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산자락 중턱에 작은 절이 있어요.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도 있고 맑은 물이 퐁퐁 솟아 오르는 샘도 있고 참 운치있는 절이예요'
시골 면소재지에서도 한참 더 들어 가서 산골짜기에 살고 있는 후배를 보러 갈때면 그 마을에서도 산으로 굽이 굽이 올라가는 산길이 있어서 저 위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후배가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나 산으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것 같애서 초보 운전 실력으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빤히 쳐다 봐야만 했다.
몇 년 후에 다시 갔을 때 '지금은 그 아래에 새 절을 지어서 내려와 있고 윗 절은 비었어요' 했으나 그러고도 또 몇 해가 지나서야 마침내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절에 도착하여 스님께 인사드리고 찬찬히 보니 아랫 절은 지은지 몇 년 안돼서 아직 손봐야 할 곳이 많은 듯 했고 그저 비구니 스님 혼자서 생활하시기에 알맞게 법당과 요사채가 같이 있는 그런 일자형 절이었다.
'윗절은 비어 놓은지 3 ~ 4년 돼서 이제 폐허가 되어가요, 참 운치있는 좋은 절이었는데.....' 하며 아쉬워 하는 후배와 새 절에서도 꼬불꼬불 더 산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마침내 옛절이 나왔으나 마당엔 잡초가 무성하고 돌계단을 올라가니 윗법당은 기와가 깨져서 물이 새는지 커다란 갑빠로 지붕을 씌워 놓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으면 집이 금방 저렇게 시나브로 스러져가는 듯 연못엔 물이 말라 있고 잘 가꾸어졌던 나무들과 뜨락은 넝쿨잡초가 마당까지 올라와 산발한 머리처럼 헝클어져, 마치 사랑을 잃고 버림받은 여인네가 하염없이 맥을 놓고 있는 것 같았다.
아랫마을에 사는 후배는 못내 아쉬워서 '이 샘은 아무리 깊은 가뭄이라도 물이 마른 적이 없대요, 또 저위에 있는 샘도 바위밑에서 나오는 물인데 참으로 시원해요' 하며 이쪽저쪽을 살피며 돌아 다니나 먼지가 앉아서 뽀얀 마루에 앉을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폐가일 뿐이었고, 한쪽이 무너져 내린 법당에선 당장에라도 신장님이 뛰쳐 나와서 '요 ~놈들, 나를 이렇게 버려 놓고 너희들만 잘 사는거냐?' 하고 호통을 칠 것 같애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아랫절과 떨어져 있으니 내가 좋아하는 대금을 불기에 좋을 것 같고, 마침 대금연주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일요일에 연습하러 다시 절에 갔다. 스님은 윗절에 간다는 말에 '거긴 비어 놓은지 오래돼서 을씨년스러운데요, 하지만 대금 불기에는 소리도 안들리니 좋을 거예요' 하며 반가이 맞아 주셨다.
그렇게 나와 산자락 작은 오두막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귀신 나올 것 같던 폐가가 한번 두번 가면서 마루를 걸레질하고 마당의 잡초도 뽑고 하니 조금씩 윤기가 나기 시작하였다.
오랜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면서부터 나는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원래부터 시골에 집이 있었으면 하던 오랜 바램이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마침 장날이면 읍내장, 역전장을 꼽아 가며 시장에 나가서 장미 , 매화나무 등을 사가지고 절에 가기 바빴다. 또 팬지나 꽃잔디등 꽃묘도 사서 앞마당 가장자리에 심었다. 왜 그해 봄은 그렇게도 가물었는지 생전 마르지 않았다던 샘이 말라서 남의 애를 애가 타게 만들었다. 출장 갔다가도 잠깐 들러서 꽃에 물을 주어야 했고, 서울 교육을 가면 며칠 친척집에 머물러서 놀다 오던 것도 꽃이 죽을까봐 서둘러 밤에 내려와야 했다. 생명이 있는 것과 친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알았다.
가을이면 길을 가다가도 차를 세우고 코스모스 씨를 받았고, 서리가 내린 더 깊은 가을엔 칸나 뿌리를 캐느라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옆 화단에서 낑낑거려야 했다. 차 트렁크에는 항상 호미와 장갑이 실려 있어서 어디서든지 꽃씨나 꽃묘를 얻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오두막에만 가면 그렇게 좋았다.
답답한 아파트와 일상생활에서 놓여나 하루종일 뜰을 거닐다 풀을 매다 샘을 쳐내고 대금을 불고 책을 읽다 그렇게 보내면 피부도 호흡을 한다더니 온 몸으로 산소가 들어오는 것 같아 절로 마음이 상쾌해졌다. 또 원래 오랫동안 절이 있던 자리라 호두나무, 목련, 철쭉, 단풍나무등이 많아서 따로 나무를 심지 않아도 철따라 꽃이 피고 우거진 숲이 있었다.
오랜 꿈인 시골의 오두막을 갖게 된 것이 자랑스러워서 인터넷으로 동네방네 자랑 했더니 그동안 몇 팀의 사람들이 놀러 왔다. 캄캄한 밤에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 오두막에 내려 놓으니 처음엔 '어유, 무서워' 하던 아이들이 아침엔 '목련꽃이 나비처럼 팔랑팔랑 떨어져요' 하며 앞마당, 돌계단을 올라 윗법당이 있는 마당, 샘가에 뛰어 다니기 바쁘다. 여행을 가도 콘도나 여관으로 가기 때문에 이런 산자락 시골집에선 처음 자보니 너무 좋은 가보다.
또 언젠가는 마곡사 선수련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와서 밤을 새워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아침에 일어나 찬란한 햇빛이 별처럼 눈부시게 부서져 쏟아져 내리는 뜨락에서, 식탁을 차려 놓고 법당 마당에 가득 떨어져 있는 알밤을 주워 삶아서 빵과 커피와 과일로 아침 식사를 하니, '세상에 여기가 도솔천 같애요' 하여 우리 몇몇에게는 도솔천으로 통한다.
여름이면 대금 수련회를 그 곳에서 하기도 한다. 해마다 여름이면 대금을 배우는 회원들끼리 며칠동안 모여서 먹고자고 하면서 연습을 하는데 회원들을 그 오두막에 오게 했다.물론 내가 더 준비할 것이 많지만 내 산자락 오두막에서 밤 뻐꾸기 우는 소리도 듣고 싶고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해서다. 그래도 아직 나 혼자서는 어쩐지 무서워서밤에 잠을 자본 적은 없다.
작년 늦가을에는 뜰에 탁자를 내어 놓고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가 비가 내려서 마루로 옮겨서 다시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하얀 눈송이가 펄펄 떨어지고, 금방 숲은 포근한 하얀 이불을 덮고 수런수런 저희들끼리 속삭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신비한지 그런 기쁨은 유리문으로 가려진 실내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렇게 내 뜰을 가꾸기 3년,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옛날 같은 모습으로는 아니라도 마루엔 윤기가 흐르고 법당은 고치진 못했어도 촛불을 켜고 부처님께 기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또 얼마전에는 내 방에 전기 판넬을 깔았다. 오랫동안 비워놓은 방에 기름 보일러를 올려도 금방 뜨거워지지 않고 올 때즘에서야 더워지니 여름이 지나 초가을만 되어도 방이 을씨년스러워 들어 갈 수가 없어서 아쉬워 하던 차에 마침 아는 설비사가 있어서 연락을 하니 금방 해 주었다.
지난 추석 다음날엔 남편과 같이 가니, 따듯한 방에서 낮잠도 자고, 마당가에 탁자를 내어 놓고 책을 읽다, 대금을 불다 차를 마시다 또 풀을 쳐내고 올라오는 입구에 떨어진 호두나무 잎새들을 쓸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장작불이 탁탁 타는 소리와 지붕아래로 연기가 기분좋게 퍼지는 것을 즐기며 그렇게 모처럼의 연휴를 느긋하게 즐겼다.
아쉽다면 남편은 도통 여기 와서는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이다. 풀을 뽑고 몇 주만에 가보면 풀이 또 한자는 자라 있어서 제발 제초제를 뿌려 달라고 사정을 해도 자기는 하지 않고 가게 직원을 시켜서 겨우 한번 해주는 정도다. 자기가 관리하는 절이 하도 많아서 더 접수해 놓으면 안된다나!
그래도 아랫 절에는 연꽃으로 유명한 인취사에서 가시연도 갖다 심어 놓고, 옥잠화도 심고, 지붕에 물이 새면 올라가 보기도 하며 새로 오신지 얼마 안된 비구니 스님께 큰 힘이 되곤 한다. 내년에는 아마 내 산자락에도 연꽃을 심어 주겠지........
이곳에만 오면 얼마나 행복한지, 어쩌다 내가 이렇게 분에 넘치는 행복을 갖게 되었는지 정말 감사해진다. 하루종일 자연과 숨쉬며 자연의 소리가 신의 소리라는 것을 깨달으며 겸허하게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또 배운 것도 많다. 열심히 뿌린다고 해서 그 해에 금방 얻어지지가 않고, 인내를 갖고 노력하면 첫해 보다는 둘째 해가 ,또 다음 해가 서서히 조금씩 더 나아진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내려 가면 금방 다른 욕심이 조급하게 고개를 들곤 하지만 말이다.
산자락 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정말 행복하다, 세상의 어느 웅장한 궁전의 여왕님 보다도...........
산자락님 감사합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물론 그런 좋은 곳에 가면서 무엇인가 남길 줄 아리라 생각이 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꽃씨나 나무 꽃묘도 가능할 수 있고 노력봉사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 문인들이 그 곳에서 문학의 향취에 취해서 서로의 가슴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산홍 , 너무 좋지요, 가을에 나무 심으면 좋다고 하던데 그래서 육림의 날이 가을에 있지요, 아마! 이 가을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요즘 생각중입니다. 이번주 일요일, 10월 5일날(일요일), 12일(일요일) 갈 것 같은데요, 그때 갖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봉산 금치리 보광사 윗뜰입니다.
첫댓글 아, 마친 숲속의 작은 궁전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곳에 나그네도 가도 되나요? 어디인지는 몰라도 아이디가 산자락이 된것도 이제 알듯합니다. 한번 공개하신다면 우리 회원들 놀러갈 수 있을텐데... 가능한지요?
항상 좋아보여요.참삶을 사시는것 같아
쓰다가 말아서요.오짜르트가 채팅들어 와서요. 그런데 말하다가 나가버렸어요 안녕
사무국장님, 우리 예산문학 글방으로 쓸 수 있습니다. 다만 보광사 스님께 폐가 안되어야 하고요, 오실때는 꼭 꽃나무나 꽃묘나 씨앗이나 그것도 없으면 오셔서 풀을 깎던 샘을 치던 노력 봉사라도 하셔야 합니다.
산자락님 감사합니다. 우리 회원님들은 물론 그런 좋은 곳에 가면서 무엇인가 남길 줄 아리라 생각이 됩니다. 물론 때에 따라서 꽃씨나 나무 꽃묘도 가능할 수 있고 노력봉사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됩니다. 우리 문인들이 그 곳에서 문학의 향취에 취해서 서로의 가슴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연산홍 묘목도 괜찮으시면 제가 구해 드릴 수 있는데여.....
연산홍 , 너무 좋지요, 가을에 나무 심으면 좋다고 하던데 그래서 육림의 날이 가을에 있지요, 아마! 이 가을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요즘 생각중입니다. 이번주 일요일, 10월 5일날(일요일), 12일(일요일) 갈 것 같은데요, 그때 갖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봉산 금치리 보광사 윗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