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직폭력의 시조로 꼽히는 김두한(1918~1972)씨의 일생을 다룬 영화 ‘장군의 아들’, TV드라마 ‘야인시대’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관객 동원에서 종전의 기록을 갈아치운 영화 ‘친구’도 주먹의 우정과 배신을 다룬 영화다. 그리고 21세기 변모하는 주먹을 희화한 ‘투사부일체’란 영화도 있다. 주먹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사나이들의 꿈과 야망, 우정과 배신, 주먹들의 눈부신 싸움 기술, 음모와 좌절 그리고 화끈한 폭력……분명 주먹 이야기가 강한 흡인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필름 누아르’란 영화 장르가 존재하고, ‘조폭 신드롬’이란 사회현상이 있고, ‘강한 남자 콤플렉스’와 같은 사회심리적 현상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 조직폭력배들의 세계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주먹들과 같이 의리나 우정 같은 낭만적인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마디로 돈과 권력, 폭력과 음모가 뒤엉킨 추악한 뒷골목 범죄세계일 뿐이다. 적어도 1960년대 이래 한국 주먹세계에는 영화와 같은 낭만은 없다. 있다면 낭만을 가장한 치기어린 행동들과 과장되고 부풀려진 허황된 무용담만이 있을 뿐이다. 화려한 무용담에 덧씌워진 시간의 이끼들을 벗겨내면, 남루한 주먹 인생들의 허우적거리는 몸부림만 남을 것이다.
이 글은 폭력으로 일어서고, 폭력으로 몰락한 인물들의 삶을 예시로 들었다. 자연히 우리 역사의 어두운 단면, 부끄러운 역사와 마주서게 될 것이다. 조폭은 정치권력과 야합한 추악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역사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돈과 권력 앞에 굴복하지 않는 조직폭력배는 없다. 그들이 말끝마다 의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배신이 다반사로,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국 검찰의 대표적인 조폭 전문 검사로 꼽히는 조승식 대검 강력부장의 말이다. 이 글은 검찰과 경찰의 공소 내용, 재판 기록, 검찰-경찰-국정원의 공식-비공식 자료, 언론 보도 등이 인용됐다. 이 글은 ‘월간조선’2001년 11월 호에 실린 ‘한국 조폭의 역사와 계보’와 '조폭의 계보(방성수 저)'를 참고했다.
우리들은 영화‘친구’를 보고 나서 ‘고마해라, 많이 묵다 아이가’란 장동건의 대사는 기억해도 칠성파(극중 유오성이 중간관리자로 있던 조직)에서 곽경택 감독에게 수억~수십억원을 뜯어낸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는 친구 투사부일체를 보면서, 조폭을 미화한 영화에 웃을 뿐 21세기 변모하는 조폭의 모습을 보진 않는다.
이 글은 영화 ‘친구’와 ‘투사부일체’의 감상문이다. ‘친구’에서는 회칼의 유래에 대해 초점을 맞췄고, ‘투사부일체’에선 21세기 변모하는 조폭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다.
먼저 조폭의 계보를 시대별로 1)도방에서 ‘꼭지딴’까지의 전통적 유래 2)일제 강점기의 조직폭력배들 3)해방 전후와 1950년대 정치깡패 시대, 4)1960년대 군사혁명과 전국 조직의 탄생, 5)1970년대 회칼과 패밀리, 6)1980년대 신군부 등장과 조직폭력배의 전성기, 7)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8)21세기 변모하는 조폭들 의 8가지로 구분하겠다. 이 중 이 글에선1970년대 자료와 최근의 자료를 주로 참고하겠다.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불러주길 원하는가? 사람마다 직업마다 불러주길 바라는 명칭이 있겠지만 주먹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양아치’란 말을 가장 싫어한다. 반면 ‘건달’ 또는 ‘협객’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나의 경쟁 상대는 양아치요, 나는 건달인 셈이다. 주먹 앞에서 ‘당신은 양아치’라고 말하는 것보다 위험한 도발은 없을 것이다.
‘건달’은 신라 진평왕 때 ‘혜성가’에서 융천사의 스님이 건달파(乾達婆)라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풀면 ‘세상 이치에 달통한 사람’을 뜻한다.
한편 일본 조폭의 대명사인 ‘야쿠자’는 일본어 숫자인 ‘8(야)9(쿠)3(산)’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 도박의 일종인 ‘도리짓고 땡’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패로 ‘8.9.3’이 꼽힌다고 한다.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는지, 야쿠자들의 행태를 한국의 일부 조폭들이 베끼고 모방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 넓은 어깨, 아래 위 검은색 양복, 검은색 선글라스, 90도 각도의 인사, 오야붕에 대한 요란한 호위 등은 모두 야쿠자를 모방한 행동이다.
언어가 행동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과장되고 폭력적인 언어가 끔찍한 행동을 이끈다. 일본 전래 속담을 보면 사람 죽이는 것을 ‘각(角)을 뜬다’또는 ‘사시미를 뜬다’고 표현한다.그런데 한국의 조폭들이 이 말에서 착안, 정작 야쿠자들이 사용하지 않는 회칼(사시미칼)을 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황당한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사시미칼에 대대적으로 사용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겠다. 1972년 7.4남북공동셩명이 발표됐다. 석 달 뒤인 10월 17일엔 ‘10월 유신’이 선포된다. 유신 정부의 적나라한 강압 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이와 함께 ‘사회악 일소’차원에서 「호남파」의 두목급 9명이 구속된다. 하지만 무교동 등에 세력권을 형성한 「호남파」의 기세는 꺾어지 않았다. 검찰 내부자료에 따르면 당시 폭력세계의 판도는 명동 등 서울 중심부를 「신상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반면 「호남파」가 흩어진 각 지역의 유흥업소에 조금씩 진출하면서 세력을 키워갔다.
「호남파」는 다시 오종철 씨를 두목으로 하는 「오종철파」, 박종석 씨를 두목으로 하는 「박종석파」로 나뉘었다. 검찰의 내부 자료는 오종철 씨의 직계 후배로 조양은 씨, 박종석 씨의 직계로 박영장 씨, 오기준 씨, 김태촌 씨 등을 지목했다.
「신상사파」와 「호남파」는 주류 공급권, 관내 호텔과 유흥업소 등의 정기 상납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그러다가 1974년부터 ‘조폭들의 전쟁’이 발발하기 시작했다.
1975년 새해가 밝아올 무렵인 1월 2일 아침, 서울의 한복판인 충무로 1가에 있는 사보이 호텔에서 조폭 간 전쟁이 시작된다. ‘명동 사보이 호텔 회칼 난자 사건’으로 명명된 사건이다.
검찰과 경찰 자료에 따르면 그 날 아침 조창조, 조양은 씨 등은 「호남파」소속 조직원 10여 명을 규합했다. 이들은 생선회칼과 야구방망이 등 흉기를 들고 명동 사보이 호텔 커피숍을 덮쳤다. 커피숍에선 「신상사파」간부들이 신년회를 막 시작하던 참이었다. 내로라하는 주먹세계의 실력자들이었지만 회칼로 무장하고 급습한 신예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신상사파」의 주요 실력자들은 심한 부상을 입고, 도주했다. 호남연합 세력의 습격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이다.
사실 조폭 간 싸움에서 생선회칼이 등장한 것은 훨씬 이전부터다. 그러나 유신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새해 벽두, 서울 한복판 명동의 호텔에서 당대의 폭력조직들 사이에 칼부림이 일어났다고 상상해보라. 그 충격은 유신 정부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곧 사건 가담자들에 대한 소탕령을 내렸고, 유흥업소 주변 폭력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됐다. 여하튼 이 사건을 계기로 조폭 간 싸움에 생선회칼, 일본도, 쇠파이프 등의 무기가 빠짐없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연장질’,'작업'이라는 폭력계의 은어와 함께 ‘칼잡이’시대가 도래했다고 검찰은 평가하고 있다.
투사부일체에선 정의롭고 약간은 모자라게 표현됐지만 조폭들은 변모하고 있다. (투사부일체는 조폭을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면에서 결코 좋은 영화가 아니다.) 검찰은 21세기의 폭력조직들의 특징으로는 막강한 자금과 조직을 갖춘 기업형 마피아 조직의 추구, 기동력을 갖춘 탄력적 조직 운영, 오락실 카지노 등의 전통적인 자금원 외에 마약, 경마, 경륜 등 새로운 자금원 개발 추구들 꼽고 있다. 21세기의 폭력조직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는지 한 예를 들어보겠다.
한때 ‘K1(김홍일 의원의 애칭)의 비서실장’으로 통했던 정학모 씨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그는 홍일, 홍업 씨의 대학 선배다. 과거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모 주류회사와 재벌기업 간부를 지내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체육계와의 인연 때문에 대한올림픽협회 부회장과 모 재벌회사 스포츠단의 대표를 지냈다.
그는 1980년대에는 5공과 6공 정권의 실세였던 K씨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 집권 이후에는 홍일 씨의 사실상의 ‘비서실장’으로 ‘변신’했다고 한다. 김대중 정권 내내 여러 이권 개입 의혹을 받아왔지만 수사의 칼날을 피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직후 2003년 5월,‘나라종금 사건’으로 구속됐다. 나라종금과 다른 건설사로부터 청탁 명목으로 1억 5천여 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권력 주변 인사들이 걸었던 흥망의 여정을 그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그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1970년대 중반 주먹세계를 뒤흔든 ‘사보이 호텔 회칼 난자 사건’에 연루되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수사기관에 의해 조양은 씨 등의 선배격 인물로 지목됐다. 1960년대 중반 서울로 상경하여 세력을 키운 뒤 1970년대 「신상사파」를 제거하고 주먹세계를 통일한 「호남파」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박종석, 박영장, 오기준, 조양은, 김태촌, 이강환 씨 등 1970년대 이후 주먹계를 풍미해온 인물들과 좋든 나쁘든 그가 어떤 식으로 친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그는 “철없는 시절에 일어난 불미스런 일이다. 부끄럽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한다. 그는 목포상고를 졸업했다. 민주당 동교동계 핵심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목포 또는 목포상고 출신이다. 그는 정치권 실세들과 주먹들을 연결하는 휴먼 네트워크상에서 허브 위치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1980년대 광주에서 폭력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검찰이 지목한 여운환 씨가 20년이 지난 21세기에 대통령 장남이자 실세 의원인 홍일 씨 휴가 장소에 출현하여 악수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정학모 씨의 소개로 실제 일어난 일이다.)
1970년대 회칼 난자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 1980년대 건설사 간부, 유통회사 사장으로 변신하고, 1990년대에는 재벌회사 계열사 대표, 체육계 간부로, 다시 정치적 실세로 변신하는 과정은 몹시 흥미롭고 또한 주목할 만하다.
21세기 ‘권력형 게이트’과정에서 등장한 인물들은 주먹의 계보를 추적하는 일이 결코 뒷골목 하위문화의 이합집산을 뒤지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잘 드러나지 않은 내면, 즉 정치와 경제, 사회적 휴면 네트워크를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용한 루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역사와 인간의 삶은 단절되지 않는다. 1950년대에 등장했다가 1960년대에 사라지지 않는다.(페미니즘이 1940년대에 없다가 1960년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나의 얕은 지식으로는 그렇다.)
1960년대 종로의 뒷골목을 누비던 인물이 21세기 권력형 게이트의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1970년대 명동을 주름잡던 인물이 30년 뒤 대형 경제 스캔들의 주역으로 거듭난다. 그들의 삶의 궤적에는 한국 현대사의 굴절과 일그러진 성장 신화가 녹아 있다. 이 글은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우리가 세상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익한 지적 작업의 하나로 봐주길 바란다. 나는 ‘김경식 경무관’이란 분의 얘기를 듣고 자랐다. 조폭들이 진저리를 친다는 그 분. 지금은 네이버 ,엠파스, 파란, 야후 어디에도 그 분의 업적에 대해 나오지 않지만, 그 분 같은 철저한 경찰과, ‘모래시계 검사’같은 강직한 분이 현재에도 계시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원래 주제는 영화와 그 영화에서 폭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지만, 저는 영화를 보면서 너무나 분개했습니다. 조폭들이 너무나 사나이답고 멋지게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에서 ‘이러이러한 점은 너무 미화시킨 점이다’ 라는 논조의 글을 쓰려다가 아예 포기했습니다. 두 영화는 시작부터 선량한 사람을 ‘조폭’이라고 등장시키고 조폭에 대한 변명이 내용이기 때문에 글을 아예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이 딱딱해질 수도 있지만 친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에 대한 설명과 ‘친구’와 ‘투사부일체’의 배경이 되는 21세기 조폭에 대한 설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전제 자체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조사 기록을 찾아 현실을 다룬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