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방법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선교책이었고 저의 주머니와 가방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택시를 탔을 때 기사에게 선교책을 드리면서 성당에 다닐 것을 권유했더니 기사님은 기쁘게 받아주셨고 자기소개서도 작성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집 근처에 가서 작은 선물을 사서 방문하려고 전화를 해보니, 그분의 형이 된다는 분이 개신교에 다닌다고 하면서 오지 말라고 하여 무안하고 실망했습니다. 이런 경우를 자주 느끼지만 도대체 천주교의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은 전교하지 않고 무얼했는가 라는 원망도 생겼습니다. 어디를 가도 개신교 신자는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선교의 실망은 없었기에 선물을 사러 가게에 들어간 저는 가게 주인에게 선교책을 드렸더니 그분은 계산대 책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이때 다른 손님 한 분이 들어와서 그 선교책을 보더니 자신의 아들도 세례를 받았고 부인은 한달 전에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가족들이 성당 가자고 했을 텐데 왜 안갔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속으로는 이분은 입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의 말도 안 듣는데 제말을 들어줄까 걱정했는데 그분은 바빠서 성당에 못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때 아무리 바쁘지만 1주일에 한번 2시간 정도 성당에 못나가시냐고 하면서 "부인과 함께 영세하면 세속적인 결혼보다도 더욱 하느님 앞에 부부의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한치 앞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종교는 필요하며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하면서 항상 준비했던 선교용 테이프도 드리면서 다시 권유했습니다. 그분은 뜻밖에 성당에 다닐 것을 결심하고 저와 약속도 하기에 저는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다음 주 일요일인 1996년 12월 8일 구로3동 성당에서 만나 예비자로 입교시켰습니다. 올해 9월에 영세하게 됩니다. 드디어 그분은 성가정을 이루어 더욱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에 하느님은 제게 가까이 다가오는 한 분을 인도해 주시어 너무도 오묘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도구로써 결코 어디서나 신앙대화를 하여 선교의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다음은 97년 4월 24일 평화방송국 TV에서 가두선교 활동을 취재하고 있을 때입니다. 관악산으로 등산 오셨던 임예비(58세) 라는 아주머니에게 저의 집사람이 다가가서 선교책을 한 권 권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성당에 가고 싶었는데 참 잘되었다하면서 자기소개서도 써주고 방문도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후 저와 아내는 노량진의 그분 자택으로 방문했더니 너무도 반가워했습니다. 사실 성당에 가고 싶어도 누가 안내책 하나 주거나 적극적인 권유도 없었고 혼자 가려니 두렵고 용기도 나지 않았답니다. 저희 부부를 보면서 너무 좋다면서 저희 부부를 선생으로 생각하고 부르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오히려 제가 당황하고 감사했습니다. 역시 외인들은 우리 신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끝까지 그분께서 신앙생활할 수 있도록 97년 5월 11일 노량진성당 예비자 입교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으며 서로 방문하면서 지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댁 바로 두 집 건넛집의 출입문에 노량진성당 교우집이라는 교우 문패가 있었습니다. 또한 경부 고속버스 터미널 가두선교 봉사에 늘 함께 하던 수서 본당의 정진자(아네스)님께서도 그분을 계속 방문해서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아네스님의 가정생활은 어렵게 사시면서 치매로 고생하시는 시어머님을 모시고 바쁜 생활이지만 가두선교 봉사하는 날은 정확히 시간을 지키고 열심히 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은 과연 무엇이 중요하고 가장 큰 봉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과 자기지역 성당만 지나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가두선교 봉사에 다 함께 참여합시다.(97. 8.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