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견있는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흔하지 않기도 하지만
노골적으로 진심을 드러내버린 공간은
가슴 울림을 선물하곤 합니다.
워낙 고명한 "柳宗悅 -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름을 걸고 하는 전시인지라
오히려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여
미루기만 했던 발걸음이
민망스런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감정에
한 숨 한번 길게 내쉬고 이리 저리 둘러보았답니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미를 '선의 미' 혹은 '애절의 미'라 표현했던
柳宗悅 - 야나기 무네요시의 시선에
무작정 반감을 표하기도 하고,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식민 시기 감정의 잔재로 폄하하는
평가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藝를 추구하는 진솔한 마음을 좇아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한 사람의 시선이
꼳꼳하게 묻어나는 공간 속에서
구경꾼마저 뿌듯해지는 미소 한 모금 가득 품어봅니다.
한국민예 Korean Minye
청화난초문항아리
Jar,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orchid decoration
18th century, 38.8x27.7cm
회유오오이도다완
Bowl with ash glaze
15th century, 16x10.3cm
柳宗悅만한 인물에게 이도다완 하나 없다는 건 말이 아니된다며
누군가 선물했다는 전설이 더욱 한 숨이 나오는...
夢의 인간관계에 대한 재고가...
목조호수편구
Spouted bowl with incised decoration
19~20th century, 12.6x19cm
전시물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끌던 한가지...
民藝의 의미를 새삼 가늠하게 한다는~ ^^
석조유주
Lidded oil pot, stone carved
19~20th century, 11.6x6.7cm
호작도
Tiger and magpie
19~20th century, 69x49.5cm
일본민예 Japanese Minye
철유큰차항아리
Eared jar, stoneware dipped in iron glaze, Tamba ware, Hyogo Prefecture
Edo period(1603~1867), 43.8x36cm
속문접시
Stoneware dish with millet motif, Mino ware, Gifu Prefecture
Momoyama period(late 16th century), 4.5x24.5cm
일본 공예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접시에 대한 감각은 부럽기만 하더이다.
炻器라...ㅋ
네고로누리고마단
Lacquered praying platform for Buddhist priests
17th century, 28x108.5x108.5cm
둥근꽃모양쟁반
Flower-shaped tray with black lacquer and vermilion rim
Kamakura period(1183~1333), 3x32.3cm
진추가마
Legged iron cooking pot
16~17th century, 57x54cm
일본현대공예 Contemporary Japanese Arts and Crafts
가와이 간지로, 시유쌍수문편호
Kawai Kanjiro, Vase, 'the universe with hands' decoration in iron kaki glaze
1935, 23x18.6cm
도미모토 겐키치, 청화갈대싹모양사각함
Tomimoto Kenkichi, Lidded box,
porcelain with reed shoots decoration in overglaze enamels
1934, 8.7x12.3x12.1cm
버나드 리치, 빵용기
Bernard Leach, Lidded bread container, Onta Kila, Oita Prefecture
1954, 40x38cm
후나키 겐지, 황유큰사발
Funaki Kenji, Large plate with yellow glaze
1957, 9.5x40.7cm
일본 현대 공예품 중 가장 마음에 들던 물건 중 하나...
그릇에 대한 상상과 그 사용에 대한 감각에 대한 부러움은 이제
먹거리에 대한 꾸준한 관심만이 아니라
사용되어지는 아름다움에 사고를 돌아보게 합니다.
Documentary Materials
도큐멘터리
"옛 작품으로 돌아가라"든가, "중세기로 돌아가라"든가 하는 것은 조금도 복고주의(復古主義)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그 전으로 돌려놓고자하는 시도는 언제나 착오이다. 옛 작품에로의 사랑은 과거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은 아닌 것이다. 과거의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것이니까 좋다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과거를 뒤돌아보라는 것일 뿐이다. 지금의 것에도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앞에는 시간의 차별은 없다. ... '과거'라고 하는 것이 미의 기초는 아니다. 미 그 자체는 시대를 초월한다. 한 시대에 그치는 따위의 아름다움은 미가 아니다. ... 그렇기 때문에 '오래된 옛 미'는 어디에도 없으며, '영원히 새로운 미'만이 남는다. 뛰어난 옛 작품보다 더 새로운 느낌을 주는 미가 있을까.
- 柳宗悅 -
수년전 고음악학자이며 연주가인 Jordi Savall 이 한양대학교 Lecture에서의
어떤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는 옛 음악을 옛 시대 그대로, 정확하게 돌아가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 이 시대는 그 시대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지금의 나의 느낌, 감정, 생각들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형식이 고음악이기에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뿐입니다.
내게 있어 고음악은 늘 새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새로운 음악입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언급과 비슷한 일맥이 흐르지 않습니까? ^^;;
어느 훌륭한 사람들처럼
아직?! 정리된 그래서 일관된 기준을 가지진 못하지만,
그저 아름다운것을 아름답다 할만한 눈이 내게 존재하기만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연장됩니다.
특히 80여분간 상영되는 시부야 노부코(澁谷昶子)의
야나기 무네요시(소에쯔)의 부인 가네코 여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필름은
마음을 담아 살아가는 야나기 부처 삶의 노래로
가슴을 두드리며 다가옵니다.
(가네코 여사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울려옵니다.^^)
야나기 무네요시, <미와 추를 넘어서>
Calligraphy by Soetsu Yanagi, 1955, 35.5x36cm
1922년, 조선귀족회관에서 열린 조선민족미술관 주최 <이조도자기박람회>회장
왼쪽 끝에 아사카와 노리타카, 중앙에 야나기의 모습이 보입니다.
테이블 중앙에는 노리타카의 소장품(당시)인 ‘진사연화문항아리’
1931년, 야나기의 바람에도 헛되이 아사카와 다쿠미가 사망했습니다.
조선의 민족의상을 입고 조선인들의 공동묘지 - 망우리에 매장되었답니다.
(사진제공: 아사카와 노리타카와 다쿠미 형제를 기리는 모임)
타계하기 2년 전인 1960년 1월 13일.
지금은 이축된 일본민예관 대전시실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70세의 모습입니다.
일본에 갈 기회가 있거나
조금 더 관심있는 분은
日本民藝館
Home Page를 방문해 보시지요.
http://www.mingeikan.or.jp/
다음은 東京 日本民藝館 풍경입니다.
첫댓글 압력에 못이겨 무작정 올립니다만, 심히 민망하여이다...ㅋ
훌룡하셔요^^ 글도 잘쓰시고~~~근데 사진은 왜 다 가위질이 되어 있나요?
이미지....다시 올렸답니다...ㅠ.ㅠ
역시 사진과 함께 보니 더욱 좋습니다. 민예관 전경 앞에도 민예관에서 사용하는 일본식이층목조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은 수장고로 쓴다고 합니다. 기회되시면 가셔서 보셔도 좋으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