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3.06.08. 오전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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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야화(野生野話)] 백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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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천골에서 바라본 백천저수지와 사천만. 사천만 바다가 마치 호수 같다. |
ⓒ 뉴스사천 |
[뉴스사천=최재길 시민기자] 경남 사천 백천저수지를 마주 보고 섰다. 호수 가득 물빛은 이미 푸른데, 이제 막 신록을 벗어난 숲이 또 어깨를 걸친다. 호숫가에 번지는 고요한 반영, 어느새 마음 한 자락도 젖어드는구나! 숲과 물의 경관은 언제나 마음을 포근히 안아주는 모성을 지녔다.
우리가 그 속에서 나왔기에 이유 없이 끌리는 것이리라. 저수지 바로 위에는 와룡산 자락의 고찰 백천사가 있다. 창건한 지 천년이 훌쩍 넘었다지만,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구나!
이제 숲길로 들어야겠다. 보슬보슬 빗방울이 듣는다. 숲길엔 큼큼한 흙냄새로 피어나는 지오스민과 함께 5월의 꽃향기로 가득하다. 물기 머금은 꽃들이 내놓는 향기, 촉촉한 꽃잎을 아래로 드리운 아까시나무와 때죽나무, 또 찔레꽃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 나무들 모두 향기가 대단 하지만, 그중 제일은 아까시나무일 거다. 우리 주변에서 아까시나무만큼 은은하고 달콤한 꽃향기를 풍기는 나무가 또 있을까? 벌이 많이 찾아오니, 밀원식물로 아까시나무를 야산에 심기도 하는 거지.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양봉 꿀을 먹을 수 있을 테고. 때마침 양봉 꿀이 세 통이나 들어왔구나. 산청에 사는 마음 착한 지인 형님이 보내주신 거다. 꿀물 한잔할 때마다 오월의 아까시나무와 꿀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비 오는 날의 숲길은 또 다른 맛을 안겨 준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기후와 자연환경의 변화는 우리의 생활과 기분전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생강나무 햇잎이 귀여운 얼굴로 길섶을 바라본다. 금방 내린 보슬비 몇 방울을 간지러운 솜털이 붙잡고 있다.
야생의 관목 개옻나무 노란 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물참대를 닮은 고광나무는 새하얀 꽃송이를 새초롬히 내밀었다. 그 위에 촉촉한 물방울이 싱그러움을 더한다. 숲길엔 꽃향기와 더불어 감각을 일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빗방울 듣는 소리, 자연의 소리는 고정된 패턴이 없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뇌는 이내 편안함을 느끼고 알파파를 내놓는다. 그야말로 보드랍고 촉촉한 힐링의 시간이다.
숲길 중턱에서 바라보니 백천저수지 너머 사천만이 손바닥 호수처럼 가려져 보인다. 이따금 휘파람새 소리가 들려온다. "할아버지 보리 뷔유!" 전해오길, 마실 나간 할아버지를 재촉하는 소리란다. 그 소리에는 다 익은 보리밭을 바라보며 애가 타는 할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다.
휘파람새는 보리 벨 때쯤 나타나니, 그 누가 휘파람새 소리를 '할배 보리 뷔유!'라는 기발하고 해학적인 말로 풀었을까? 이제 농경사회의 유산이 된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는 이렇게 애틋한 정감이 녹아 있다.
저 멀리 뻐꾸기 삼총사 소리도 들려온다. 오뉴월 깊은 숲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다. 뻐꾸기, 검은 등뻐꾸기, 벙어리뻐꾸기. 이들 모두 두 박자씩 쪼개서 네 박자로 운다. 뻐꾸기는 '뻐꾹뻐꾹', 검은 등뻐꾸기는 '홀딱 벗고', 벙어리뻐꾸기는 '멍멍 멍멍' 하고 운다. 우는 소리도 아주 다르게 참 재미있는 뻐꾸기 삼총사다.
뻐꾸기는 자식을 돌보지 않는 비정의 새라 손가락질하지만, 사실은 자식을 돌보지 못하는 거라 하니, 몸통은 크고 다리가 짧은 신체 구조 때문이란다. 사연을 알고 보면 함부로 말 못 할 경우도 있는 거다.
숲길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길, 내려다보는 골짜기에는 구불구불 다랭이논에 물이 가득가득 실렸다.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마다 은빛 물결이 출렁인다. 금방 한 계절 지나고 나면 금빛 물결로 또 출렁이겠지?
논둑길을 따라가다 묵정밭에 들었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엉겅퀴 붉은 꽃이 해맑은 웃음으로 올해 첫인사를 한다. 잎끝은 온통 가시로 무장했지만, 꽃은 한없이 부드러운 두 얼굴. 단단히 잠가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활짝 열어야 할 때도 있으니.
사랑의 몸짓은 감추었던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다. 사랑과 나눔의 행위에 가시를 두른다면 누가 쉽게 다가설 수 있겠는가? 가시 성성한 엉겅퀴꽃에게 한 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