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권도 없는 출향인이 고향 일에 대해 뭐라고 언급한다는 게 미안하지만, 답답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난 기본적으로 선진당이 충청권을 기반삼아 창당된 사실에 대해서는 나무랄 생각이 전혀 없다. 솔직히 말해 전라도 없는 민주당이 무슨 의미며, 영남없는 한나라당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지만 충청권을 기반으로 했으면 충청인을 대변하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어쩌다가 제 땅 충청권의 지지율이 겨우 4.6%란 말인가. 전국 지지율이 2%라니, 출향민만 해도 수백만 명인데 이토록 외면받는다니 아연실색이다. 그러고도 당 대표는 대추놔라, 곶감 놔라 엉뚱한 소리만 외치고 있으니 더 기가 막히다. 당원도 아닌, 충청 유권자도 아닌 내가 다 부끄럽다. 어디 가서 고향 묻는 사람들에게 충청도 청양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면 지레 부끄럽다.
난 충청인들이 제 지역 당이라고 무조건 몰표를 주지 않는 걸 자랑스러워 한다. 충청인들만큼 나라를 먼저 생각하며 투표하는 사람들이 없다. 그동안 치른 여러 대선에서 충청인들의 결심이 곧 결과를 가르는 일이 많았다. 그만큼 우리 충청인들은 제 식구라고 무조건 감싸는 옹졸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유선진당은 마치 충청 땅에 깃발만 꽂으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처럼 될 줄 알고 오만방자해진 것같다. 솔직히 말해 한나라당 대선 후보 두 번 지내는 동안 이회창 씨가 언제 그렇게 충청인임을 내세웠단 말인가. 그는 항상 황해도 출신에 전라도 광주에서 어린 시절 보냈다는 걸 자랑하던 분이다. 그러다 시절이 불리하니 한나라당에도 있지 못하여 정치적 망명처로 이사온 게 선진당이다.
그래놓고는 한나라당 시절의 카리스마와 관성, 교묘한 정치술로 선진당을 장악하여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정작 충청인들의 민심은 과거 자민련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싸늘하다. 이 모든 배경에 이회창 씨의 독주와 오만이 있는 듯하다. 이회창 씨는 지나치게 중앙정치만 몰두하고, 대권만 생각하는지 선진당의 기반인 충청에 대해서는 별 애정이 없는 것같다. 선거철이 아니면 충청도로 내려가는 것같지도 않고, 충청 시군들이 동쪽에 붙었는지 서쪽에 붙었는지나 아는지 모를 정도로 지역 현안에 대한 언급은 거의 들어보기 어렵다. 충북에서는 아예 존재감조차 없어 선거를 해도 늘 떨어지기 일쑤다.
국회의원의 1차 임무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유권자한테서 최악의 냉대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대통령급 발언이나 하면서 이런 민심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도 심대평 의원 총리론이 나올 때마다 그는 대선을 염두에 두고 그를 찍어누르기만 하는 것같다. 무슨 거창한 정치적 계산이 있어 심대평을 누르는 게 아니라 다음 대선에서 자신의 입지가 좁아들 것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심대평은 그가 만든 선진당에 이회창 씨를 모셔온 주인공이다. 선진당이 더 잘해 보려고, 잘 돼 보려고 그를 초빙했는데, 그는 도리어 당 조직만 장악할 뿐 민심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회창 씨는 뭐니뭐니해도 '절대 자만심'으로 대선에서 두 번 내리 패배한 분이다. 1차에서는 충청도 논산 사람 이인제 하나 포섭하지 못하고, 또 충청의 정치지도자인 부여 사람 김종필조차 끌어들이지 못해 참패를 당했다. 두번째 역시 노무현의 충청 수도 이전론에 맞서 싸우다가 충청인들의 외면을 받아 낙선했다. 두 번 모두 낙선 배경에는 충청인들의 반발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충청도에 무슨 연고가 있다고 달려들어 오로지 대선을 위한 발판으로만 그 땅을 밟으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충청도에 무릎 꿇고 반성하는 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그가 도울 수 있던 시절에 충청도에 무엇을 도왔던가. 과반수가 넘는 그 막강한 한나라당 대표를 오랫 동안 지낸 분이 무슨 겨자씨만한 은혜라도 충청 지역에 베푼 적이 있던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분골쇄신하여 민심을 얻어야 할 텐데, 그는 정말 충청도를 핫바지로 아는 모양이다.
난 그가 충청도만을 위해 일하는 편협한 정치인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 한다. 김종필이라는 정치인이 충청도를 볼모로 잡아 놓고 수십 년간 2인자로 군림하는 동안 충청도는 사실상 정치적으로 버려진 땅이 되었다. 선진당더러 충청도만의 이익을 위해 일하라는 게 아니다. 하지만 충청도의 자존심 정도는 세워주길 원한다.
난 인물 위주로 선거하고, 어느 일방에 완전히 쏠리지 않는 우리 충청인들의 기개를 늘 자랑스러워 한다. 조선시대 양반이 가장 많던 지방이라 그런지는 모르겠다. 호남이나 영남처럼 깜냥도 되지 않는 인물에 몰표를 주는 법이 없으니 더욱 자랑스럽다. 충청인들은 앞으로도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은 틀리다고 말할 것이다. 오늘날 충청도는 DJP연합 시절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고, 수도이전 공약으로 몰표를 주어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건만 정권 바뀐 요즘 민주당은 거의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란 이렇게 싸늘한 것이다.
이회창 씨는 충청인의 민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거나, 그럴 마음이 없으면 한나라당으로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충청인들이 안심하고, 선진당이 살아남지 이 상태로는 너무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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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타이하우스 원문보기 글쓴이: 알타이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