 나타난다. 잠시 마루금을 벗어났던 모양이다.
09 : 41분, 지도상 『촛대봉(1,010m)』아래 『복계산』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진행 방향 좌측으로 바짝 꺾어(약 90도) 정맥 표시기가 매달려 있고 우측으로도 뚜렷한 길이 나 있는데『복계산』가는 길이다. 선답자들에 따르면 약 35분여를 가면 『복계산(1,057m)』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왕복 1시간 30분이면 『복계산』정상에 올라 오늘 산행 구간의 원근 산들을 조망하며 浩然之氣를 누릴 수 있는데 마루금을 막 밟은 터라 갈 길이 멀고 시간도 빠듯한 듯하여 『복계산』정상 오름은 후일로 미루고 정맥 표시기를 따라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5] 복계산(福桂山, 1,057m)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에 위치한 복계산(福桂山, 1,057m)은 한북정맥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적근산(1,073m)과 대성산(1,175m)을 거쳐 수피령(862m)에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아 1010봉인 촛대봉에서 한북정맥은 남쪽 복주산(1,152m)으로 이어지고, 북서쪽으로 가지를 친 능선 상에 솟아 있는 산이 복계산이다.
복계산 북동쪽에는 휴전선과 최단거리에 있는 대성산(1,175m)이 있고 남쪽에는 복주산(1,152m)과 마주보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동쪽으로 대성산이 지척에서 바라보이고 북쪽으로는 철원평야가 한 폭의 그림같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남쪽으로는 복주산과 회목봉을 거쳐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마루금이 펼쳐지고, 경기도에서 제일 높은 화악산도 뚜렷하게 보인다.
정상 서쪽 기슭에는 해발 595m의 산정에 깎아 세운 듯한 40m 높이의 층암절벽이 있는데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비감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복계산 일대에 은거한 후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매월대」라 부르고 이곳 마을 이름을 「매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매월대 앞 계곡에는 높이 10여m의 「매월대폭포(선암폭포)」가 있다.
복계산 등산기점은 매월산장 앞 주차장이 대표적인 기점이다. 주차장에서 매월대폭포를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다시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가 갈림길에서 남서릉을 타고 「원골계곡」과 「청석골세트장」을 지나면 주차장인데 약 5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정상에서 남쪽 촛대봉과 칼바위를 거쳐 원골계곡으로 하산해도 되고, 매월대 코스는 암릉을 타야 하기 때문에 암릉에 자신 있는 산악인만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초보자나 노약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진혁진의 백두대간 발췌)
[6] 原始林 그대로의 淸淨地域이자 戰爭의 傷痕이 남아 있는 산
능선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진행을 하다 보니 수명을 다한 아름드리나무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 있고 속살이 다 썩어 거죽만 남았으면서도 잎이 무성하여 100여년은 거뜬히 더 살 것 같은 나무가 至賤이고 간혹 숯덩이로 변한 나무 등걸도 자주 눈에 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原始林 그대로의 淸淨地域이자 戰爭의 傷痕이 남아 있는 산이다.
[7] 전망바위
10 : 14분경, 바위 능선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오르내리기를 몇 번 거듭하니 길 좌측으로 峰 하나가 솟아 있다.
잡목을 헤치고 바위 봉(전망바위)에 오르니 작은 돌탑이 있고 시야가 一望無際로 툭 터진다. 촛대봉 갈림길에서 보았던 『대성산』이 같은 눈높이 상에서 또렷이 보이고 그 너머로 남북을 갈라놓은 DMZ도 선명히 눈에 와 닫는다. DMZ 너머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녘 땅에 속한 산들이 첩첩이 포개져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아스라이 사라진다. 가야할 방향 몸을 돌리니 광덕산 정상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산 아래로 더 넓은 철원평야도 한 눈에 들어오고 발 아래로 굽어보니 화천 사창마을의 논밭과 인가가 정답게 품안에 안긴다. 돌아보고 굽어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物我一體의 경지란 이런 경우를 두고 이름이리라.
[8] 칼바위봉
전망바위에서 眺望을 滿喫하고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걷기를 20여분(10 : 44분경), 복계산 등산로 ④지점 표지판을 세워 놓은 峰에 올라 잠시 주변을 살피고 쉼 없이 진행,
11 : 05분경, 990m, 『칼바위봉』에 올랐다. 칼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 『칼바위봉』이란 이름을 붙인 모양인데 조망도 별로고 특징도 없는 봉이라 그대로 지나쳤다.
[9] 참호와 벙커가 연이어 설치되어 있는 1000m 高地 稜線
11 : 20분,『945m 봉』을 지나 다소 가파른 봉을 향해 오르니 길 좌우로 참호와 통행호가 연이어 있고 전화선(삐삐선)도 마루금을 따라 계속 이어져 있다. 남북이 대치하는 최전방의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지역이다.
11 : 35분, 헬기장이 설치되어 있는 峰에 올랐다. 봉 정상에는 2-5-3-HQ 벙커와 삼각점, 벙커 위에 깃대가 있고 산친구 산악회에서『942m』봉 임을 표시하는 코팅지를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았다. 후미로 오는 박사장 내외를 기다리며 휴식. 잠시 후 박사장 내외 도착. 5분여를 더 쉼을 취하고 다시 출발.
『942m』봉을 뒤로하면서 起伏이 거의 없는 樹木이 鬱鬱蒼蒼한 능선 평지 길의 연속이다. 아마도 1000m 고지에 오른 때문이리라.
11 : 55분, 참호가 있는 봉을 지나고
12 : 55분, 「←943고지 0.8km / ↑해방촌 2.5km」이정표를 세워 놓은 『892m』봉 임도(군사도로) 삼거리에서 우측(좌측 해방촌 방향이 아님)으로 진행
12 : 20분, 임도를 버리고 비탈길로 들어서서 「2-5-1-3」의 통행호를 지나 2, 3분 오르니(12 : 25분) 시야가 툭 터지는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 들머리에 「←892고지 0.8km / ↓954고지 0.3km」라 표시된 망가진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탄피종을 비롯하여 벙커가 설치되어 있고 벙커 위에는 『2-5-3-HQ 벙커봉』에서와 마찬가지로 깃대와 『950m』봉 표시 코팅지(산친구 산악회)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역시 전망이 뛰어나 『광덕산』기상 관측소가 더욱 뚜렷이 보인다.
[10] 산에서 먹어보는 산채비빔밥
시계를 보니 12 : 30분 넘고 있다. 1000고지를 몇 번 오르내렸기 때문인지 배꼽시계도 점심식사 기별을 알린다.
박사장 사모님, 점심식사로 산채 비빔밥을 준비했단다. 큰 그릇을 꺼내 준비해 온 밥과 산채를 붓고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간을 해 버무리니 산해진미로 마련한 밥상보다 더 훌륭한 점심 식사가 마련되었다.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밋이 있세 / 초옥 좁은 줄이 긔 더욱 내 분이라 / 다만당 임 그린 탓으로 시름겨워 하노라」라고 노래한 <송강 정철>의 소박한 마음과 너무 잘 어울리는 점심식사가 아닌가.
흡족한 식사를 한 후 물 한 모금으로 입을 가신 후 오늘 산행의 마지막 고비인 『복주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11] 복주산 가는 길
13 : 08분, 벙커 입구 앞을 지나 급경사를 내려서니 임시 군 막사(천막)가 설치되어 있고 이정표(892고지 // 헬기장 0.3km / 1050고지 1.6km)가 세워져 있다.
軍幕舍를 지나면서 起伏이 없는 울창한 숲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13 : 15분, 큰 비석처럼 생긴 쌍둥이 바위와 폐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올라 약 7여 진행
13 : 23분, 「954고지 2.5km →」라 표시된 이정표를 지나
13 : 40분, 복주산 1.9km 전 삼거리에 도착했다. 벙커와 이정표(954봉, 5.1km / 복주산 1.9km)가 설치되어 있는 1070봉?(지도상)이다. 에 올랐다. 잠시 벙커에 올라 주변 경관을 살피고 『복주산』으로 진행.
13 : 45분, 임도(군사도로) 갈림길
14 : 10분, 임도(군사도로)가 끝나고 헬기장과 군막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14 : 25분, 벙커가 설치되어 있는 『1110m봉』에 올랐다. 탄피종과 화생방 신호 안내문이 있고 산 아래로 「잠곡저수지」와 아늑한 마을(잠곡리)이 眺望이 된다.
14 : 30분, 삼각점, 곧이어 헬기장을 지나
14 : 40분, 제법 가파른 바위지대를 통과하여 암봉에 도착했다. 『복주산』이라 생각하고 올랐는데 박사장, 바로 건너편의 뾰족 봉이『복주산』이란다. 조심을 하며 암봉을 내려와 뾰족 봉을 향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12] 복주산(伏主山)
14 : 46분,『복주산(복주산, 1,152m)』정상에 올랐다. 뾰족한 정상은 울퉁불퉁한 암석이고 가장 상단부에는 철원군에서 세워 놓은 작은 정상석이 있는데 두동강이 나 있어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상단부가 굴러 떨어질 것 같다.
정상석이 두동강이 난 사유를 철원군에 질의한 즉 「복두산 두봉우리가 화천군과 철원군 경계지역으로 서로 정상이 자기 구역이라고 군민들이 분쟁이 있어 몰지각한 사람이 훼손시킨 것 같다며 훼손된 표지석은 3월초에 정비토록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伏主山 / 福頭山 (1,152m)』은 백두대간에서 벋어나간 한북정맥 최북단의 산으로,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사내면을 아우르는 해발 1152m로 의 산이다. 부근에 대성산(大成山:1,175m) ·광덕산(廣德山:1,046m)이 솟아 있다.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수계는 북쪽으로 흘러 남대천(南大川)에 합류하고,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수계는 용담천(龍潭川)을 이루며 흐르다가 사내천에 합류한다. 동쪽 자하골에 천불사(千佛寺)가 있다.
「복주산」은 아주 오래된 옛날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때 모든 곳이 다 물에 잠겼으나 복주산만 복주께(주발) 뚜껑만큼 산봉우리가 남아 있었다고 하여 『복주산』이란 山名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복주깨 뚜 껑(柱.복주감투 : 추울 때에 쓰는 모자의 한가지)」만큼 꼭대기만 남아있어「福頭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산 정상에 올라가면 산봉우리가 복주께(주발) 뚜껑의 모양처럼 생겼으며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복주산』은 「하오현」에서 올라도 되고, 「실내고개」에서 올라도 되는데 하오현에서의 오름은 짧지만 가파르고, 실내고개에서의 오름은 완만하지만 길다.
[참고자료 4] 복주-산(伏主山)
복주-산(伏主山)은 명월1리 마을에서 철원방향으로 바라다 보이는 산. 높이 1,152m. 구 27사단 신병교육대 뒷산. 정상에 섬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으며, 현재 산기슭에서는 우라늄 광산을 개발 중이다. 옛날에 물이 가득 차는 홍수가 났을 때 근처가 모두 물에 잠겼는데 이 산만은 꼭대기에 복주깨 뚜껑만큼 남아있어 북두산(福頭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출처> 화천문화원 / 화천의 지명 유래 / 화천군의 산천 / 내사면 명월리
http://www.hcmunhwa.or.kr/03_0302.htm
『복주산』정상은 오늘 산행의 마지막 고비라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주변 경관을 조망하며 느긋한 휴식을 취한 후 급경사 내림길로 들어섰다.
[13] 하오고개
15 : 30분, 잠곡 저수지가 조망되는 헬기장에서 로프가 설치된 급 내림 길을 로프를 잡고 스틱에 의지해 조심을 하며 약 20여 분 내려오니 긴 폐타이어 계단이 나온다.
[참고자료 5] 잠곡리
김화군 남면 지역으로 마을입구에 있는 산이 누에처럼 생기었다하여 누에울 또는 잠곡이라 하였으며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간촌,도덕동,방화곡을 병합하여 잠곡리라 하였다. 1954년에 수복되었으며 1963년 철원군에 편입되었다.
15 : 55분, 오늘 산행의 종착지 『하오고개(荷吾峴 :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비포장 도로에 내려섰다.
『하오고개(=하위고개 = 荷爲峴 = 荷吾峴)』는 광덕리에서 명월리를 거쳐 철원군 금화방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가 길어 「말고개」라도 한다.
<출처> 화천문화원 / 화천의 지명유래 / 내사면
http://www.hcmunhwa.or.kr/03_0301.htm
[14] 산행 후
16 : 20분, 『하오고개(750m)』에 내려서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음 구간 들머리를 확인하고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 기사에게 하오고개 터널 입구로 와 줄 것을 부탁하고 좌측 도로(도로가 많이 훼손 되 차가 다닐 수 없음)를 따라 20여분 내려가 터널 앞에 도착하니 택시가 도착해 있다. 곧바로 택시에 승차하여 사창리 택시 주차장으로 이동(택시비 10,000원)하여 바로 차를 갈아타고 수원으로 직행했다.
18 : 30분 경 북수원 도착,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한북정맥1구간 산행 일정을 마무리 했다.
2011.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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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시작하는 한북정맥 글 보며 감동했습니다.
늘 건강하셔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오래도록 즐거운 산행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