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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칠현산 칠장사 1 京畿道 安城 七賢山 七長寺 一
활인선원에서 공양을 한 다음 찾은 곳이 원래 목적지인 칠장사(七長寺)로 향했습니다. 버스가 일주문을 통과하여 일주문은 사진에 담지 못하고 일주문 근처에 있다는 철당간 (鐵幢竿)도 확인하지 못하고 경내로 진입했습니다.
칠장사 안내도
주차장에 내리면 누각이 먼저 보입니다. 제중루(濟衆樓) 모습.
칠장사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찰로서 현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절은 선덕여왕 5년(63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현종 5년(1014년) 혜소 국사(慧炤國師 972~1054)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습니다.
칠장사(七長寺)가 위치한 칠현산(七賢山 516m)은 본래 아미산(蛾嵋山)이었는데 고려시대 혜소국사(慧炤國師 972~1054)가 이 산 아래 아란야(阿蘭若)를 짓고 수도처로 삼았습니다. 하루는 선량하지 못한 7인이 찾아와 뵙기를 청하여 국사가 마주하였는데 이들이 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려 설법을 청하였습니다. 이에 국사게서 법요(法要)를 설명하고 교화 하여 일곱 현인을 만들었다는 연유로 산이름을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 부르고 칠장사 (漆長寺)를 칠장사(七長寺)라 개칭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인조(仁祖) 원년 (1623), 선조의 계비(繼妃)로 영창대군의어머니인 인목대비 (仁穆大妃)는 광해군에 의해 10년 동안을 서궁(西宮)에 갇혀 지내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 습니다. 그 뒤 인조반정으로 복위가 된 다음 광해군에게 희생된 부친 김제남과 영창대군을 위해 이곳을 원찰로 삼으며 사찰을 새롭게 중수하였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이곳에 대비가 친필로 사경한 금광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1질과 자신의 심정을 한시로 읊은 친필 족자 1축을 하사하였습니다. <금광명최승왕경>은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1674년(현종 15)에는 어떤 세도가가 산을 빼앗아 승려들이 흩어지는 비운을 겪었으나 초견 대사(楚堅大師)가 절을 다시 찾아 중수했다고 합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ㆍ원통전ㆍ영각ㆍ명부전ㆍ천왕문ㆍ요사채 등이 있습니다. 중요문화재로는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천왕문 안에 있는 소조사천왕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보물 제488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이 있으 며, 이밖에 절 입구에 고려시대의 철제 당간지주와 부도 14기 등이 있습니다.
경내를 향하여
홍제관(弘濟館) 축대 모습
제중루 오르는 길
제중루 전면 모습
제중루 현판
제중루 옆 홍제관(弘濟館)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 혜소국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건물인데, 현재는 1층은 문화재 전시실로 활용하고 지하는 공양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칠장사 범종각
일단 목을 축이고
여기는 뭘까?
대웅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건립연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조선 후기에 세워져 몇 차례 중수를 겨쳐 순조 28년(1828)에 이건되고 1982년 해체보수 되었다고 합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대웅전 현판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대웅전 안에 모셔진 칠성탱화
명주(明珠)를 들고 계신 지장보살 탱화
안성봉업사(安城奉業寺) 석불입상(石佛立像) 보물 제983호
대웅전 우측 옆에 모셔진 석불불입상, 안내문에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있습니다.
『이 석불입상은 원래 죽산의 봉업사지에 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겼다가 1980년경 칠장사로 옮겨온 것이다. 불상과 광배(光背)가 같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불상 높이는 166.5cm이고 총 높이는 206cm이다. 불상의 뒷면에는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 하는 광배가 있는데 주위에 불꽃무늬의 화불(化佛)을 새기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이 지방 불상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높이 평가 된다.』
석불좌상(石佛坐像)
거북바위
대웅전 좌측 옆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圓通殿)
이 건물은 맞배지붕으로 주심포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조 원년(1725년) 선진, 두한 스님이 건물을 지었으며, 이듬해 윤영, 처휘 스님이 관음보살상을 조성하였습니다.
대웅전과 원통전 사이에 있는 석탑
대웅전 전면 좌측에 있는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명부전
명부전 뒤 벽화. 혜소국사가 7인의 악인을 교화하는 모습
궁예의 5세 때 활연습도
요사채. 벽면에 드라마 임꺽정 촬영 기념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드라마 임꺽정 촬영 기념사진
조선 중기 명종(明宗) 연간에 생불(生佛)로 숭앙받던 병해대사(昞海大師)는 흔히 갖바치로 불렸는데, 개혁주의자 조광조(趙光祖)와 두터운 친분을 맺었고 또한 유명한 임꺽정의 스승 이기도 하였습니다. 병해대사는 이곳에서 머물다 입적하였고 임꺽정은 그런 스승을 위해 목불(木佛)을 조성하였다고 하나 전하지는 않습니다.
죽림리 삼층석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9호
『죽산에 흩어져 있던 탑부재를 죽림리 강성원 목장에서 관리하여 오다 강성원 선생의 기증으로 2005년 11월 28일 현재의 위치로 이전 설치하였다.
이 탑은 전체 높이가 375cm이고, 상대갑석은 하나의 판석에 옥신괴임을 2단으로 둥글게 처리하였다. 1층 탑신은 1매의 석재로 구성되어 있고, 한 면에는 둥근 문고리를 조각하였으며 탑신마다 모서리기둥[隅柱]이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모두 원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상륜부에는 방형 노반만이 남아 있다. 탑신부의 체감비율이나 옥개받침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고려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 앞의 죽림리 삼층석탑
응향각 쪽으로 바라 본 삼층석탑
응향각(凝香閣) 시민선방
원래는 응향각이었으나 지금은 시민선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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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우님, 사진 명부전 밑 명부전 벽화 그림이 안 보입니다.
왜 안 보일까요
명부전에 벽화가 많은데 높아서 제대로 찍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나 빨리 보고 내려가던지 중요한 장면을 많이 못 담았네요. 나중에 칠장사를 다시 간다면 담아 보려 합니다. 임꺽정, 궁예 등에 대한 벽화가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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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님, 지금은 사진이 보입니다. 둘 다요.
일행들이 휙 돌아보고 나가는 바람에 사진 찍는 시간이 많이 촉박했을텐데도 사진을 많이 찍으셨네요.
속행돈촬법(速行頓撮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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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엔 함께하세요. 칠장사 가 볼만한 곳입니다. 다음에 다시 추진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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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았읍니다()
미륵의 땅이 안성이더군요. 다시 한 번 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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