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라... 부천에서 출발해서 점심을 마련하려면 아침 7시경에는 나서야 한다. 큰 아이가 8시에 학교를 가고, 작은 애가 9시에 학원을 간다. 처음 춘천에 나눔 봉사를 시작하겠다고 할 때, 내심 반대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그 먼 곳을... 그 시간에 가까운 곳으로 두 곳을 더 갈 수 있겠다 하는 짧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멀어서 봉사 할 사람이 없다는 그 곳의 현실을 듣고, 오히려 손길을 많이 필요로 하는 그런 곳으로 연결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나눔님 내외분을 보면서 내가 참석할 여건은 안 되지만, 반대할 것만은 아니다 싶어 그냥 있었다.
일단 정해진 봉사자는 그 곳에 가깝게 계시는 우주님과, 나눔님의 친구인 경남님으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약간의 걱정은 되지만 지켜 보면서, 시간이 흐르고, 거듭되는 후기를 읽을 수록 나도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진해진다.
그러나,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최소한 3년은 해야 한다는 마음때문에 쉽게 첫 발을 내딛지 못 하고 갈등만 하고 있었다. 봉사 날짜를 사흘 앞두고 저멀리 거제도까지 간증집회겸 나눔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런 세상에... 그 먼곳까지 아이들 학교와 학원까지 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 오면서 차마 춘천에는 못 가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르겠다. 알아서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큰 애는 시간맞춰 문 잠그고 학교 가라고 해 놓고선 혜진이만 학원을 빼고 데리고 가기로 마음 먹고, 아침 7시 30분에 출발을 했다.
춘천, 춘천이라... 멋진 호수가 배경으로 펼쳐진 고장이다. 이틀, 거제도를 다녀온 무리한 일정에 하루 쉰다고는 했지만, 그새 곰님의 밀가루와 국수등을 협찬 받으러 다녀오고, 다른 밀린 일들을 하고, 모두들 피곤이 쌓여 있지만 즐겁게 재잘거리며 먼 거리를 달렸다. 비가 오기 전이면 늘 하늘보다 먼저 아파버리는 나눔님은 평소답지 않게 힘들어 한다. 날씨 탓이기도 하지만 누적된 피로로 몸살이 겹친것 같다.
조립건물 세 동으로 지어진 춘천 나눔의 동산이 눈에 들어오고, 차가 주차되자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이 함박 웃음으로 달려 나온다. 짐을 내리고, 협찬 받아 온 국수와 떡볶이 등을 냉장 보관하게 하고, 칼국수를 끓이기 위한 준비가 진행된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밀대로 밀고 칼질까지... 나는 감히 엄두도 못 낼 경남님의 대단한 솜씨이다. 씻고, 다듬고, 썰고... 자잘한 손이 가는 것들을 돕는 동안 한 쪽에서는 순식간에 배추겉절이와 무생채가 담가진다. 혜진이는 금방 언니들하고 친해져서 잘 놀고 있다. 춘천 아이들이 목욕을 하는 동안 다 끓여진 칼국수로 어린 아이부터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들까지 약 40여분의 식사가 상에 차려진다. 열 명 정도 되는 아이들은 지금 학교에 가고 없다고 한다. 칼국수를 좋아해서 많이 먹어 봤지만, 오늘처럼 맛있는 칼국수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느 대학에서 나왔다는 봉사팀들이 설겆이를 자청해서 하는 동안, 우리들은 만두속을 만들었다. 세 사람이 고기를 볶고, 두부를 으깨고, 김치를 썰고, 물기를 짜고, 이것저것 양념을 해 넣고 맛있는 만두속 한 통을 도깨비 손처럼 뚝딱 준비해 드리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한 잔씩 마신다.
부엌이 크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말을 하자 나눔의동산을 돕고 계시는 집사님은 건물을 고치면서 업체에서 소원을 묻길래 부엌을 조금만 더 크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더니, 그렇게 넓고 편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처음에는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일어나 부엌에 나와 앉아 계셨단다. 우리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하시는데, 내 눈에는 그 집사님이 더욱 커 보이신다.
공기 좋고 깨끗한 곳, 산 아래 위치한 건물 한쪽에 마른 우거지가 많이 걸려 있다. 큰샘물님이 무료급식소에서 쓰겠다고 두 줄만 달라고 하자, 인심도 좋게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주신다. 어떤 부부가 시래기가 맞다, 시라기가 맞다 하고 입다툼을 하다가 식당 주인에게 물어보니, 우거지요~ 해서 웃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아줌마 책에서 봤다고 반겨주던 아이들에게서 혜진이를 데리고 나오자 금방 정든 아이들이 다음에도 다시 오라고 다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