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108)
二十四. 無上勝 長者 -- 第三 等一切佛廻向善知識
무상승 장자(無上勝 長者)라. 현대인들이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어떤 종교를 믿어도. 또 종교를 안 믿어도 모~든 사람이 믿는 종교가 하나 있는데. 그건 뭘 믿느냐··· 기계신을 믿는다, 그래요 기계신. (대중 웃음) 기계를 안 믿는 사람은 없어요. 전~부 자동차, 그런 거 다 기계죠, 이런 거 다 기계죠. 전부 기계신을 믿는다, 그랬어요. 기계에 신이 있는 건 아닌데 신격화하고 있어. 벌써 우리들 머리에는 기계를 사용하는 습관이 젖어 가지고. 기계를 안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지금. 그래서 전부 기계신의 신봉자다, 현대인은. 기계신의 신봉자다, 그래요. 가만히 듣고 보면 맞는 말이라. 전부 기계신을 믿는 사람들이라. 불교는 늘 그··· 믿니 안 믿니 해도 기계신은 다~ 믿어. 기계 안 믿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전부 기계는 다··· 오늘 컴퓨터가 발달하면서 더욱 더 그래요. 일체 우리 생활에 기계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그래 기계가 다~ 들어가 놓으니까 그래서 불교인인나 기독교인이나 할 거없이 전부다 기계신 신봉자다··· 그러니까 정말 기계신의 위력이 이렇습니다. (대중 웃음) 그래 기계신을 안 믿을 수 없게 생겼어요. 다 믿어야돼···
우리 선조들. 우리 선조라 할 것 까지도 없고. 한 4·50년 전만 해도 기계 별로 안 썼죠. 그래서 기계에 대해서 인식이 별론데. 이 기계가 하··· 눈부시게 발달하면서 모두들 기계신의 신봉자가 됐어요. 무상승 장자(無上勝 長者)라. 기계야말로 무상승(無上勝)이다, 이거야. 최고 높은 장자다, 최고 높은 장자다.
1. 依敎趣求(의교취구)
爾時에 善財 童子가 起大慈周遍心과 大悲潤澤心하야
이시 선재 동자 기대자주변심 대비윤택심
선재 동자가 큰 사랑. 자애의 두루두루 미치는 그런 마음. 큰 비(悲). 어여삐 여긴다. 애석하게 여긴다, 하는 그런 뜻이죠. ‘비[悲]’자(字)는. 크게 애석하게 여기는 윤택심. 이런 것을 일으켜서
相續不斷하며
상속부단
그 마음이 계속 되어서 끊어지지 아니하며
福德智慧가
복덕지혜
복덕과 지혜가
二種莊嚴하며
이종장엄
두 가지로 장엄이 잘 돼 있다.
捨離一切煩惱塵垢하며
사리일체번뇌진구
일체번뇌의 때를 사리(捨離). 다 버려서 떠나 보내며
證法平等하야 心無高下하며
증법평등 심무고하
이 게 좋은 말이라고 했죠. 법의 평등함을 깨달아서 마음에 고하(高下)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사람 차별하지 않을려고 해도 진정으로 우리, 인간의 평등함을 깨닫기 전에는 그게 쉬운 게 아니예요. 왜냐하며는 차별하게 돼 있어. 다~ 각양각색이고. 서로 성격이 다르니까. 성격이 서로 맞는 사람들끼리만 좋지, 안 맞는 사람들끼리는 어쩔 수 없이 또 그게 차별하게 돼 있거든요. 그건 좋다·나쁘다 이런 것을 떠나서. 맞고·안 맞고 그렇다 이거야. 궁합이 맞느니·배짱이 맞느니·성격이 맞느니··· 그게 뭐, 사람 관계에 있어서 안 맞는거, 그게 너무 이야기가 많이 되죠. 안 맞으면 차별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을 차별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는. 차별하다 보면 고하(高下)가 생기는 거야. 높다·낮다, 좋다·나쁘다·착하다·악하다··· 이런 것 까지도 거기에 개입되게 된다고요. 그래서 마음에 고하(高下)가 없어야 되는데 이 선재 동자는 평등한 도리. 모~든 것에 평등한 도리. 나아가서 모든 존재의 평등한 것, 이전에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는 거. 이게 더 중요하죠, 사실은··· 그래서 법의 평등함을 증득해서 마음에 고하(高下)가 없다··· 참, 선재 동자가 깨달은 대목 중에서 이런 내용은 참~ 뛰어나죠. 정말 필요한 것이구요.
拔不善刺하야 滅一切障하며
발불선자 멸일체장
불 선자(不善刺). 선하지 아니한 가시. 가시를 뽑아 버려서 일체 장애를 멸한다. 그래 장애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장애는 결국은, 뭐냐? 불선(不善)한 일. 안 좋은 일. 안 좋은 일들이 있어서 그게 장애가 된다고요. 그, 안 좋은 일이 하나의 몸에 찔린 가시와 같은 역할이 되기 때문에. 그런 가시를 뽑아 버려서 일체 장애를 다 소멸한다. 이··· 선재 동자의 삶은 이제 그만치 됐다는 거죠.
堅固精進으로 以爲牆塹하며
견고정진 이위장첨
견 고한 정진. 아주 정진이 굳건해. 여기 흔들리고·저기 흔들리고·시끄럽다고 흔들리고·피곤하다고 흔들리고·병들었다고 흔들리고·일바쁘다고 흔들리고··· 하는 그런 정진이 아니라. 여하한 일이 있어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그 정진은 아주 충~분히 수행정진을 잘하는 그런 정진을 견고정진(堅固精進)이다. 그렇게 말하는 거죠. 견고한 정진으로 장첨(牆塹)이 된다. 장[牆]은 ‘담장 장[牆]’자(字)자 고. 첨[塹]은 ‘해자 첨[塹]’이라고 해 가지고 옛날 궁성 밖에 파 가지고. 깊이 파 가지고 거기다 물을 대요. 그러면 성이 이렇게 있으면. 성 밖에 깊이 이렇게 파 가지고 물을 대어 놓으며는. 그 물 때문에 쉽게 적이 쳐들어오지 못하죠. 그래 물을 건너고. 또 거기서 성벽 기어 오르고···, 하는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에. 그게 이제 첨[塹]잡니다, 첨. ‘해자 첨[塹]’. 해자라고 해서. 그걸 해자라고 그래요. 장벽과 해자가 된다. 그러니까 견고한 정진이 있는 사람은 어떤 적도 나에게 침범하지 못한다는 거죠. 말하자면 장벽이 가로 놓여 있고 해자가 가로놓여 있어서 어떤 장애도 거기에 침범할 수가 없다. 그게 선재 동자의 아주 굳건한, 정진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甚深三昧로 而作園苑하며
심심삼매 이작원원
매 우 깊은 삼매. 좀 이렇게 시끄럽다고 흔들리고 피곤하다고 흔들리는 그런 삼매가 아니라. 아주 깊은 삼매로서 원(苑)을. 동산. 동산을 짓는다. 말하자면 거기서 노닌다, 이 말이여. 삼매 속에 사는 거야 그냥 삼매 속에 노니는 거죠. 동산이 된다[作園苑]라고 하는 말은. 거기서 그냥 편안하게 즐기는 곳이 돼 버려. 공부가 편안하고 즐겁고 내가 즐기는 것으로 돼 버려야, 그게 내가 공부가 진척이 있어요. 아이고 이거 힘든다 아이고 또 공부 시간이다··· 이런 식으로 되는 게 아니라. 정말 일하다가 동산에 나가서 바람 쏘이고. 한담하고 산책하고, 이거 즐기는 장소. 제일 좋은 곳이죠 그게. 삼매가 그렇게 돼야, 이제 제대로 된 삼매다, 이런 말입니다. 그래 선재 동자는 이제 그쯤 됐다는 거죠.
그 다음에 제가 아주 좋아하는 구절. “보문품”에 나오는 구절인데 여기는. 또 글자는 조금 바꿔서 나왔어요.
以慧日光으로 破無明暗하며
이혜일광 파무명암
저기는 혜일파제암(慧日破諸暗). 그렇게 돼 있어요. ‘지혜 혜[慧]’자(字) ‘날 일[日]’자(字) ‘깨뜨릴 파[破]’자(字) ‘모두 제[諸]’자(字) ‘어두울 암[暗]’자(字). 혜 일파제암(慧日破諸暗). 그런데 혜일(慧日)의 광명으로서. 똑같애요 뜻은. 파무명암(破無明暗), 그랬죠. 무명의 어둠을 깨뜨린다. 그러니까 태양이 있으며는. 아무리 어둡다 하더라도 태양만 떠오르면 그냥 밝은 거야. 그믐날. 그 전기도 없는 캄캄한 밤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경과해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 어둠도 칠흑같이 어둡던 그 어둠도 밝아지기 마련이라. 그와 같이 우리 마음에 지혜가. 지혜의 태양이 그렇게 빛을 발할 때. 우리 어리석은 무명의 어둠은 깨뜨려지게 돼 있다. 그래서 지혜를 참, 자주 강조하고.
그 래서 경전을 주욱 이렇게 볼라치며는. 늘~~~ 그저 지혜를 제일 많이 강조해요. 자비도 물론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지마는 그보다 더욱더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지혭니다. 이 지혜가 있고서야 법문도 제대로 알아듣고 인생살이도 제대로 살고.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쳐도 그 어려움을 제대로 수용하고 헤쳐 나가고··· 하는 것이지. 이 지혜가 없으며는 쪼그마~한 것도 크게 확대시켜 버려요 오히려. 더 일을 크게 만든다니까. 큰~ 것도 아주 가뿐하게 깃털처럼 가뿐하게 할 수가 있는데 이 지혜만 있으며는. 아주 작은 것도 미련하게 처리하다보며는 크~게 돼 가지고 더 그냥, 어려움을 더 가중시키는 그런 게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뭣이니 뭣이니 해도 지혜가 제일이예요. 어떤 인연의 도리를 잘~ 알아야 되고 세상의 이치를 잘 알아야 되고. 그런 것들이 지혜 없이는 안 되거든요? 미련한 그저··· 아, 소나 돼지처럼 미련한 중생들이 그렇게 사는데··· 그래서 부처님 보기에. 우리 중생들이 사는 모습이 참, 오죽했겠어요? 그러니까 태양과 같은 지혜의 빛으로 우리 어리석은 중생들의 마음을 깨뜨려준다.
아 까 평등 이야기를 했지마는. 차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어요 보며는. 너~무 막 그냥 뛰어난 사람도 있고. 너~무 미련한 사람도 있고. 그러니까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고. 아무리 설명 해 줘서 이해 시킬려 해도 이해가 안 되요. 그··· 뭔가 스스로 마음을 낸 사람이라야 되지, 스스로 마음 내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그게, 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스스로 마음의 문을 좀 연 사람은 뭔가 일러주고 좋은 말 해주면 그게 이제,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절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이 아니며는 괜히 힘만 빠지고 상대가 안 좋은 생각만 더 많이 받게 되니까 아예 할 필요가 없어요. 안 하는 게 그게, 현명한 일이라. 그 다음에
以方便風으로 開智慧華하며
이방편풍 개지혜화
여 기도 또 지혜가 또 나오네. 방편의 바람으로서 지혜의 꽃을 피운다. 지혜의 꽃을 피게 한다··· 그래, 방편을 써야 되는 거죠. 지혜의 꽃을 피게 할라며는 따뜻한 바람이, 훈풍이 남쪽에서부터 불어와야 되는데. 그것이 방편의 바람이라는 거예요. 그냥 덮어놓고 직선적으로 이야기 해 봐야 그건 또 미련에 미련을 가중하는 것이니까. 잘, 좀 참고 교묘~하게 어떤 기회를 봐서 성이 풀렸다든지 아니면 뭐,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다든지 아니면 어떤 문제에 어떤 호의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때 어떤 이야기를 딱, 해 가지고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하는 것, 그런 게 방편입니다. 방편을 잘 써야 되는 거죠.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시도때도 없이 그 사람, 지금 기분이 어떤지도 생각지도 아니하고 무턱대고 뭐라고 좋은 말이라고 수욱 해 봐요. 반감만 더 사는 거야. 그래 방편풍(方便風)이라는 게 그거라. 아주 따뜻한 바람 같은. 이, 풍[風]은 분위기 아니겠어요? 분위기를 사악 잡아 가지고 그래서 뭔가를 일러 줘야, 그래야 그게 귀에 들어가는 거죠.
가끔 말씀드리는 거지마는 집에 거사님들, 부처님 앞에 절하는 모습만 봐도 나는 성불한 거나 다를 바 없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거든요, 보며는. 일부러 부처님 앞에 데려 와 가지고 절 하라, 하며는 반감 사서 안 한다고요. 그러니까 등산 가자고 해 가지고 등산을 나서서 절 옆으로 지나가는 길을 택하는 거라. (대중 웃음) 그래 맨날, 절 옆으로 절에도 들리지 말고 그냥 지나가는 거야. 그냥 지나가며는 아니 당신 절에 다니는데 절도 안 하고 그냥 가냐···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고 결국은. 저절로 나올 때가 있어. 그럴 때 아 그럼 내가 절 한 번 하고 나오까요, 그러고 잠깐 기다리라고 당신은 여기서 놀아라고 하고. 자기만 갔다가 절하고 나오는 거야.
그 런 세월이 한참 가며는 결국은 따라 와. 따라 와서. 법당 주변에 이리저리 어정어정하다가 나중에는 들어와서 (대중 웃음) 절하는 그런 수가 있다는 거죠. 이, 한 예로서 그렇다는 겁니다. 장래에 대한 거나 돈에 대한 거나 무엇이든지 이 방편풍(方便風)으로서 지혜의 꽃을 피운다, 라고 하는 것이 참 기가 막힌 말입니다. 방편풍(方便風)으로서 지혜의 꽃을 피운다··· <화엄경> 이게 양도 많고 뭐, 좋은 말이 너무 많아서 별 그냥, 깊은 설명 없이 슬쩍슬쩍 지나간 대목도 많지만 또 하나하나 가만히 뜯어서 우리 생활과 연과시켜서 생각해 보며는 너무 좋은 말이 너무 많아요. 너무 많아서 뭐, 좋은 말로 생각이 안 들지 몰라도. 이혜일광(以慧日光)으로 파무명암(破無明暗)한다는 말이나 이방편풍(以方便風)으로 개지혜화(開智慧華)한다는 말이나. 또 심심삼매(甚深三昧)로서 이작원원(而作園苑)한다. 동산을 삼는다. 이런 것들도 깊이 우리가 생각해 보면는. 우리 생활에 백방으로 쓰일 말이라, 백방으로. 우리 생활하고 너~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以無碍願으로
이무애원
걸림이 없는 원력으로
充滿法界하며
충만법계
이 원(願)이··· 예를 들어서 남은 망하고 나만 잘 되고. 이런 것도 어쩌면 원력일 수 있어요. 근데 그거는 걸림이 많~은 원력이라. 통하는 데가 없다고 그거는. 자기 집에서만 통해. 자기 가게에서만 통해. 그런데 어디든지 통하는 그런 원이 있어. 그게 무애원(無碍願)이야. 누구에게든지 다 좋고. 어디든지 다 좋고 여러~ 사람이 골고루 혜택을 보는 그런 원(願)이 있다. 그게 무애원(無碍願). 그래서 충만법계(充滿法界). 이 세상에 행복과 이익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한다.
心常現入一切智城하야
심상현입일체지성
또 ‘지혜 지[智]’자(字)가 또 나오죠. 마음은 항~상, 일체지혜의 성에 늘~ 들어가 있다. 분명하게 환~하게 들어가 있어. 그런데 지혜를 늘 마음에 깔고 하는 거야. 지혜를 늘 마음에 깔고···
如是而求菩薩之道할새
여시이구보살지도
이와같이 보살의 도를 구할새. 그래서. 그런 마음자세로서
漸次經歷하야 到彼城內하니라
점차경력 도피성내
점점점점 지나고 지나서 다음 선지식을 찾기 위해서 저 성안에 들어갔다.
“반야심경”을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잘 외우겠고 사경을 많이 하시는 분이 계시겠고. 또 불교의 어떤 의식에도 “반야심경”이 들어가지 아니하면 의식집행이 안 되고. 예불에도 또 마찬가지고. 어떤 불자지송에도 “반야심경”은 꼭 들어있기 마련인데. 마 음은 항상, 일체지혜의 성에 들어가 있다. 지혜를 늘~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이 한마디로 표현될 수는 없겠지마는. 모~든 것이 인연의 도리로서. 현상계는 눈 앞에 보이는 이런 현상은 전~부 인연의 도리로서 되어져있다. 인연의 이치에 대해서 꿰뚫어 아는 거. 그 다음에 거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며는 인연의 이치로 되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다~ 공(空)한 것이다. 본래 공(空)한 것이고 또 궁극적으로 또 공(空)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도 공(空)하고 마지막도 공(空)하기 때문에. 공(空)해서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뭐, 쉽게 표현하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내가 없었고 내가 죽은 후에 내가 없는 거야. 그래 없는 것을 바탕에 깔고 나의 일생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어떤 인연의 힘이 있는 동안 이렇게 내가 살아간다. 이러한 것이 “반야심경”의 사상이라고요.
그래서 “반야심경”을 저는 근래에 깨달은 말. 딱 한마디로 요약하며는 뭐,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도 귀도 코도 없고 뭐, 사물도 소리도 없고 뭐, 전~~부 없다는 것 투성이잖아요. 그래 제가 “반야심경” 기도를 제가 몇 년 전부터 자~꾸 이제 하고. 그 뭐, 잘 외우니까. “반야심경”처럼 잘 외우는 게 없거든요. 늘 외웠고 또. 제일 쉽고. 잠결에도 외울 수 있는 게 그거예요. 그거라, 사실 그거 하나야. 오로지 그저 “반야심경” 하나 외우고. 그거 그렇게 쉽고. 불자라면 기본적으로 못 외우는 사람 없고 못 쓰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저는 그게 제일 편하더라구요, “반야심경” 기도가.
그러다가··· 앞으로는 또 어떤 깨달음이 올지 모르지마는. 몇 달전에 깨달아서 한마디로 요약해 보니까. 아··· “반야심경”··· 제가 그렇게 “반야심경” 관(觀)도 많이 하고 명상도 하고. 그거가지고 명상 소재를 삼고. 또 외우기도 하고. 막 외우면서··· 막 그냥 달리기 할 때도 그 “반야심경” 외우면서 달리면 좋다구요. 힘도 덜 들어. 그 뭐, 한자·한자, 한발·한발 뛸 때 외워봐요. 그거 같이 기도 잘 되는 거 없고 그거같이 힘 덜 들고 달리기 잘 되는 수도 없어. 그런 식으로 내 나름대로 내 방법대로 그렇게 “반야심경” 수행을 그렇게 했는데. 한 마디로. 근래에 깨달은 거예요. 앞으로는 또 뭐라고 깨달을지 모르지마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글자 넉 자, 우리말, 그것도. “나는 없다” 나는 없다야. 나는 없다더라고 그게 반야심경 270자가. 나는 없다는 거지 그 외에 다른 거 아니야.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내이무·의식계 무·무명··· 그, 뭐예요, 전부가? 나라고 하는 어떤 바탕위에 건립된 어떤 사실들이라.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느끼고 내가 춥다·덥다 하고 내가 붉다·뭐, 검다 하고··· 전~부 내가 있은 뒤에 뭐가 이루어진다. 여기 보면 아(我)와 아소(我所)란 말도, 금방 좀 있으면 나오는데. 그것이 전부 끝내는 오온개공이니 하는 뭐, 전~부 부처다·중생이다 하는 거. 전부가 내가 있고서 있는 일들이야. 그래 한마디로 “반야심경”의 뜻은 내가 없다는 말이지 그 외에 다른 말 아니야. 그래 요즘은 “반야심경” 한 편 외우기가 아주 간단해졌어. (대중 웃음) 내가 없다 내가 없다···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야. 나는 없다, 하면 “반야심경” 한 편 스윽, 지나가버려. 나는 없다 나는 없다··· 야, 그 좋은 이야기라요. 여러분들 뭐, 속상할 때. 뭐, 잘 안 될때. 나는 없다, 해 보세요. 나는 없다, 열 번만 딱 외워봐. 그냥 시원해져 바로 시원해진다고요. “반야심경” 외울라고 한참 걸려, 한 2분, 3분 걸려. (대중 웃음) 나는 없다 하니까 뭐, 2초? 2초, 3초면 끝나는 걸 2분, 3분까지 뭐할라고 외워? 나는 없다 나는 없다, 해 보라니까. 아이구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아주 시원해 가뿐해.
그게 억지로 없다는 게 아닙니다. 본래 없었어요 나는. 또 없어 앞으로 없을 거야. 근데 그런, 거품처럼 우리가 있는 거야 사실은. 물거품처럼 잠깐 존재하는 거, 환상으로 존재하는 거야 우리 인생이란 게. 이런저런 인연으로 그런 거 아니요? 지나간 세월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뭐가 있는가. 경험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확실하게 있는 것 같지마는. 그렇게 확실하게 있는 것 같지만. 지난 뒤, 이 순간에는 너무, 어처구니 없을 전도로 없는 거야 지금. 아~~무 것도 없다고요 지나 간 거. 생각해 보며는. 그렇게 없는 거예요. 그게. 현재도 없는 거야 사실은. 없는데 우리가 환상을 보고 있는 거야 환상을 보고···
제 가 가끔 그, 뭐죠? 환상처럼 나타나는 거. 홀로그램. 그거는 이렇게 비치면서 내가 움직이는 거 그냥 다 보여. 가서 내가 진짜 있는가 하고 손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면 하나도 없어. 손에 안 걷혀. 그런데 있는 것 같이 환~히 보이는 거라. 그런 거 어디, 도시에 가면 그런 거 보는 데 있다고요. 그런 식으로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있는 게. 참 알고 보면 어이없는 일이야 사실. 깨닫고 보면 어이없다고 인생이란 게 너무 어이없어. 그 위에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온~갖 명예니 뭐니 시시비비하는 거 내가 옳다고 하는 그런 어떤 가치관. 하, 요렇게 살아야 되는 것인데, 사람은 이런 것인데··· 그런 가치관이 뭐야?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시시비비, 마음에 가라앉아 있던 앙금들, 좋지 아니한 감정들. 이거 “반야심경” 외우면 아주 시원해져요. 제일··· 제가 그동안 경험한 바로는 최고 약이라, 최고 처방이야, 이게. 근데 요즘은 간단하게 나는 없다, 이렇게 해 버리니까 약도 간단해지고 효과는 빠르고. 약은 간단하고 효과는 빠르고. 그럼 얼마나 좋아요? 그래, 병도 가뿐해져. 내가 없는데 무슨 병이 있겠어요? 솔직하게. 병이 들었을 때도. 병이 들었을 때도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반야심경”은 나는 없다 소리지 다른 거 아닙니다. 이거 최초로 공개하는 거야 지금. (대중 웃음) 아니 정말이야 아주 이거·· 굉장히 이거···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는. 이건 내가 스스로 깨닫지 아니하면 나올 수 없는 소리야.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 하니까 누구하고 싸우다가도 싸울 일이 없어져 버려. 뭣이 일이 잘 안 돌아가 가지고 속이 상하죠? 나는 없다 해 버리니까 그것이 이게 되든말든 아~무렇지도 않애. 마음에 아무 것도 안 남아 있어. 근본적으로 내가 없고 앞으로도 내가 없고 현재도 내가 없다 과거현재미래, 모두 통틀어서 분석해 보며는 결국은 내가 없다는 도리가, 그게 반야심경이고 그게 부처님의 핵심정신이라며는 그렇게 알며는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라. 일체 문제 다 해결이다, 그랬거든요. 조견오온개공하면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이라. 오온이 다 공한줄 나는 없다. 오온이 다 공한게 뭐야? 나는 없다는 소리예요. 몸도 마음도 텅 비었다는 것으로 볼 것 같으며는 모든 문제 해결돼요. 어떤 문제도 어떤 고통이고 어떤 문제도 다 해결이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일체고액을 다 건넌다, 하는 말이 모~든 문제 다 해결입니다. 그런 이치를 우리가 제대로 아는 거. 항상 그런 이치를 보는 눈이 늘~ 깔려 있고. 그게 일상생활의 밑바탕에 깔려 있을 때. 그게 인생을 가볍게 살 수 있는 거죠. 기분좋~게 살 수 있는.
그래서 심상현입일체지성(心常現入一切智城)이라. 마음은 항상 일체 지혜의 성에 들어가 있다. 말하자면 지혜를 늘 밑바탕에 깔고 있다. 나는 지혜 속에 산다, 이거지. 그럼 지혜가 구체적으로 뭐냐, 이겁니다. 나는 없다는 도리야. 내가 이렇게 분명히 있는데도 없는 줄 볼 줄 아는 게 지혭니다. 없는 줄 볼 줄 아는 거. 아주 완벽하진 않애요 솔직하게 저도. 완벽하지는 않지마는 그래도 제가 살아가면서 모든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으로서는 최!고의 처방이야. “반야심경”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어. 제일 좋은 처방이야. 관자재보살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度一切苦厄], 그랬잖아요? 나는 없다고 하는 것을 비춰보고. 보고 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 다했다.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했다.
자~꾸 읽다보니까 어느 날 나는 없다라 는 말이 톡 튀어 나와버려, 나는 없다. 아니 그러니까 간단하게 1,2초면 그냥 다 읽을 수 있는 “반야심경” 한 마디가 딱, 나오더라고요.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없다야. “반야심경”은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 나는 없다하고 몇 번 외워 버리니까··· 이게 이제 최초로 만든 한글경이야. (대중 웃음) 그리고 아~주 효과 빠르고. 결국은 부처님의 경전은 전부 병에 의한 약방문이라고 돼 있잖아요.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 병에 맞춰서 약을 처방해 놓은 처방전이다, 그러거든요? 이게 전부 처방전이야. 처방전치고는 말하자면 “반야심경”이 제일 좋기 때문에 그래서 “반야심경”을 불교에서 좋아하고. 모든 의식에 그냥 “반야심경”을··· 일단, 한 번 외우고.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불사를 행하고 법회를 진행하고 일체 의식을 행한다, 이 말이야. “반야심경” 정신을 바탕에 깔고 우리가 뭘 해도 하자, 그래서 “반야심경” 외우고 삼귀의, “반야심경”. 그리고 뭘 하자···, 법문을 하든지 뭘 하든지. “반야심경” 정신을 깔고 해야지 그걸 깔고 하지 아니하면 불교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불교가 아니다. 그래서 “반야심경”부터 읽고, 따지는 거야. 어떤 경우도.
그래 “반야심경”은 한 마디로 나는 없다다. 나는 없다. 우리 말로 글자 넉자야, 나는 없다. 나는 없다. 그래 제 경험으로는 아주 어지간한 아픔은요, 그 한마디 몇 번 외워버리며는 그냥 가뿐해져. 아주 가뿐해진다고요. 참, 그 효과가 있습디다. 여러분들도 한번, 장난삼아라도 한 번 해 봐요, 장난삼아라도. 심상현입일체지성(心常現入一切智城)이라. 그 지혜가 구체적으로 뭔가?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인연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은 본래로 공한 것이다. 이런 이치를 우리가 마음에 늘, 새기고. 그러고 기분 좋~게 살아가자는 거지. 활발하고 기분 좋~게 살아가자. 깃털처럼 가볍고 그러면서 아주 즐겁고 기분 좋게 살자.
如是而求菩薩之道(여시이구보살지도)할새. 이와같이 보살의 도를 구할새. 그러면서 漸次經歷(점차경력)하야 到彼城內(도피성내)하니라. 저 성안에 들어갔다.
요 편만을 가지고 우리가 이야기하며는. 선재 동자도. 선재 동자도 항상 그러한 정신을 바탕에 깔고 살아간다, 그 정신을 바탕에 깔고 선지식을 찾아간다,하는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2. 見敬諮問(견경자문)
뵙고 나서 공경하고. 또 법을 묻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見無上勝이 在其城東大莊嚴幢無憂林中하니
견무상승 재기성동대장엄당 무우림중
무상승(無上勝)이. 무상승 장자(無上勝 長者)가 그 성 동쪽 대장엄당 무우림 중에 있는 걸 보니. 대장엄당 무우림중(大莊嚴幢無憂林中). 장엄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우수가 가득~히 있는 숲. 거기에 있더라. 마야 부인이 싯달타 태자를 낳을 때. 무우수 가지를 잡고 탄생시켰죠. 거기에 무우수라는 것입니다. 그런 나무. 그 나무가 아마 인도에는 많은가 보죠. 그게 숲을 이룬. 그런 숲에 무상승 장자가 거기 계시더라. 그런데
無量商人과
무량상인
상인들을 많~이 모아 놓고 있고.
百千居士之所圍遶라
백천거사지소위요
또 백천거사들이 에워싸고 있더라. 그러면서 뭘 하는고 하니. 한량없는 사람들. 백천거사들. 무량한 상인들, 이런 사람들 모아 놓고. 장자니까. 거부장자니까. 무상승 장자니까 그럴 수 밖에 없죠.
理斷人間種種事務하고
이단인간종종사무
인간의 종종사무(種種事務). 사람들이 처리해야 할 종종사무를 이단(理斷)하더라. 정리하고 판단하고 처리하더라, 이 말이여. 온갖 일들을 전부 처리하고
因爲說法하사
인위설법
그리고 나서 그로 인해서 설법을 해. 이 사람은 장자(長者)기 때문에 돈관리를 해야 되고 재산 관리를 해야 되고. 자기에게 딸려있는 상인들도 또 많~아. 그래서 이제 그 사람들과 사물을 처리하면서 그리고 설법을 하는 거죠. 돈거래만 하고 말며는 의미가 없죠, 사실은. 사실은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회장이 신심있는 사람이라며는 그 사람들에게 하루에 10분을 할애하든지. 최소한도 회사 직원들에게 10분을 할애하든지 20분을 할애하든지 해 가지고 우리 회사 직원들은 무조건 10분씩, 또는 20분씩 참선을 해야 된다. 아 그거 눈감고 앉아 있는 그거야 뭐, 사무보는 시간에 앉아 있으라, 그러면 누구나 다 좋아하지 그런 걸 시킨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반야심경”을 외우게 한다든지··· 여기는. 이 장자는 그런 사람이라.
지금 예로 들자며는 아주 큰~ 그런 그룹의 회장쯤 되며는. 이제 그 그룹에 속해 있는 모든 회사, 모든 직원들에게 그런 방편을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나요. 이 사람 보며는 종종사무를 처리하고, 그리고 그로 인해서 그들을 위해 설법한다, 그랬어요. 그러면 그게 참, 법이 잘 펴지지 않을까 그리고 그 뭐, 어거지로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너~무나도 이치에 맞고 합리적인 그런 가르침을 펴는 일이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제가 그 한진, 비행기, 칼[KAL] 회사, 고맙게 생각하는 한 가지가. 모닝컴[morning calm]이라는 잡지 있죠? 비행기 안에서 이렇게 볼 수 있는. 그 잡지에 보며는 하여튼 항상 절이 소개돼요. 한 번도 절이 소개되지 아니한 경우를, 제가 못 봤어요. 늘~ 불교 문화를 소개하는 거야. 항상 절 소개··· 스님들이 뭐, 어떤 행사하는 거 소개하든지 고색창연한 옛날 절을 소개하든지 아니면 탑을 소개하든지 불상을 소개하든지. 우리 나라 것들 아니면 저~ 외국거라도 소개하는데. 언제 봐도 항상, 두 페이지, 세 페이지, 네 페이지··· 한, 두 장쯤. 그렇게 절이 소개돼 있어요. 참 그거 만으로도 너무 고맙더라구요. 보통 원력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보거든요 외국 사람 한국 사람 할 것 없이 보는데. 거기, 그 절이 소개되는데. 그 사람은 불심이 장한 분이기는 해요, 조 중현씨는. 대단히 불심이 장한 분인데. 불심이 장하더라도 그겋게 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건 아주 크~게 상을 내려도 내려야 할 일인데.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또 알아 주겠죠. 그런 방편을 통해서 자기가 말하자면 경영하는 회사나 그룹이나, 그런 것을 통해서 불법을 편다며는 참 효과가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예요. 이 무상승 장자(無上勝 長者)는. 인위설법(因爲說法)이라. 사무를 처리하는 그 일로 인하여 설법해서
令其永拔一切我慢하며
영기영발일체아만
그들로 하여금 일체아만(一切我慢)을 영원히 뽑아 준다. 영원히 뽑았다. 아만을 뽑아 준다 이거야. 자기에게 딸려 있는 많은 상인들, 거사들, 이런 사람들에게 사무적인 일을 처리 다하고 그리고는 자기가 법을 설해서 아만을 뽑아 준다.
離我我所하며
이아아소
아(我)와 아소(我所)를. 나의 것. 나와 나의 것. 아까 “반야심경” 이야기 했는데 “반야심경”은 한마디로 나는 없다···죠. 내가 없는데 나의 것은. 나에게 딸려 있는 것이 아솝[我所]니다. 나의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있고 나서 내것이 있지. 내가 없으면 내것이 없어요. 그래, 나와 내것을 떠나며. 그랬습니다. 그렇다고 다, 두 손 놓고 인생 뭐, 끝내자는 뜻이 아니라. 인생은 여전히 어제와 같이 그대~로 살아가는 거야. 살아가되 이러한 정신을 깔고 살아가면 가뿐하게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어려움을 대하고 대처하는 그런 마음자세가 전~혀 다르죠. 한결 다르죠. 마치 꿈 속에서. 우리가 꿈인 줄 알고 꿈을 꾸는 것 같은··· 그런 정도의 상태가 된다며는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捨所積聚하며
사소적취
적취(積聚)한 바를. 자기가 쌓은 바를 다 버린다, 희사한다, 이 뜻이예요. 여기서 ‘사[捨]’자(字)는. 나와 내 것을 떠나서 내가 쌓아 놓은 바를 다 희사하며
滅慳嫉垢하며
멸간질구
간탐(慳貪). 아끼는 거. 또 질투라고 돼 있어요? 구(垢)라고 돼 있어요? (구) 구(垢)죠. 아끼고 질투하는 그런 때를 다 소멸하며
心得淸淨하며
심득청정
마 음이. 청정함을 얻는다. 마음이 이제 텅 비어서 청정(淸淨)은 텅 빈 거죠. 마음이. 그러니까 나와 내 것이 없고. 그러니까 내가 쌓아 놓은 바가 없고. 그리고 아낀다든지, 질투한다든지 그런 때들을 다~ 떠나서 마음이 시원해졌다. 가~뿐해지고 깨끗하고 텅 비었다. 깃털처럼 가뿐하고. 제가 잘 쓰는 말. 깃털처럼 가뿐하게 살아라. 심득청정(心得淸淨)하며.
無諸穢濁하며
무제예탁
모든 예탁(穢濁). 더럽고 흐린 것이 없고.
獲淨信力하며
획정신력
청정한 믿음의 힘을 얻어서. 얻으며
常樂見佛하며
상락견불
항상 깨달은 사람. 부처님 보기를 즐기며
受持佛法하며
수지불법
부 처님의 법. 불교. 뭐, 꼭 부처님 이름으로 돼 있는 법이라고 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바른 이치니까 참다운 이치고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고 그 당연한 이치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유익하기 때문에 그래서 불법을 좋아하라는 거지, 무슨 부처님 법이라고 해서 당치도 않는 법인데도 부처님 법이라고 해서 좋아하라는 건 전혀 아니죠.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절대···. 그래서 수지불법(受持佛法)이라는 것도 깨달음의 법이죠. 깨달음의 법을 수지하며
生菩薩力하며
생보살력
보살의 힘을 내고
起菩薩行하며
기보살행
보살의 행을 일으켜. 자꾸 이제 보살행을 많이 한다는 뜻이죠.
入菩薩三昧하며
입보살삼매
보살삼매에 들어가며. 보살은 늘 그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 아주~ 열심히열심히 자기 발전을 꾀하고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하고, 하는··· 그런 그 두 가지 마음, 그거 뿐이야. 자기는 자~꾸 자기 공덕을 쌓아가고 자기를 넓혀 가고 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도와 줄수 있는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 하는 것. 그런 마음. 그게 보살삼맵[菩薩三昧]니다, 보살삼매(菩薩三昧). 보살삼매라는 게 무슨 특별한 삼매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삶, 그런 삶 속에서 늘 생활한다. 그래서
得菩薩智慧하며
득보살지혜
보살의 지혜를 얻고
住菩薩正念하며
주보살정념
보살의 바른 생각에 머문다.
增菩薩樂欲이어시늘
증보살낙욕
보살이 하고자 하는 것. 보살이 즐겨 하고자 하는 것을 더욱더욱 증장시킨다. 보살이 하고자 하는 게 뻔~하죠, 뭐. 끊임없이 자기 깨달음을 향상시키고 자기 발전을 꾀하고. 그리고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뭐가 이익이 되고 보탬이 되고자 하는 거. 이게 보살이 좋아하는 거고 보살이 즐기는 일. 그 외에 다른 거 가지고 즐거운 일이 아니라 이겁니다. 차원이 달라지는 거죠 사람 사는 차원이. 차원이 자~꾸 달라진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도 그 좋아하는 바가 다르듯이. 사람으로 사는데도 그 사람의, 살아가는 관점에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서 어떤 가치관, 관점이 자~꾸 향상하죠. 그래 좋아하는 바, 즐기는 바가 영 다르다는 것입니다.
爾時에 善財 童子가 觀彼長者의 爲衆說法已하고
이시 선재 동자 관피장자 위중설법이
그 때 선재 동자가 그 장자의, 대중을 위해서 설법하는 것을 관하고. 관찰하고
以身投地하야
이신투지
몸으로서 땅에 던져서
頂禮其足하고
정례기족
그 발에다 예배를 떠억 올리고
良久乃起하야
양구내기
예 배를 하고는 터억, 한~참 있다가 내기(乃起)라. 이에 일어나서. 우리가 절을 할 때도 실컷 이렇게··· 허리를 구부릴 때는 공손하게 잘 하고는 구부렸다가는 퍼뜩 일어나는 거. 그게 아니라 머리를 딱 숙인 상태에서 잠깐 있는 거야. 법당에서 할 때는 오래 있을 수록 좋아요. 머리를··· 그러다 졸면 또 안 되고. (대중 웃음) 그러다가 잠든다고요. 우리 어릴 때는 잠들어. 고, 잠깐 머리 내린 사이에 한 숨 자는 거라. 야 참 그··· 꿀맛이야 꿀맛··· 어릴 때 잠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 시에 두드려 깨워 가지고 뭐 찬물에 세수하고 법당에 갖다 놓으니까 잠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절 한다고 딱 이렇게, 머리 이렇게, 딱 내리는 고 사이에 잠이야. 한참 오는 거야 한참. 그래봐야 2,3초 사인데. 2,3초 사이에 잠을 한~참 잔다니까. 시간이라는 것도요 정~말,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으로 뭐, 몇 시다·몇 시다··· 이리 잴 수가 없는 거라. 우리가 하루 24시간 쪼개 놓기는 했지마는 잠깐, 2,3촌데도. 객관적으로 따지면 2,3촌데도 한~참 자는 것 같다니까. 그런 경험들, 뭐, 없죠, 여러분들은. 그러니까 절 할 때 딱, 이렇게 머리를 숙여 가지고 정성을, 내 마음을 충분히 담고, 그러고 일어나는 것. 그게 이제··· 요 양구내기(良久乃起)라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한참 있다가. 양구(良久)라는 말이 그 말이예요. 한참 있다가. 정례기족(頂禮其足). 그 발에다 머리를 따악 숙이고. 숙였다 퍼뜩 일어나면, 그거, 가벼워 보여서 안 되죠. 숙여 가지고는 한참 있다가 머리를 이렇게 들며는 참 정중하게. 정말 마음을 다 담아서 정성을 담아서 절하는 것 같죠. 한참 있다가 일어나서
白言호대
백언
고해 말하되
聖者여! 我是善財며 我是善財라
성자 아시선재 아시선재
성자시여! 나는 선재(善財)야, 나는 선재(善財)야. 두 번이나 이렇게 나는 선재(善財)입니다, 나는 선재(善財)입니다.
我專尋求菩薩之行하노니
아전심구행보살지행
나는 오로~지 그저, 다른 거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그저 보살행만 구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진짜 보살행인지 보살행 하고 싶어서 이렇게 배우러 다닙니다.
菩薩이 云何學菩薩行하며
보살 운하학보살행
보살은 어떻게 해야 보살행을 배웁니까?
菩薩이 云何修菩薩道하야
보살 운하수보살도
보살은 어떻게 해야 보살도를 닦습니까?
隨修學時하야
수수학시
따라서 닦고 배울 때에
常能化度一切衆生하며
상능화도일체중생
항 상 능히 일체중생을 같이 또 교화하고 제도. 내 공부할 때 딴 사람도 따라 하잖아요? 아, 옆에 있는 사람 가자고 해서 같이 하는 거야. 여기 봐, 수수학시(隨修學時)야. 자기가 공부할 그 때에 다른 사람도 운김에, 같이 따라서 법회에 오고 절에 오고 기도 오고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 그게 저절로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 게 된다고. 상능화도일체중생(常能化度一切衆生)이야. 내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공부하게 하는 거. 하며.
常能現見一切諸佛하며
상능현견일체제불
항상 능히 일체제불을. 모든 부처님을 환~하게 보며. 뵈오며
常得聽聞一切佛法하며
상득청문일체불법
일체불법. 부처님의 법을 항상 청문(聽聞). 들어. 자꾸 쫓아 다니며 이런저런, 경전의 말씀도 듣고 법문하는 소리 듣고 자기 경험하는 소리도 듣고
常能住持一切佛法하며
상능주지일체불법
그래서 항상 일체불법 속에 머물러 있어. 주지(住持)한다, 이 말이야. 불법 속에 머물러 있다. 머물러 가진다.
저기 서울에 제 숙소 옆에 학교가 있는데. 그날··· 수능시험 치는 날 아침에 학생이 잔뜩 모였는데 제가 일부러 가 봤죠. 요즘 분위기가 어떤가 싶어서 가 봤더니. 현수막을 걸어 놨는데. “대학을 다 가져라!” 대학을 통째로 가져라. 그런 현수막을 떡 걸어 놨어. 아주 요즘··· 아주 애들 머리가··· 그렇게 기발하더라구. 대학을 다 가져라. 뭐, 시시하게 시험쳐서 들어가고 자시고 하지 말고 통째로 네가 다 가져 버려라 대학을. 그렇게 표현을 해 놨는데. 주지일체불법(住持一切佛法)이야. 상능주지(常能住持). 일체불법에 주지(住持)하라 이 말이야, 주지(住持). 뭐, 시시하게 절 주지(住持) 하지 말고. 일체, 일체불법에 주지(住持)하라. 일체불법을 다 가져라.
常能趣入一切法門하며
상능취입일체법문
(···) 나아가 들어가며
入一切刹하야
입일체찰
그리고 일체세계에 두루두루 돌아 다니면서
學菩薩行하며
학보살행
보살행을 배워
住一切劫하야
주일체겁
모든 시간에. 일체찰(一切刹)은 모든 공간에 보살행을 배우고. 모든 시간에. 주일체겁(住一切劫). 일체겁에 주해서. 모든 시간에
修菩薩道하며
수보살도
보살도를 닦으며
能知一切如來神力하며
능지일체여래신력
능히 일체여래의 신통력. 신비한 그런 힘을 다 알며
能受一切如來護念하며
능수일체여래호념
그리고 모든 부처님이 생각해 주고 보호해 주고 지켜 주는. 그런 지켜 주는 마음을 받아 들여. 받아들이며
能得一切如來智慧리잇고
능득일체여래지혜
능히 일체여래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등등을 선재 동자가 주욱,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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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慧日破諸暗...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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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日破諸暗... 智慧...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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能知一切如來神力하며 能受一切如來護念하며...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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照見五蘊揭空. 住持一切佛法 ㅡ 일체의 불법을 다 가져라. 고맙습니다._()()()_
_()()()_
깨닫고 보면 어이없다고 인생이란 게 너무 어이없어. 그 위에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온~갖 명예니 뭐니 시시비비하는 거 내가 옳다고 하는 그런 어떤 가치관. 하, 요렇게 살아야 되는 것인데, 사람은 이런 것인데··· 그런 가치관이 뭐야? 아~~무 것도 아니야. 나무대방과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心常現入一切智城,,,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현대인은 기게신을 다 믿는다
제법이 평등함을 알아서 마음에 고하가 없다
諸法平等 心無高下
선하지 않은 가시를 뽑아버리면 일체의 장애가 없어진다
확실하게 있는 것 같지만 없는 거야,환상과 같은 거야
병이 들었을 때도 "나는 없다"
현재도 내가 없고 앞으로도 내가 없다
--渡一切苦厄
--이런 안목이 깔려 있으면 인생을 사는 것이 가볍고 즐겁다
--반야 심경의 핵심
마음이 항상 지혜의 성에 들어가 있다-선재 동자
--내가 없다는 것이 지혜의 핵심
내가 이렇게 분명히 있는 데도 없는 줄 아는 것이 지혜다
--이런 지혜를 늘 깔고 살아야 하고 그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모든 문제기 해결된다
"내가 없다"--최초의 한글 경전
현상계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연으로 생긴 것이기에 궁극적으로 공한 것이다
-이런 지혜가 늘 깔려 있어야 한다
나의 일생이라는 것이 어떤 인연의 힘이 있는 동안 내가 살아 간다
누구하고 싸우거나 일이 잘 안 돌아가 속 상할 때도 "나는 없다"해버리면 그 일이 잘 되든 안되든 상관 없어
--반야 심경,照見五蘊皆空 渡一切苦厄
모든 현상은 인연에 의한 것이고 공하다는 이치를 마음에 새기고 기분좋게 ,깃털처럼 가볍게,활발하게 살아가자
-감사 합니다
마치 꿈을 꾸면서 꿈인 줄 알고 꾸듯이
보살 삼매;일상 생활속에서 남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경험할 때는 확실하게 있는 것 같지만 지내고 나면 어처구니없이 없는거야
현재도 없는 데 우리가 환상을 보고 있는거야,물거품처럼 잠시 존재하는 거
무상승;데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업 처리를 한 후 설법함
일체의 불법에 머무러라
住持一切佛法
모든 시간에 住一切劫 모든 장소에서 入一切刹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다
나무 입법계품
_()()()_
塹(구덩이참-해자)-첨은 참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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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은 늘 그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 아주~ 열심히열심히 자기 발전을 꾀하고 그리고 남을 배려하고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하고, 하는··· 그런 그 두 가지 마음, 그거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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