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을 표현하고자하는 욕망은 인간만이 신으로부터 받은 원초적 본능이다. 전자는 이성이란 이름으로, 후자는 감성이란 이름으로 인간의 삶과 함께 한다.
이성과 감성이 대립되는 개념으로 보이듯 수학과 음악이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각각 직.간접적으로 서로를 수용하고 격려한다. 수학의 구성과 호흡은 음악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이고 외연적인 닮음이다. 하나의 음악이 훌륭한 음악이려면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하여야 하며 그 탁월성의 보장은 외연적 형식의 조화를 유지하면서 획기적 발상을 담은 아이디어에 뿌리를 둔다.
하나의 수학 논저가 훌륭한 수학의 조각이 되자면 그 안에 담긴 내용이 일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지성의 음악이어야 한다. 수학 속에는 음악이 커피 잔에 설탕 녹아 있듯 용해되어 오직 간접적이고 조용하게만 존재하지만 음악에 대한 수학의 존재는 거칠고 직접적인 면모도 있다.
옛날에는 음악이 예술로서보다는 과학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었다. 수세기 동안 수학이 음악을 설명하고 해부하고 분석하는 도구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악기의 현에서 나는 음의 높이는 현의 진동수에 비례하고 길이에 반비례한다는 것은 희랍의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바이다. 진동수가 "도"음의 진동수의 9/8배, 5/4배, 4/3배, 3/2배, 5/3배, 15/8배, 2배인 음이 각각 '레', '미', '파', '솔', '라', '시', '도'이다.
현악기를 이와 같은 비로 하는 조율을 피타고라스조율이라고 하는데 서양 음악에서는 이 조율을 피타고라스 이후 2000여년을 사용해 왔다.
노래방에서 여자 노래를 남자 키로 바꾸어 보면 약간 이상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이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이라도 시작키를 바꾸어 연주하면 조화롭지 않게 들릴 경우가 있다.
18세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건반악기를 조율하는데 전부는 아니라도 여러 개의 키로 시작하더라도 조화로운 음악이 되도록 노력하였다.
하지만 어떤 키로 시작하면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는 음악이라도 다른 키로 시작하면 조화롭지 못한 소리가 나는 것은 여전하였다.
이런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독일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안드레아스 베르크마이스터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수학에서 찾았다.
서양음악 시스템에서 하나의 음계는 '도'에서 '시'까지 7개의 음과 5개의 중간음이 들어가서 12개의 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12개의 음이 모든 인접한 두 음의 진동수의 비가 같도록 조율되면 어느 음으로 시작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똑 같은 음악이 연주된다.
그 비는 첫째 항이 1이고 13째 항이 2인 등비수열의 공비인 2의 1/12승, 즉 자신을 12개 곱해서 2가 되는 수이다. 피타고라스조율에서 사용된 수열은 이와 같은 등비수열과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Well tempered Clavier'는 베르크마이스터의 조율법에서는 키를 바꾸어도 상대적 조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작곡된 바하의 작품이다.
매일신문 2004년 0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