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2회(2013년 6월) 대덕산악회 산행 안내
회원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6월이 되었습니다. 봄이 온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날엔가 갑자기 더워지더니 이제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르는 여름이고 보니 회원님들의 건강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는 등산인이라면 꼭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 한다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용문산으로 정했습니다. 바위가 많아 험하다고 소문은 났지만 길이 멀어 혼자서는 가기 어려운 곳이기에 이번 기회에 많이 참석하시어 나도 용문산에 한번 갔다 왔다는 자랑거리를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세요.
- 아 래 -
◐ 일시 ; 2013년 6월 23일(일요일) *매월 넷째 일요일(우천불구)
◐ 행선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1,157m).
◐ 회비 ; 정회원 15,000원, 준회원 20,000원
◐ 개인준비물 ; 중식 도시락. 식수. 개인간식. ( 조식과 하산주는 제공)
- 출발시간과 승차위치 -
☞ 07;00 어린이회관 입구 ☞ 07;10 대구은행 본점 대각선 건너편
☞ 07;20 반월당 현대백화점 서쪽 ☞ 07;30 서남시장 앞 버스정류소
☞ 07;40 성서 향군회관 앞(신호 건너기 전)
- 알아두실 일 -
◈ 참가희망자는 6월 20일(목)까지 부회장에게 신청. (☎ 011-829-1833)
◈ 전화 신청 : 오후 6시30분 이후 통화 가능. ◈ 문자 신청 : 시간제한 없음.
◈ 날씨가 더워서 산행 시간을 조금 일찍 할려고 아침 식사를 차내에서 할 예정입니다
도시락 주문관계로 용문산 산행 참석하실 회원님은 꼭 신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용문산 안내]
용문산(1,157m)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그 주변에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 국망봉(1,168m)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처음에는 미지산으로 불리었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바 꿔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바위가 많아 비교적 험난한 산으로 알려져 있는 반면, 그 주변에는 첩첩이 쌓인 암괴와 깊은 계곡, 폭포가 많아 금강산을 방불케 한다고 하여 등산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용문산에 한번쯤은 오른다는 말이 있다.
이 용문산에는 신라 신덕왕 2년(913)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유명한 용문사가 있다.
여려 차례 중수되고 임진왜란때 불타버리기도 했지만 그 뒤 다시 중수되어 지금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이 사찰에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는 수령 1,100년이 되는 은행나무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천년기념물 제 30호인 이 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하는데 이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2013, 6,
대덕산악회 회 장 신 정 희 드림.
천년기념물 제 30호 은행나무
♣용문사♣
1100년 된 신엄(神嚴)한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는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다.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난히 조선시대 왕들과 인연이 많다. 태조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만 절을 네 번 중창했다. 조선 초기에는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용문사는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왕실의 사랑을 받았다. 호산 스님은 “용문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이곳과 경북 예천, 경남 남해에 세 개가 있는데, 위치상으로 양평 용문사가 가장 위에 있어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며 “또 용문산은 예전에 미지산(彌智山)으로 불렸는데, 이는 미륵의 지혜라는 뜻이다. 해서 왕이나 관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용문사에 들러 기도를 드렸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입신양명을 원하는 이들이 기를 받고 간다고 한다.용문사는 조선 말기 때부터 고난을 겪었다. 1907년 일본군이 불태웠고, 한국전쟁 때는 용문산에서 중공군 2개 사단 병력이 전사했을 정도로 큰 전투가 터지면서 절이 피해를 입었다. 후에 대웅전, 칠성각, 관음전 등을 다시 지어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절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종무소로 70년 정도 됐다.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30호이다. 마치 다섯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웅장한 모습을 한 은행나무는 높이가 42m, 줄기의 가장 굵은 둘레가 14m에 달한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가 됐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왕(경순왕)의 아들이었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이 전해진다.신발장에 가득 찬 털신이 정겹다.
1100년 된 신엄(神嚴)한 은행나무가 버티고 있는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다.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난히 조선시대 왕들과 인연이 많다. 태조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만 절을 네 번 중창했다. 조선 초기에는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용문사는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왕실의 사랑을 받았다. 호산 스님은 “용문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은 이곳과 경북 예천, 경남 남해에 세 개가 있는데, 위치상으로 양평 용문사가 가장 위에 있어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며 “또 용문산은 예전에 미지산(彌智山)으로 불렸는데, 이는 미륵의 지혜라는 뜻이다. 해서 왕이나 관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용문사에 들러 기도를 드렸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입신양명을 원하는 이들이 기를 받고 간다고 한다.용문사는 조선 말기 때부터 고난을 겪었다. 1907년 일본군이 불태웠고, 한국전쟁 때는 용문산에서 중공군 2개 사단 병력이 전사했을 정도로 큰 전투가 터지면서 절이 피해를 입었다. 후에 대웅전, 칠성각, 관음전 등을 다시 지어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절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종무소로 70년 정도 됐다.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30호이다. 마치 다섯 그루의 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웅장한 모습을 한 은행나무는 높이가 42m, 줄기의 가장 굵은 둘레가 14m에 달한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나무가 됐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왕(경순왕)의 아들이었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