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중류, 즉 우리 고장 구영리와 중구 다운동으로 통하는 비탈 산길이 있다.
굴화에서 보면 강 건너 북쪽 벼랑을 말한다.
일명 벼락끝, 벼락소라고도 하는 곳이다.
앞에 흐르는 태화강을 사군탄(使君灘)이라고 한다.
사군(使君)의 뜻은 "낭군님부터 정할라네"이고 탄(灘)은 물 가운데 돌이 많은 곳의 흐름을 말하는 여울이다.
옛날 이곳에는 한 농가에 농부가 살았다 한다. 어느 여름날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벼락맞은 뒷산의 산사태로 인해 농가는 강물로 떠내려가고 그 집 자리는 깊은 여울이 파여 깊은 소(沼)가 생겼다 한다. 이 배리끝에는 농부 내외와 과년한 누이동생이 살았는데 또 하루는 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농부는 우장삿갓하여 농토를 살피러 들로 나가고 집에는 시누이와 올케 두 사람만이 남아 서로 부둥켜안고 뇌성벽력의 공포에 떨면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그치기는커녕 비는 점점 더 억수같이 퍼부어 그칠 줄을 몰랐다.
이윽고 쾅! 하면서 천지개벽하는 소리가 나더니 집 뒷산에 벼락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어 산사태는 농부의 집을 덮쳐 삼켰고 방안에 있던 시누이와 올케는 불행 중 다행으로 퉁겨 나와 흙탕 강물에 휘말렸다.
들판에서 논둑을 손질하던 농부는 벼락친 곳이 자기 집 위치란 걸 알고 하던 일을 멈추고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뒷산의 산사태로 집은 사라지고 아내와 누이는 불어난 태화강물 가운데서 허우적거리며 떠내려가며 "여보 사람 살려요", "오빠 사람 살려요"라고 아우성이었다 농부는 급히 강물에 몸을 던져 단숨에 아내를 구해냈다.
곧이어 누이를 구하려는데 험악한 물구비로 인해 누이의 손은 잡을 수 없었다. 누이는 통나무 토막을 의지해 마구 떠내려가며 "오빠 사람 살려요"라며 발악을 했다.
하지만 사투를 벌인 보람도 헛되이 누이는 오빠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말았다. 멀쩡한 사람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 보고만 있어야 하는 오빠의 허무한 심정과, 통나무에 의지해 죽음의 길로 떠내려가면서 오빠에게 살려 달라고 소리쳤건만 구원받지 못하는 누이의 처절한 심정을 어디에 비길 것인가. 가련한 누이는 이렇게 영영 되돌아올 수 없는 수중고혼(水中孤魂)이 되고 말았다.
농부는 하나뿐인 누이를 잃은 슬픔에 부인을 업고 산언덕 바위굴에서 비를 피하면서 실신 상태의 부인을 되살렸다.
한편 가련한 처녀는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애달픈 심정을 남겼는데 이 노래가 훗날 이 고장에 모심기 소리 등에 유명한 민요 한 구절로 등장하게 된다.
남창남창 배리 끝에 무정하다 울 오라배 나는 죽어 환생하면 낭군부터 정해야지 '남창남창'이란 불어난 태화강 물이 남창남창(넘실넘실) 넘칠 듯 하다는 뜻이고, '배리끝'은 자기 집이 있던 자리이고, '무정하다 울 오라배'는 아내를 먼저 구한 오빠를 원망하는 누이의 애절한 심정이 담겨 있다 하겠다.
즉 낭군이 없음을 탄식하며 죽어서 환생하면 낭군님부터 정해야겠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있은 뒤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는 명주실 한 타래가 다 들어갈 정도의 깊은 여울이 파였다고 하는데, 이 여울에는 비가 오려고 몹시 흐린 날에는 한밤중에 애간장을 끓는 애달픈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곤 하였다고 전한다.
이 소리가 들리면 인근 마을 총각 중 한 사람이 자다가 벌떡 일어나 스스로 걸어가 그 여울에 빠져 자살을 하곤 했다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그 처녀의 원한 맺힌 영혼의 변고일 것이라 믿고 원귀(寃鬼)를 달래기 위한 백일 위령굿을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