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데 큰아들은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간댄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밥을 같이 먹고 그를 태우고 나간다. 나간 김에 나는 등산복 차림이다. 12월 비가 내리니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도 분다.
천상 무등산이다.
내게 산의 이름이나 높이는 문제가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니 지리종주니 호남 정맥이니, 계획대로 무슨 의미를 갖고 산행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수련하는 마음으로 나는 산을 오른다. 건방지다.
차를 두고 가는 것이 좋겠지만 그냥 원효사 주차장으로 간다. 2,000원을 주고 주차. 김밥 사러 식당을 들렀는데 안 팔아서 빵 하나 자유시간 연양갱을 사서 넣는다. 정상은 하얗다. 기대된다. 복장이 불안하여 바지를 하나 더 껴 입고 상의도 하나 더 입는다. 비겁하다. 눈길을 갈 준비는 나는 아직도 허술하다. 처음을 두려워 말자고 혼자 뇌인다. 설악산이나 한라산엘 이번 겨울엔 오르자고 다짐한다.
10시 정각 관리소 옆 문 출발. 늦재에서 물마시고 시계보니 13분. 동화사터 오르는 능선 길 두고 너덜겅 쪽으로 간다. 나의 '명상 길’을 간다. 추월은 쉽지 않지만 발걸음은 반달음질이다. 무엇에 그리 얽매여 서두르는지 우습다.
토끼등 위에서 동화사 오름길. 이 앞 주보다 사람은 많지 않다. 동화사 터 아래서 물 한 모금 그 위에 서자 바람이 차다. 바위 뒤로 돌아 시계를 보니 11시. 한 시간 만에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지나는 사람들이 정상을 보며 환호한다. 땀 속에 맥주 한잔 하고 싶지만 참는다. 자유시간 씹으며 하얀 정상을 본다.
건강, 가정의 화목, 사랑--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며 다시 오른다.
서석대를 바로 보고 오르자, 하얀 얼음꽃이 예쁘다. 어제 내린 비가 하얗게 얼어 눈처럼 붙어 나뭇가지가 2중이다. 서석대를 처다보며 빵을 먹는다. 사진을 찍어보는데 배터리가 약하다. 등은 땀에 젖었지만 맥주는 차갑고 금방 추워진다.
서석대 위에 오르자 바위도 하얗게 이끼를 이고 있고, 온통 하얀 나무숲이다.
이런 경치는 무슨 감흥을 주는가? 몇 번 불안한 셔터를 누르고 하산한다.
입석대 쪽으로 내려오자 따뜻한 햇볕에 늦가을 분위기다. 입석대에서는 계절을 짐작하기 어렵고 장불재로 내려오니 12시 30분이다.
백마능선도 가 보고 싶지만 규봉암 쪽으로 길을 잡는다. 암자에서 장불재로 오는 신앙인들과 등산객들이 많다. 자주 멈춘다.
규봉암이 가까워지는데 석불암 이정표가 위로 나 있다. 약간 오르막을 오르자 돌담과 돌벽이 나타나고 주황 스레트를 인 건물이 나타나다.
노신사가 겉옷을 벗고 입구 샘에서 씻고 있다. 하얀 김이 솟는다. 안으로 들어가 건물 뒤로 도니 바위 틈 속에 마애불이 앉아 있다.
나와서 샘에서 씻는데 그 분이 점심먹었냐고 한다. 자기는 이제 먹겠다며 찹쌀떡을 하나 주신다. 500원짜리 빵하나로는 부족하던 차에 고맙다고 받아 먹는다. 다 먹자 또 감을 예쁘게 깎아 주신다.
'석불암은 고찰이고 선원으로 이름높은데 중간에 쇠락했다. 지금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 규봉암에 비해 경치는 떨어지나 물이 많아 절집으로는 좋다.'
'제 보기엔 규봉암에 못지 않은것 같습니다. 서석대가 보이고 앞의 백마능선의 선이나 남향 등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규봉암의 모서리보다는 더 느낌이 좋습니다.'
규봉암 길을 물으니 외길이니 걱정말고 가라며, 무등산의 정통 일주코스니 잘 가라고 하신다. 선 바위 누운 바위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조금 지나자 돌담들이 보이더니 금방 규봉암이다. 경상도에서 온 산행객들이 많다. 사진 찍는 이들 많은데 나의 카메라는 작동을 않는다.
이서와 주암호수, 모후산과 조계산을 바라보며 꼬막재 쪽으로 길을 서두른다. 꼬막재 640미터. 조금 지난 샘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길 위에도 물이 흘러 봄날같다. 어제 비 온탓이겠지.
장불재에서 8킬로 남짓의 산길을 쉼없이 걸어 산장 식당께에 오니 2시 20분이다. 허리 감고 돌아가는 길이니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어서인지 빨리 온 편이다.
차를 운전하고 내려와 계림동 산장 입구 사거리에서 머리 길다는 생각에 양회장에게 이발하자 전화하니 오전에 했지만 그리로 오겠단다. 미용실 이발도 무슨 상관이랴. 그가 이발비를 내고 일천석에 가서 소주를 마셨다.
첫댓글 소주랑맥주 마신거네
얼음꽃 아닌 서리꽃이나 상고대(무송)로 써야 할 듯. 서리가 결빙한 상태?
서리가 눈같은데...너무 많이 내려서그런가????토요일,일요일 잘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