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닥 좋은일이 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쁜일이 있는것도 아니면서 은둔형 외톨이 처럼 집에만 틀어박혀 도무지 나가고 싶지가 않다. 잠깐 감정이 그런 순간에 빠지게 될때도 있겠지 하며 시간을 보내지만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우주를 헤매는 시공간에 던져진 미아 같은 무중력 상태 그 무기력함에 빠져 헤메다가 흐릿한 눈을 번쩍 뜨게한 일을 발견했다 여행 동호회에서 '올렛길 여행'을 보게 된일이다 제주 올레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바로 신청을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모순과 이중적인 성향을 조금씩은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중 좀은 패쇄적인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들과의 여행이 약간 걱정스러웠지만 순전히 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해준 여행이었다. 가기전날 밥통에 밥을 한 솥 가득해서 퍼담고 국도 큰솥으로 끓여 출발했다. 여행을 갈때 필수적으로 챙기던 엠피쓰리도 책도 메모지랑 펜도 다 놓고 떠났다 온전하게 오감을 열어 올렛길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한 오후 제주의 나폴리라고 일컷는 애월까지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고 다음날 드디어 올렛길 탐방에 나섰다. 우리가 걷게 될곳의 시작이 7코스반 되는 지점이었는데 출발지점에서 푸른색 화살표 방향표시를 볼수가 있었다. 평범한 산책로 같은 코스를 지나면서 해안을 따라 쭈욱 걸었다. 미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약간 설레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우리들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올렛길을 걸으면서 낮은 들풀들을 만나기도 하였고 아무도 갔던적이 없는 길을 처음 걷는듯한 신비로운 바닷가를 만나기도 하였고 작은 오름을 오르기도 하면서 굵은 마늘밭과 초록색 들판을 지나기도 하였다. 용암이 뿜어낸 기암 괴석으로 둘러싼 바다를 지나면 동굴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며 억새가 핀 해안가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들풀과 나무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제주 사는 가이드 역활을 해준 한친구는 제주 그 자체인듯 하였다. 쥐고 있던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듯한 여유로움이랄까 자연인이랄까 암튼 그 아름다운 동행이 우리들 여행의 행복감을 더하게 하였다 점심먹는곳을 당도 하였을즈음 몇몇 탈락하는 동지들이 생겼다. 나도 속으로는 아차 하였다 신발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냥 단순히 편한 신발이면 될꺼라 생각했던것이 잘못이었다 7시간 가량 걷는데는 최소한 트레킹화는 신어야 한다는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발에 물집이 잡혔다 다시 길은 계속 되었다. 느린듯 빠른듯 ..걸으면서 머리속에 생각을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오지 않는 시간들에 대한 알수 없는 두려움.. 인정할수 밖에 없는 내 삶의 무게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무늬 머리속에 생각을 비워내고 입속에 언어를 지우면서 심장에 박힌 상처들을 하나 하나 뜯어 내고 그렇게 다 비워내서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시를 하나 건져 올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긴 순례와 같은 이 시간들 뒤에 우리들에게 남겨진것은 무엇일까? 정녕 무엇일까? 하는 순간 가느다랗게 속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부벼서 안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로 내존재감을 인식하게 되고 살아갈 가치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오늘 예정되어 있는 걷기 코스가 다달을 즈음, 벅찬 희열감으로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눈길을 주며 말을 건네고 싶었다 우리 오늘 올렛길 걸었어요.. 그랬더니 진짜루 어떤 아저씨 여기가 올렛길이냐며 되묻는다. ㅎㅎ 올레는 기대했던 그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평소에 제주도는 그다지 좋은줄 모르겠다고 흘렸던 말들이 아주 미안할만큼.. 10코스 구간을 조금 남겨두고 뉘엇뉘엇 지는 해와 함께 제주 흙돼지 구이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는데 그건 우연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찌 하필이면 그곳에서 제주 올렛길을 창시한 서명숙씨를 만나게 되었는지.. 서명숙씨는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도보순례를 하였는데 그때 그길을 걸으면서 고향인 서귀포 생각이 끊임없이 났고 돌아와서 바로 제주 걷기 길을 개척해 나갔다고 한다. 한 개인의 사유와 그 사유에서 뽑아져 나오는 발광 에너지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가슴바닥에 행복감을 주며 제주의 역사를 다시 쓸수 있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 연기나는 식당한켠에서 너무나 기분좋게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인생에서 하나를 얻게 되면 꼭 하나를 잃게 되는 것이 철칙이라 하였던가 다음날 풍랑 주의보 때문에 우도 일정이 취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좀체 경험할수 없는 오름 트레킹을 하였다 정말 그 느낌은 가보지 않고는 어떻게 담아낼수가 없다 하늘 아래 맨 끝부분에 와 있는것 같기도 하고 차마고지를 가는 순례자가 되어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언젠가 가을 제주 오름 트레킹을 가슴에 담으면서 내안을 아름답게 채워줄 제조 올레 소감을 맺습니다. 류시화 시가 옆구리를 간질입니다.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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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소감
김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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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3.2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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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화가 김 점선 씨 암으로 떠났답니다 오십견의 어깨통증 으로 디지탈 그림을 했다는 그는 얼마전 TV 에서 아날로그식의 그림을 열심히 하고 싶다 했는데.... 그렇게 그는 갔습니다 바람같은삶 우리는 모두가 다 바람입니다 여행지에서 행복했을 순간을 내것인양 공유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순간 행복했고 발에 물집이 잡히는양 아득히 해안을 거닙니다
( 그랬군요... 우선 고인의 명복을 ...) 제주 올레 소감에 공감대가 느껴지는것은,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 아닌가 해서지요.. 어느날 문듯, 혼자 이고 싶을때, 저도 님 처럼 훌 훌 떠나 바람이 되고.. 삶속에 묻혀버린 나를 찾아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