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사본 하나로 전 재산 털렸는데 금융기관은 왜 모르척하나요.
한겨레, 서혜미 기자, 2022. 07. 18
신분증 사본 사진에도 통과되는 비대면 실명인증절차
경실련 "시중은행, 기술 있지만 돈 아까워 도입 안해“
금융사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 확인 과정에서 신분증 진위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까닭에 명의를 도용당해 대출 채무가 생겼다는 피해자들의 호소가 늘고 있다. 금융사들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신분증 사본인증 피해자 모임’은 18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금융사고 피해자 고발대회 기자회견을 열고 “모바일뱅킹 등 스마트폰을 활용한 비대면 실명확인을 할 때, 금융회사 등이 신분증 촬영본으로 ‘사본인증’만 간편하게 하는 방식 때문에 이를 악용한 비대면 대출사기나 예금 전액 무단인출 등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금융사의 인증 절차는 신분증 원본이 아니라 이를 촬영한 사본만 있어도 통과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유출된 사본이 대출사기 등에 이용되고 있다.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예금을 잃거나 대출 사기를 당해 채무 상환 의무를 짊어지게 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ㄱ씨는 어머니가 지난해 7월 사기 피의자에게 명의를 도용당해 총 4개 금융사에서 2억500만원을 본인도 모르는 새 대출이 됐다고 했다. 피의자는 ㄱ씨 어머니의 개인정보로 알뜰폰을 개통한 뒤, 휴대전화 인증을 통해 포털사이트 계정 비밀번호를 재발급받았다. 이후 ㄱ씨 어머니 클라우드에 저장된 여권 사진 및 분실신고된 신분증 촬영 사진을 도용한 뒤 비대면 대출을 받았다. ㄱ씨는 “신분증 원본 진위 확인을 했다면 절대 유효한 대출이 아니지만, 이런 일이 터지면 금융사는 왜 관리를 못 했냐고 피해자에게 말한다”고 했다. 그는 “만약 취업할 때 신분증 사본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준 사진이 유출돼 돌고 돌아 비대면 금융 범죄에도 이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ㄴ씨 역시 지난해 8월 미성년자 자녀의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1억이 넘는 대출사기를 당했다. 휴대전화 대리점 직원이 ㄴ씨의 신분증 사본 사진을 이용해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을 개통한 뒤 여러 건의 비대면 대출을 받은 것이다. ㄷ씨도 “카카오뱅크도 남편 명의를 도용한 사기 범죄자에게 원본이 아닌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 즉 신분증 사본만으로 어떠한 확인 절차 없이 총 4차례 5920만원 대출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중 신분증 원본대조가 가능한 진위 확인 시스템을 갖춘 모바일뱅킹은 현재 단 한 곳도 없다”며 “현재 신분증 진위확인 관련 인증 기술이 있지만, 시중은행 등은 신분증 진위확인 시스템 도입·관련 정보통신 설비투자 비용, 인건비 등이 아까워서 해당 기술을 알면서도 고의로 도입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금융개혁위원인 김호윤 변호사는 “신분증 사본 확인은 금융실명법 위반”이라고 지적하며 “피해자에게 ‘원스톱 금융소비자 피해구제’를 통해 민·형사 사건 대응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 발생 시 금융회사에 입증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피해자들의 채무면책 등을 지원하는 금융감독기구 설치, 경찰, 금감원, 소비자보호원, 금융회사가 참여하는 금융기관 조정기구 설치 등을 제안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