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국(相國) 배공(裵公)인 미휴(美休)가 일찍이 원각경소(圓覺經疏)의 서문을 지었는데, 그 요점을 말하면
『무릇 혈기(血氣)에 소속된 것은 반드시 앎이 있고, 앎이 있는 것은 반드시 동일한 본체이다. 이른바 진정명묘(眞淨明妙)하고 허철영통(虛徹靈通)하여 탁연히 존재하는 것이다.』하였다.
이로써 보건데 구물구물 날며 움직이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미물과 큰 몸집을 지닌 사상(師象)·파사(巴蛇)의 류가, 시방불(十方佛)의 원각묘심(圓覺妙心)으로 더불어 허철영통하여 동일한 진정(眞淨)인 것이다. 어떻게 우열을 나누겠는가.
중생과 부처가 이미 동일하다면 사람이 지극히 신령하다 하나 어떻게 저들과 동일한 체성이 아니리요. 사대(四大)와 오행(五行)의 형질(形質)을 함께 받아 천지간에 동일하게 태어난 것이다.
허공을 나는 박쥐나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의 류는 위로 건상(乾象)에 응하고 일원(日月)을 닮아, 도리어 사람의 재앙과 복덕을 담당한다. 어찌 사람에 미치지 못하랴.
이 이치가 밝혀졌다면 사람과 외물(外物)의 류가 성품이 균일한 천륜(天倫)이라는 것을 알았으리라. 저와 구별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나의 일시의 강포(强暴)를 펴, 저 미약한 것을 타고 도적질하며 살육을 하겠는가.
또 저들이 사람과 다른 까닭은 다만 시작없는 망상으로 극중(極重)한 악업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마음의 본체가 다름이 있다 말하지는 못하리라.
본체가 다름이 없고, 또 저들 종류와 함께 생사에 있는데, 어떻게 그 가죽과 뼈를 쪼개고 피·살·장·위·간·담 등을 터뜨리겠는가.
혹은 저울에 달아 매매를 하며, 볶고 지지기를 백단(百端)으로 하여 그 몸을 씹고 달콤한 맛을 멋대로 취하기도 한다.
한시간 사이에 나의 탐하는 마음을 넉넉하게 하여 나의 입과 배를 알맞게 하고, 일찍이 미래의 악도(惡道)에서 긴 세월 동안 고통받을 것은 돌아보거나 생각지도 않으니 잘못이 심하다 말할 만하다.
사람이 혹 저들보다는 우수하다고 말하나 업(業)의 상대적인 면에서 아직 이르지 못했을 뿐이다. 어떻게 저들보다 진실로 우수하겠는가.
더구나 저들 종류 속에는 과보가 다하면 사람이 될 자, 천상에 태어날 자도 있으며, 성인인 모든 불·보살이 그 종류와 동일함을 보이신 것도 있으나 우리들이 장애에 막혀 식별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왜 저들이 극히 아끼고 소중이 여기는 신명을 죽여 나의 잠깐 동안의 구욕(口欲)을 돕겠는가.
홀연히 사람의 업보가 다하면 반대로 저들에게도 미치지 못하는 자도 있으리라. 어찌 저들 종류는 내가 씹어 먹어도 결정코 나를 미치지 못한다 말하겠는가.
더구나 나의 몸은 옛날에 저들 종류와 동일하였으며, 저 종류들도 또한 나와 동일함이었음에랴.
유류(類類) 가운데서 일찍이 서로서로 부모·형제·처자·자매의 모든 친한 권속이었으나 형체가 변역·유전하면서 마음도 미몰(迷沒)하여, 다시는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허망하게 「저들은 하열하다」말하며, 지금 그들을 죽이고 먹는다.
그렇다면 나의 부모인 선친(先親)이 돌아보고 사랑하였던 것을 죽이고, 또 나의 몸이 사대를 떠나지 않았으니 또한 자기의 사대고신(四大故身)을 죽이는 것이 된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중생이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였거니와, 미래에 반드시 성불할 것이기 때문에 공양하고 급시(給侍)하기를 부모와 같이 생각해야 할 것인데 어떻게 차마 죽이랴.
만일 그들을 죽인다면 이는 미래의 부처를 죽이는 것이 되거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랴.
슬프다. 요즘 상살(傷殺)하는 사람들이 선세(先世)의 인(因)을 알지 못함이여.
친척이 되었을 때, 역경 속에서 거역하는 일이 많아 친한 것에서 원한을 일으키고 원한을 따라 한이 맺히며, 원한이 원수로 이어져 세세(世世)에 잃지 않게 되었다.
이때에 서로 살리고 서로 죽이기를 전전히 그치지 않아, 마치 저 바다의 조수가 찼다가 이지러지며 왕래를 스스로 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한다. 저를 살펴 자신으로 요약해 본다면 어찌 아프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범망경(梵網經) 가운데서는 이미 자살을 금지하였고, 나아가 저에게 방편·찬탄·서주(誓呪) 등으로 살생하는 인연법(因緣法)의 업을 가르치는 것을 모두 제지하여 길이 끊게 하였거니와, 이는 부처님이 진실로 가르치고 경계하신 것이다.
내가 서로 삼키고 먹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냥하고 고기 잡으며 악하게 구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많아져, 물·육지·허공에서 나는 일체 중생이 숨을래야 숨을 곳이 없으리라.
그 수중에 들어갔다 하면 모·우·인·갑(毛·羽·鱗·甲)이 일시에 상하여 애절한 소리가 끊기기 전에 음식으로 공급되며, 혹은 다른 물질과 바꾸어 나의 몸을 봉양하기도 한다.
온갖 물류(物類)가 죽음을 두려워 하고 살기를 탐하는 마음은 본래 나와 동일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만약 이들이 선세에 친척이었음을 알고 살생의 업을 동일하게 끊는다면 효도(孝道)도 온전히 하는 것이 되리라.
경에는 말하기를 『효(孝)의 이름을 계(戒)라 한다.』하였는데, 곧 살생을 경계하는 것이 효도인 것이다.
또 저 물류들의 성품에는 미리 아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어 피하는 것은 시간을 택하지 않으며, 처소를 가리지 않고 도망한다.
더구나 천지는 관대하고 넓어 스스로 봉양할 처소가 있는데도 지금은 스스로를 살리지 못하고 둘이 서로 만나면 반드시 사람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마니, 이는 대체로 선세의 인은 도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세(先世)의 인(因)을 도망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因)도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통열하게 경계해야 하리라. 만일 경계하지 않는다면 피차가 살해하는 업이 반드시 이전처럼 그 유로 끌려 들어가고 말 것이니 어떻게 도망하겠는가.
경에는 말하기를 『가사 백천겁이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이 회합하면 과보를 다시 자신이 받는다.』하였으니 어찌 헛된 말이랴.
그러므로 정각(淨覺)이 원만하신 우리 세존께서 사람 가운데 모습을 나타내사 모든 법회에서 이 살생 경계하는 가르침을 입이 아프도록 고계(告誡)하시기를 거듭하신 것이다.
또 이 계(戒)를 제승(諸乘)의 으뜸에 나열하셨으며, 범행(梵行) 가운데서도 준엄하고 간절하게 하였다.
다시 유리대왕(琉璃大王)이 석가 종족을 모조리 죽이는 것을 시현(示現)하매 부처님 또한 두통(頭痛)을 앓으셨고, 금창(金창)의 과보로 세상에 경계를 드리워 사람들이 인과는 도망하기 어려워 그 죽임에 이르러야 한 가지로 그친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셨으니 어찌 믿지 않겠는가.
혹 어떤 사람이 『부처님은 반드시 이럴 리가 없지마는 중생을 위하여 그렇게 보이셨을 뿐이다.』고 한다면 곧 성인은 사람을 속인 허물이 있으리라.
그러나 부처님은 허물이 없으시니 이것이 어찌 실제가 아니겠는가. 이미 실제라면 부처님도 그러하셨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알라. 보상(報償)하는 이치는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또 세상 사람들이 평생 친하게 지내다가도 혹 말 한 마디가 거슬린다거나, 한 물건만을 탐하여도 원한을 맺고 죽이는 경우에 이르기도 한다.
하물며 시퍼런 칼날을 대고 그 고기를 멋대로 씹어 먹는데 깊은 원한이 잊혀지랴.
저 세전(世典)에도 또한 『사방으로 포위하지 않으며, 떼지어 있는 무리를 덮치지 않는다. 낚시는 해도 투망은 하지 않으며, 잠자는 새에게 주살을 쏘지 않는다.』하였고,
또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차마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가르침 등이 있다.
바로 이것은 부처님 삼장(三藏)의 점교(漸敎)에서 『삼종정육(三種淨肉)을 헤아려 먹는다.』는 가르침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비록 대승(大乘)의 방등경(方等經)에서 살생의 업을 모조리 금한 것만은 못하지만 살생을 금하는 점차인 것이다.
살생을 금하는 점차도 그에 대한 지극한 덕과 금수의 칭찬이 있다. 더구나 입으로는 검소하게 채식만을 하며, 몸에는 반드시 삼베 옷만을 입는 것이겠는가.
자인(慈忍)에 뜻(意)이 전일하여 한 물질에게도 난폭하게 굴지 않고 각각 그의 삶을 이룰 수 있게 한다면 어찌 칭찬할만한 가없는 덕화가 아니랴.
옛날 성인은 앙상한 고목 같은 뼈만 남았다 할지라도 노출되게 하지 않으셨다. 마른 뼈가 무지(無知)하다 해도 마음에 차마 하지 못하고 그것을 장례하여 주신 것이다.
하물며 생명과 혈육이 있는 동일하게 신령한 물류(物類)를 살생하여 음식으로 먹을 수 있으랴.
노자(老子)는 말하기를 『사냥을 즐겨하면 사람의 마음을 발광(發狂)하게 한다.』하였고,
또 말하기를 『날아 다니는 새를 쏘고 달아나는 짐승을 추격하며, 땅 속의 굼실거리는 벌레를 파 뒤집고 둥우리에서 자는 새를 놀라게 하여, 방종하고 난폭하게도 물류를 죽이는 것이 삶아서 요리하는 이치와 무엇이 다르냐.』고 하였다.
나아가 행·주·좌·와(行·住·坐·臥)의 거동시위(擧動施爲) 동안에 상하고 죽임을 당하는 물류도 천지 공중에 반드시 수명을 담당하는 사명(司命)이 있고, 상제(上帝)는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을 공경히 받들어 그 무게를 따라 모두 기록하고 털끝만큼이라도 빠뜨림이 없다 한다.
가령 살생한 사람이 태어나면 연기(年紀)를 감소하여 부르는 것마다 뜻(意) 같지를 못하며,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뭇 괴로움을 갖추어 받게 되는 것이다.
도산검수(刀山劍樹)에 몸이 잘리고 꺽이며, 삶고 지져 창자와 폐를 뽑으며,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씹는다. 뼈를 절단하고 골수를 깍으며, 머리를 조이고 눈을 뽑아내고 다리와 손을 태운다.
이렇게 모든 지옥을 편력하는데, 이는 돌을 스치는 진사(塵沙)같은 겁(劫)으로도 그 수명을 비유할 수 없다.
저가 큰 지옥의 과보가 다한다 해도 백천 겁 동안이나 다시 아귀(餓鬼)에 떨어지며, 이와 같은 겁(劫)에 또 축생의 세계에 떨어지며, 축생 가운데서도 반드시 하나를 죽이고 하나를 보상한다.
살생하는 마음이 추중하면 혹은 한 번 보답할 것이라도 천만 내지는 다함이 없이 하기도 한다.
서로 죽일 사람과는 앞에서처럼 서로 만나, 혹은 죽이고 혹은 먹으며 묵은 부채를 보상하는데, 가장 작은 저울눈금만큼도 어긋나지 않는다.
가령 그가 선세에 조그마한 선행(善行)이 있어 사람 가운데 태어난다 해도 세세에 빈궁하고 고고(孤苦)하다. 많은 병으로 인해 단명(短命)하며 미친 병으로 뜻을 잃는다.
눈 멀고 귀 먹으며, 종기와 부스럼·피고름이 모든 것을 쇠잔하게 한다.
백천 가지의 괴로움으로써 장엄하며, 뭇 원한의 경계가 모두 그의 몸에 모여 친족들도 그를 버리고 차마 감당하지 못한다.
이는 모두 살생한 업이 깊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극한의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재동제군(梓童帝君)에게 있는 『화서(化書)에도 계살편(戒殺篇)이 있으며, 서경(書經)에도 말하기를 『악을 지으면 백 가지 재앙을 내린다.』하였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더구나 이류(異類)에게도 어진 마음이 있음이랴. 이치가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양(羔羊)은 꿇어 앉아 우유를 먹였으며, 자조(慈鳥)는 되 돌아와 그 어미새에게 먹이를 먹이는 효행(孝行)의 예(禮)가 있었다.
호견(胡犬)은 주인을 보호하였고, 해시는 굴복하지 않는 충직한 능력이 있었다.
벌과 개미는 군신(君臣)의 의로움이 있고, 원앙새는 부부의 정이 있으며, 기러기의 항렬은 형제의 우애가 있고, 앵무새는 지저귀며 친구와 우애한다.
저 군생(群生)들을 관찰해 보라. 사람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지극히 신령하다 하나 반대로 동체(同體)의 자비를 미루어 함식(含識)에게 미치지 못하고, 다시 저들의 생명을 죽여 한 몸을 봉양하니 어찌 신령하다 말하며, 어찌 어질다 말하겠는가.
또 육긍대부(陸亘大夫) 같은 경우, 남전(南泉)스님에게 묻기를
『제자는 고기를 먹어도 옳고, 먹지 않아도 옳습니다.』하자 남전스님을 말하였다.
『먹어도 옳은 것은 대부의 록(祿)이며, 먹지 않아도 옳은 것은 대부의 복(福)이니라.』하였으니 그 뜻을 또한 알 것이다.
세속에서 빈객을 초청하여 베푸는 연회와 시제(時祭)의 예(禮)를 행하는 것이라 해도, 어찌 마른 풀이나 외 같은 과실의 음식을 드리는 의식으로써 재계(齋戒)의 도를 완전히 할 수 없겠는가.
비유하면 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옛날에 백정의 아들이 있었는데 출가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살생을 하려 하지 않자, 그의 아버지는 칼·양과 아들까지 함께 밀실에 유폐시키고 「만일 양을 죽이지 않는다면 너를 죽이리라.」하였다. 그 아들은 이 때문에 자살을 하였는데, 이 공덕 인연으로 바로 천상에 태어나 다겁(多劫) 동안 천상의 쾌락을 받았다.』
그러므로 알라. 살생하지 않는 사람은 착한 처소에 태어나 그의 몸을 반드시 착하게 하여, 세세에 장수(長壽)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알리라.
또 이 덕으로써 멀리는 자손의 세대까지도 미친다.
그러나 요즘은 부처님 법이 소멸하려 하는 것이 마치 구정(九鼎)을 한 실로 매달은 것과도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긴 하나 부처님의 자비를 체득하지 못하고 마시고 먹는 것을 자약(自若)하게 한다.
검소하게 음식을 먹는 사람을 보면 반대로 소승(小乘)이라거나, 마구니 두목 등이라고 비방을 한다. 심지어는 소·양이나 거위·돼지에 비유하기도 한다.
혹은 이르기를 그 마음이 지나치게 독살스러워 백방의 꾸민 말로 그 허물을 고자질하고 들추어 내기도 하는데, 이들 악한 사람들은 천신(天神)이 보고 노엽게 여긴다 해도 태연자약하게 사람을 뜯어먹는 나찰처럼 말을 한다.
그가 가령 세상 사람들에게서 자기와 같은 유(類)를 얻고 나면, 반대로 『그는 조리 있고 정직하다.』말한다.
슬프다. 이는 부처님 법이 장차 멸망할 조짐이다. 불가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산(子産)이라는 정(鄭)나라의 대부는 물고기에 있어서도 『그가 살 처소를 얻었구나!』하고 찬탄하였으며, 제(齊)나라의 왕은 양 한 마리를 차마 죽이지 않음으로 해서 『해로움이 없습니다. 인(仁)을 베푸는 방법입니다.』하는 칭찬을 맹자에게 들었다.
대기(戴記)에는 『짐승을 죽이면 효성스럽지 못하다.』는 말이 있고, 서생(書生)이 개미를 구해주고 그 공덕으로 갑과(甲科)의 선발에 적중하였다 한다.
마땅히 알라. 살생을 하고, 하지 않는 것이 손익(損益)이 이처럼 소연(昭然)한데, 하물며 우리 석씨(釋氏)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살생의 업을 행해서야 되겠는가.
능엄경에 말하기를 『사람이 양을 잡아먹으면 양이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서 양이 된다. 너는 나의 목숨을 보상하고 나는 너의 부채를 갚아, 이 인연 때문에 백천 겁을 지나도록 항상 생사에 있게 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생생사사(生生死死)에 서로 와서 서로를 뜯어먹으며, 악업(惡業)이 함께 발생하여 미래세(未來世)를 다한다.』고 하였다.
법화경(法華經)에는 『사냥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이익을 위해 살해하고 고기를 판매하여 스스로의 생활을 하는 사람과는 모두 친근히 하지 말라.』하였고,
또 게송에 말하기를 『만일 살생을 하고자 하는 사람 응당 자신을 관찰하라. 자신을 죽여서 안 되듯 물명(物命)을 두 쪽 내지 말라.』하였다. 이 같은 등의 진실한 훈계가 어찌 소연하지 않으랴.
혹은 삿된 견해를 지녀 『저 중생들은 모두 허망하게 태어나고 허망하게 죽는다. 죄와 복은 본래 공(空)하여 죽인다 해도 과보가 없다.』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들도 허망하게 구하고 허망하게 먹는다. 혀로 맛보는 것은 본래 공하여 먹는다 해도 이익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 때문에 이미 탐하는 마음이 있는데 어찌 과보의 경계가 없으랴.
만일 『이 종류들을 먹지 않는다면 무엇에 쓰겠는가?』한다면, 땅거미·뱀·독사는 모두 쓸모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도 먹겠는가.
이상에 기술한 것으로써 자기를 살피고 저들을 비례하여, 평등하게 죽이지 않는 것이 어진 사람이 각각 행할 도인 것이다.
이같이 우리 출가한 제자들이 염불삼매를 닦아 삼업(三業)을 청정히 하며, 맺힌 원한을 풀고 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면서 어찌 살생한 음식을 끓지 않아 임종할 때에 스스로를 장애하는가.
대장경(大藏經) 가운데 광대하게 있는 교지(敎旨)는 모든 부처님의 일음(一音)이며, 시종이 둘이 아니다.
삼교(三敎) 성인의 가르침도 모두 그렇지 않음이 없어 조그마한 지면에 어떻게 구비하여 인용할 수 있겠는가.
다만, 법계의 중생들이 이 의취(義趣)를 듣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도를 체득하여 인수(仁壽)에 함께 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함께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 모든 원결을 면하며, 다시 법답게 사람을 교화하여 성인이 자비로 구제하신 도로 충만케 하여야 한다.
저들과 내가 자비로운 마음을 모두 증득하여 반드시 연화(蓮華)의 세계에 함께 나아가 정각(正覺)을 이루리라.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극락도사 아미타불 -
< 참고 > 묘협대사는 원나라 말엽에서 명나라 초기에 근강에 계셨던 큰 선지식임. 법은 종승(宗乘)을 계승하고 교는 연사(蓮社)를 일으켜, 영명각호(永明角虎)의 예언[懸記]대로 보왕삼매의 담론을 연창하였다고 보왕삼매염불직지(寶王三昧念佛直指)에 쓰여져 있음
첫댓글 ...................()............
이글을 읽고나니 지난날 살생으로 지은죄가 너무 무섭습니다 지난날의 모든 살생한죄 진심으로 참회를 드리며 앞으로는 살생을 하는 죄를 짖지 말아야겠읍니다. 진심으로 참회를 하면 용서가될런지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블.나무아미타블.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